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1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18화
“어…… 그러니까 레굴루스를 추천한 게 은성이가 아니라 예찬이라고?”
선우이경이 얼떨떨한 얼굴로 채은성과 예찬을 번갈아 보았다.
예찬은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으나, 귓가가 뜨끈한 걸 보니 큰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본인이 어떤 오해를 받고 있었는지 깨달은 채은성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전 팀명이 정해진 후에 레굴루스를 조사했을 뿐이에요! 그 후에 뜻을 보고 만족하긴 했지만, 제가 낸 이름은 좀 더 엘레강스하고 고져스한……!”
“난 레굴루스 마음에 들어! 뭔가 잘 굴러갈 거 같잖아!”
채은성의 말허리를 끊어 먹은 범세혁이 예찬을 향해 해맑은 미소를 보냈다.
우휘겸도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까지 넷이나 괜찮다고 생각하면 된 거 아니야? 거의 과반수잖아.’
예찬이 다소 뻔뻔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어깨 위로 선우이경의 손이 얹어졌다.
“예찬아, 네가 지었다고 생각하니 진짜 괜찮은 거 같다.”
“……뭐예요. 이제 와서 수습하려고 해도 소용없거든요?”
예찬이 뾰족한 목소리로 투덜거렸으나 선우이경의 얼굴에 핀 미소가 더 진해질 뿐이었다.
“아니, 진심이야. 예찬이 너도 못하는 게 있었다니, 얼마나 신선해?”
‘이 자식이?’
“이야, 우리 예찬이도 휴먼이었구나! 인간미 있다, 하예찬!”
완전히 자기 페이스를 찾은 선우이경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작명 센스가 없어서 곡에 제목을 안 붙이고 숫자로 불렀던 건가?”
한쪽에서 강해솔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예찬이 이번엔 강해솔 쪽을 쏘아봤다.
“그거 아니거든? 숫자로 써 두는 게 편해서거든?”
“어, 그래…….”
강해솔의 대답에 떨떠름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딜 어떻게 봐도 예찬의 말을 전혀 믿지 않고 있었다.
심상록이 어설픈 위로를 건넸다.
“예찬아, 그래도 제작진이 네가 낸 이름을 선택한 거잖아. 분명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게 형은 아니지만요?”
“응? 하하하…….”
“어휴, 상록이 형 괴롭히지 좀 마요. 이름 그까짓 거 좀 촌스러우면 어때요! 우리가 안 촌스러우면 되지!”
정의탁이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눈을 돌린 심상록의 편을 들었다.
예찬은 허리에 손을 얹고 훈계하는 정의탁에게 물었다.
“결국 촌스럽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지금?”
“흠, 흠…….”
이어 가만히 있던 배새벽까지 말을 얹었다.
“유명해지면 뭘 해도 인정받는다잖아요. 레굴루스라고 하면 멋지다는 이미지가 떠오를 때까지 열심히 해 봐요.”
이젠 반박할 기운도 없었다.
예찬은 비척비척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간미 넘치는 예찬이! 잘 자~!”
뒤에서 선우이경이 꺄르륵 넘어가는 소리를 내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그새 익숙해진 드레스 룸 복도에 이불을 펴고 눕자 우휘겸이 살금살금 쫓아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예찬은 눈을 꾹 감았다.
“예찬아, 자?”
“…….”
“자나 보네…… 이름,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우휘겸의 속삭임에 어이가 없어졌다.
‘벌써 잠들겠냐?!’
그 짧은 사이에 예찬이 잠들었다고 완전히 믿은 우휘겸은 구겨진 이불 끝을 정리해 주고 자리를 떠났다.
문득 이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름의 가치를 만드는 건 그 알맹이인데 지금 촌스럽다는 말 좀 듣는다고 뭐 대수냐.’
예찬이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었다.
앞으로 승승장구하며 이름값을 높이면 절로 들어갈 이야기였다.
* * *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이름에 대한 건 훌훌 털어 버리기로 했었는데.
“아니, 레굴루스의 어디가 어떻다는 거지? 안 그래요, 예찬 씨?”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영상 편집에 열을 올리느라 며칠 만에 연습실에 나온 신 PD가 다시 같은 주제를 끄집어냈다.
