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1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17화
리스피릿이 깜짝 컴백을 예고한 것은 그날 오후였다.
개인 촬영을 끝낸 예찬은 단체 촬영을 위해 메이크업을 손보던 중 리스피릿의 컴백 기사를 확인했다.
“우리랑 사흘 차이네.”
예찬의 어깨너머로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한 선우이경이 어쩐지 알 만하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찬은 선우이경의 얼굴을 한번 확인하고 다시 기사로 눈을 돌렸다.
‘타임 테이블이랑 기사 본문에 오타까지…… 이 정도면 부랴부랴 기사를 띄웠다고 광고하는 수준 아닌가?’
누가 어느 시점에 레굴루스의 일정을 정찬양에게 흘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레굴루스가 데뷔 준비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 같이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레굴루스가 이렇게 빨리 데뷔 일정을 공개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었고.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컴백 떡밥을 몇 개 흘린 다음 일정을 공개하고 싶었을 텐데, 레굴루스가 타임 테이블을 올렸다는 말에 급하게 공개한 티가 팍팍 났다.
한참 지난 후에 리스피릿의 컴백 일을 공개하면 일부러 시기를 겹치게 했다고 의심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우, 후배 죽이기 무섭다~”
정찬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촬영을 맡은 포토그래퍼 유지예가 재밌어 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지나갔다.
‘정말 우연히 컴백 시기가 겹쳐도 견제네 뭐네 얘기가 나오는데, 고의로 일정을 겹쳤는데 아무 말이 안 나올 리가.’
잘나갈 거 같은 신인의 앞길에 재를 뿌리는 1군 아이돌이라니.
호사가들이 너무나 좋아할 만한 소재였다.
아직 다른 멤버들의 준비가 끝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예찬은 SNS에 접속했다.
– 5월에 스페셜 앨범…… 뭐 나올지 짐작도 안 가는데 일단 감사히 받겠읍니다
– 우리 애들 스포 장인인데 이번엔 왜 암 것도 없냐 불안하게;;;;
– 갑작스럽긴 한데 울 애들 앨범이랑 무대 보고 실망한 적이 없어서 엄청 기대됨!
– 타임 태이블 오타 뭐임 진짜 10분 전에 컴백 결정함?
리스피릿의 팬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컴백 일정에 당황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저 반응을 예시로 들며 리스피릿이 후배 데뷔를 망치러 헐레벌떡 기어 나왔다는 말이 돌 미래가 빤히 보였다.
‘팬들도 당황한 급한 컴백, 진짜 이유는 선배의 텃세?! 뭐 이런 식으로 말이지.’
숨만 쉬어도 처맞는 게 1군 아이돌의 숙명인데, 그럴듯한 명분까지 있으니 얼마나 신이 나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가 나겠는가?
음악 방송에서 리스피릿과 레굴루스가 1위 후보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 그런 반응은 더더욱 가속될 것이었다.
‘레굴루스가 박수 셔틀만 하면 성격 파탄자라고 매도하고, 혹시 기적적으로 레굴루스가 이기는 날엔 리스피릿 퇴물 다 됐다 소리가 나오는…….’
분명 쌤통이라며 비웃어 주려 했는데 막상 상상을 구체화하니 속이 안 좋았다.
예찬은 머리를 저어 잡생각을 날렸다.
“어, 예찬이! 그렇게 세게 머리 흔들면 안 돼! 아이고, 벌써 망가졌네.”
“앗, 죄송합니다.”
빠르게 다가온 헤어디자이너에게 머리를 맡긴 예찬은 차분히 지금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5월 마지막 주 월요일로 데뷔 일을 정한 시점부터, 예찬은 정찬양이 초를 치기 위해 겹쳐서 컴백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그 경우 리스피릿의 컴백 일은 레굴루스의 데뷔 일인 월요일, 다음 날인 화요일, 그 전날인 일요일, 아니면 사흘 전인 금요일, 넷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했다.
예찬은 그중에서도 금요일의 가능성을 가장 크게 쳤다.
‘아예 똑같은 날이면 의도가 너무 투명해 보이고, 일요일은 주말이라 화제성 면에서 손해를 보고, 화요일은 이미 레굴루스가 데뷔한 후니 차트 줄 세우기를 방해하기 어렵지.’
