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80)
00980 %3C프리시즌 딜러편%3E 대서양의 군주 =========================================================================
“신병 받아요!”
시원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실내에서 모니터 앞에 머리를 박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꾀죄죄한 차림에 낯빛은 핼쑥했다. 마치 몇 주 동안 잠 한숨 못 자고 과로에 시달린 사람처럼.
“회, 회장님…….”
노쇠한 니트로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고, 이어 가렌이 퀭한 눈으로 간절히 바라봤다.
“이러다가 니트로 교수님이 쓰러지시겠습니다.”
“저, 저는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날 속였군요.”
참고로 마지막은 레지나의 말이었다. 불과 며칠 만에 그녀는 얼굴과 눈빛에서 생기를 잃었다. 종신고용 계약서를 쓰자마자 바로 WCO 연구소에서 갈려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지웅이 그걸 보고 혀를 찼다.
“쯧쯧…… 이렇게 여러분들의 컨디션이 안 좋아서야 어디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겠어요? 범석이 이놈, 이거 안 되겠네. 내가 그렇게 이분들 건강 좀 챙기라고 강조했건만, 대체 어떻게 일을 하는 거야.”
“회장! 우리가 이렇게 지친 것은 그게 아니라 일이 너무 많아서……!”
“휘버 박사님? 그러고 보니 혼자만 쌩쌩하시네요? 혹시 선배와 제자와 친구와 손녀가 연구에 시달리는 동안, 혼자만 몰래 푹 쉬고 막 그랬나요?”
“아, 아니. 내가 쌩쌩한 건 어디까지나…….”
휘버는 당황했고, 억울했다. 자신이 쌩쌩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 자체가 월등한데 이 정도 철야 및 야근을 했다고 지칠 리가 있나. 정신은 다르지만.
“아무튼 다들 신병 받아요.”
중년 남자, 마르코 웬리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휘버 박사! 어떻게 당신이?”
휘버는 몇 년 전에 죽었다. 그렇게 알고 있던 마르코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봐, 베프.”
“예? 옛, 회장님!”
“휘버 박사님은 보다시피 살아 계신다. 하지만 여기에는 복장한 사정이 있어. 그래서 세상에는 죽은 걸로 해두었지.”
“그, 그런…….”
“자세한 건 알 필요 없고, CIA가 개새끼라는 것만 알아두면 된다. 넌 똑똑한 놈이니까 대강 눈치는 알겠지?”
CIA라는 말에 마르코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 한 마디에서 마르코는 대략적인 상황을 짚어낼 수 있었다.
“그, 그랬군요.”
“아무튼 너도 비밀 잘 지키고, 이 분들하고 부디 열심히 연구에 임하길 바란다.”
“옛!”
믿는다는 어조에 마르코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마르코를 보자마자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벌떡 달려들려던 레지나는 침묵했다. 보아하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납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히려 마르코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니트로가 혀를 차며 말했다.
“좋은 눈이야. 열정에 불타고 있어.”
“감사합니다. 여러 박사님들과 함께 힘을 합쳐, 인류와 회장님을 위해 좋은 연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지난 과오는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아니, 내 말은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가 좋을 때라는 소리다.”
“……?”
“있다, 그런 게.”
그렇게 갈려나갈 공돌이 하나가 추가됐다.
* * *
“세상이 평화로우니 마음이 든든하구나.”
요트를 타고 한강을 유람 중이던 유지웅은 문득 그렇게 중얼거렸다.
손가락에 박힌 가시처럼 자신을 곤란하게 했던 문제들을 말끔히 처리했다.
중국은 분열됐고, 일본은 깨갱했으며, 사이가 틀어질 뻔했던 미국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했다.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강력한 괴수도 웬만해서 때려잡았고, 니켈레우스와 히카리, 브라우니, 모비딕 등 길들인 괴수를 아래 두고 있다.
한국 사회판도 말끔히 정리한데다가, 지금도 밑의 사람들이 부정부패 척결과 사회 품격을 높이기 위해 한창 노력 중이다. 이대로 가만히 놔둔 채, 가끔씩 갈궈 주기만 해도 한국은 이제 잘 굴러갈 것이다.
WCO 산하 연구기관도 잘 굴러가고 있다. 휘버 박사를 필두로, 니트로, 가렌, 최윤, 레지나, 그리고 얼마 전에 영입한 베스트 프렌드 마르코 웬리까지. 뛰어난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자신의 왼손에 봉인된 균열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고심 중이다.
