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3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37화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를 해 버린 정의탁이 곧장 예찬을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은 것 같았다.
리더 예찬은 멤버의 구조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정면을 바라본 예찬은 집게손가락 두 개를 붙여 작은 엑스자를 만들었다.
“여러분, 의탁 씨가 울 것 같으니 아무것도 못 들은 걸로 할까요? 댓글에 ‘복숭아’ 쓰기 금지~”
“전혀 수습되지 않잖아요!”
예찬을 단단히 믿고 있던 정의탁이 버럭 화를 냈다.
“괜찮아, 괜찮아. 다들 못 들었대.”
예찬은 범세혁에게 태블릿을 받아 정의탁의 손에 쥐여 주었다.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창의 절반은 웃느라 바빴고, 나머지 절반은 복숭아 이모티콘과 복숭아의 초성이었다.
“못 들은 척이라도 해 주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
“복숭아라고 직접 쓰는 분은 아무도 안 계시잖아.”
그러니 문제없다며 예찬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가 없긴요!”
“의탁아, 포기하자.”
정의탁의 어깨너머로 함께 채팅창을 구경하던 채은성이 깔끔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그 후 한결 가벼워진 분위기 속에 멤버들은 라이브를 이어 갔다.
정면에 앉아 있는 작가가 스케치북에 슬슬 정리할 때라고 쓴 것을 확인한 예찬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희의 데뷔 앨범이 공개될 때까지 5분 정도 남았다고 해요.”
“와, 정말요?”
“시간이 너무 빨라요!”
멤버들이 한마디씩 호들갑을 떠는 것을 기다린 예찬이 이어 말했다.
“저희는 잠시 뒤 일곱 시에 쇼케이스 라이브로 다시 찾아뵐게요! 지금까지 빛나는 당신의 별.”
“레굴루스였습니다!”
“쇼케이스 많이 많이 기대해 주세요!”
“사랑해요!”
송출 종료를 확인한 정의탁이 양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아, 진짜 죄송해요. 나 바본가 봐.”
“아이고, 의탁아. 아직도 복숭아 때문에 그래?”
얘를 어쩌면 좋냐며 선우이경이 킬킬 웃었다.
정의탁에게 다가간 예찬은 조용히 어깨를 두드렸다.
정의탁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예찬이 형, 병 주고 약 주지 말아요.”
‘예리한 놈.’
어떻게 예찬인 줄 안 건지 놀라웠다.
정말 별것도 아닌 스포일러를 하고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슬퍼하는 모습이 신인다웠으나 쇼케이스 준비를 위해선 이대로 둘 순 없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쇼케이스 때 얘기할 거였잖아.”
“그래도…….”
“그래, 의탁아. 한두 시간 먼저 말한다고 큰일 안 나.”
“의탁이 덕분에 크게 웃었다.”
심상록과 채은성이 예찬을 거들었다.
“맞아, 그리고 그냥 애칭 말한 거잖아. 오히려 이따 팬덤 이름 말할 때 반전도 있고 좋네.”
“……그럴까요?”
선우이경까지 가세하고 나서야 정의탁은 고개를 빼꼼 들어 올렸다.
‘여기서 사실 아니라고 놀리면 진짜 삐치겠지.’
불쑥 치민 충동을 어른스럽게 참아 낸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아! 옷 갈아입자!”
“해솔이랑 휘겸이는 머리부터 만지게 이쪽으로 와!”
정말 코앞으로 다가온 음원 공개를 다 같이 기다렸다 축하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었다.
예찬은 무대 의상을 받아서 대기실 한편에 마련된 간의 탈의실로 향했다.
“헙. 단추 떨어졌다…….”
옆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던 채은성이 숨을 들이켰다.
예찬은 발치에 굴러온 단추를 집어 들었다.
“자, 여기. 나가서 다시 달아 달라고 해.”
단추를 받아 든 채은성이 불안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이거 혹시 불길한 증조…….”
“그거 아니고 액땜. 덕분에 쇼케이스 잘되겠네.”
“아.”
표정을 보니 완전히 설득된 모양이었다.
빠르게 옷을 마저 갈아입은 채은성이 단추를 꼭 쥐고 탈의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누나! 저 단추 떨어졌어요!”
“왜 단추 떨어진 걸 그렇게 신나게 말해?”
스타일리스트의 어이없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들으며 예찬은 재킷을 팔에 걸쳤다.
‘벌써 입었다가 땀 나면 곤란하니 이건 마지막에 입고…….’
흘린 물건이 없는지 주변을 훑어보자 조끼를 거꾸로 입고 있는 심상록이 보였다.
조용히 다가가 방향을 잡아 준 뒤 탈의실을 빠져나온 예찬은 바로 메이크업 담당자의 손에 붙잡혔다.
“……노래 공개되었겠지?”
예찬보다 먼저 탈의실 앞에서 붙잡혀 있던 우휘겸이 드물게도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예찬은 눈만 움직여 벽면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그렇겠네.”
예찬의 대답을 들은 우휘겸이 조심스럽게 대기실 문 쪽을 힐끗거렸다.
예찬은 단호하게 말했다.
“슬쩍 나가서 반응 보고 올 생각은 하지 마라.”
“진짜 살짝만 보고 오면 안 돼? 아무한테도 안 들킬 자신 있습니다!”
어느새 뒤에서 튀어나온 범세혁이 우휘겸의 어깨에 매달려 외쳤다.
