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70)
00870 %3C프리시즌 딜러편%3E 테러범, 그리고? =========================================================================
정효주는 레드 몹을 때려잡는 동영상과 반미 연설을 통해 혜성처럼 한국 사회에 등장했다. 뭐 반미라기보다는 국가와 국민의 자존을 강조한 내용이었지만, 누군가 농담 삼아 반미 연설이라고 부르던 게 그만 굳어져 버렸다. 아무튼 이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기로 하고.
「유지웅은 몇 몇 나라와 사소한 오해가 있어 국제적으로 곤란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호선언을 한 국가를 위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울 만큼 정의롭고, 또한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시민을 호도하는 미국 지도 인사들을, 저는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연설은 국민들 가슴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을 단숨에 떨쳐 버렸다.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그녀의 이름을 불러댔다.
“정효주! 정효주!”
“정효주를 청와대로!”
“싸우자! 싸우자! 와!”
“싸워라! 싸워서 우리의 생존을 쟁취하라! 우리의 정의를 바로 세워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융단 폭격을 걱정하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흥분해서 정효주의 이름을 외쳐댔다. 순식간에 그녀의 팬 사이트가 만들어졌고 가입자가 2천만 명을 돌파했다.
심지어 공중파에서조차 그녀의 팬 사이트를 언급하며, 아나운서들끼리 ‘당신은 가입했습니까? 전 어제 가입했는데요.’라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장님, 그런데 정말 이런 식으로 내보내도 되는 거예요?”
“내보내! 지금 미국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고 하는데 그럼 가만히 당할 거야? 어떻게든 똘똘 뭉쳐서 대항해야지!”
“하지만 정부에서…….”
“아, 보도 방향이 맘에 안 들면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하겠지. 그전까지는 일단 무조건 내보내!”
사실 언론사들도 심정적으로 일반 국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 정부가 확고한 응징 의사를 품고 공격해올 경우, ‘너는 서민이니까 죽어.’, ‘너는 1%니까 살려줄게.’라는 식으로 나오겠는가? 그냥 미사일 일제 발사 버튼을 누르고 말지.
원래 약해보일수록 더 만만하게 보고 달려든다. 국민들이 불안에 떨며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독기와 광기를 품고 똘똘 뭉치는 게 나았다.
정효주의 등장은 구심점이 필요했던 한국에 절묘한 한 수가 되어주었다. 사실 유지웅이 있으면 애초에 이런 일도 안 일어났겠지만, 사회지도층은 그녀가 유지웅의 대타로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정효주! 정효주! 정효주!”
“여신님 만세! 만세!”
이제 머리에 ‘효주사랑’이라는 글자를 쓴 끈을 두른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가두 행렬하는 광경은 흔해졌다. 전국에 정효주 열풍이 불었다.
모든 업무가 중지 상태였던 암시장 및 수출 시장도 올 스톱 상태가 멈추고 다시금 정상 업무를 시작했다.
“내가 결재하는 게 뭐가 문제죠?”
“하, 하지만…….”
업무 이행 과정에서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대기업 미래자동차의 책임자란 사람이 난색을 표했던 것이다. 유지웅과 가족도 아닌 정효주에게 수출입에 관한 중재라는 막중한 일을 맡긴다는 게 영 불안했던 것이다.
“김 비서. 읊어.”
“예! 사모님!”
김범석은 씩씩하게 앞으로 나섰다.
“박 사장, 여기 계신 이 분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몰라서 그런 죽을 죄를 지은 모양인데, 이 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유지웅 회장님과 남달리 깊은 사이라네. 그 분께서 중국 출장을 가시면서 인감까지 맡기고 가실 정도로 말이야.”
“김 비서, 하지만 이 여자는…….”
“어허! 대체 얼마나 더 죽을 죄를 지어야 만족하겠다는 말인가! 일 없네! 미래자동차는 앞으로 알아서 하게!”
“아니, 이보게! 김 비서! 김 비서!”
김범석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박 사장을 쫓아내버렸다. 그제야 정효주는 풀썩 한숨을 토하며, 다소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을까요? 그래도 미래자동차가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할 텐데……. 직원수도 20만 명이 넘는다고 들었고요.”
“괜찮습니다. 박 사장 저 친구, 그룹 총수의 둘째아들이라고 아주 기고만장하는데 이참에 경영진이나 한 번 물갈이해야겠습니다. 감히 사모님 앞에서 그런 죽을 짓을…….”
김범석은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그 모습이 무슨 주인의 원수를 눈앞에 둔 맹견 같아서 물끄러미 보게 된다. 문득 유지웅이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범석이? 잘 보면 디게 귀엽다니까.’
그때는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온 중년 아저씨 대체 어디가? 라고 기겁을 했는데 왠지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아니! 아니, 아니야! 이러면 안 돼!