CERC 문제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이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지만, 뭐 그런 소소한 문제거리가 있다는 것은 오히려 평화롭다는 방증이 아닐까.
“이제 효주와 결혼이나 해볼까.”
가끔 유세현 등 아이들이 그립다. 하지만 유지웅은 이미 회귀 인생을 받아들인 지 오래다. 사랑과 추억이야 이제부터라도 다시 쌓아나가면 그만인 것을.
“그나저나 결정체가 이제 안 나오니 큰일인데.”
균열이 왼손에 봉인돼 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결정체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부디 WCO 과학자들이 왼손의 비밀을 하루빨리 풀어내야 할 텐데.
“일단 인피니티 스톤이 있으니까 다행이지만…….”
왼손의 균열은 굳게 봉인돼 있다. 그래서 결정 에너지가 전혀 새어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인피니티 스톤을 쥐고 있으면, 균열의 에너지가 인피니티 스톤에 전해진다. 개폐가 불안정한 균열에서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뽑아내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인피니티 스톤이 있는 한, 설령 균열을 통제하지 못한다 해도 전 세계가 결정체 고갈을 겪을 일은 없네.’
휘버는 그렇게 단언했다. 물론 유지웅으로서는 기겁을 할 말이었지만.
‘아니, 그럼 나더러 시도 때도 없이 인피니티 스톤을 쥐고 있으란 말인가요?’
‘그, 그런 건 아니네만…….’
‘그러다가 인피니티 스톤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라고요? 그리고 또 저는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 사람이라고요. 인피니티 스톤을 허구한 날 쥐고 있을 순 없단 말이에요.’
‘아니, 나는 그저 최악의 경우라도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일세.’
‘핑계대지 마세요. 부디 열심히 연구하셔서 균열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주세요. 아셨죠?’
‘아, 알았네.’
갑판에 드러누운 유지웅은 잠시 예전의 대화를 떠올렸다.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 WCO 연구진은 과연 잘 하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얼굴 본 지도 벌써 3주가 다 되어 가는데, 슬슬 이쯤해서 찾아가 쪼아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 인류를 위해서라면 그분들이 하루빨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을 해줘야지. 내가 달리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잖아.”
유지웅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외쳤다.
“브라우니!”
잠시 후 고고도에서 활강하고 있던 브라우니가 용케 그 소리를 알아듣고 한강으로 급강하하며 내려왔다. 덕분에 촤악 하고 물살이 크게 튀었다. 유지웅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녀석, 얌전히 내려와야지. 다 젖었잖아.”
―끼이잉…….
“자, 등이나 이리 대 봐.”
브라우니가 납작 엎드렸다. 유지웅은 가볍게 뛰어서 브라우니의 등에 올라탔다. 그는 브라우니의 목덜미를 몇 번 두드리고는 외쳤다.
“세종시로 가자!”
―캬아아아!
그에 화답하듯이 브라우니는 우렁찬 소리를 내고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빈 요트는 비서실 직원들이 알아서 회수해갈 것이다.
브라우니를 타면 세종시까지는 금방이다. 유지웅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세종시에 도착했다.
이착륙지에 브라우니가 내려서자 관제탑에서 직원 여럿이 얼른 달려 나왔다. 그들은 유지웅을 보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박사님들은요?”
“그, 그게…… 연구실에 계실 겁니다.”
직원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조금 이질적인 반응에 유지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요? 가봅시다.”
“핫, 네!”
유지웅은 중앙 연구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박사님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셈이었다. 안주머니에는 박사님들을 위한 카드도 선물로 챙기고 있었다.
헌데…….
“박사님들! 지금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유지웅은 입을 떡 벌리며 놀랐다. 모니터와 그래프와 수식과 계산기와 씨름하고 있어야 할 과학자들이, 신성한 연구실 한복판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치킨과 맥주 파티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제가 얼마나 여러분들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 작품 후기 ============================
프리시즌 딜러편은 곧 끝날 것 같네요.ㅋ
헬조선편이라는 프리시즌도 있는데, 괴수가 없는 평범한 2016년 대한민국 평행차원에 유지웅이 뚝 하고 떨어져서 겪는 고군분투기입니다. 그런데 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요즘 바빠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