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1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16화
“어때?”
머리카락이 훌쩍 짧아진 선우이경이 시술을 끝내고 대기석에 앉아 있던 예찬과 범세혁에게 물었다.
“잘 어울려?”
선우이경은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 보란 듯이 노랗게 변한 머리카락을 한 번 휘날렸다.
예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쁘진 않네요.”
“……예찬아, 이럴 땐 좋다고 해 주는 게 좋은 거야.”
각박한 평가에 선우이경이 혀를 찼다.
이번엔 범세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전 단발이 더 좋았어요!”
“세혁이 너는 빈말이라는 걸 좀 익히고.”
머리에 탈색 약을 바른 채 물을 마시러 정수기에 다가온 채은성도 한마디를 던졌다.
“개인적으로 긴 머리 쪽이 더 개성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해요.”
“너네 진짜…….”
이번 앨범 활동만 끝나면 다시 기를 거라며 선우이경이 툴툴대는 사이, 탈색을 끝낸 멤버들이 하나둘 합류했다.
“의탁이 이제 괜찮아?”
“네, 괜찮아요…….”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는 얼굴을 한 정의탁을 마지막으로 단체 탈색이 끝났다.
계속 아픈 걸 참다가 두피가 벗겨질 뻔한 정의탁은 지금까지 케어실에서 급하게 치료를 받고 온 참이었다.
예찬은 슬쩍 까치발을 들어 정의탁의 정수리를 살폈다.
머리숱이 많아서 힐끗 보는 것으론 상태를 알기 어려웠다.
시술을 하며 친해진 디자이너 중 하나가 입구까지 따라 나와 멤버들을 배웅했다.
“내일은 머리 좀 감지 말고 와, 얘들아. 그래야 그나마 덜 아프다.”
“네……!”
눈이 시뻘게질 정도로 고통을 참았던 정의탁은 누구보다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볼세라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멤버들이 차례차례 가게를 빠져나왔다.
“이걸 내일도 해야 하다니…….”
난생처음 탈색을 해 봤다던 강해솔이 중얼거렸다.
예찬은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대신 조용히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두피도 두피지만, 세 번을 연달아 탈색하는 동안 계속 앉아만 있어야 했던 엉덩이도 만만찮게 혹사를 당했다.
생각보다 고된 탈색 과정에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나, 기운이 넘치는 놈도 하나 있었다.
“내일이면 색이 또 변하는 거잖아! 그 전에 사진 많이 찍어 두자!”
신이 난 범세혁은 우휘겸을 붙잡고 방방 뛰었다.
아무래도 범세혁은 신이 아이돌을 하라고 두피마저 강철로 만들어 준 모양이었다.
시술을 한 디자이너도 깜짝 놀랄 정도로 두피가 멀쩡했다.
“연습실로 가는 거죠?”
“네!”
이미 한밤중이었으나 스태프의 말에 입을 모아 대답하는 멤버들에겐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차에 올라탄 예찬은 곧장 안전띠를 하고 눈을 감았다.
연습실에 도착할 때까지 짧게라도 자 둘 생각이었다.
‘오늘 츄유프랑 암유프 확인을 끝내야 해.’
계정엽 작곡가와 무사히 협의가 끝나 츄마프의 타이틀곡인 ‘Choose your prince’와 마지막 경연의 공통곡이었던 ‘I’m your prince’의 레굴루스 버전 수록이 결정되었다.
성격 급한 계정엽은 레굴루스 멤버들에게 맞게 곡을 다듬어 보내자마자 예찬과 강해솔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어떠냐고 문자가 오고 있단 말이지.’
아직 들어 보지 못했다고 하면 천천히 하라는 메시지가 돌아오고 있었으나 본심이 아닌 게 투명했다.
예찬은 약 10분 전에도 도착한 재촉 아닌 재촉 메시지를 떠올리고 감은 눈에 힘을 주었다.
오늘 내로 끝내지 않으면 직접 찾아올지도 몰랐다.
“우리 늦게까지 연습할 거 같은데, 야식 먹고 시작하나?”
연습실과 작업실이 있는 NJ 빌딩 14층에 내리자마자 선우이경이 슬쩍 운을 띄웠다.
시간을 확인하자 이미 자정이 지나 있었다.
