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9화
[연계 퀘스트 발생!>― 주제곡 등급 테스트에서 강해솔이 S등급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세요!
(남은 기간 7시간 55분)
–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 주십시오.
‘미치겠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는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일단 저장해 둔 강해솔의 번호로 무작정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정한 안내음이었다.
‘그래, 츄마프 나왔다가 연습생 때려 쳤으면 번호를 바꿀 만하지.’
강해솔은 처음 S등급을 받은 아홉 명의 연습생 중 유이하게 한 번도 데뷔 조에 들지 못한 연습생이었다.
중간에 자진 하차를 한 우휘겸을 빼면 유일하다는 의미였다.
예찬과 강해솔은 둘 다 차갑고 예민해 보이는 낯짝을 하고 있었지만 느낌이 좀 달랐다.
예찬이 어딘지 서늘하고 쌀쌀맞아 보이는 한편 과하게 예의를 차릴 것 같은 인상이라면 강해솔은 사납고 성질 더러워 보이는, 소위 날티 나게 생긴 얼굴이었다.
언젠가 강해솔이 학창 시절부터 생긴 것 때문에 선생들이나 학생들에게 꽤나 오해를 받았다고 푸념했었는데, 그것은 츄마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에 정신이 팔리면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고 낯가림이 심한 데다 실제로 성깔도 좀 있고 다혈질인 강해솔이 헤쳐 나가기에 24시간 밀착 카메라는 허들이 높았다.
가끔 파편처럼 튀는 부정적인 면모는 편집의 마술로 극대화되었고 드물지 않게 보여 주는 좋은 장면은 아예 통편집 당했다.
예찬만 하더라도 실제로 강해솔을 만나기 전까지는 실력은 있는데 성격은 개차반인 놈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을 정도로 말이다.
예찬이 강해솔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세 번째 리셋 도중이었다.
츄마프 99가 끝나고 얼마 후, 뜨지 못한 아이돌을 위해서만 곡을 쓰는 얼굴 없는 괴짜 작곡가가 나타났다.
그때 예찬은 앨범과 무대의 질적 향상을 위해 실력 있는 스태프를 아주 싹싹 긁어모으던 중이었으니, 당연히 익명의 천재 작곡가에게도 흥미가 생겼다.
오로지 그를 꾀어내기 위해 방송국과 협업해 망돌들을 모아 토너먼트 서바이벌을 찍는 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계획대로 미끼를 문 작곡가는 예찬의 회사를 방문했다.
– 어, 강해솔 연습생.
자신을 알아본 예찬의 첫마디에 순식간에 목까지 시뻘게진 강해솔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작곡가거든!
그렇게 시작된 강해솔과의 인연은 오래 지속되었다.
츄마프에서 보여준 모습과 달리 강해솔은 성실하고 섬세했다.
아이돌로서 능력치도 뛰어났지만, 작곡가로서의 기량도 그에 못지않게 훌륭했다.
일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강해솔이 마음에 쏙 든 예찬은 그 후 리셋을 반복하면서 매번 작곡가가 된 그를 찾았다.
– 형은 왜 아이돌 곡만 쓰는 거야?
– 미련이지 뭐.
언젠가 예찬이 물었던 적이 있었다.
목이 타는지 캔을 딴 강해솔이 벌컥벌컥 음료를 들이켰다.
– 더러워서 다시는 이 업계엔 눈길도 안 주겠다고 생각하고 다 때려치웠는데, 스트리밍 사이트에 츄마프 99가 뒤늦게 올라왔더라고.
강해솔은 말을 이었다.
– 내가 미친 건지 그걸 보겠다고 내 손으로 튼 거야.
예찬은 탄산을 마시고 취한 것처럼 구는 알코올 쓰레기 강해솔의 말을 얌전히 경청했다.
– 그 프로만 보면 내가 진짜 둘도 없는 개자식이더라. 근데 나는 알거든.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매 순간 이보다 더할 수 없게 최선을 다했다는 거.
확실히 두 번째 등급 평가를 제외하고 강해솔은 언제나 무대에서 훌륭하게 맡은 바를 해냈었다.
비록 단 한 번도 프로그램이 그의 활약을 조명해 준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 결국 내 가장 빛나는 순간은 그곳에 있는 거야.
강해솔은 씁쓸한 얼굴로 웃었다.
예찬의 손으로 박살을 낸 츄마프였으나 강해솔의 가슴 속엔 일종의 성역이 되어 커다랗게 자리잡은 모양이었다.