실제로 예찬의 예상대로 리스피릿의 컴백은 금요일로 결정되었다.
‘초동 손해를 감수하고 월요일 데뷔를 고른 보람이 있네.’
월요일에 데뷔하는 레굴루스의 경우 그다음 주 일요일까지가 초동 집계 기간이었는데, 온라인에서 판매된 앨범의 경우 택배 송장이 찍혀야만 판매량에 집계가 되었다.
때문에 레굴루스처럼 택배 발송이 되지 않는 주말이 집계 마지막 날일 경우 약간의 손해가 생겼다.
‘그렇지만 보통 앨범 판매량은 처음 사흘 치가 제일 높으니까, 이 정도 모험은 해 볼 만하지.’
예찬은 자신이 올해 마지막 날까지 달성해야 하는 퀘스트들을 떠올렸다.
메인 퀘스트인 신인상 다섯 번 수상이야 지금 화제성을 유지만 해도 연말까지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었다.
‘올해 유망주라 부를 만한 남돌이 데뷔하지 않는 것도 이미 알고 있으니 별로 걱정되지 않고.’
오히려 까다로운 것은 연계 퀘스트들이었다.
예찬은 퀘스트 창을 열었다.
연계 퀘스트
― 음원 사이트에 일간 순위 1위로 진입하세요.
(진행 상태 0/15, 남은 기간 240일)
연계 퀘스트
―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수상하세요.
(진행 상태 0/15, 남은 기간 240일)
연계 퀘스트
― 음반 총판매량을 목표치만큼 달성하세요.
(진행 상태 0/3,000,000, 남은 기간 240일)
연계 퀘스트
― 음반 초동 판매량을 목표치만큼 달성하세요.
(진행 상태 0/1,500,000, 남은 기간 240일)
예찬의 계획대로 연말까지 데뷔를 포함해 세 번 활동한다고 생각하면, 단순히 계산해 한 번의 활동당 목표치의 3분의 1을 채우면 됐다.
그러나 보통 아이돌 활동이란 처음보다 두 번째, 두 번째보다 세 번째 활동에서 기록이 더 좋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예찬은 이번 활동은 그보다 좀 더 목표치를 낮게 잡고 있었다.
‘앨범 총판이야 연말까지 계속 늘어날 테니 지금은 제외하고. 초동 30만 장, 일간 1위 진입 세 번, 음방 1위 세 번이면 충분해.’
대중들이 많이 사용하는 음원 사이트 레몬에서 음원 1위에 진입하는 것은 리스피릿도 어려웠다.
그러나 흔히 ‘그사세’라 불리는 소형 사이트에선 리스피릿도, 레굴루스도 충분히 가능했다.
음원 사이트의 순위는 그 음원으로 사이트에 얼마 만큼 돈이 들어왔는지로 결정되었다.
‘1회 스밍과 1회 다운로드 금액 차이가 크다 보니 발매 직후에 반짝 1위 찍는 건 흔한 일이지.’
리스피릿이 버티고 있는 이상 1위 ‘유지’는 어렵지만 ‘진입’은 음원 다운로드 빨로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었다.
음방 1위도 희망이 생겼다.
대부분의 음악 방송에선 같은 곡으로 세 번 1위를 차지하면 그다음부터는 차트에서 제외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었다.
리스피릿이 3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면 그다음 주엔 레굴루스에게 기회가 돌아온다는 뜻이었다.
‘커뮤니티에선 리스피릿한테 완패하고 찌꺼기를 주워 먹는다고 조롱하겠지만, 열다섯 번을 채워야 하는데 그딴 말이 뭐가 중요해.’
무엇보다 레굴루스는 후발 주자였다.
쌓아 놓은 것이 무너질까 몸 사릴 필요 없고, 도전이 실패하여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 * *
“리스피릿 선배님들과 컴백 일정과 데뷔 일정이 겹치다니…….”
촬영이 전부 끝나고 나서야 기사를 확인한 채은성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에서도 내내 쓸쓸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더니 지금까지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번 컴백도 츄마프 한다고 항상 다 식은 떡밥만 주워 먹었는데…….”
