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3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30화
아무리 판을 깔아 줬다지만, 민감한 이야기를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다.
예찬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심상록의 가정사가 평탄하지 않을 거란 예상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본가가 서울임에도 따로 나와 살았던 데다,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또 츄마프 생방송 방청도 아버지밖에 오지 않았고.
그 당시 부자 사이에 흐르던 어색한 기류가 이제 이해됐다.
예찬은 곁눈질로 멤버들의 얼굴을 살폈다.
‘낌새를 못 느낀 놈들은 지금 굉장히 당황스럽겠는데.’
예찬처럼 어느 정도 예상하였는지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우이경을 제외하곤 다들 서로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얘들아.”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느낀 심상록이 눈썹을 찡그리고 웃었다.
“새어머니라는 단어가 좀 그래서 오해하진 말아 줘. 어머니랑 잘 지내. 동생이랑도 사이좋고.”
가벼운 목소리로 심상록은 말을 이어 갔다.
“그냥 평범한 가족인데, ‘계모’라든지 ‘이복형제’ 같은 단어가 보통 뉘앙스가 좀 그렇잖아.”
이제는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도 딱히 숨긴 적도 없어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야. 혹시 나중에 내가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 듣게 되면 오해할 수도 있잖아. 그래서 말한 거니까, 다들 편하게 생각해 줬으면 해.”
그제야 긴장으로 굳었던 멤버들의 표정이 좀 풀어졌다.
범세혁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예찬은 빠르게 차단했다.
“질의응답 시간이 아닙니다.”
“아니야, 예찬아. 뭘 물어볼 건지 궁금한데?”
당사자가 괜찮다니 더 말릴 구실이 없었다.
심상록의 만류에 예찬이 물러서자 범세혁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동생은 몇 살이에요? 아기예요?”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는 말에 갓난쟁이를 생각한 모양이었다.
심상록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냐. 지금 초등학생.”
심상록은 한참 손이 많이 갈 나이라 어머니가 바쁘다고 덧붙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문득 예찬의 머릿속에 패스트푸드 점에서 어린이 세트를 시키던 심상록이 떠올랐다.
그땐 어울리지 않게 아기자기한 장난감을 모으는 걸 좋아하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생 주려고 시킨 건가?’
“……그럼 생방송 때는 동생분이 어려서 아버님만 오신 건가요?”
조심스럽게 손을 든 우휘겸이 물었다.
‘우휘겸도 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나.’
“……응, 그때 방송도 너무 늦게 끝났잖아. 그리고 동생분이 뭐야! 그냥 편하게 형 동생이라고 불러도 돼.”
낯간지럽다며 심상록이 몸을 부르르 떠는 시늉을 했다.
질문과 대답 사이에 짧은 공백을 느끼지 못했는지 우휘겸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예찬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싱그럽게 웃고 있는 심상록을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왜 굳이 적당히 숨기거나 얼버무려도 될 얘기를 시원스레 오픈하나 했더니…….’
아마 진짜 감춰야 할 이야기는 그보다 더 안쪽에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심상록과 심상록의 가족이 지금처럼 능숙하게 잘 감출 수 있다면 굳이 들춰낼 생각은 없었다.
‘활동에 문제만 안 생기면 참견할 필요가 없지.’
과하게 열정이 넘치던 리셋 초창기, 기세 좋게 멤버의 가정사에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물리적으로 머리를 잡힌 기억이 떠올랐다.
‘막상 그놈은 그 쓰레기도 가족이라고 애매하게 화해해 버렸지.’
그 당시 두피에 가해진 통증을 생각하니 비즈니스 마인드가 절로 장착이 됐다.
한결 가벼워진 분위기 속에서 심상록은 화이트보드에 적힌 나머지 항목들도 답했다.
“소속사는 다들 알고 있겠지만 처음엔 올림포스였어. 한 5년 정도 있었는데, 안 좋게 나온 건 아니고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그만두게 됐어.”
가족사보단 이쪽이 대충 얼버무린 티가 났다.
