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1화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첫 합숙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연습생들은 이른 새벽부터 평소와 달리 분주하게 움직였다.
규모 있는 소속사의 연습생들은 소속사에서 보내 준 스태프에게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예찬을 비롯한 개인 연습생들과 소규모 회사의 연습생들은 N-net에 소속된 스태프들에게 얼굴을 맡겼다.
“와, 예찬이 진짜 잘 어울린다.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인데, 네가 제일 왕자님 같다, 얘.”
“정말요? 감사합니다.”
스타일리스트의 감탄에 예찬은 기분 좋게 웃었다. 빈말을 하지 않는 성격인 걸 알고 있어서 더 반가운 칭찬이었다.
어디 함부로 앉기 무서울 정도로 새하얀 제복을 입고 있으니 보기에는 참 근사했다.
‘편함 대신 극도로 멋을 추구했다는 거지.’
합숙 내내 교복처럼 연습복을 입고 땀으로 꼬질꼬질하던 연습생들이 화려한 제복에 망토까지 갖춰 입으니 이제야 좀 아이돌에 가까워 보였다.
준비를 마친 연습생들이 세트장에 전부 모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제곡 촬영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S등급 연습생들이 중앙에 있는 이동식 무대에 올라갔다.
전날 연습실에 찾아온 트레이너들이 미리 각자의 자리를 지정해 준 터라 예찬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위치를 찾아 대열을 맞추어 섰다.
센터는 심상록이었다.
예찬은 잘 손질된 심상록의 뒤통수를 보며 가볍게 손목을 돌렸다.
예찬의 자리는 심상록의 오른쪽 뒤로 카메라가 센터인 심상록을 잡고 있을 때도 얼굴이 비치곤 했다.
사실상 심상록의 왼쪽 뒤에 위치한 범세혁과 더불어 센터 다음으로 좋은 위치였다.
‘이렇게까지 높게 평가받았다고?’
주제곡 촬영 테스트는 분명 춤과 보컬 두 가지를 다 확인했다.
아마 두 가지 능력치의 총합을 따졌을 때 현재 예찬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범세혁 정도일 것이었다.
다만 주제곡 무대 촬영은 개인 보컬 파트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원이 함께 부르기 때문에 노래보다 춤 실력이 위치 선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춤 실력은 이번에 S등급으로 올라온 선우이경이나 강해솔이 예찬보다 한 수 위일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위치는 각자 범세혁과 예찬보다 반걸음 뒤였다.
심상록과 마찬가지로 예찬도 실력 외의 어떤 것으로 더 높게 평가 받았다는 뜻이었다.
‘심사진이 등급과 위치를 정했다지만 제작진의 입김이 하나도 안 들어갔을 린 없지. 지금까진 하예찬 캐릭터가 합격점이란 건가.’
길었던 3박 4일의 합숙이 끝나 가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것인지 주제곡의 반주에 맞춰 춤을 추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같은 춤을 네 시간 넘게 춘 이후엔 깨끗하게 날아갔지만.
“잠깐 무대 다시 세팅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작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위로 올라왔던 무대 바닥이 다시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4분짜리 춤을…… 이렇게 오래 찍을 수도 있구나…….”
앞에서 반쯤 넋이 나간 심상록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이런 일은 거의 없단다, 심상록아. 뭐랄까…… PD가 제정신이 아닌 거지, 이거는.’
지친 것은 예찬도 마찬가지였다.
뮤직비디오도 아니고 그냥 무대를 찍는 것이니 음악 방송 사전 녹화 정도라 생각하고 임했는데 무척이나 안일한 착각이었다.
미친 PD 놈이 4분짜리 무대 영상을 원 테이크로 찍겠다고 한 순간부터 싸하긴 했다.
우선 참여하는 연습생 수가 99명이니 한 사람이 한 번씩만 돌아가면서 실수를 해도 99번 다시 찍어야 했다.
게다가 움직이는 무대를 사용하고 있어서 한 번 흐름이 끊기면 다시 시작하기까지 세팅 시간도 오래 걸렸다.