신 PD는 숙소에 있던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름도 뜻도 완벽하기만 한데! 안 그래요, 예찬 씨?”
‘나한테 물어보지 마라.’
“내가 레굴루스로 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었거든요. 세상이 알아주기에 우리 센스가 너무 앞서갔나 봐요.”
자연스레 예찬과 자신을 ‘우리’로 묶은 신 PD가 고개를 저었다.
주변 스태프들이 예찬과 신 PD 쪽을 보며 ‘센스 없는 무언가’를 대면한 것처럼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내 센스가 신 PD와 동급이라니……!’
“아무튼 촬영본 확인해 보니 그룹명 얘기하는 게 꽤 재밌더라고요. 인터뷰 조금만 추가해서 리얼리티 선공개 영상으로 써도 좋을 거 같아요.”
이미 머릿속에서 편집까지 다 끝낸 신 PD가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예찬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예찬 씨부터!”
예찬의 등을 떠민 제작진은 이미 인터뷰실처럼 꾸며 둔 빈방으로 예찬을 데려갔다.
예찬이 의자에 앉자마자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룹명의 창시자로서 요즘 ‘레굴루스’의 이름이 화제가 되는 것은 알고 계신가요?”
“네, 그렇죠.”
예찬은 최대한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정적인 반응이 없지 않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없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레굴루스란 이름을 들었을 때 절로 긍정적인 감정이 떠오를 수 있도록 앞으로 저희가 힘내야죠.”
예찬은 있는 힘껏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작가와 예찬의 문답을 듣고 있던 신 PD가 부루퉁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예찬 씨, 너무 정석적인 대답만 하는 거 아니에요? 츄마프 때의 광기는 어디로 간 거야?”
이래서야 애국가 시청률을 부러워할 밍밍한 프로그램이 되어 버릴 거라고 투덜대던 PD가 누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오래 못 갈 줄은 알았다.’
사람 본성이 쉽게 변하는 게 아니었다.
천사표 예능은 무슨.
예찬을 포함해 인터뷰 장소에 자리한 제작진들이 비슷한 눈빛으로 신 PD를 흘겨보았다.
“분명 멤버들의 노력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은 진솔한 리얼리티를 만들겠다 다짐했는데…….”
신 PD는 자신만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질문을 하던 작가가 PD에게서 눈을 돌려 예찬을 바라보았다.
“그럼 인터뷰 계속할까요?”
“네.”
* * *
차례차례 짧은 인터뷰를 마친 레굴루스 멤버들은 다시 요 며칠간 그래 온 것처럼 연습을 시작했다.
그새 멘탈을 회복한 신 PD는 타이틀곡과 서브곡의 안무 연습을 보는 내내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와, 이게 이렇게 더 좋아질 수가 있네.”
곡 녹음만 하면 바로 안무 연습 영상을 찍을 수 있겠다며 PD가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녹음은 다음 주랬죠?”
“네, 계정엽 작곡가님과 먼저 츄마프 곡부터 녹음하고 그 후에 타이틀곡 녹음 들어가려고요.”
“일정이 빡빡하긴 하다.”
잠시 스케줄을 확인한 PD가 고개를 끄덕이고 연습실 벽에 기대 조용히 앉아 있는 배새벽에게 물었다.
“새벽 씨 깁스도 다음 주에 푼다고 했나요?”
“네.”
“원래 삼 주라고 하지 않았었나? 훨씬 지나지 않았어요?”
“다음 주 화요일이 딱 사 주째에요.”
배새벽이 날짜가 헷갈리는지 손가락을 접어 가며 계산하고 있자 답답했는지 정의탁이 대신 대답했다.
“그렇게밖에 안 됐어? 뭔가 많은 일이 있던 거 같은데 진짜 순식간이었구나…….”
스태프들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정말 배새벽이 다친 츄마프 마지막 사인회부터 지금까지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예찬은 조금 불안한 눈으로 배새벽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츄마프 마지막 경연 이후로 무리가 될 만한 동작은 시키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잠도 제대로 못 자는 하드한 일정 속에 저 손목이 제대로 나았을지 의문이었다.
‘이번엔 병원에 같이 가 봐야겠어.’
