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60)
00960 %3C프리시즌 딜러편%3E 맷돌, 그리고 맷돌 =========================================================================
WCO는 유지웅이 만든 국제 결정체 기구다. 니트로 이하 과학자들이 몸담고 있는 연구소가 소속된 곳이기도 하다. WCO는 현재 세종시에 본부를 두고, 기존 건물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
WCO는 대량으로 부지를 매입하고, 착공을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건물이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조감도를 보면 역대급 대규모 종합단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칠드그린은 이렇게 위풍당당한 WCO의 의장이었다. 본래 EIS의 부국장이었던 그는 유지웅의 어거지를 이기지 못하고, 강제연행되듯이 스카웃되어 한국으로 왔다.
처음에는 우울했지만, 칠드그린은 곧 적응했다. 유지웅이라는 희대의 괴물 옆에서 감시함으로 인해 조국에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는 위험한 인물이다.’
칠드그린은 언제나 그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고, 조국의 대 유지웅 정책 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그렇다고 유지웅에게 배반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 백악관이 그를 조심스럽게 대할 수 있도록, 자신이 관찰한 바에 따른 정보를 넘긴 것이다.
‘위험하니까, 더욱 친밀하게 지내야 한다.’
그것이 칠드그린의 생각이자, 신념이었다. 이미 세계 경영은 유지웅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미국이 패권자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걸어가야 했다.
때문에 칠드그린은 오늘도 미국과 유지웅의 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히며, 미국 출장에서 돌아와 WCO로 출근을 하고 있었는데…….
“휘, 휘버 박사!”
유령을 만나고 말았다.
* * *
“정확한 데이터 집계를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 균열은 아직 열려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비록 단 몇 개월 간을 표본으로 한 조사였지만, 대기 중의 결정 에너지 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결과는 간단하다. 균열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스카우터로는 균열을 찾을 수 없나?”
니트로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휘버는 고개를 저었다. 부정의 뜻이 아니었다.
“스카우터가 균열 그 자체를 탐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결정 에너지를 탐지할 수는 있습니다. 문제되는 것은 탐색 반경과 정밀도지요.”
“지구 전체를 스캔해야 하는군요.”
가렌이 질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구 전체라니, 말이 쉽지 그게 어디 편히 될 일인가.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친 몸과 머리를 식힐 필요가…….”
“안 됩니다, 최 박사. 다른 사람은 다 돼도, 당신은 안 돼요.”
“어, 어째서요!”
은근슬쩍 꺼낸 휴가 요청을 휘버가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최윤은 억울해서 반발했다. 그러나 휘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휘, 휘버 박사!”
놀람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렸다. 휘버는 사시나무처럼 질린 백인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에 그는 잠시 긴장했다.
“나를 알고 있소?”
“……정말 휘버 박사가 맞습니까? 귀하는 죽은 게 아니었던가요?”
“……좀 복잡하오만, 보다시피 일단은 멀쩡히 살아 있소. 묻겠소, 당신은 누구요? 누군데 나를 알고 있소?”
그렇게 묻는 목소리에는 명백한 긴장과 적대감이 담겨 있었다. 칠드그린은 그것을 느끼고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휘버의 입장이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CIA의 암살 공작에 이미 한 번 당한 사람. 그것이 진정한 미국의 뜻은 아닐지라도, 조국에 배반당한 마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으리라.
“저는 칠드그린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EIS 부국장으로 일했습니다.”
“EIS?”
“동아시아 담당 정보기관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유지웅 회장님의 영입 제안을 받고 WCO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WCO? 이곳에서?”
휘버가 낭패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니트로가 슬쩍 다가와서 조용히 말을 건넸다.
“WCO 의장이니, 직책상으로는 우리 상사다. 예산 결재 권한을 가진 사람이야.”
한눈에 보기에도 니트로는 극도로 조심하는 듯했다. 휘버는 그만 쓴웃음을 지었다.
‘변한 게 없으시군.’
예산에 살고, 예산에 죽는다. 시간이 흘렀어도 그 점은 달라진 게 없는 모양이다. 그 점이 더 정겹긴 했지만.
회상은 잠시 접고, 휘버는 칠드그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 이야기를 미국에 전달할 거요?”
“……유감이 많으신 모양이로군요.”
“CIA는 나를 암살했고, 자산 수조 달러의 멕아른 연구소는 탐욕스러운 자본가들 손에 넘어갔소. 좋은 기억을 가지기 힘들지 않겠소?”
“어찌 되었든 저는 회장님의 사람입니다.”
“그럼 만약 회장과 미국이 적대하면, 어느 쪽 편을 들 거요?”