“그래도 같이 활동하면 음방 같은 데서 얼굴 뵐 일도 있어서 좋지 않을까?”
심상록이 그런 채은성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채은성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뭔가 반칙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돈을 쓰지 않고 리스피릿 선배들을 뵙다뇨.”
“으응? 은성아,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어.”
예찬은 듣지 못한 척 고개를 돌렸다.
채은성과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다른 멤버들도 다소 풀이 죽은 티가 났다.
‘당연한 일이지.’
1군 아이돌과 일정이 겹쳐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나 때문에 괜히 이렇게 된 거 같아 미안하군. ……그래도 나 때문에 츄마프가 망하지 않은 거니 쌤쌤으로 쳐도 되나? 음?’
이상한 고민을 하며 이번엔 레굴루스의 데뷔 반응을 찾아보던 예찬의 눈에 한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NJ 난 모른 척할 준비됐다]제목을 보면 어떤 내용일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데 이 게시물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예찬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제목을 클릭했다.
이제 데뷔하면 더 이상 기회 없음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모른 척할 테니까 ㅈㅂ 애들 이름 바꾸자…
가수는 이름 따라간다는데 레굴루스……
레굴…. 루스….. 영원히 데굴데굴 구를 거 같음
정신 승리도 해 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 에바다
NJ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흐린 눈 ㅈㄴ 가능이니까 새끈빠끈한 이름으로 바꿔 빨리
‘……이 정도로 별로라고?’
팀명이 정해지고 촌스럽다는 반응이 종종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 아이돌 팀명이란 대개 초반에 부정적인 반응을 깔고 가는 경우가 많기에 그러려니 했다.
생각보다 더 거세게 팀명을 부정하는 게시글에 예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분의 개인적인 의견 아니야? 음, 맞아. 가끔 과격한 팬이 있지.’
예찬은 재빠르게 댓글을 훑었다.
– ㅅㅂ 나만 이 생각한 거 아니었어!!!!
– 일단 굴자가 너무 촌스러워 굴자 들어가고 살아남을 수 있음?
└ 보리‘굴’비
– 누가 작명소 좀 추천해 줘라……
– 데굴데굴레굴데굴
– NJ 지금이야! 레굴루스는 너굴맨이 처리했으니 안심하라구!
– 레굴루스로 묶인 애들은 무슨 죄야ㅠㅠㅠㅠ
– 이름 정한 놈 시말서 쓰는 중 아님?
└ 시말서는 무슨 자진 퇴사하라 그래
‘…….’
예찬의 얼굴이 더욱더 심각해졌다.
아직 팀명이 데뷔한 멤버들이 적어 낸 이름 중 정해졌다는 것을 모르는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아이고, 우리 팀명 반응 보고 있었구나.”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선우이경이 혀를 차다가 슬쩍 거실에 있는 채은성의 눈치를 살폈다.
“이름을 낸 은성이한텐 미안하지만 좀 촌스럽긴 하지?”
‘뭐?’
예찬이 낸 이름이었다.
“작은 왕이라든지, 사자자리의 심장이라든지 뜻은 좋지만 말이야.”
어느새 다가온 심상록도 채은성을 의식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내가 지은 거라고 말한 적…… 이 없었나……?’
아마 데뷔 일정을 의논할 당시 열렬히 레굴루스의 의미를 설파한 채은성을 보고, 다들 암암리에 채은성이 이름 발안자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허기를 잊어 보겠다며 얼음을 입에서 굴리고 있던 정의탁도 고개를 내저었다.
“정해진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은성이 형은 엄청나게 신난 것 같지만요.”
따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옆에 앉아 있는 배새벽이나 강해솔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얼굴들이었다.
“그래, 우리가 은성이가 낸 이름을 세상에서 제일 빛나는 이름으로 만들어주자고!”
선우이경이 장난스레 주먹을 쥐어 보였다.
“저요?”
이쪽으로 다가오던 채은성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상 채은성에게 뒤집어씌운 채 듣고만 있을 순 없었다.
“……나야.”
“네?”
“응?”
예찬은 떨어지지 않으려는 입술을 움직였다.
멤버들의 시선이 예찬에게 모였다.
“레굴루스 써 낸 거, 나라고요.”
예찬의 얼굴이 전에 없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