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74)
00874 %3C프리시즌 딜러편%3E 테러범, 그리고? =========================================================================
“뭐라고요? 아버지가 US크리스탈 지분을 테레사 그 아이에게 넘기셨다고요?”
“가주 자리까지? 그 아이, 이제 겨우 열두 살이잖아요?”
“아무리 작은 아버지가 테레사 그 아이를 각별히 여긴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요?”
“오빠는 대체 그것도 못 말리고 뭐 했어요?”
카네기 가문은 자손이 많다. 세인만 해도 6남매를 자녀로 두고 있으며, 본인의 형제만 해도 5명이다. 그 형제들이 두고 있는 자녀까지 합치면 상당한 대친족이 된다.
세인의 호출에 모든 일가원들이 달려왔던 것은 아니다. 사정상 오지 못한 이들도 절반가량은 된다. 그들은 세인의 지분과 가주 자리가 쿤겐에게 넘어갔다는 이야기에 기겁을 했다.
“그게…… 니가 그 자리에 없어서 그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나름대로 변명을 하려 했지만 여동생들은 불같이 화를 냈다.
“오빠!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죠!”
“정말이라니까. 테레사가 억지 부리는 걸 니가 못 봐서 그래.”
“아니, 오빠!”
카네기 일가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열두 살의 손에 죽을 수도 있다는 섬뜩한 공포를 느껴본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게다가 이 나라가 어린 소녀에게 좀 관대한가? 협박질로 가문을 뜯어냈다고 연방검찰에 고발을 한다? 쿤겐이 아동 시절의 학대 기억을 들먹이면 게임 오버다. 카네기 가문의 이름만 먹칠하고 끝나게 된다.
물리력으로 쿤겐을 제재할 방법도 없고……. 세인이 그 같은 결정을 내린 것도 이해는 된다. US크리스탈이 최대 규모의 종합결정체회사이긴 하나 카네기 가문의 재산은 그것만이 아니니까.
쿤겐에게 모든 권리가 넘어가는 자리에 있던 이들은 그런 식으로 합리화를 했다. 어쩔 수 없었어. 탱커인 데다가 소녀인 걸. 어린 시절에 학대도 당했는 걸. 세상에 드러나봤자 카네기 가문의 망신인 걸. 그런 식으로.
물론 그 자리에 없던 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작은 오빠!”
“그만해라. 이미 결정된 사항이야. 지분 양도 절차도 이미 마치셨다고.”
뉴욕, 카네기 뱅크.
정기총회에 참석한 일가 구성원들은 얼마 전 있었던 가주 권한 이양을 놓고 가볍게 말다툼을 벌였다. 회의 시작 시간을 넘겼는데도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안 되겠어요. 우리들이 그 아이를 한 번 봐야겠어요.”
“사만다 언니, 마침 그 아이가 여기 오지 않아?”
“아! 그렇네. 카네기 뱅크 지분도 있을 테니.”
세인이 보유한 지분은 US크리스탈이 전부가 아니다. 카네기 뱅크 등 다양한 회사의 지분도 함께 쿤겐에게 넘어갔다.
“근데 그 아이 열두 살이잖아? 이런 자리에 나올 자격이 돼?”
“대리인 끼고 참관식으로든 오겠지.”
잠시 후 사회자가 들어와서 마지막 출석 멤버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카네기 일가원들의 표정이 사뭇 굳어졌다. 마지막 출석 멤버가 바로 쿤겐이기 때문이었다.
경호원의 안내를 받으며 쿤겐이 들어섰다. 그녀는 짙은 남색의 바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긴 은발도 하나로 묶어서 가슴에 걸치듯이 늘어뜨렸다. 크고 늘씬한 키, 차분하고 단아한 이미지는 그녀의 나이를 잊게 만들어준다.
저 모습으로 열두 살의 땡깡을 부리다니, 보지 않은 이들은 도무지 상상이 안 갔다.
“정기회의를 시작합니다.”
엄숙한 목소리가 회의 개시를 알렸다.
오늘의 주요 안건은 자금 집행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 카네기 뱅크는 약 1조 달러의 잉여 자금이 있었다. 세계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 마땅히 투자 운용할 데가 없어서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참이었다.
현재 세계 경제는 동아시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탄두와 같은 상태라 미래 전망이 불투명했다. 이사진도 하나같이 우려를 쏟아냈다.
“결정체 공급 시장이 워낙 불안정합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대규모 투자는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적어도 공격적인 투자를 할 때는 아닙니다. 일단 일부를 안정적인 국채 매매 위주로 돌리고 전망을 살피는 게 좋을 듯 하군요.”
“아시아는 한국의 영향력이 너무 커요. 정효주라고 했던가요? 그 여자가 급속도로 한국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도 레드 몹을 손쉽게 사냥하는 레이더였지요, 아마?”
“그렇습니다.”
“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한국이 원래 그런 레이더가 태어나기 좋은 지리적 조건이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 건지…….”
