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2화
“예찬이 넌 참 대단하다.”
“네?”
다짜고짜 칭찬을?
예찬이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심상록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막 캐리어의 지퍼를 닫은 심상록이 고개를 들고 웃었다.
“순수한 감탄이니까 그렇게 경계하지 마. 우리 꽤 친해지지 않았어? 섭섭하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심상록이 말했다.
‘거 섭섭할 것도 참 많은 양반일세.’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굳이 티 나게 벽을 칠 생각은 없었던지라 예찬은 표정을 좀 느슨하게 풀었다.
방 안에 설치되어 있던 카메라는 조금 전에 제작진이 수거해 갔지만,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하지 않던가.
심상록뿐만 아니라 범세혁과 우휘겸도 저 뒤에서 짐을 싸고 있으니 이미지 관리를 놓을 순 없었다.
그 이상 따지고 들 마음은 없었는지 심상록이 말을 이어갔다.
“아까 D등급 연습생들이랑 같이 맞춰 볼 때 말이야, 정말 딱딱 맞게 팀을 짠 걸 보고 좀 놀랐어. D등급 연습생들이랑은 지난번 1차 등급 테스트 때 한 번 보고 오늘 잠깐 본 게 다였잖아?”
“뭘요. 그냥 다들 열심히 한 덕분이죠.”
예찬은 별거 아니라는 듯 겸양의 말로 대답하며 자신의 캐리어를 바로 세웠다.
아무래도 심상록은 주제곡 본 촬영 마지막 휴식 때 예찬이 연습생들의 기량을 파악해 상성이 잘 맞는 놈들끼리 엮어 준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남 얘기가 아니라 본인도 D등급 연습생 둘을 맡아서 가르친 당사자였으니 어느 정도 눈썰미가 있는 놈이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와, 그런 거였어요? 난 나랑 되게 호흡이 잘 맞는다고만 생각했네.”
물론 범세혁처럼 저렇게 천진난만한 놈도 있었다.
예찬은 혹시 신기라도 있는 거 아니냐며 예찬의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범세혁의 이마를 꾹 밀어냈다.
“연습생들 이름도 다 외운 거지?”
심상록이 자신도 캐리어를 세우며 예찬에게 물었다. 질문의 형식을 띠고 있긴 했지만 확신에 가까운 어조였다.
딱히 뺄 필요는 없는 주제라 예찬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퀘스트 때문에 한 거긴 하지만.’
“이름을 다 외웠어? 예찬이 너 기억력이 엄청 좋구나!”
범세혁이 자신은 이번 합숙 동안 열 명도 못 외운 것 같다며 양손을 들어 숫자를 헤아렸다.
‘S등급이었던 놈들만 열이 넘는데 그건 그거대로 문제 있는 거 아니냐.’
심상록은 그런 범세혁을 한참 어린 동생이라도 보는 것처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거 전혀 흐뭇해할 일이 아닌데요?
“나도 열심히 한다고 하고 있었는데 예찬이를 본받아야겠어. 다음에 꼭 봐줘. 얼마나 나아졌는지.”
맙소사.
심상록이 소년 만화에라도 나올 법한 대사를 쳤다.
‘내가 왜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꾹 내리누른 예찬은 심상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네, 형. 기대하고 있을게요.”
심상록은 사람 좋게 웃으며 예찬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상태창.’
아이돌 연습생 ― 심상록
비주얼 : A+
노래 : C
춤 : A+
랩 : S-
언변 : A
반짝임 : B+
상태 : 플레이어에게 큰 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오글거림에 올라오는 소름을 무시한 보람이 있었다.
예찬은 심상록의 상태창을 천천히 정독하며 잡았던 손을 놓았다.
이제 슬슬 예찬과 범세혁, 강해솔을 뺀 나머지 여섯 자리에 누굴 넣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였다.
후보인 연습생들은 상황이 될 때마다 이렇게 하나씩 상태 창을 확인해 둘 생각이었다.
심상록의 스탯은 범세혁처럼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밸런스가 좋았다.