“…….”
천하의 칠드그린도 그렇게 정곡이 찔리자 일순 말문이 막혔다. 휘버는 서늘한 눈빛으로 뜯어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칠드그린이 말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저는 회장님 편을 들어 미국이 적대하게 만든 자들을 적대할 겁니다.”
“휘버 이 녀석, 왜 그러냐? 칠드그린 의장은 어찌 되었든 우리 편이란 말이다!”
“맞습니다, 교수님! 그러지 마시고 진정하세요! 두 분이 다퉈서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예산에 쩔쩔매는 니트로와 가렌은 칠드그린의 눈치를 보느라 쩔쩔매며 휘버를 말렸다. 잠시 후 휘버가 눈빛을 누그러뜨렸다.
“CIA가 아니라면 됐소.”
“토미 에슨은 저 역시 싫어합니다. 그런 과격론자는 진정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지요.”
“글쎄, 토미 에슨은 국익을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괜찮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겁니다.”
“감옥?”
“예, 박사님을 암살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입니다.”
휘버는 아무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칠드그린은 그 점을 똑똑히 확인했다. 생각을 정리한 그는 결심한 듯이 말했다.
“박사님의 생존은 결국 미국에 알려질 겁니다. 백악관이 만약 입국 요청을 하시면 어떻하시겠습니까?”
휘버는 결정체학의 아버지다. 결정체로 돌아가는 지금 문명은 그가 만든 것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7년 전 그가 암살당했을 때, 미 정부는 피눈물을 삼키며 그의 죽음을 비행기 사고로 위장했다. 이미 CIA가 일을 저질렀는데, 도저히 자국 정보 기관이 그를 암살했다고 발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CIA 관련자들을 엄벌에 처했다.
그의 죽음은 수많은 미국 시민들이 함께 슬퍼했다. 그는 세계의 부를 일으킨 것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선사업에도 공헌하는 진정한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소.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소.”
“중요한 일입니까?”
이미 로버는 해결되었다고 유지웅이 선언했다. 칠드그린은 그래서 물어봤다. 로버 외에 문제될 것은 없지 않은가?
“자세한 건 회장에게 들으시오. 허나, 아직 인류를 위협하는 위기는 남아 있소. 우리 넷이 힘을 모아 그 위기를 해결해야 하오.”
“……알겠습니다. 제가 나중에 따로 질의하지요.”
미국에 그다지 마음이 없어 보인다. 아예 마음이 떠난 건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휘버는 미국이 어떤 회유를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듯해 보인다.
‘토미 에슨, 망할 자식.’
미국의 위대한 보물이 등을 지게 만들다니. 그놈이야말로 진정한 매국노가 아닌가? 칠드그린은 쓴웃음과 욕지거리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박사님들께 질문이 있어서 왔습니다.”
“질문? 뭔가?”
니트로가 얼른 나서서 물었다.
“192만의 결정도라 하면 어느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지 객관적인 수치가 궁금합니다.”
“192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예? 전에 적어주신 회장님의 결정도가 192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적 없는데? 난 192억이라고 적었지, 192만이라고 적은 적이 없네. 자네가 잘못 봤겠지.”
“그럴 리가요?”
칠드그린은 황당해서 얼른 쪽지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분명히 니트로가 써준 쪽지다.
자신이 적어준 쪽지를 확인한 니트로는 알겠다는 듯이 아하 하고 탄성을 내며 혀를 찼다.
“이건 밀리언이 아니고 빌리언일세. m이 아니고 b야. 그리고 소수점은 이게 아니고 여기 찍혀 있는 이거야. 그러니 192만이 아니라 192억이 되는 거지.”
“이, 이게 무슨…….”
얼마나 악필이면 b와 m을 잘못 쓸 수 있는 거지? ……가 아니라, 뭐라고? 192억?
‘사람 맞아?’
192만이라는 수치에도 백악관이 그렇게 뒤집어졌었는데, 192억이라고? 이게 정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수치인가?
그때였다. 휘버가 경악해서 끼어 들었다.
“192억의 결정도라니요? 그런 괴수가 있단 말입니까?”
“아니, 괴수는 아니고 회장님 결정도가 그렇게 나오더라고. 과연 왜 그렇게 무시무시한 건지 숫자를 보니까 납득이 되더라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가렌도 수긍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휘버는 기가 막힌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황당함의 늪에 빠져 숨이 막힌다는 게 바로 이럴까.
이 사람들아! 192억이라니까! 그걸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어떡하냐고!
“당장 회장을 조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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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억은 사실 균열 반응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