정효주는 속으로 기겁을 해서 뺨을 짝짝 쳤다. 절대로 그럴 순 없다! 유지웅처럼 되어선 안 돼! 좋아하긴 하지만 똑같이 닮아갈 수는 없어!
“사모님? 갑자기 왜 그러시죠?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니, 아니에요. 그냥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다행입니다. 지금 한국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모님 한 분에게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건강하고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셔야죠.”
김범석은 주먹을 불끈 쥐고, 굳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회장님이 돌아오실 때까지는, 사모님께서 이 나라의 안주인으로서 바깥어른의 역할까지 해내셔야 합니다. 국모란 바로 그런 자리지요.”
……누가 제발 김범석의 저 얼토당토않은 ‘지웅바라기’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정효주는 이마를 짚었다.
그때 김기영이 들어왔다.
“김 비서. 박 사장이 씩씩거리며 나가던데 무슨 일인가요?”
“예. 이번 분기에 미국에서 받아야 할 미래자동차 수출 대금 있잖습니까.”
“그게 왜요? 그거라면 장기 채무로 강제 전환시켰다가 미국이 잠잠해지면 이자 쳐서 받아내기로 이미 결정이 된 거 아닙니까?”
유지웅이 주재하는 무역 사무부는 국내의 모든 수출입을 안전하게 중개한다. 그런 사무부의 실무장은 김기영 비서실장이다.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지금 돈을 달라고 해봐야 말을 들을 리가 없다. 그래서 사무부는 관계가 회복되면 복리 이자와 이행 청구를 기다려준 수수료까지 물어서 받아내기로 결정을 한 상태였다.
“미래자동차가 자금 사정이 급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박 사장이 여기까지 찾아온 거고요.”
“저런, 급하다고 해도 저렇게 표정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해서야 쓰나요. 자기 한 마디에 20만 명이 넘는 회사 직원과 그 가족 생계까지 흔들릴 수 있는 건데.”
“그렇죠? 그렇게 자기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친구여서야 어디 쓰겠습니까?”
“금수저를 물고 나서인지 영 못 쓰겠군요.”
“그 친구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친구니 알아서 해주세요.”
“예! 심려 마십시오!”
한때 정효주는 김기영이 그래도 김범석보다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김범석이 그동안 걸어온 행보가 워낙 파격적이어서다. 마치 강아지처럼 유지웅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게 영 거북하고 적응이 안 됐다.
‘…….’
그런데 지금 보니 김기영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다.
“아, 아무튼 무역 사무부 일은 두 분에게 맡길 테니 지웅이가 돌아올 때까지 잡음이 안 나게 잘 처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김기영은 깍듯하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저 핸섬하고 정중하고 샤프한 모습 뒤에, 유지웅의 말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광기가 숨어져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김범석이 시츄라면 김기영은 셰퍼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효주가 돌아간 뒤…….
“참, 정말 사모님께 그런 모습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어요.”
“회장님께서 선택하신 분입니다. 그 정도 위엄은 당연한 것이지요.”
“레이드나 하기에는 그 분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정치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통솔력이 아주 장난이 아닌데. 그거 아무나 못해요.”
정효주는 며칠도 채 되지 않아 흔들리고 있던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비록 대본을 김범석이 써줬다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연설하며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타고난 카리스마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직 자기의 그런 재능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으니, 모시는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부디 성군이 되셔야 할 텐데.”
“이미 성군이십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하하, 그렇죠?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김 비서.”
역사는 과연 둘을 충신으로 기록할 것인가, 간신으로 기억할 것인가.
* * *
쿤겐은 높은 담을 올려다보았다. 집을 뛰쳐나오고 어언 몇 년이 흘렀다. 그때는 한없이 높고 단단해 보이던 담이, 지금 보니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질 듯이 연약해 보인다.
본가에 오기 전 마음을 다잡으며 결심을 굳히던 그 모든 행동들이 참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이까짓 게 뭐라고 나는 그렇게 신경을 쓰고 있었나. 쿤겐은 자신 있게 한 걸음을 내밀었다.
출입 정문을 관리하는 경비실에서 그녀를 알아보고 부산해졌다.
“오셨습니까?”
“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바로 회장님께…….”
“그럴 필요는 없어.”
쿤겐은 가볍게 발을 앞으로 뻗었다. 그녀의 발끝에 채인 거대한 철제 정문이 우지끈 일그러지며 뒤로 떨어져 나갔다. 경비원은 수화기를 든 채 멍하니 입만 벌렸다.
그녀는 저 멀리 언덕 위에 있는 대저택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유지웅이 일러준, 집에 갔을 때 꼭 외치라고 해준 말이다. 물론 한국어다.
“이리 처오너라!”
참고로 악센트는 ‘처’에 실으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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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이 극에 달하면 하드캐리가 됩니다.
원래 극과 극은 통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