‘이 정도면 총합에서도 최상위권일 것 같은데.’
물론 스탯이 높은 순서대로 쪼르르 줄을 세워서 데뷔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더 괜찮은 능력치에 심상록을 조금 다시 보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범세혁이나 나를 제치고 주제곡 센터가 된 건 이가원 빨이겠지만 후반엔 오히려 그 이미지로 손해를 봤군.’
심상록의 데뷔 타율은 대충 5할. 쉽게 말해 반반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못하는 연습생들과 같은 조를 자주 했을 때 데뷔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심상록은 현재 아이돌 업계 3대 기획사라 불리는 올림포스의 ‘전’ 연습생 출신이었다.
덕분에 첫 등급 평가 때 자신이 속했던 올림포스 소속 아이돌이자 현 최정상 아이돌인 유피테르 이가원의 촉촉한 부름을 받았다.
– 상록아…….
청순한 남자 아이돌의 대명사인 이가원이 대놓고 아련하게 굴자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반쯤 폭발했다.
– 정말 잘하는 친구였거든요. 지금도 이렇게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니 너무 기쁘고, 너무 대견하네요. 지금부터는 한 사람의 트레이너로서 한 사람의 참가자로 대하겠지만……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갑다, 상록아.
눈시울을 붉히며 웃는 이가원의 짤은 단언컨대 츄마프 1화가 낳은 최고의 아웃풋이었다.
제작진도 바보가 아니니 당연히 심상록의 화제성을 예상해서 초반 분량을 쏠쏠히 밀어줬다.
둘의 애틋한 재회를 직관한 연습생들은 심상록 옆에 붙어서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하나 얻어먹으려고 굴었고.
그렇게 노골적으로 푸쉬가 들어가니 연습생들의 인기가 두루두루 높아진 중후반에는 PD 픽이라느니 구 올림포스 연습생 주제에 올림포스를 팔아먹는다느니 욕도 실하게 얻어먹었다.
츄마프 99에서 실력보다 고평가받는 연습생 목록 같은 시답잖은 리스트들이 돌아다닐 때도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곤 했다.
‘한국 사람들은 참 별의별 걸 줄 세우면서 좋아한단 말이지.’
그런 악플들에 영향을 받은 건지 심상록 본인도 회차가 진행될수록 영 시원치 않게 굴어서 최종적으로 데뷔조에 들었다가 말았다가 리셋을 할 때마다 오락가락했다.
실제로 말을 섞어 보니 얘가 그 정도 악플에 흔들린다고? 싶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또 닥쳐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었다.
예찬은 우선 심상록에 대해서는 정확히 합격·불합격을 가르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 미션에서 같은 팀이 되면 좋겠다.”
잡았던 손을 놓으며 심상록이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면 다음 미션은 포지션별로 찢어질 예정이라 보컬인 예찬과 랩인 심상록은 절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스포를 할 생각은 없기에 예찬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도요.”
* * *
‘나는 운빨 게임이 싫다.’
사흘 만에 자기 집에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드러누울 수 있게 된 예찬은 멍하니 천장의 무늬를 하나씩 세며 생각했다.
‘왜냐면 그것이 운빨 게임이기 때문이다.’
츄마프 99는 2차 합숙부터 방청객을 모집해서 경연을 벌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시청자들이 연습생에 대해 좀 알아야 했고, 그에 따라 다음 합숙은 1화가 방영된 이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1화에서 대충 눈도장을 찍고, 2화 방영 전날부터 2차 합숙 시작…….’
비록 그 후로는 자진모리장단처럼 정신없이 흘러가겠지만 일단 다음 합숙까지 보름 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 보름을 누구보다 알차게 보내서 합숙 때 여유롭게 지내고 싶은데 유감스럽게도 다음 과제는 예찬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영역이었다.
곡도 팀도 포지션도 전부 뽑기로 정해지니 촬영 당일까지 조작돌들마저 자기가 뭘 부르고 추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걸 뽑는 순서도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갑갑한데 사람들은 왜 운빨 게임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리셋 전 리스피릿 멤버 중에서도 운빨 게임의 정수인 캐릭터 카드 게임의 노예가 하나 있었다.