예찬은 그날 처음으로 츄마프를 갈기갈기 난도질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 그걸 인정하니까 구질구질하게 미련도 생기고 이상한 오기도 생기고. 근데 아이돌 하겠다고 나섰다가 또 욕먹긴 무섭고. 뭐 그러다 보니 이렇게 흘러온 거지.
후회와 자조가 섞인 말을 경청하던 예찬은 문득 강해솔이 이렇게 괜찮은 사람인데 그 사실을 자신만 알고 있는 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 츄마프 말고 다른 방식으로 데뷔하는 건 어떨 거 같아? 예를 들면 리스피릿이라든지.
충동적으로 물어본 것이었는데 막상 입 밖으로 뱉고 보니 아주 괜찮은 생각 같았다.
예찬은 누구보다 든든한 팀원을 얻을 수 있고, 강해솔의 성역을 흙발로 밟은 것에 대한 사과도 할 수 있으며, 강해솔도 아이돌로서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 미쳤냐? 너희 팬들 욕하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로 돌을 던질걸?
– 아니, 지금 들어오라는 게 아니고 형이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건지 가정해 보자는 거지.
예찬은 기겁하는 강해솔에게 보다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예찬의 말에 어울리지 않게 흠, 하고 침음을 흘리며 잠시 고민한 강해솔이 피식 웃었다.
– 리스피릿 들어가서 하예찬 버스 타고 꿀 빨라고? 나쁘지 않은데?
– 그치?
예찬의 얼굴이 삽시간에 환해졌다.
‘지금 리셋을 해서 해솔이 형이랑 같이 데뷔를……아, 그러려면 19살 무렵에 뭐하고 있었는지 자세하게 캐내야겠는데.’
당장이라도 리셋을 하고 강해솔을 잡아다 함께 데뷔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예찬의 생각을 멈춰 세운 것은 강해솔의 말이었다.
– 근데 다시 돌아가도 난 츄마프에 도전할래. 멍청이 같은 소리긴 한데, 진짜로 잘하고 싶었어. 거기에서.
정말 멍청한 소리였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강해솔의 얼굴이 너무 진실해 보여서, 예찬은 과거로 다시 돌아간 후에도 열아홉의 강해솔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예찬은 몇 차례 더 리셋을 했고 몇 번인가 작곡가로 만난 강해솔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면 고집스러운 강해솔은 언제나 예찬에게 똑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참 강해솔다웠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예찬은 강해솔이 그렇게 집착하던 그 츄마프에 강해솔과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예찬은 머리를 어지럽히는 잡생각들을 몰아냈다.
지금부터 약 8시간 동안, 어제 처음 말을 텄고 아직 전화번호도 없는 상대를 원격 조종해서 S등급을 받도록 만들어야 했다.
이 홀로그램 창은 정말 한결같이 짜증 나게 굴긴 했지만 불가능한 퀘스트를 낸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분명 이번 퀘스트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지금 강해솔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세 사람.
연락처 어플을 켜고 룸메이트들의 이름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예찬은 이내 빠르게 메시지를 작성했다.
– 나 하예찬이야. 미안한데 강해솔 형한테 말 좀 전해줄 수 있을까?
최악의 경우 연습 중이라 메시지를 상대가 읽을 때까지 몇 시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답장은 30분 만에 돌아왔다.
– 응~ 뭐라고 전해줄까◝( ˙ ꒳ ˙ )◜?
……뭐지 이 터무니없는 메시지는?
예찬은 핸드폰에 저장된 범세혁의 이름과 메시지를 몇 번 번갈아 보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장을 적었다.
우휘겸과는 엮이기 싫고 심상록은 지금까진 그냥 무난하게 사람 좋은 놈으로 보이지만 깊게 얽혀 본 적이 없으니 속내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안팎이 똑같은 범세혁에게 부탁한 건데 괜히 몰라도 될 TMI를 하나 알게 된 기분이었다.
‘이런 표정을 섞어 문자를 보내다니…….’
– 곡 잘 들었다고 해 줘.
– 알았어 ∠(`∇´)
뜬금없는 부탁과 그 내용에 의아할 법도 한데 빠르게 돌아온 답장엔 제법 호전적인 그림이 붙어 있을 뿐, 그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이내 세 번째 답장이 도착했다.
– 전달 완료 ( ̄▽ ̄)V
– 고맙다.
남은 시간은 이제 여섯 시간 남짓.