뜨거운 조명 아래서 이 짓을 하고 있으니 몇 번만 다시 찍어도 흐르는 땀으로 가장 빛나야 할 연습생들의 몰골이 추잡해졌다.
‘방송에는 길게 찍었다고 나오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개고생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
예찬은 다가온 메이크업 담당 스태프에게 얼굴을 맡기며 눈을 감았다.
분명 시작 당시에는 촬영만 끝나면 귀가라고 다들 들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세트장 분위기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다음에 또 실수하는 사람이 나오면 다른 연습생들 눈총에 등쌀이 꽤 따가울 것 같았다.
특히 S등급의 몇 연습생들은 말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한참 전부터 누가 실수만 했다고 하면 아주 찢어 죽일 기세로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 대고 있었다.
츄마프 99의 주제곡 ‘Choose your prince’는 S등급 연습생들부터 퍼포먼스를 시작해 각각 움직이는 무대에 올라가 있는 A, B, C, D 등급의 연습생들이 차례대로 합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 초반 1분은 S등급의 연습생들만 나오는 파트였는데 덕분에 예찬을 포함한 S등급 연습생들은 심신이 다 낡아 버린 지 오래였다.
‘이건 좀 안 좋은데.’
정작 S등급 연습생들에게선 실수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 더 상황이 안 좋았다.
괜히 시작부터 등급끼리 갈라져서 파벌 싸움이라도 하는 모양새가 나오면 좋지 않았다.
‘S니 D니 해 봐야 PD나 제작진들 눈엔 모두 데뷔도 못 한 햇병아리들인데…… 주제에 벌써 텃세나 부리는 성격 더러운 놈이라고 생각될 뿐이지.’
무대 아래로 내려가서 물병을 두 개 받아 온 예찬은 강해솔의 손에 하나를 쥐여 주고 잠시 주변을 살폈다.
S등급 다음으로 여러 번 춤을 춘 A등급에서는 센터를 맡은 남지유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는지 양팔을 휘둘러 가며 무언가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B등급과 C등급은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 다들 따로 노는 분위기였고 대망의 D등급은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면 날아갈 것 같이 초라한 비중인데 자꾸 실수를 해 대니 다른 연습생들의 눈치도 보이고 PD가 분량을 더 덜어 낼까 봐 겁도 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예찬의 기억에서 D등급의 비중은 지금보다 형편없었다.
“너무 그렇게 처지지 말고 우리 힘내서 가여! 네?”
기태랑이 활기차게 독려하고 있었지만 이미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분위기는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30분만 쉬고 다시 할게요!”
제작진 측도 무언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싶더니 무대 장치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었다.
예찬은 엄지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미래에서 예찬이 본 주제곡 무대는 원 테이크 영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찬은 PD가 몇 번 찍다가 이건 내 욕심이구나, 깨달음을 얻고 포기할 것으로 생각해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네 시간이 훌쩍 넘어갔는데 PD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대체 리셋 전엔 몇 시간을 찍다가 때려치운 거지? 이 미친놈이 미자들 데리고 밤새운 거 아니야? 내일? 내일 되면 포기하나?’
이대로 지켜만 보다간 언제 빌어먹을 합숙이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답답한 목깃을 느슨하게 만든 예찬은 반걸음 앞에서 목깃을 팔랑거리며 땀을 식히고 있는 심상록의 팔을 톡톡 두들겼다.
“형, 저랑 좋은 일 하실래요?”
“음? 그럴까?”
‘뭔지는 좀 물어보고 대답해라, 이 자식아.’
안 그렇게 생겨서 은근히 허술한 심상록은 다짜고짜 오케이를 외쳤다.
예찬은 곧바로 다른 S등급 연습생들에게도 같은 권유를 했다.
“무슨 좋은 일?”
“집에 빨리 가는 좋은 일이요.”
“그건 꼭 하고 싶네.”
“우휘겸 너는?”
“할게.”