매번 그렇게 제작사 욕을 하면서도 새 카드가 나올 때마다 게임에 현질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렇게 쓴 돈을 모으면 서울에 빌딩을 한 채 세웠을 거라고 멤버들은 혀를 차곤 했다.
한번은 예찬이 물었었다.
그렇게 돈을 쏟아부으면 원하는 카드는 몇 퍼센트 정도 모을 수 있는 거냐고.
노예는 여태까지 본 적 없는 세상사에 통달한 표정을 하고 대답했다.
– 예찬아, 뽑기에 확률은 없어. 나올 때까지 뽑으면 100퍼센트거든.
그렇게 말하는 리스피릿의 서브 래퍼 최선은 마치 득도한 사람처럼 보였다.
‘근데 이 뽑기는 될 때까지 뽑을 수 없잖아. 하, 득도는 무슨. 최선 자식 역시 인생에 도움이 안 되네.’
쓸모없는 전 멤버의 욕을 하며 예찬은 누운 채로 스마트폰의 검색창에 기억하고 있는 곡 이름을 입력했다.
정확한 파트 분배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경연에 나오는 곡들이 뭔지 알고 있으니 다른 참가자들보다는 형편이 좀 낫다고 위안하며 예찬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보컬 곡 다섯 개를 전부 들어 보고 파트가 어떻게 나뉠지 예상해서…….’
예찬은 아이튜브에서 노래를 켜 둔 채로 스마트폰을 사이드 테이블에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츄마프에서 예찬을 포함한 보컬 멤버는 총 34명이고 2차 합숙에서 이 34명의 연습생은 다섯 개의 보컬 곡에 마지막 5조를 제외하고 7명씩 들어가게 된다.
예찬은 어떤 곡이 나오든 ‘이 곡은 하예찬 연습생을 위한 곡이네요!’ 소리가 나오게 할 자신이 있었다.
파트를 아주 개떡같이 받지 않는 이상 말이다.
다섯 개의 곡 모두 파트 분배가 엉망이었다.
‘얘가 그 곡에 있었나?’하고 기억을 되짚어 봐야 할 정도로 희미한 파트를 받는 연습생들이 있었고 덕분에 방송이 끝나고 시청자 게시판이 뜨겁게 달아오르곤 했다.
그 존재감 없는 포지션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돌아갔기에 때때로 보컬 최상위권 연습생인 우휘겸이나 박나길, 윤지우가 들어가기도 했다.
리셋을 반복하며 무언가를 준비할 때 예찬은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고 행동했기에 이번에도 최악의 파트를 받은 상황을 상정해보기로 했다.
침대에 누운 채 우선 지금 나오고 있는 곡에서 가장 임팩트 없는 파트를 허밍으로 불러보았다.
다 합쳐서 9초나 될까.
운이 없으면 단독 샷 하나 받기 어려운 파트였다.
‘……꽤 괜찮은데?’
그러나 예찬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예찬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다른 연습생이 원샷을 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뿐이랴. 다른 사람들의 파트에서도 충분히 카메라를 뺏을 자신이 있었다.
햇병아리들 상대로 오히려 딱 좋은 페널티였다.
‘……파트를 아주 개떡같이 받아도 되겠는데? 그렇다고 진짜로 최악의 파트를 받고 싶은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생길 수많은 팬이 예찬의 모든 무대를 수백 수천 번씩 돌려 볼 텐데, 고작 9초 때문에 남은 시간을 견디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좋아하면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일들만 있으면 좋겠어. 아, 곡 바뀌었다.’
어느새 다음 곡으로 넘어간 노래의 파트를 생각하던 예찬은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음?”
심드렁하게 메시지 앱을 켠 예찬의 표정이 점점 오묘하게 변했다.
눈을 위아래로 움직여 메시지의 내용과 보낸 이의 이름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예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얘가? 나랑? 왜?”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도 액정에 떠 있는 작성자와 메시지의 이름은 변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