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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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면 짧고, 길면 긴 이야기입니다.”
유지웅은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앞으로 원활히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칠드그린의 신뢰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설프게 그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진실만을 말하는 게 나으리라.
“세상 어딘가에 로버라는 괴수가 존재합니다. 가장 강력한, 그야말로 최종 보스라 할 수 있는 괴수지요. 그 괴수는 몇 년 안에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할 겁니다.”
유지웅은 침착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칠드그린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신중히 듣고 있었다. 그런 반응이 유지웅에게 오히려 흡족한 느낌을 주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호들갑을 떨거나, 경악하거나, 믿을 수 없다며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칠드그린은 마치 점심 메뉴로 불고기덮밥을 먹겠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제 목적은 그 괴수를 막는 것입니다.”
유지웅은 짧은 정공법으로 나섰다. 이제부터는 칠드그린에게 공이 넘어갔다.
한참을 말이 없던 칠드그린이 입을 열었다.
“혹, 지금까지 보인 행보가 로버라는 괴수를 막기 위한 수단들이었습니까?”
“네.”
“…….”
“아, 몇 가지는 그냥 생각 없이 한 것도 있고요. 로버도 막는 김에 겸사겸사 제 노후 대책도 좀 하고 그랬어요.”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바라보기만 하자 유지웅은 괜히 찔끔해서 얼른 변명을 더했다. 칠드그린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신뢰가 느껴지는 미소다.
“런던 참사는 어떻게 된 겁니까?”
“음, 그냥 런던 펜탈 은행에 일성그룹이 예치한 비자금을 내놓으라고 찾아간 건데, 오해가 커져서 그렇게 된 거죠. 거기 지하에 블랙 몹이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나요?”
“중국은요?”
“레드 몹들이 날뛰길래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제압했을 뿐이에요. 겸사겸사 중국 수뇌부가 와해돼서 신탁 통치도 좀 했고. 원래 우리나라와 중국이 사이가 안 좋았는데, 잘 됐잖아요?”
“일본은요?”
“아! 런던에서 난리 친 그 놈이 일본에 숨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쐈는데, 하필이면 목격자가 한 명도 없는 바람에 제가 일본을 다짜고짜로 공격한 것처럼 소문이 났더라고요.”
“왜 소문을 잠재울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음, 귀찮아서요.”
“…….”
그 당돌한 대답에는 칠드그린도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유지웅은 뺨을 긁적였다. 그게 뭐 대수냐는 듯한 표정이다.
“처음엔 귀찮고 별 거 아니라서 놔뒀는데, 막상 해보니까 그게 더 편하더라고요. 테러리스트 이미지로 몰아붙이니까 다들 알아서 설설 기던데요? 이건 의장님한테만 말씀드리는 건데요, 진작 그렇게 할 걸 하고 나중에 살짝 후회도 했어요.”
“…….”
이쯤 되면 아무리 칠드그린이라도 유지웅의 뇌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혼란에 빠질 정도다.
사이코패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아니면 효율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버릴 수 있는 비정한 영웅 타입?
“저는 로버 때문에 인류가 멸망하는 것을 막을 겁니다. 그걸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제 명예가 조금 실추하는 것쯤 뭐가 대수겠습니까?”
조금이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칠드그린은 하마터면 외칠 뻔했다. 이 남자, 진지한 표정으로 사람 속을 긁는 뭔가가 있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예감이 지금 확실한 형체를 갖췄다.
“그러나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제가 한 것도 아니고, 제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요.”
“이번에 휴스턴에서만 190만 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일절 책임이 없습니까?”
유지웅은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갔을 때는 블랙 몹이 이미 자폭하기 직전 상태였습니다. 아니, 녀석은 블랙 몹에서 이미 반 단계쯤 진화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대로 놔뒀으면 진화가 실패해서 대폭발을 일으켰을 겁니다.”
“대폭발이요?”
“네. 아마 훨씬 큰 폭발이 일어났을 거예요. 어쨌거나 최대한 막아보려 했지만 제 능력 부족이었습니다. 그 점은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제 책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
이름 모를 블랙 몹은 어차피 유지웅이 찾아가지 않아도 결정 에너지 불균형으로 대폭발을 일으킬 예정이었다. 전생에서 한 번 겪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이번 생에서 달라진 것은, 폭발의 범위가 그래도 상당히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희생자 수도 줄어들었다. 바로 자신이 개입했다는 변수 덕분이다.
“희생자와 유족들에게는 안 됐지만 제 책임은 아닙니다.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미 자본가들에게 있죠.”
“자본가들?”
“네. 휴스턴 대참사는 따지고 보면 록펠러를 등등, 결정체 산업에 발을 내딛고 있는 재벌들에게 근본책임이 있어요. 아! 이렇게 따지면 결국 로버도 그들 책임이군요.”
휴스턴 대참사가 미 재벌들에게 책임이 있다? 칠드그린으로서는 흘려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 전에 저 역시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무슨 대답을 원하십니까?”
이미 알고 있으면서, 칠드그린은 한 번 더 그렇게 물었다. 유지웅은 어깨를 으쓱했다.
“제 사람이 되어주세요. 저 혼자 감당하기에 로버는 너무나 큰 인류의 위기입니다. 의장님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미합중국을 배반하란 말씀이시군요.”
“미국도 넓게 보면 인류에 들어가죠. 저는 인류 전체를 지키려고 하는 겁니다. 이게 왜 국가에 대한 배신이죠? 저는 의장님 같은 분이 필요해요. 도와주세요.”
“겸사겸사 노후 대책도 하시고요?”
“네, 겸사겸사 스위스 시계도 많이 사드릴게요.”