심상록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케이를 하는 사람은 룸메이트들 정도고 대부분은 무슨 일인지 경계하는 태도로 나왔지만, 예찬이 조금 설명을 곁들이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히 여덟 명의 동의를 구한 예찬은 씨익 웃었다.
‘일단 주변에서 다 같이 뭔가 하는 분위기가 되면 쉽게 따라오니까, 비협조적일 것 같은 놈들 순서를 뒤로 뺀 게 잘 먹혔군.’
여덟 명의 동료를 얻은 예찬은 그들을 이끌고 D등급 연습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지 않아도 이쪽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지 D등급 연습생들이 맹수를 만난 토끼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예찬은 최대한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가장 앞쪽에 서 있던 기태랑을 향해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우리 잠깐 같이 연습해 보지 않을래요?”
“녜에?”
겁에 질린 토끼처럼 기태랑이 삑사리까지 내며 오들오들 떨었다.
예찬은 쉬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떠올리고 빠르게 본론으로 넘어갔다.
“이번 연습 때 사실 옆에서 트레이너분들이 계속 봐주실 수 없었잖아요. 불편하지 않다면 우리랑 연습하면서 서로 봐주지 않을래요?”
“아……!”
그제야 기태랑은 떠는 것을 멈추고 예찬을 마주 보았다.
D등급의 인원은 A등급과 마찬가지로 18명이었는데, 놀랍게도 1차와 2차 때 등급이 변한 연습생이 한 명도 없었다.
즉 99명의 연습생 중 실력이 정직하게 딱 아래에서부터 18명이란 뜻이었다.
구성원이 변하지 않다 보니, 서로 돈독해져서 연습할 때 분위기는 어느 등급보다 좋았다.
다만 그게 실력의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나름대로 서로 안무와 노래를 봐주며 열심히 했지만 고만고만한 실력끼리 머리를 맞대고 있으니 그렇다 할 성과가 나올 리 없었다.
눈으로 보면 확실히 어딘가 태블릿의 안무와 좀 다른데 그게 정확히 어디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또 어떻게 해야 고쳐질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말 그대로 틀린 안무로 무식하게 반복 연습만 하다가 이렇게 본 녹화 무대에 서 있는 것이었다.
조명은 뜨겁고 제작진의 표정은 살벌하고 다른 등급 연습생들은 이게 자기들이 추는 춤과 정말 같은 것인지 믿기 어려울 만큼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특히 기태랑의 눈에 오늘 본 S등급 연습생들의 퍼포먼스는 몇백 번이나 돌려 본 태블릿 안의 퍼포먼스보다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본인을 포함한 D등급 연습생들을 배려해 서로 봐주자고 표현한 예찬에게 고맙고 민망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기태랑은 예찬과 S등급 연습생들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슴다! 잘 부탁드려여!”
“잘 부탁드립니다!”
기태랑의 뒤에 서 있던 다른 D등급 연습생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예찬은 양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마주 고개를 숙였다.
‘이 새끼들이 누굴 깡패처럼 보이게 만들라고 환장했나.’
카메라에 혹시라도 이 모습이 잡혔을까 봐 가슴이 다 조마조마했다.
예찬의 속마음이 들리지 않는 기태랑은 더 감격한 듯 눈시울까지 붉혔다.
“그럼 셋씩 짝을 지어서 볼까요?”
이왕 나섰으니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을 끝내기로 결심한 예찬은 빠르게 D등급 둘에 S등급 한 명을 붙여서 임시 팀을 만들었다.
‘얘랑 얘는 조금만 다듬으면 되니까 제일 못 추는 박나길이랑 붙이고, 우휘겸은 설명을 못 하니까 눈치 빠르게 알아서 주워 먹을 놈들이랑 붙이고…….’
그렇게 적재적소로 팀을 짠 예찬이 손뼉을 쳐서 시선을 모았다.
“그럼 가볍게 한 번 춰 볼게요.”
예찬의 스마트폰에서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약 한 시간 뒤.
99명의 연습생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원 테이크로 완벽하게 ‘Choose your prince’의 퍼포먼스를 마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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