오늘은 오후에 마저 머리색을 뺀 다음 2차 재킷 촬영이 잡혀 있었다.
예찬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배가 고프면 물 마셔요.”
“쳇.”
선우이경과 멤버들의 얼굴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으나 그 이상 조르는 사람은 없었다.
채은성은 오히려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 더 버텨서 아침을 맛있게 먹읍시다. 정찬양 선배님도 저녁 6시 이후엔 촬영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 드신댔어요.”
‘그거 내가 한 말 따라 한 거야, 이 바보야.’
예찬은 고개를 내저으며 작업실로 향했다.
계정엽 작곡가가 레굴루스 멤버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보니 수정한 곡엔 딱히 손볼 곳이 없었다.
예찬은 어김없이 한 시간 간격으로 날아온 문자를 확인했다.
– 자니?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나름대로 망설이다 보낸 모양인데 방향성이 영 글렀다.
고작 세 글자에서 느껴지는 질척거림에 예찬은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 아직요. 곡 지금 확인했습니다. 둘 다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작곡가님!
-정말?
계정엽에겐 곧장 답이 돌아왔다.
레굴루스의 일정을 확인한 계정엽은 이제야 발을 뻗고 자겠다며 안도한 기색을 뿜어냈다.
– 정말 감사합니다, 작곡가님^^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메시지에 대충 답장을 보낸 예찬은 자리를 정리했다.
“연습실 가게?”
예찬과 같이 계정엽이 보낸 곡을 확인한 후 바로 앨범에 들어갈 인트로곡의 작업을 시작한 강해솔이 고개를 들었다.
“응, 어디까지 했나 잠깐 보려고.”
알겠다는 듯 강해솔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예찬은 잠시 그대로 서서 강해솔의 노란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머리가 아닌 강해솔은 처음이다 보니 어쩐지 낯설었다.
“뭘 봐?”
시선이 느껴졌는지 강해솔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노란 머리가 신기해서…….”
“별게 다 신기하대. 그렇게 신기하면 거울을 봐.”
싱거운 놈이라며 강해솔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노란 머리 강해솔이 신기한 거거든?’
예찬은 속으로만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작업실을 벗어났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 도착한 연습실에서는 타이틀곡 안무 연습이 한창이었다.
얼마나 집중한 건지 예찬이 문을 연 것도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예찬은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와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은성아, 박자 또 늦는다.”
“죄송합니다.”
자연스럽게 안무 연습의 리더 역할을 맡은 선우이경의 지적에 채은성이 재깍 고개를 숙였다.
“의탁이도 다리 각도가 너무 내려갔어. 후반이니 힘이 빠지는 건 알겠는데 좀 더 힘내자.”
“네.”
지금은 촬영 팀이 없음에도 다들 진지한 모습이었다.
이쯤 되면 이 기특한 놈들과 달리 잠깐만 눈을 돌려도 바닥에 늘어지던 리스피릿 멤버들이 떠오를 타이밍이었다.
‘그래, 그 자식들은 진짜…….’
– 예찬이 형, 이 동작 한 번 다시 봐주면 안 돼?
– 김대훈 말고 나 먼저 봐줘. 쟤는 봐도 답이 없어.
– 얘들아, 밖 좀 봐라. 해 떴다.
– 우리 오늘도 연습실에서 밤새운 거야? 이상하다? 뿌듯한데 눈물이 나네?
그러나 어째서인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한 리스피릿 멤버들이 아니었다.
“…….”
“자, 그럼 다시 처음부터…… 아, 깜짝이야!”
예찬의 상념을 깬 것은 놀란 선우이경의 목소리였다.
정신을 차리고 레굴루스 멤버들 쪽을 바라보자 노란 머리통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예찬이 언제 왔어? 전혀 몰랐네.”
“계정엽 작곡가님이랑은 연락했어?”
쏟아지는 질문에 과거의 기억을 털어 낸 예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에 왔어요. 대놓고 문 열었는데 다들 집중하느라 전혀 모르던데요?”
아주 대견하다며 예찬이 손뼉을 쳤다.
멤버들이 저마다 쑥스러워하거나 으쓱하는 걸 지켜본 예찬은 이어 심상록의 질문에 답했다.
“츄유프랑 암유프는 계정엽 작곡가님이 보내 준 곡 그대로 가기로 했어요. 늦어도 다음 주까진 녹음하자고 하시던데요.”