칠드그린은 눈을 감았다. 유지웅의 반 강압적인 요구로 WCO 프로젝트에 합류했을 때부터 이미 반쯤은 결정된 사항이다.
“인류를 보호한다는 목적 하에서는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참에 그냥 미국도 내 걸로 먹어버려야겠다.’
미국을 내 걸로 만들면, 미국인의 정신을 잊지 않는 칠드그린도 어차피 내 것이 되는 거 아닌가? 그야말로 윈윈, 개이득이다.
“그럼 설명해드리죠. 왜 미 자본가들이 휴스턴 참사에 책임이 있냐면…….”
“결정 에너지 융합통제 실험 때문이겠죠?”
“어, 알고 계세요?”
“그들이 그런 비밀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실험 과정에서 뭔가 사고가 있었겠죠. 생체 실험이 자연을 오염시켜 변종을 탄생시키는 것쯤은, 바보라 해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칠드그린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록펠러가 그 수뇌부입니까?”
“네.”
“증거는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그레이브스 팀장이 지금 발 벗고 나서서 증거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 분과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해보시죠.”
“……벌써 그레이브스를 끌어들인 겁니까.”
“하하, 제가 인덕이 많아서요. 가만히 있어도 인재들이 절 도와주려고 몰려들더라고요.”
칠드그린은 그 밖에도 다양한 질문을 했고, 유지웅은 자신이 아는 한에서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원래 예리하고 매서운 사람이라 그런지 몇 마디 대답을 해주지 않아도 척척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했다.
역시 머리 좋은 사람들은 부리기 편해. 유지웅은 가슴을 누르고 있던 부담의 무게가 한결 덜어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칠드그린이 물었다.
“그런데 로버라는 괴수 말입니다.”
“예. 뭐가 또 궁금하세요?”
“회장님은 어떻게 알게 되신 거죠?”
“…….”
유지웅은 잠시 침묵했다. 언제고 나올 질문이었다. 칠드그린이라면 그 점을 반드시 놓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에 대해서 이미 많은 대답을 준비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자기 자신부터도 만족하지 못하는데 칠드그린이 듣고,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니리라.
그래도 준비한 대답을 한 번 꺼내 보았다.
“제가 지닌 레이드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강력하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죠.”
“그렇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을 겁니다.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요.”
“몇 년 전 휘버 박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만남이었죠. 당시 저는 그 분이 휘버 박사인 줄 몰랐습니다. 그 분이 제게 어떤 시술을 해주셨는데, 나중에 그 덕분에 제가 이처럼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황금매 레이드 사고가 계기가 되어……. 역시 믿지 않으시는군요.”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던 유지웅은 아무 표정의 변화도 없는 칠드그린의 눈빛을 보고 말을 멈추고 풀썩 웃었다. 칠드그린은 부정하지 않겠다는 듯이 가볍게 끄덕여 보였다.
“그간 회장님이 보인 행보를 생각하면, 그건 너무 모순되는 변명이라서요.”
“그랬나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대답이었는데, 역시 소용 없었나 보네요. 예리하셔라.”
“회장님에 대해서 따로 조사를 했습니다. 황금매 레이드 사고 이후로 회장님은 완전히 사람이 바뀌셨더군요.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껍데기를 제외한 내용물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셨군요.”
“다른 합당한 과정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하신 설명은 그렇게 합당하지 않은 것 같군요.”
이번에는 칠드그린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그 이상은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알려드리겠습니다. 의장님이라면 믿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정말 괜찮습니다.”
“말씀드릴게요. 사실대로. 전부. 사실은요…….”
“아니아니, 정말 괜찮습니다! 말씀 안 하셔도 돼요!”
이제 칠드그린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아, 너무 잘난 척하고 나댔나?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는 걸 보면 답답하고 암이 걸릴 것 같아서 ‘거짓말 안 해도 돼. 너 믿음.’하는 정도만 일러두려고 했다.
그런데 전부 다 말한다고 한다! 안 돼! 들었다가는 빠져나오지 못하는 늪에 끌려들어가고 말아! 그런 예감을 떨칠 수가 없어!
“말씀드릴게요. 전부.”
“하지 마세요!”
“아니아니, 말씀드릴 거예요. 전부 다 말씀드릴 거예요.”
“으아아악! 하지 마시라고요! 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충분하단 말입니다!”
“저 미래에서 왔어요!”
유지웅은 힘을 주어 외쳤고, 싸한 침묵이 둘을 훑고 지나갔다.
“…….”
“…….”
“그래서 다 알고 있는 거예요. 하아, 아이고 속이 시원해라. 그동안 혼자 세상의 무게를 짊어지느라고 얼마나 번뇌했던지. 말해놓고 나니 속이 후련하네. 어, 의장님? 근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제가 가장 큰 비밀을 말씀드렸는데, 혹시 이것도 믿지 않으시는 건가요?”
칠드그린의 얼굴에는 고뇌가 가득했다. 그것은 불신이라기보다는 어떤 절망이자 피로감이었다.
한참 후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미래에서 지구는 어떻게 됩니까?”
“음, 최후의 싸움에서 제가 결국 승리하긴 했는데, 균열이 터지는 것을 막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8년 전으로 돌아왔더라고요.”
“……균열이 터져요?”
“네. 그게 붕괴하면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다 죽거든요. 그거 막다가 여기 과거로 떨어졌어요.”
“그럼 붕괴를 막은 겁니까, 못 막은 겁니까?”
“제가 그 뒤는 못 보고 과거로 왔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하아, 아무튼 다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네요. 자, 이번 생에서는 우리 제대로 힘을 합쳐서 균열을 막아 봅시다.”
“…….”
칠드그린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어쩐지 매우 격렬하게 듣고 싶지 않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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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 회장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2. 회장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3. 회장님의 이야기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