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0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00화
?
?
‘아이돌 장르 한정이라…….’
채은성이 떠나고 소파에 앉은 예찬은 상태창을 띄워 둔 채 고민했다.
‘아무래도 채은성이 현대 무용을 하던 놈이라 붙어 있는 거 같은데.’
정찬양을 보고 꼭 한번 말을 섞어 보고 싶은 마음에 현대 무용에서 아이돌로 진로를 드리프트 했다는 채은성의 춤 실력은 애매했다.
‘아직 아이돌 춤에 익숙하지 않아서 아이돌 장르 한정이라는 건가? 원래 스탯은 더 높고?’
원래 팀에 하나쯤은 마스코트처럼 애매한 놈이 있을 수 있다고 정신 승리했는데…….
기묘한 열기가 손끝을 맴돌았다. 현대 무용과 결합한 안무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마음 같아선 당장 채은성이 어느 정도 레벨인지 예고 시절 영상을 찾아보고 싶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휴. 마지막 무대 끝나고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니 안 믿긴다, 그치?”
‘아직 심상록 집이다…… 참아야지…….’
예찬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형 피곤할 텐데 그만하라고 할까요?”
“아냐, 괜찮아. 먼지만 쌓이고 있어서 안 됐는데 잘됐지 뭐.”
예찬과 심상록의 시선이 동시에 TV 앞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향했다.
“아 진짜, 좀 페어플레이합시다!”
“쓰라고 있는 아이템을 썼을 뿐인데?”
“와, 의탁아. 너는 면허 따면 안 되겠다.”
“게임이랑 현실이랑 구분해야지 무슨 소리예요!”
범세혁의 감상에 정의탁이 벌떡 일어났다.
방송이 끝나면 선우이경의 차를 다시 얻어 타고 집에 돌아가려던 계획은 선우이경이 구석에 박혀 있던 콘솔 게임기를 찾으며 어그러졌다.
처참하게 망한 방송도 잊고 레이싱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니 절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셋 다 저렇게 게임을 못 하다니…… 나중에 콘텐츠로 써먹을 만하군.’
예찬이 세우고 있는 계획을 알 리 없는 심상록이 다시 말을 꺼냈다.
“예찬이 너는 피곤하면 먼저 자도 돼.”
“아뇨, 넷이나 자고 가면 형이 너무 힘들죠.”
“이 시간에 잘 운전해서 갈지 걱정하는 게 더 힘들 거 같은데.”
심상록의 말에 선우이경이 휙 고개를 돌렸다.
“상록! 그건 걱정하지 마! 나 운전 잘하거든!”
화면 속 선우이경의 차는 역주행을 하고 있었다. 심상록이 따스하게 웃었다.
“으응, 그래.”
한동안 집에 가기는 틀린 것 같았다.
예찬은 비는 시간 동안 츄마프 비하인드 화의 반응이나 찾아보기로 했다.
‘뭐, 뻔할 것 같지만…….’
?
– 오늘 비하인드 나만 재미없었어?
– 츄마프 개같이 망한 듯ㅠ
– 레굴루스 데뷔도 안 햇는데 왜 망돌 됨?ㅠㅠㅠ
– 진짜 사랑했었다 얘들아…
– 왜 은퇴 분위기야ㅋㅋㅋㅋ
– 레굴루스 해체함?
– 내 돌이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은퇴한 건에 대하여
?
역시나 비하인드 방송의 퀄리티 저하와 츄마프의 안 좋은 소문들을 레굴루스와 한데 엮어 욕하는 데 힘을 쓰고 있었다.
주방에서 들고 온 컵을 예찬의 앞에 내려놓은 심상록이 물었다.
“오늘 방송 반응 찾아보는 거야?”
“네, 뭐.”
“내가 알아야 할 내용은 있어?”
예찬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심상록을 바라보았다.
예찬과 눈을 마주친 심상록이 여상히 웃었다.
“나 지금도 댓글 안 보고 있어, 예찬아.”
심상록이 준 잔을 들어 마시자 따뜻하게 데운 우유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예찬의 머리가 팽팽히 돌아갔다.
‘이거 지금 자기 순위 떨어졌다고 나한테 은근히 따지는 건가?’
