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33)
00933 나는 하렘이다? =========================================================================
또각또각.
경쾌한 하이힐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주위에 퍼져 나간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몇 번씩 돌아볼 만큼, 여자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갈색 빛이 감도는 피부에 이국적이면서도 뚜렷한 이목구비, 길고 풍성한 흑발은 하나로 묶어서 등으로 늘어뜨렸고, 늘씬하게 뻗은 팔다리는 모델의 그것처럼 우아하다.
“와, 저 여자 좀 봐.”
“어디 헐리우드 배우인가? 모르는 얼굴인데?”
“서양인은 아닌 것 같은데?”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사람의 눈길을 잡아끄는 미모도 미모지만,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고풍스러움이 어딘지 위압감을 주었다. 또 그림자처럼 뒤를 따르는, 검은 양복을 입은 여섯 명의 경호원도 시선을 잡아끌었다.
대로에는 검은 리무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뒷문을 열어놓은 채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가 다가서자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뒷좌석에 오르자 문이 닫혔다. 여자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공항동으로 가죠.”
“알겠습니다, 왕녀 전하.”
여자는 팔짱을 끼며, 푹신한 시트에 등을 기대었다.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연락 한 번 없다니…….”
서운한 감정이 잠시 떠오르는 듯했으나 이내 히죽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활개 치고 다녔으니. 많이 바빴겠군.”
여자는 안슐리제였다.
* * *
“잘했습니다. 원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지요. 이참에 대대적으로 뜯어 고쳐 버려요.”
유지웅은 보고서를 훑어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번 생에서는 국가적 영웅이란 이미지 때문에 여러 모로 걸리는 게 많아, 속 시원하게 일을 벌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사소한 이미지 타격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정말 편했다. 앞으로도 계속 악당, 독재자 이미지로 밀고 나가야겠다.
“그럼 이대로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김기영이 보고서를 돌려받으며, 허리를 공손히 숙였다.
지금 온 나라에서는 그야말로 곡소리가 나고 있었다. 검찰의 기소가 줄을 잇고 있었고, 수많은 상류층이 자신이 저지른 불법만큼 처벌받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가혹한 심판의 칼날은 그 어떤 것도 봐주지 않았다. 높은 지위, 많은 재산, 그런 거 다 필요 없었다. 지금 법조계는 유지웅의 눈치를 보느라 바빠, 정말 있는 법 그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요.”
“예?”
“원래 윗물이 더럽다는 것은, 이미 아랫물도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졌다는 거거든요. 이 상황에서 윗물만 깨끗하게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음…….”
김기영은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윗물이 깨끗해졌으니 시간이 흐르면 아랫물도 자연히 깨끗해질 것이다. 포인트는 ‘시간이 흐르면’이다.
“요즘 보니 젊은 애들도 문제 많습니다. 얼마 전에 그 기사 보셨어요? 10대 왕따 문제로 자살한 아이 말이에요. 어휴, 천사 같아야 할 애들이 악마보다 더 하니……. 아, 물론 어른들 잘못도 있겠지만 아무튼.”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저는 이 나라가 전반적으로, 전체적으로 훌륭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써먹지, 지금 상태로는 작발로도 못 써요.”
윗물을 가는 것은 개혁의 첫 발걸음일 뿐이다. 아랫물도 하루 속히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 김기영은 유지웅이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알아차렸다.
“제 SNS에 악플 다는 새끼들도 꼭 잡아서 족쳐 주시고요. 내가 참다 참다 참으려는데 도저히 못 참겠네.”
“알겠습니다.”
아랫물 운운한 건, 어쩌면 저것 때문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김기영은 불경한 잡념이라며 떨쳐 냈다.
그때였다.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다.
「회장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누구?”
약속이 잡힌 손님은 없었기에 유지웅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UAE의 안슐리제 왕녀 전하이십니다.」
“으, 으악!”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유지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안슐이라니, 안슐이라니!’
안슐, 아니 안슐리제. 유지웅은 어쩐지 그녀가 껄끄러웠다. 싫거나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살짝 부담스러웠다. 전생의 절친이 이번 생에 여자가 되었으니, 그것도 눈이 부신 절색의 미녀가 되었으니, 어찌 대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동안 그녀에게 연락을 안 한 것도 내심 무의식에 그런 부담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안슐, 아니 안슐리제가 들어왔다. 그런데 혼자 들어온 게 아니었다.
“히카리!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나한테 맛있는 거 줬다. 이 암컷, 좋은 사람인 것 같다.”
“히카리. 암컷이 아니라 왕녀님이다.”
“아, 맞다! 왕녀님!”
안슐리제는 태연히 지적했고, 히카리는 자기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치는 시늉을 하며 정정했다.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웠대?
그나저나 맛있는 걸 줬다고? 김기영은 의아해서 살피다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히카리가 두 손에 쥐고 물어뜯고 있는 건 아무리 봐도 평범한 초콜릿이나 과자는 아니었다.
‘결정체?’