강해솔이라면 못해도 두 시간 안에 달려올 게 뻔했다.
짧은 시간 동안 머리를 혹사했더니 잠깐 잊고 있던 피로가 배로 불어서 돌아온 느낌이었다.
예찬은 평온한 마음으로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니 이번에야말로 강해솔이 예찬을 찾아올 때까지 자고 있을 생각이었다.
* * *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단잠에 빠져있던 예찬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하예찬, 문 열어!”
익숙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제법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예찬은 대답하는 대신 먼저 끄지 않고 둔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연계 퀘스트 발생!>― 주제곡 등급 테스트에서 강해솔이 S등급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세요!
(남은 기간 5시간 17분)
‘와, 진짜 빠르다.’
두 시간은커녕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다.
성격 급한 건 이때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고 감탄한 예찬은 침대에서 내려와 터덜터덜 문 앞으로 걸어갔다.
예고 없이 벌컥 문을 열자 막 문을 두드리려던 강해솔이 문 안쪽으로 쏟아졌다.
예찬은 자연스럽게 넘어질 뻔한 강해솔을 부축했다.
거치 카메라가 찍고 있으니 인간적인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하마터면 땅바닥에 코를 박을 뻔한 강해솔은 감사 인사를 하는 대신 예찬을 향해 말을 우다다다 쏘아 댔다.
“너, 왜 내 문자 확인 안 해? 전화도 안 받고!”
“제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범세혁한테 물어봤어.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강해솔이 목소리를 확 줄였다.
“……곡이라니 무슨 소리야?”
초조한 얼굴로 예찬의 대답을 기다리는 강해솔은 기억보다 앳됐다.
아직 상처받은 적 없는 어린 강해솔이 생경했다.
“테스트는 잘했어요?”
“뭐? 몰라. 기억 안 나. 그보다 곡이라니 무슨 소리냐고……!”
‘됐군.’
긴장이고 뭐고 다 잊어버린 게 분명한 모습에 예찬은 뿌듯해졌다.
실력만 보면 강해솔은 참가한 연습생 중 못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긴장하지 않고 몸이 기억하는 대로만 하면 충분히 S등급을 지킬 테니 이번에도 무사히 퀘스트를 넘긴 셈이었다.
예찬이 기억하는 츄마프에서 강해솔은 2차 등급 테스트에서 가장 바닥인 D등급으로 굴러떨어졌다.
전날 밤을 새운 것에 더해 테스트 당일에도 늦게까지 연습한다고 무리하는 바람에 몸 상태가 엉망이었고, 테스트 마감 시간에 연습생들이 몰리다 보니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면서 정신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런 성치 못한 컨디션에 유명 인사들로 그득한 심사진이 부스를 둘러싸고 앉아 있으니 긴장감도 극에 달했을 것이다.
최악의 상태로 최악의 무대를 보여 준 강해솔은 D등급으로 강등당했다.
츄즈 마이 프린스 99의 욕받이 캐릭터가 된 것은 덤이었다.
– ㄱㅎㅅ S였던 거 완전 거품 아니냐?
– 평생 쓸 운을 첫 번째 등급 평가 무대에 다 쓴 듯ㅋㅋㅋ
– 첫 등평 무대는 거의 일 년 동안 그 곡만 연습한 거 아님? 2차 등평 보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못 할 거 딱 보임
강해솔이 욕을 바가지로 먹는 걸 본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좋은 캐릭터가 생겼다고 신이 났다.
퉁명스러운 말과 행동에 교묘한 편집을 얹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인간쓰레기가 탄생했다.
그래서 예찬은 지난 새벽 연습을 더 하고 싶어 하는 강해솔을 굳이 끌고 와서 재웠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지 말라고.
리셋 후 강해솔과 거리감을 재지 못하고 친근하게 들이댔다가 차단당한 기억도 있고, 섣불리 미래의 일을 힌트라도 줬다가 조작 멤버라고 의심받는 것도 곤란했다.
그래서 이번엔 그 이상 참견할 생각은 없었는데 홀로그램 창 덕분에 아슬아슬한 선을 두고 줄타기를 하게 돼 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잔뜩 풀 죽은 게 아니라 예찬에게 땍땍거리며 따지려 드는 강해솔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건 퀘스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예찬은 뜨뜻미지근한 시선을 퀘스트 창으로 향했다.
“너, 내 말 듣고 있어?”
예찬이 딴청 피운다고 생각한 건지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강해솔이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 같은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직 수습은 끝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