예찬 본인도 지난 최종 순발식에서 반성했듯, 같이 가기로 한 것치고 심상록에게 무심하긴 했다.
구차한 변명을 해 보자면 예찬에게는 심상록이 몇 위를 하는지보다 데뷔권인 9위 안에 들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츄마프 내내 심상록은 충분히 데뷔권 안이었기에 별다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심상록 입장에선 다를 수 있지.’
예찬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 사과하면 받아 주시나요?”
“응? 사과할 일이 있나?”
예찬은 다시 심상록과 눈을 마주쳤다.
맑은 두 눈엔 거짓 한 점 없어 보였다. 더 머쓱해진 예찬이 말했다.
“음, 제가 투표 창만 보라고 한 것 때문에 혹시 한을 품었나 했어요. 그, 순위가 좀 떨어지셔서…….”
예찬이 말끝을 흐리자 깜짝 놀란 심상록이 빠르게 부정했다.
“뭐? 진짜 말도 안 되는 생각인데?”
“그런가요? 으으음, 솔직히 책임진다고 해 놓고 제 발등의 불을 끄느라 바빠서 신경을 잘 못쓴 것도 있어서요. 도둑이 제 발 저렸네요. 미안합니다.”
예찬은 자신의 무심함을 인정했다.
그래도 솔직히 털어놓았더니 마음의 짐이 좀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예찬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심상록이 덩달아 허둥지둥 고개를 숙였다.
“핑계 같지만 형이 잘하고 있어서 뭐라고 끼어들지 않은 거예요…… 말하고 나니 더 핑계 같군요.”
심상록은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 내가 순위가 좀 떨어진 건 사실인데, 난 만족해. 진짜 빈말이 아니라 8위도 충분히 높은 숫자고, 같이 데뷔하는 멤버들도 다 마음에 들고.”
빠르게 말을 이어가던 심상록이 순간 입을 다물더니 우물쭈물했다.
“오히려 너한테 언제 혼날지 눈치 보고 있었는데.”
“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예찬이 놀란 기색을 보이자 심상록이 빠르게 덧붙였다.
“그때 그랬잖아. 8등이나 9등을 하겠다는 안일한 마음으로 츄마프에 참여하고 있는 거냐고.”
“아.”
예찬의 머릿속에 빠르게 그날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
– 전 할 거면 무조건 1등만 합니다.
– 형은 꼭 8등을 해야지, 아님 9등을 할 거야! 이런 안일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 형도 1등 하겠다는 마음으로 해요. 그런 마음이 있어야 좋은 무대가 나온다고요.
?
“1등을 노리겠다고 호기롭게 말해 놓고 진짜 8등을 해 버려서 큰일 났다고 생각했거든. 너한테 혼날 줄 알았어.”
심상록은 장난스럽게 어깨를 웅크렸다.
“아, 아니. 그건 마음가짐의 얘기였잖아요. 그, 형이 좀 양보를 너무 했다 싶은 무대들이 있긴 한데, 그래도 무대 다 좋았어요. 진짜로.”
드물게 횡설수설하는 예찬의 모습에 심상록이 웃음을 터트렸다. 예찬은 뻘쭘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심상록은 후련한 얼굴로 덧붙였다.
“그리고 투표 말인데, 순위만 보면 떨어졌지만 총 득표수는 처음보다 엄청나게 올랐잖아.”
맞는 말이었다. 심상록의 순위가 떨어진 건 원래 있던 팬들이 다른 연습생으로 갈아탄 게 아니라,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 신규 팬의 유입이 적어서였기 때문이었다.
“순위 발표식에서 표수를 보고 난 다음부턴 퍼센트만 나오는 투표 창을 봐도 힘이 나더라. 그렇게 많은 팬이 나를 응원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련한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한 심상록이 다시 예찬을 바라보고 웃었다.
“의탁이 또 꼴찌!”
“말도 안 돼! 다시 해요, 다시!”
마침 한 판이 또 끝났는지 TV 근처에서 정의탁의 비명이 들렸다.
잠깐 세 사람 쪽을 확인한 심상록이 곤란한 듯 미소 지었다.
“오늘은 자고 가야겠다.”