호기심이 동할 법도 했으나 눈치 없이 파고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알게 된 분의 소개로 이듬해 GE에 들어갔는데, 사실 GE는 아이돌 그룹을 론칭할 생각이 없거든. 그래서 츄마프에 나오게 된 거야. 자, 내 자기소개는 여기서 끝.”
심상록이 어깨를 으쓱였다.
순서는 자연스럽게 선우이경으로 넘어갔다.
“본가가 과천이라 학교는 그쪽에서 다 나왔어. 대학을 서울로 와서 자취를 시작한 건데, 입학하자마자 이건 내 길이 아니다 싶어서 군대에 지원한 다음 자퇴해 버렸지만.”
입대하는 날, 남들은 울면서 이별하는데 자기는 어머니께 등짝에 불이 날 정도로 얻어맞았다며 선우이경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스무 살 때 바로 다녀온 거예요?”
“형 족구 잘해요?”
“어느 부대였어요?”
또래들과 달리 직업상 군대가 아직 막연하게 느껴지는 시기이긴 했다.
코앞에 그 미지의 영역에 다녀온 사람이 나타나니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나 이래 봬도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다. 지원하려고 보니까 딱 해병대 모집 기간이더라고.”
“우와!”
“형 수영 잘해요?”
해병대란 말에 멤버들이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허허, 다들 진정하시게.”
선우이경이 예스러운 말투로 멤버들을 진정시켰다.
“군대에서 선임들이 음악 방송을 진짜 많이 보더라고. 옆에서 같이 보다 보니까 아이돌에 흥미가 생겼지. 아, 그리고 제대하고 나니까 머리 자르기가 너무 싫은 거야. 이참에 어디 원 없이 길러 보자, 해서 계속 길렀어.”
‘날라리 같은 단발머리에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멤버들은 입을 꼭 다물고 선우이경의 말에 집중했다.
그런 멤버들의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한 선우이경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없는 군대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합시다. 그다음은 뭐였지?”
고개를 돌려 화이트보드를 확인한 선우이경은 다시 자기소개를 이어 갔다.
“부모님이랑 아직 고등학생인 쌍둥이 동생은 본가에 살고 있어. 딱히 지병이나 가족력, 알레르기는 없고. 또 뭘 말해야 하지? 아, 탕수육은 찍먹파야.”
장난스럽게 덧붙인 마지막 말이 또다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에이, 탕수육은 부먹이죠.”
“나 부먹 좋아하는 사람은 인터넷에만 있는 줄 알았어. 부먹파가 정말 현실에 존재하다니…….”
당당히 부먹파임을 밝힌 정의탁을 선우이경이 놀랍다는 듯 바라보았다.
과장된 리액션에 발끈한 것은 채은성이었다.
“이럴 땐 탕수육이 어떤 음식인지 그 시초를 따라가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래 탕수육은 잘 만든 소스를 튀긴 고기에 부어 먹는 것으로…….”
“부어 먹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한 번 부어 버린 순간 다신 찍어 먹을 수 없잖아.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지만 함께 먹는 자리에선 부먹파가 찍먹파를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해.”
은근슬쩍 끼어든 강해솔은 찍먹파를 옹호했다.
“부어 먹어야 소스를 많이 먹을 수 있는데! 소스가 맛있지 않아요?”
범세혁도 빼지 않고 싸움에 참전했다.
‘……이놈들, 말이 진짜 많군.’
과하게 말수가 적은 우휘겸과 배새벽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몰입할 만한 주제가 나오면 말을 멈출 줄 몰랐다.
“저는 찍먹이에요.”
“……둘 다 괜찮지 않나요?”
이번에도 배새벽은 짧게 취향을 밝히고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중도파를 표방한 우휘겸의 말은 깨끗하게 묻혔다.
“자자, 그만합시다.”
시간을 확인한 예찬이 상황을 정리했다.
“앞으로 탕수육 먹을 때 두 개씩 시키면 될 걸 뭐 그렇게 싸워요. 하나는 부어서 흐물흐물하게 먹고 하나는 찍어서 바삭바삭하게 먹읍시다.”
“야, 너 찍먹파지!”
“다음 차례는 해솔이 형.”
예찬은 벌떡 일어선 채은성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눅눅하게 먹을 거면 왜 굳이 튀기겠냐고.’