휴스턴 대참사로 190만 여 명의 시민을 잃은 미국은 한국 응징을 잠시 뒤로 미뤄야 했다. 새롭게 등장한 정효주가 순식간에 한국 사회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단숨에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국론을 하나로 모은 그녀는 외세에 똘똘 뭉쳐 대항할 발판을 마련했다. 정신적인 기틀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레드 몹 사냥 능력을 선보여 안정적인 결정체 공급 능력을 증명했다.
즉 투쟁 정신만을 강조한 게 아니라 원활한 병참 공급까지 증명한 것이다. 지금 한국은 그녀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상황이라, 미 정부도 섣불리 건드리기 뭐했다.
“한국 암시장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거기에 투자할 수만 있으면…….”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 야만적이고 미개한 나라에 투자했다가 자칫 자금 동결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요?”
“그렇게 일차원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한국 암시장의 시장 지배력 때문에 미국이 잠시 주춤한 것이지, 한국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는 정점에 달해 있어요. 이 시기에 한국 암시장에 투자해서 수익을 낸다? 매국노로 몰리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현재 한국 암시장은 전 세계 국가가 해외에서 수입하는 물량의 20% 이상을 공급하고 있었다. 물론 에너지원으로 가공해서 수출하는 것이라 블루 결정체를 따로 연구 목적에 활용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원한이 깊은 영국과 미국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을 만큼 지대한 영향력이었다. 막말로 두 나라가 손을 잡고 한국을 응징한다 치면, 다른 모든 국가들이 합심해서 말리고 나설 판이다.
지금 한국의 수출이 끊기면 줄줄이 여러 나라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유럽에 치명적이다. 수출이 멈추는 즉시 아마 그리스부터 디폴트를 선언할 것이다.
“그럼 우회 투자는 어떻습니까?”
“……음.”
이사진은 선뜻 반대하지 못했다. 어쨌든 한국 암시장은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처다. 시장에 다이랙트로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암시장에 얽혀 있는 산업체나 회사에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가능하다.
한국에 원한을 품고 있는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수익 창출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상업 은행으로서는 당연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우회 투자는 가능할 것 같긴 합니다만, 무엇보다 루트를 찾기가 쉽지 않고 보안 문제도 있습니다.”
“매스컴에 노출되는 것도 극히 조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안을 먼저…….”
“무르군요.”
“……예?”
회의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쿤겐이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이사진은 벙쪄서 그녀를 돌아봤다. 가문 사람들은 살짝 긴장해서 주시했다.
그녀는 테이블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서늘한 눈빛이 테이블에 앉은 이들을 둘러본다. 열두 살 같지 않은 섬뜩한 기운에 이사들은 저도 모르게 움츠렸다. 어째서인지 오슬오슬 추워지는 것 같다.
“무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같이 무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세인의 지분을 양도받은 쿤겐은 카네기 뱅크의 최대주주이자 감사였다. 그 지위 하나만으로도 이사들은 조심해야 한다.
“우회 투자라고요? 그런 안일하고 무른 방식으로 이 글로벌 경쟁 사회를 헤쳐 나가겠다는 겁니까? 그런 열두 살도 비웃을 안건이나 내놓으라고 여러분들에게 비싼 연봉을 주는 게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모욕적인 언사지만 누구 하나 반발하지 않았다. 심지어 쿤겐이 나타나기 전에 세인을 비난했던 가문 일가원들조차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결코 쿤겐의 양손이 테이블을 쥐어뜯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니다.
“해외 기업들은 이미 암시장에 투자해서 상당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니다.”
“네? 뭐라고요?”
“잉여 자금이 1조 달러라고요? 그 자금 전부를 결정체 암시장에 투자하겠습니다.”
“테, 테레사! 이게 무슨 짓이냐!”
“이 자리는 가문 총회가 아니야! 카네기 뱅크가 가문 소유 은행이기는 해도,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할 순 없는 법이다! 너는 이사회 의장도 아니란 말이다!”
암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다. 자칫 매국노로 몰릴 수도 있다. 그런 문제를 저렇게 성급하게 진행하려고 하다니.
“반론은 받지 않습니다. 만약 제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경우 정의로운 도둑이 카네기 뱅크 본점을 찾아갈 겁니다.”
이사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정의로운 도둑?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
“그리고 착각하시는 게, 저는 결정체 암시장에 투자한다고 했지 한국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 다들 어리둥절해 있을 때였다.
왜애앵! 왜애앵!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경보 사이렌이 들렸다. 이사진들은 하나같이 벌떡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사이렌이다.
보통 사이렌은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 요란하게 울린다. 하지만 이 사이렌은 나지막하게 울린다. 이렇게 울리는 사이렌은 단 한 가지 경우뿐이다.
“코드 세븐?”
“근처에 괴수가 있어!”
바로 괴수가 인근에서 난동을 피우는 상황이다. 이사진은 서둘러 출입구로 달려 나갔다. 지하로 대피하기 위해서다.
순식간에 혼자가 되었지만 쿤겐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비틀어 뚜둑 소리를 냈다. 가볍게 목도 한 번 좌우로 비틀어 주었다.
“운이 좋아. 벌써 내 힘을 증명할 때가 왔나.”
과연 운이 좋은 걸까?
============================ 작품 후기 ============================
“우리 테레사 머시께 활약하라고 내가 낑낑거리며 한 마리 몰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