“그러게요.”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
?
레굴루스의 멤버 아홉 전원이 다음에 다 모인 것은 약 일주일 후였다.
NJ 엔터 빌딩 14층 회의실에 모인 멤버들을 맞이한 것은 레굴루스 전담팀 팀장 도지윤이 아니라 새로운 직원이었다.
“도 팀장님은 다른 일로 조금 바쁘셔서요! 오늘은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우신가 봐요.”
‘이렇게 나오시겠다?’
예찬은 불편한 심기를 일단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겼다.
지금 이 판단을 도지윤 팀장이 내린 것인지, 그 윗선에서 내려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돌아가는 꼴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츄마프와 관련된 부정적인 기사는 아직도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었다.
예찬이 기억에 따르면 이 무렵 NJ 엔터 내부는 파벌 싸움이 한창이었다.
츄마프가 망했을 때야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파벌 싸움에 끼워 주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메인 PD가 경질당한 것만 봐도 윗사람들의 관심이 아주 뜨거운 게 분명했다.
양측 세력이 츄마프로 얻게 될 수확을 자신이 챙기겠다고 나서다가 결국 도 팀장이 있는 측이 승기를 잡았는데, 막상 이런저런 문제가 연달아 터지자 흥이 식은 모양이었다.
‘가지고 있다가 상대측이 그걸로 시비를 걸 수도 있고. 그렇다고 버리기엔 아깝고.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서 일단 방치하는 거군.’
보통의 사람이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 분명한 탑급 화제성을 가진 레굴루스를 방치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러나 예찬으로선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자주 본 윗대가리 유형이라 낯설지 않았다.
‘먹고살 만하니 간절하지 않은 거지. 아주 배가 불렀어.’
남들이 좋다고 해서 남 주기는 아까우니 일단 갖고 방치, 혹은 대충 활동시키기.
이대로 가만히 있을 때 다가올 레굴루스의 머지않은 미래였다.
계산을 끝낸 예찬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NJ 직원에게 물었다.
“저희가 오늘부터 데뷔 앨범을 준비하면서 연습하기로 했는데 연습실은 어딜 사용하면 될까요?”
“아아, 데뷔 준비요.”
직원의 어조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묻어났지만 예찬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척 재차 물었다.
“네! 빨리 시작하고 싶네요!”
다행히 대기업답게 연습실도 빌려주지 않는 졸렬한 짓은 하지 않았다.
‘우리 말고 쓸 사람도 없는데 있는 연습실을 비워 둘 필요가 없어서일 수도 있고.’
예찬은 새것 티가 나는 연습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더 본격적인데? 옆방엔 작곡 장비도 있더라.”
흥분으로 볼을 붉힌 강해솔이 예찬에게 말을 하다 흠칫 제풀에 놀랐다.
갑자기 불신으로 물든 눈동자로 예찬을 노려보는 걸 보니 전에 작곡 이야기를 꺼냈던 게 기억이 나 버린 모양이었다.
예찬은 강해솔이 따질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자리를 피하며 다른 멤버들의 시선을 끌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의 데뷔 앨범을 만들어 볼 차례인데요. 그 전에 혹시 조만간 소속사라든지, 개인사라든지, 뭔가 터질 문제가 있는 분?”
우리 여기서 다 털고 가자는 얼굴로 예찬이 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말로 있다는 놈은 없었다.
“이제 좋으나 싫으나 같은 팀이니까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해결하면서 좋은 앨범 만들어 봅시다.”
예찬의 말에 멤버들이 각자 여러 감회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하던 심상록이 입을 열었다.
“오늘 직원분을 보니 아무래도 NJ 태도가 소극적으로 변한 거 같은데, 무사히 앨범을 낼 수 있을까?”
걱정이 묻어나는 질문에 예찬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회사는 지극히 실리로 움직이니까요. 좋은 곡을 들고 가면 또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꿀걸요.”
거기다 NJ는 자본이 넉넉하므로 예찬과 멤버들이 만든 곡이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푸쉬를 해 줄 수 있었다.
망해 가는 기획사까지 업고 꾸역꾸역 기어 올라가던 예찬에겐 이 정도면 금수저라 해도 좋을 환경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