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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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호텔 본관 앞에 대형 세단 한 대가 부드럽게 정지했다. 호텔 지배인이 급히 달려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뒷좌석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풍채 좋은 중년 남자가 내렸다.
지배인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회의장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음, 부탁하네.”
중년 남자의 이름은 황준호, LP전자 사장이었다. 사적으로는 그룹 회장의 사위가 된다.
그는 오늘 S호텔 세계 경제인 연합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회의를 위해 임대한 중앙 컨벤션 홀은 먼저 도착한 기업가들이 상당했다. 이미 친분이 있는 이들끼리 몇 몇이 모인 채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황준호 사장도 친한 기업가들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거 김주원 사장님 아닙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준호 사장님, 반갑습니다.”
이제 30대 초반의 젊은 기업인, 김주원 사장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백화점은 요새 어떻습니까. 전자는 아주 죽을 맛입니다.”
“하하, 엄살처럼 들리는데요. 저희야말로 경기 침체 때문에 매출이 안 나와서 힘듭니다.”
“그래도 유지웅 회장님을 단골 고객으로 유치해서 상당히 매출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만.”
“물론 회장님이 상당한 매출을 올려주십니다. 방문할 때마다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유지웅이 L백화점 단골이라는 건 이미 업계에 소문이 파다하다. l백화점 작년 총매출이 약 1조 1천억 원인데, 올해는 벌써 2조 원을 넘었다는 말이 있었다.
“올해 들어 그 분 혼자서만 한 장을 쓰셨다는 소문이 있던데, 정말입니까?”
“하하, 저도 자세한 매출 내역은 회사에 가서 봐야 압니다. 여기서는 말씀드릴 게 아니군요.”
김주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거절했다. 젊은 사장이라 호기를 부린답시고 말해줄 것도 같은데, 그런 것은 단호하다.
“그러는 황 사장님이야말로 너무 하십니다. 올해 전자 쪽 수출은 사상 최대의 호황기라고 하던데요. 설마 제가 잘못 들은 겁니까?”
“호황이라고 할 만큼은 아닙니다. 겨우 체면치례 할 정도의 실적입니다.”
“겸손하십니다.”
기업가들은 웃고 떠들면서, 한편으로는 날카롭게 상대의 허를 찌르는 질문을 주고받았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가 동업자이면서, 한편으로는 경쟁자였다. 가면을 벗은 채로는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곳이다.
“일성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그룹은 사실상 해체됐다고 봐야죠. 각 계열사도 이미 뿔뿔이 매각 되지 않았습니까.”
“오너 일가가 복귀하기는 힘들겠죠?”
“회장님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은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심기를 단단히 건드린 모양입니다.”
이정우 SKK 에너지 사장은 회장님이란 단어를 입에 담을 때, 얼굴에는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1인 공격대, 최강의 레이더, 등등 그를 가리키는 말은 많지만, 그중 이들의 가슴에 가장 와 닿는 것은 ‘잔혹한 테러리스트’일 것이다.
많은 기업가들이 영국에서 있었던 16만 명 사망은 물론이고, 휴스턴 대참사도 유지웅이 벌인 짓이라 믿고 있다.
정부도 감히 건드리지 못할 국내 최고의 대기업이 유지웅한테 찍혔다는 이유로 공중분해되고, 오너 일가는 최상위층에서 평범한 부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찌 두려운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자세한 사정을 따지면 공중분해가 될 만한 비리가 여럿 있었고,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하지만 기업가 입장에서는 ‘찍혀서 거덜났다’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당장 자신들만 해도 일성그룹보다 비리가 적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그 뒤로 기업들은 부랴부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회계를 투명하게 진행했고, 은닉 비자금을 대대적으로 줄였다.
LP그룹의 경우는 보다 과감했다. 400조 원에 달하는 비자금 전액을 과감히 사회 자선사업에 내놓은 것이다.
LP그룹은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자선재단이 아닌, 새로운 자선재단을 설립하고 400조 원의 현금을 출연했다. ‘비자금’이라고 명시를 한 것은 아니지만, 지나가던 고등학생도 그게 비자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와 같은 행위를 놓고, 사람들은 ‘살려달라’는 아부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그 해석은 틀리지 않았다.
무려 400조 원이나 되는 해외 비자금을 단시간내에, 그것도 합법적으로 국내에 들여왔다. 당연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지만, 정부에서는 모른 체 눈감아 주었다.
불법자금을 자진신고해서 사회에 갖다 바친 격인데, 굳이 나서서 그것을 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재벌 개혁에 커다란 삽을 뜬 것이다.
어떤 경제 전문가는 이런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 어떤 정권도 이뤄내지 못한 재벌 개혁을 유지웅 회장은 SNS 몇 번으로 간단히 이뤄냈다.’
유지웅을 놓고 이런 저런 말이 많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자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고, 또 그런 여론이 주류를 꽉 쥐고 있다.
김주원이 말했다.
“일부 몰염치한 것들은 잔혹하다 여길지 모르나, 회장님은 공명정대하신 분입니다. 당장은 우리에게 손해가 될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이 나라 전체에 이익이 될 겁니다.”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LP그룹을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새로운 자선재단을 설립하고 오히려 회사의 경기가 상승세에 들어섰습니다. 당장은 손해지만 멀리 내다보면 모두가 잘 되는 구조죠. 그리고 그 중심에는 회장님이 계십니다.”
