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98)
00898 %3C프리시즌 딜러편%3E 내가 돌아왔다! =========================================================================
우렁찬 목소리가 수만 명이 들어선 무대 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먼저! 무대에 등장한 것은! 그 이름도 영광된! 한국의 진정한 챔피언! 정! 효! 주!」
와아아! 와아아아!
경쾌한 음악이 하늘을 찢을 듯이 울렸다. 귀가 멍멍할 정도의 소음이지만, 신기하게도 시끄럽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관중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지만, 일단 흥에 겨워서 있는 대로 목청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뭐야, 이거? 부탁해요 냉장고 녹화 현장 아니었어?”
“나도 정효주가 게스트로 나온다고 해서 온 건데?”
“알게 뭐야. 신나잖아. 그냥 소리 질러!”
“Yeah-ap! Guys!”
관중들의 환호가 무대를 뒤흔들었다. 떠내려갈 듯한 소리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이게 어떻게 된 건가 하고 어리둥절해 하던 관중들도 시원스러운 사회자의 목청에 흠뻑 빠져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
한편 소리의 중심에 선 정효주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울 길이 없었다.
‘이게 뭐 하자는 짓이야?’
이상하다. 분명히 요리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거라고 했는데? 거기서 쿤겐과 함께 적당히 토킹을 주고받으며 대중에 친근한 이미지를 주는 것이라 했는데?
무슨 프로 레슬링 무대 한복판에 떨어진 듯한 이 휘황찬란한 분위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신장 168cm! 바스트 75D! 체중, 시크릿 파운드! 코리아의 허리케인이자 화이트 헤드 마운틴인 그녀가! 챔피언의 이름을 걸고 지금 이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는 참으로 쩌렁쩌렁했다. 멘트도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관중들은 마약에라도 중독된 듯이 함성을 멈추지 않았다.
와아아아! 와아아!
“화이트 헤드 마운틴? 그건 뭐야?”
“알게 뭐야. 백두산을 발로 번역한 거겠지.”
“챔피언! 챔피언!”
이거……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건가? 정효주는 당장이라도 등을 돌려 달아나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하지만 이미 3만여 명의 시선이 한 몸에 박힌 뒤였다.
전후 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조그만 무대는 이제 전장이 되었다. 전장에서 등을 돌리고 달아나는 추태를 보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음으로! 머나먼 서쪽 땅에서! 크고 깊은 태평양을 건너 찾아온 이국의 챔피언! 쿤! 겐! 슐! 제! 거!”
와아아! 와아아아!
네온 조명이 현란하게 사방을 비췄다. 어두운 하늘을 레이저 빛이 정신없이 갈랐다. 흥분에 취한 관중은 자신이 뭐라고 하는지도 모른 채 소리를 질러댔다.
우르릉! 콰과광!
번개가 치는 듯한 굉음이 한 차례 울렸다. 거대한 세트 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하얀 연기가 치이익 하고 뿜어져 나왔다. 정효주가 나온 입구에서 반대편에 위치한 곳이다.
갈라진 세트 벽 사이로, 하얀 연기를 뚫고 쿤겐이 자신만만하게 걸어 나왔다. 검은 타이즈를 입고 황금빛 망토를 걸친 그녀의 얼굴은 패기가 가득 넘치고 있었다.
몇 걸음 나온 쿤겐은 우뚝 멈춘 채 정효주를 올려다봤다. 정효주가 좀 더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쿤겐이 올려다보는 각도였다.
흥분 가득한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자! 지금 이 무대에서!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라이벌 둘이!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와아아아!
“세계 최고의 쉐프들이! 자신의 남은 장인 인생을 걸고 벌이는 숙명의 요리 결전! 그 숭엄한 투혼의 자리에, 운명처럼 서로 마주치고 만 두 라이벌!”
와아아아! 와아아!
“머나먼 옛날, 로마 콜로세움에서는 수많은 전사들이 서로의 투혼을 겨루며 스러져 갔습니다! 많은 관중들이 그 신성한 피의 결전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관중들이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자리에서! 저 영웅들이 불사르는 투혼을 지켜보기 때문입니다!”
와아아아!
기쁨, 흥분, 중독, 열광, 환희, 벅참, 등등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에 취한 관중들은 목이 쉴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어찌나 우렁찬 함성인지 자기 목소리가 자기 귀에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정효주는 침묵했고, 쿤겐은 자신 넘치는 눈으로 주시했으며, 쉐프 출연진은 세트 벽 뒤에서 멍하니 선 채 무대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 쉐프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우리, 설마 저기서 요리해야 하는 건가요?”
“저, 집에 가도 되나요?”
“안 됩니다! 자, 준비하세요! 이제 쉐프 여러분들이 나가실 차례입니다!”
“서, 설마 저 사회자가 우리까지 소개하는 건 아니죠?”
“맞습니다. 자, 나가세요! 어서요!”
이게 예능 요리 대결이야? 프로 레슬링 무대야?
쉐프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질질질 끌려갔다.
한편 유지웅은…….
“와……. 멋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게 내가 진정 원하던 라이벌 구도였다구!”