지금까진 배새벽 혼자 상태를 보러 병원에 왔다 갔다 해 왔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제작진에게 부상 사실을 숨기려 했던 걸 실시간으로 봤기 때문에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연습 장면을 만족스럽게 카메라에 담은 제작진이 떠나고 난 후에도 멤버들의 연습은 끝나지 않았다.
“10분 휴식! 다들 고생했어! 물 잘 챙겨 마시고!”
땀이 잘 나지 않는 멤버들까지 푹 젖을 정도가 된 후에야 선우이경이 연습을 멈췄다.
안무 연습은 무조건 선우이경이 정한 시간에 시작하고 끝을 냈다.
‘제일 독한 놈한테 맡겨야 꽉꽉 쥐어짜 주지.’
독하게 연습하는 데 자신 있는 예찬도 숨 쉬는 게 버거울 정도였으나, 불평을 내뱉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물이나 좀 더 마실까.’
가까이에 있던 물병을 다 비우고 새 물병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순간이었다.
예찬의 눈에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채은성이 들어왔다.
예찬은 성큼성큼 걸어 채은성의 뒤에 섰다.
연습으로 혹사당한 손을 가까스로 움직여 채은성이 클릭한 것은 리스피릿의 스타 라이브였다.
‘이 귀한 휴식 시간에 이걸 보다니…… 얘도 다른 의미로 독하다.’
“어! 스타 라이브다!”
마침 뒤를 지나가고 있던 범세혁의 반가운 목소리에 다른 멤버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누구 라이브야? 리스피릿 선배님?”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게 채은성인 걸 확인한 심상록이 물었다.
채은성이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우리도 스타 라이브 하고 싶다! 언제쯤 할 수 있을까?”
“데뷔를 해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범세혁과 정의탁이 떠드는 걸 들으며 예찬은 채은성의 옆에 앉았다.
실시간 라이브였는지 한창 얘기 중인 리스피릿 멤버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때깔 좋은 거 봐라.’
리스피릿이 번 돈으로 발라서 꾸민 라이브 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회사 내에 라이브 방송을 하기 좋게 만들어 둔 저 방 또한 예찬이 고안한 것이었다.
[이번 앨범 스포요? 안 돼요! 혼나요!]댓글을 읽던 김대훈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또래보다 앳되고 무해한 저 얼굴에 혹한 이성이 얼마던가.
예찬은 레굴루스 멤버들이 곁에 있다는 걸 되새기며 너무 정색하지 않기 위해 표정을 다잡았다.
[진짜 이번엔 스포 없이 가자고 우리끼리 얼마나 약속했는데요! 그쵸, 선이 형?]김대훈의 말에 최선이 팔짱을 끼고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그럼. 이제 스포피릿이란 오명을 벗을 때가 왔지.]예찬은 저 우스꽝스러운 콩트를 시킨 게 정찬양이라는 데 얼마 되지 않는 전 재산을 걸 자신이 있었다.
‘스포도 없이 급조한 앨범 아니냐는 의혹을 벗고 싶은 거 엄청 티 난다고.’
물론 팬들은 저놈들의 말을 고스란히 믿어 주겠지만 말이다.
예찬이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리바디에게 사랑받을 만한 놈들이 아닌데…….’
[대신 오늘은 정식 스포일러를 준비해 왔습니다!]화면 밖으로 사라졌던 박마루가 커다란 폼보드를 들고 돌아왔다.
[짠!]폼보드를 돌리자 리스피릿의 이번 앨범 트랙 리스트가 쭉 적혀 있었다.
[자, 여러분! 이게 저희 이번 앨범의 트랙 리스트입니다!] [제목만 봐도 벌써 멋진데요!]화면 너머에서 리스피릿 놈들이 꺅꺅 호들갑을 떠는 것을 바라보며 예찬은 생각했다.
‘인재가 많아서 그런가 준비가 빠르네.’
예찬은 차분히 트랙 리스트에 있는 곡 이름을 훑었다.
기억에 있는 제목은 하나도 없었다.
‘제목만 바꾼 걸지, 아예 다른 곡일지…….’
예찬의 눈길이 마침 화면에 원샷으로 잡힌 정찬양에게 박혔다.
[하루라도 빨리 리바디 여러분과 만나고 싶어요.]화면 너머의 정찬양이 징글맞게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