“…….”
듣고 있던 기업가들은 살짝 불편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틀린 말은 아닌지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유지웅이 한 짓은, 결과적으로는 이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몇 번의 국가적 대위기가 있긴 했지만 그의 힘을 빌려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다만 대다수 재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순수한 동기에서 벌인 일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른바 소 뒷걸음질 쳤는데 쥐가 밟혀 죽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김주원은 젊은 재벌 3세다. 그의 관점은 재계에서는 오히려 소수파에 속한다.
“제32회 세계 경제인 연합 행사에 참석해주신 모든 경영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D그룹 이양수 회장이 말을 마치자 가벼운 박수소리가 홀을 차지했다.
이 자리는 나라 경영을 위한 재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종의 사단 총회 같은 자리라 할 수 있다. 의결 사항은 재계가 사회에 행사하는 영향력 혹은 지도력의 지침이 된다.
그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제니스 그룹에서 서울 인구 분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구 분산이요?”
시작부터 큰 게 나왔다. 경영자들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과 자본이 들어갈지는 가늠조차 안 된다.
“3년 안에 서울 거주 인구를 700만 이하로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700만이라니!”
“그것도 위성 도시로 분산한다는 게 아니라 경기도를 제외한 타지방에 분산한다는 것으로, 일차적으로는 세종시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여…….”
“허억!”
거의 1,800만에 달하는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한다고? 그것도 경기도는 빼고?
기업가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물론 설명만 들으면 좋다. 인구 포화 상태도 해결하고, 서울 부동산 거품 문제도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국토 발전 균형을 이끌어내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문제는, 지금 당장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아마 여기 모인 기업들은 거의 대부분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어떻게 일군 기업인데!’
이정우 SKK에너지 회장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SKK그룹은 경기도에 상당한 기반을 두고 있었다. 1,800만에 달하는 서울 인구가 지방으로 빠져 나가면 당장은 타격이 크다.
회의가 끝났고, 간단한 파티가 열렸다.
하지만 속이 쓰린 이정우 회장은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몇 잔 걸치고, 대충 사람들하고 어울려주다가 호텔을 나섰다.
그는 즐겨 가던 교외의 고급 한정식집을 찾았다. 외곽에 위치한 가게로, 재벌 회장이나 정치인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가격도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만큼 매우 비싸고, 당연히 정재계의 알아주는 사람들만 받는다.
그리고 약속한 상대를 만났다.
“잘 지내셨습니까, 박 의원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이 회장님.”
결정체산업 위원회 박희원 의원이었다. 둘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보좌관들 데리고 가볍게 식사나 하자고 하셔서 고깃집이나 갈 줄 알았는데……. 여긴 너무 과하지 않겠습니까?”
두당 60만 원은 족히 나오는 고급 가게다. 식사해야 할 일행이 스무 명 남짓이니, 천만 원은 훌쩍 넘을 것이다.
“하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의원님한테 입은 은혜에 비하면 이까짓 식사쯤이야……. 아무 염려 마시고 오늘은 보좌관들과 함께 편안히 즐겨 주십시오.”
“이런…… 감사합니다. 이 회장님 덕분에 이런 좋은 곳도 와보는군요.”
이정우 회장은 사양하는 박희원 의원에게 거듭 권했고, 박희원 의원도 몇 번 더 사양하는 척 하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대접에 응했다.
밤은 깊어갔고, 이정우 회장과 박희원 의원은 쉬지 않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의원님.”
“염려 마세요. 내가 티나지 않게 손을 쓰겠습니다. 요즘 하도 시국이 어수선한지라…….”
“부탁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둘은 인사를 나눴다.
그때였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차량 한 대가 들어섰다.
둘은 가볍게 얼굴을 찌푸렸다. 이 조용한 곳에서 저게 무슨 소란인가 싶었다.
그러나 박희원은 주차장에 들어서는 차량을 보고 어느새 감탄하는 얼굴이 되었다.
“오, 우리나라에 저런 차도 있었습니까? 아주 멋지군요.”
로봇처럼 정교하면서도 날렵한 디자인에 박희원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차는 잘 모르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아마 평범한 졸부 집안 자제는 아닐 듯했다.
그러나 이정우는 달랐다. 그의 안색이 긴장으로 확 물들었다.
“유지웅 회장입니다.”
“엇, 뭐라고요?”
“유지웅 회장의 차량입니다. 설마…….”
박희원은 놀라서 다시 쳐다봤다. 차량 문이 열리고 두 명이 내렸다. 눈을 비비고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을 봤다.
틀림없었다. 유지웅이었다.
“이런, 빨리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럽시다.”
둘이 같이 식사하고 있는 걸 들켜서 좋을 게 없다. 이정우와 박희원은 각자 차에 타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 * *
“뭐! 그걸 놓고 오면 어떡하라고! 바로 차에 싣기부터 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당장 차 돌려!”
박희원의 보좌관은 서둘러 차를 돌렸다. 어수룩한 보조 보좌관이 이 회장한테 받은 가방을 그만 가게에 두고 온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실수였다.
의원님이 알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 * *
“사장님. 이거 여기 수납칸에 들어 있던데요. 전 손님이 깜빡 잊고 놓고 갔나 봐요.”
유지웅은 정효주와 식사를 하다 말고 룸 수납칸에 들어 있던 가방을 발견하고는, 가게 사장에게 갖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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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주인 불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