감동했다.
* * *
꿈같은 무대였다.
수만 명의 관중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와중에 쉐프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요리를 만들었고, 게스트들은 가차 없는 혹평 혹은 아낌없는 칭찬을 날렸다. 평가가 나오고, 점수가 발표될 때마다 관중들은 목청이 터져라 함성을 질렀다. 아니, 사회자가 그렇게 유도했다.
“저 사회자 참 대단해.”
“그러게요. 아주 끼가 있어요. 별 거 아닌 전개인데 관중들 호응을 제대로 이끌어내고 있어요.”
“이 촬영이 끝나더라도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야.”
피디 이하 스태프들은 오히려 사회자에게 더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아! 나왔습니다! 쿤겐 슐제거의 찌푸림! 한국의 챔피언의 칭찬에 저돌적인 반발을 보냅니다! 미국의 챔피언은 한국의 챔피언이 내린 맛 평가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일까요!”
와아아! 와아아아!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
“붙어! 붙어! 붙어!”
“우우우! 우리는 싸우는 게 보고 싶다! 우우우!”
“이거 요리 예능 프로그램 아니었어?”
“알게 뭐야. 우리는 싸우는 게 보고 싶다! 우우우! 혓바닥으로 싸우는 걸 보러 온 게 아니다! 우우우!”
관중들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린 채 야유를 퍼부었다. 쿤겐의 도발에 응하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관중에는 한국인만 있는 게 아니라 서양인, 흑인도 상당히 섞여 있었다.
“챔피언! 챔피언! 아메리칸 챔피언!”
“정효주! 양키가 당신의 평가에 반박했소! 당신의 준엄한 심판을 보여주시오!”
분명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번쩍이는 무대, 관중의 열성 어린 함성, 그리고 사회자의 영악한 각색 진행은 요리 대결 프로그램을 마치 WWE의 한 무대처럼 바꿔 놓았다.
한국의 강자, 정효주!
미국의 새로운 샛별, 쿤겐!
양립할 수 없는 두 챔피언은 머나만 시공을 돌파하여 결국 운명처럼 한 자리에서 만나고 말았고, 요리 평가라는 대리전을 통해 서로의 자존심을 도모하려 하지만, 결국 그마저도 한계에 부딪치고 말아, 이제 참고 참아왔던 칼을 빼들어야 할 숙명의 갈림길에 처하고 말았다!
……라는 것이 사회자의 해설이다.
“요리 평가 따위 그만 하고 싸워라!”
“싸워! 싸워! 싸워!”
“누가 진정한 오버 파워인지, 이 자리에서 가리자!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은 한국, 즉 정효주의 홈이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정효주를 편드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녀가 분명 우세이긴 하지만, 쿤겐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사회자의 각색 진행 능력이 뛰어나서일까? 아니면 관객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백인, 흑인 때문일까?
“쿤겐! 쿤겐! 사랑해요!”
“크흑! 저런 미인을 어떻게 미워하란 말이냐!”
“숙명의 적이라니! 더 사랑스러운 포지션이잖아!”
한국인 중에서도 알게 모르게 쿤겐의 팬이 상당히 있었던 것이다. 그 반대로 서양인 중에서도 남 몰래 정효주를 사모하는 팬층이 두꺼웠다.
그런 분위기 덕분에, 이곳이 정효주의 홈이고 미국이 한국과 사이가 매우 안 좋고 등등 그런 이유를 떠나, 팬들끼리 서로 헐뜯고 다투는 일 없이 응원에만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정효주 이겨라! 쿤겐 이겨라! 정효주 져라! 쿤겐 져라! 아이씨, 몰라! 아무나 이겨! 아무나 져! 으아아아! 그냥 둘 다 이겨버렷! 이겨버렷!”
이 당혹스러운 분위기를 대체 어찌 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던 정효주는 퍼뜩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얼른 그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설마? 내가 잘못 들었나?’
유지웅은 지금 미국에 있어야 한다.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조금 전 그 목소리는…….
“대답해 보세요. 어떻게 그 요리에 9점을 줄 수 있죠? 제 평가로는 10점입니다, 10점!”
쿤겐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추궁했다. 정효주는 맥이 빠진 눈빛으로 맞받아쳤다. 설마 너야? 이 모든 걸 꾸민 게? 대체 언제까지 바보 놀음을 할 생각…….
“어?”
그때였다. 정효주는 심장이 쿵 하고 울리는 느낌에 멈칫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쿤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눈빛이 밋밋하게 흔들렸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멈춘 자세 그대로 천천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그림자가 달빛을 가리고 있었다.
“……괴수?”
“레드 몹? 아니야!”
정효주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이 흉험한 기운은 결코 레드 몹 따위가 아니다. 블랙, 아니 그 이상이다. 그 증거로 손끝이 벌벌 떨리고 있지 않은가.
―고오오오!
날개를 크게 펼친, 사자를 닮은 괴수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포효했다. 세로로 빛나는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흉악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 안 돼! 녹화를 방해하지 마!”
……방금 익숙한 목소리가 또 들린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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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완전히 미쳤네여 와 사람 하나 잡겠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