“작곡가님이 오신대?”
“네, 먼저 츄마프 때 했던 두 곡부터 녹음하고 며칠 내로 나머지 곡들도 녹음하려고요.”
빠듯한 일정이었으나 멤버들은 앓는 소리를 내는 대신 기대감으로 눈을 빛냈다.
“이달 말에 앨범이 나오다니, 실감이 안 난다.”
“전 나오자마자 바로 세 장 살 겁니다. 소장용이랑 감상용이랑 포교용으로.”
“소장용이랑 감상용은 알겠는데 포교용은 뭐야?”
멤버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던 예찬의 귀로 결이 비슷한 소리가 점차 섞여 들어왔다.
– 우리 정말 앨범 나오는 거야?
– 누가 나 한 대만 때려 줘. 아무래도 꿈인 거 같아.
– 마루야, 이 꽉 물어.
예찬의 입가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지금까지 가만히 옆에 서 있던 우휘겸이 허리를 숙이고 조용히 말을 걸었다.
“안색이 안 좋은데, 괜찮아?”
“예찬이 어디 아파?”
“진짜 얼굴이 파란데?”
작은 목소리였으나 거리가 워낙 가깝다 보니 들린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멤버들의 표정이 변했다.
자신을 걱정하는 멤버들과 눈을 마주친 예찬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피로 누적이에요. 좀 피곤하긴 한데, 데뷔까지 겨우 3주 좀 남았잖아요? 다들 힘들겠지만 남은 기간 힘내 봅시다.”
다들 피로가 쌓인 것은 사실이었기에 이 이상 예찬을 추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예찬이는 다시 작업실 갈 거지? 이왕 온 김에 한번 맞춰 보고 갈래?”
“형, 예찬이 형 얼굴이 이렇게 죽어 있는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연습 중독인 선우이경의 제안에 정의탁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핀잔을 주었다.
그렇게 말하는 정의탁도 얼굴색이 영 밝진 않았다.
예찬은 고개를 돌려 배새벽의 얼굴도 확인했다.
정의탁보단 좀 낫지만, 이쪽도 통통한 젖살에까지 피로가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이 핏덩이들 데리고 좀 심한가.’
청소년들을 데리고 몹쓸 짓을 하는 기분이 조금 들었지만 이미 주사위를 던진 이상 안타까워할 시간도 사치였다.
예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도 비울 겸 같이 한번 춰 보죠. 안무 바뀐 건 없죠?”
“그래! 몸을 움직여야 머리도 맑아진다니까?”
신이 난 선우이경은 예찬을 끌고 연습실 중앙으로 향했다.
“왜 배려를 해 줘도 안 받아먹어요?”
정의탁이 투덜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어느새 스피커 옆으로 이동한 우휘겸은 멤버들이 자리를 잡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내 연습실 안에는 우휘겸이 녹음한 가이드곡과 멤버들의 발소리, 박자를 맞추는 선우이경의 목소리만이 남았다.
* * *
레굴루스의 데뷔 앨범 타임 테이블이 공개된 것은 다음날이었다.
공개된 타임 테이블엔 데뷔 앨범 발매일부터 콘셉트 포토와 뮤직비디오 티저, 앨범의 트랙 리스트 공개일, 하이라이트 안무 선공개일, 그리고 데뷔 리얼리티 첫 방영일 등이 담겨 있었다.
준비된 게 거의 없는 상황에서 너무 급하게 타임 테이블을 띄운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예찬은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렇게 질러 놨으니 어떻게든 일정 맞춰서 데뷔할 것이고.’
익명 커뮤니티를 지켜보던 예찬은 눈에 띄는 제목을 클릭했다.
[리스피릿 컴백하냐?]어제 회사 앞에서 찍힌 사진 확대해 보니까 애들 머리가 무지개던데?
얘네 1월에 나오지 않았냐? 원래 컴백 텀 이렇게 짧음?
‘그럴 리가.’
적어도 예찬이 있던 시절엔 올해 이 시기에 컴백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예찬은 코웃음을 쳤다.
갑작스럽게 포토그래퍼를 섭외하기에 뭘 하는 걸까 생각해 봤는데, 예상대로 컴백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정찬양과 흑백을 가릴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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