맛잘알답게 강력하게 찍먹을 주장하던 강해솔은 예찬의 부름에 이성을 되찾았다.
“흠흠, 우리 집은 부모님이랑 형 하나 있어. 본가는 천안인데 고등학생 때 AOB에 들어가면서 자취를 시작했고.”
잠깐 예찬의 눈치를 살핀 강해솔이 말했다.
“키는 마지막에 쟀을 땐 180이었는데 뭐, 더 컸을 수도 있고…….”
“에이.”
예찬의 야유에 강해솔의 눈매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몸무게는 60kg 정도일걸.”
“너무 마른 거 아니에요?”
강해솔과 고만고만한 키를 가진 정의탁이 자신과 꽤 차이가 나는 몸무게에 깜짝 놀랐다.
“너 뭐 하려는…… 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온 정의탁이 아예 강해솔을 덥석 들어 올렸다.
“형, 왜 이렇게 말랐어요! 이러니까 키가 안 컸죠! 괜히 이경이 형이 들고 뛰어다닌 게 아니네!”
이렇게 마른 사람들이 있어서 자기가 상대적으로 뚱뚱한 놈이 돼 버린다며 정의탁이 펄쩍펄쩍 뛰었다.
“해솔이 형이 진짜 그렇게 가벼워?”
“다음은 나! 나도 들어 볼래!”
“형, 60kg 안 될 것 같은데요? 더 빠진 거 아니에요?”
“누구 60kg 또 없나? 번갈아서 들어 보면 알 거 같은데.”
“이 자식들이…….”
멤버들은 아예 줄까지 서서 한 명씩 강해솔을 들어 올려 보고 있었다.
강해솔과 비슷한 키에 비슷한 몸무게를 가진 예찬은 잠시 먼 곳을 바라보았다.
‘……키랑 몸무게는 대충 넘겨야겠다.’
무게 추가 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강해솔 다음은 갓 스물 동갑내기 중 생일이 가장 빠른 범세혁의 차례였다.
“고향은 부산이고 형제는 없어! 그래서 요즘 되게 재밌어!”
천진난만한 대답을 시작으로 범세혁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행복하고 웃음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내 생각 그대로네.’
막연히 상상했던 범세혁의 집이 코앞에 바로 펼쳐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키는 마지막에 쟀을 때 185였어! 지금까진 별생각 없었는데 휘겸이랑 은성이를 보니까 요샌 더 크고 싶다!”
이름이 불린 팀 내 최장신 두 사람은 겸연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스무 살에도 큰댔으니까 가능성 있지.”
따사로운 심상록의 말에 예찬이 강해솔을 돌아보았다.
강해솔이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예찬을 훑었다.
“왜 나를 봐?”
“해솔이 형, 작년에 1mm라도 컸어?”
“……이거 시비 거는 거 맞지?”
그것을 시작으로 이번엔 키는 과연 몇 살까지 크는지에 대하여 활발한 토론이 오갔다.
“군대 다녀올 때까지도 큰다는 말이 있지 않아?”
“그럼 우리는 이경이 형 빼고 다들 더 크겠네.”
예찬은 시계를 확인했다.
‘후, 정말 무슨 말을 못 하겠다니까. 또 한나절 떠들겠군.’
대화의 포문을 연 사람이 하기엔 다소 뻔뻔한 생각이었다.
“앓고 있는 병은…… 음, 수족 냉증?”
지병과 알레르기를 고민하던 범세혁이 내뱉은 말을 끝으로 우휘겸의 순서가 되었다.
“나도 외동이야. 부모님이 두 분 다 바쁘셔서 캐나다에 계신 이모 댁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했고. 조부모님 댁이 광주라 그쪽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봤어.”
거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우휘겸은 물병을 들어 목을 축였다.
우휘겸이 화이트보드에 적힌 나머지 항목들도 차분히 답하고 나자 이젠 예찬의 차례가 되었다.
예찬은 빙 둘러앉아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멤버들을 확인하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쭉 자랐고요. 부모님은 제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셨어요. 형이 하나 있는데 지금은 연락이 안 돼서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예찬의 말에 훈훈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는 것은 당연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