아니, 아무리 부자라지만 결정체를 먹으라고 던져 줘? 그런 사람이 회장님 말고 또 있었단 말인가?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아…… 안슐. 잘 지냈어요.”
“내 이름은 안슐이 아니다. 안슐리제라고 불러다오.”
안슐리제는 태연히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애칭인가? 그렇다면 괜찮다만.”
“……안슐리제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바로 빼다니, 섭섭하다.”
안슐리제의 태연한 대답에, 유지웅은 적당히 표정을 얼버무렸다.
“앉아도 되겠나?”
말을 하면서 안슐리제는 벌써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 실크 드레스 사이로 늘씬한 다리가 드러났다. 유지웅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우리 친구가 아니었나? 친구 사이에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고 그러지 않나? 아니면 한국은 풍습이 다른가?”
“아니에요. 미안해요.”
“요즘 그대 소식을 많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그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더군. 하지만 본인한테 직접 들은 건 하나도 없어서 다소 서운했다.”
“그게, 아무래도 근래 좀 바빴다 보니…….”
“그럼 이제 한동안 한국에서 지내는 건가?”
“아마도 특별히 나갈 일은 없을 것 같네요.”
대화를 섞어 나가다 보니, 유지웅은 어느 정도 침착해졌다.
집안에 들어온 히카리는 밖에 나갈 생각도 않은 채, 쪼그리고 앉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괜히 히카리한테 심술이 난 유지웅이 버럭 외쳤다.
“넌 거기서 뭐해! 어서 나가서 놀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긴 뭘 기다려? 기다린다고 해서 너한테 더 주는 거 없으니까 어여 나가!”
“너무해.”
히카리는 칭얼칭얼거렸지만, 결국 유지웅이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다시피 해서 밖에 내버렸다. 안슐리제가 그걸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귀여운 고양이를 기르고 있군. 부럽다.”
“하는 짓이 귀엽긴 한데, 요새는 얄미워요.”
“어째서인가? 저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라면 보고만 있어도 흐뭇할 것 같은데.”
“제가 고양이를 기르는 건지, 새끼 돼지를 기르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주 그냥 먹을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니……. 원래 고양이는 자율 급식 되지 않나요?”
“어린 아이지 않은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군.”
“그런가요?”
“나도 아직 새끼인 고양이가 몇 마리 있어서 안다. 성장기 아이들이 뭘 알겠나. 그저 배가 찰 때까지 먹는 거지.”
오랜만에 만난 둘은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고양이 키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화제는 근황에 다다랐다.
“그대가 온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건 잘 지켜보았다. 때론 부럽기까지 하더군.”
“안슐…… 아니, 안슐리제는 제가 무섭지 않나요?”
“왜 그대를 무서워해야 하지?”
유지웅은 그녀를 떠보듯이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요. 저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인데,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무서워하는데, 안슐리제는 그렇지 않아요?”
“글쎄. 이 나라 국민들도 그럼 그대를 무서워하나?”
“그건 아니죠.”
“나도 비슷하다고 해두지. 난 오히려 그대같은 친구에게 흥미가 있다. 부럽기도 하고.”
“제가 부러워요?”
“그 자유로움이 부럽다.”
유지웅도 대충 조사를 해봤다. 지금 시대에서 안슐리제는 가히 세계 제일의 부자였다. 그러니까 자신이 등장하기 전에는 말이다.
어느 정도로 부자냐 하면, 전생의 ‘안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 세계 각지에 드넓은 부동산, 초고가 빌딩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추정되는 개인 자산만 수조 달러가 넘어간다고 한다. 그것도 겉으로 드러난 재산일 뿐이다.
대외적으로 공개된 유지웅의 개인 재산은, 안슐리제에 비교하면 그저 초라할 뿐이다. 물론 그의 실질적인 재산은 다른 식으로 계산을 해야겠지만.
“이게 뭔가?”
그때였다. 안슐은 테이블에 늘어져 있는 책자를 발견했다. TV 프로그램 관련 책자였는데, 그녀의 눈이 호기심을 가득 품었다.
“아, 그거요? 부탁해요 냉장고라고, 제가 좋아하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인데 이번에 게스트로 출연을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서요.”
“그대가 예능 프로그램에?”
“지금 제 이미지가 한창 강경하잖아요. 그래서 좀 더 부드러운 이미지 구축을 위해서 출연해보는 게 어떤가 하고 아랫사람들이 건의를 해서요. 저도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 흥미가 있고요.”
“어떤 프로그램인가?”
“게스트 두 명이 출연해서 각자 집에서 냉장고를 가져와요. 그 안에 든 재료로 요리사들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지 겨루는 거죠. 당연히 냉장고하고 그 안에 든 식재료가 좋아야 유리해요.”
“재미있겠군.”
안슐리제는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대가 참가하면, 나도 참가하겠다.”
유지웅은 크게 놀랐다.
“예엣?”
============================ 작품 후기 ============================
안슐리제의 냉장고 VS 유지웅의 냉장고
개봉박두!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