“절대로 안 됩니다.”
단호하게 두 사람을 만류한 예찬은 이번엔 헤어 스타일리스트의 손짓을 받고 거울 앞에 앉았다.
“너희 오늘 쇼케이스 끝날 때까지 음원 차트 안 보기로 했다며?”
자리에 앉기 무섭게 머리를 매만지던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말을 꺼냈다.
“어, 소문이 거기까지 났어요?”
“당연하지. 우리 팀엔 비밀이 없어. 그래도 정말 잘 생각했네. 순위에 연연하지 말고 너희의 무대를 하는 게 중요하지.”
“하하.”
누구보다 순위에 연연하고 있는 예찬은 순하게 웃었다.
* * *
레굴루스 멤버들이 한창 쇼케이스를 위해 준비 중이던 5월 30일, 오후 6시 정각.
모든 음원 사이트에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포함해 총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레굴루스의 데뷔 앨범 ‘Inaugurate’이 공개되었다.
동시에 레굴루스 공식 아이튜브 계정에는 ‘Inaugurate’의 타이틀 곡인 ‘Only my you’의 뮤직비디오가 올라왔다.
‘드디어……!’
레굴루스의 첫 스타라이브를 시청한 뒤, 음원 사이트를 새로 고침하며 기다리고 있던 수험생 최모 양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떨리는 손으로 주요 음원 사이트 다섯 군데에서 앨범 전곡을 다운로드한 그녀는 이내 아이튜브에 접속했다.
[Regulus (레굴루스) ‘Only my you’ Official MV]진작 구독해 둔 레굴루스의 계정에 들어가자 바로 뮤직비디오의 섬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담벼락 위에 무료한 표정을 하고 일렬로 앉아 있는 아홉 멤버의 얼굴 합은 언제 봐도 반칙이었다.
‘진짜 잘생긴 애 옆에 잘생긴 애, 그 옆에 잘생긴 애…….’
홀린 듯 멤버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최모 양은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제발 우리 애들 노래가 부디 얼굴만큼 잘 나왔기를……!’
눈을 질끈 감은 최모 양은 마침내 뮤직비디오를 클릭했다.
[You, Only my you.]한없이 느리고 부드러웠던 티저보다 한결 정제된 소리가 먼저 귓가에 닿았다.
간주에 섞인 예찬의 저음에 최모 양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목소리까지 진짜 반칙 아니냐고…….’
마룻바닥을 훑듯이 움직이던 카메라에 로퍼가 걸렸다.
그대로 발부터 다리, 허리를 따라 이동한 화면이 로퍼의 주인, 배새벽의 얼굴을 담았다.
“왁, 씨. 진짜 미쳤다.”
배새벽이 화면을 향해 부드럽게 고개를 돌린 순간 최모 양은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차가운 미남 취향인 그녀도 입을 벌어지게 만드는 폭력적인 외모였다.
‘저게 사람이야, 인형이야.’
[오직 나의 너를 만나고 싶어.나의 너에게 바치고 싶어.]
예상보다 더 서정적인 첫 소절에 최모 양은 감탄했다.
배새벽의 파트가 이어지며 바닥에 앉아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뒤이어 강해솔의 랩 파트가 시작되었다.
이때까지 뮤비 때깔이 곱다고 감동하던 최모 양은 그 뒤로 이어진 후렴구에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 냈다.
‘아! 아아악! 악! 미쳤어!’
눈물로 얼룩진 화면 너머의 레굴루스 멤버들은 정말 말 그대로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고 있었다.
애틋하고 아련한 곡이니 안무가 다소 얌전해도 어쩔 수 없다고 은연중에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을 뒤집는 즐거운 반전이었다.
‘지금까지 살아 있길 잘했다…….’
지금 최모 양이 할 수 있는 건 대체 어디서 저렇게 찰떡같이 어울리는 안무를 만들어 왔는지 놀라는 것뿐이었다.
멤버들이 얼마나 칼을 갈고 나왔는지 뮤비를 한 번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같은 시각, 남지유의 집에서 뒹굴거리던 기태랑 또한 레굴루스의 ‘Only my you’ 뮤직비디오를 시청하고 있었다.
“아, 뭐야. 치사하게 먼저 보고 있어?”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온 남지유가 짜증을 냈음에도 기태랑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남지유의 시선이 기태랑을 따라 TV로 이동했다.
“와…….”
화면 속 아홉 명의 멤버들이 마치 한 몸처럼 완벽한 박자에 완벽한 보폭을 맞춰 움직였다.
남지유는 뮤직비디오를 끝날 때까지 발을 떼지 못했다.
뮤직비디오 전반적으로 깔린 미장센이라든지 의상과 헤어 콘셉트, 서정적이면서도 일렉트로닉을 가미한 멜로디 등 나눠 볼 이야기는 무궁무진했으나.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것이었다.
“……얘네 진짜 밥 먹고 연습만 했나?”
남지유의 말에 넋을 놓고 있던 기태랑이 중얼거렸다.
“저렇게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츄마프 때 저랑 같은 조 하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여…….”
“야, 뭘 그렇게 또 기가 죽어 있어! 쟤들은…… 아, 아니지. 이경이 형, 상록이 형 죄송합니다.”
잠깐 선우이경과 심상록에게 사과를 건넨 남지유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한 달도 넘게 연습했을걸? 그 정도 기간을 들여서 죽어라 연습했으니까 저게 되는 거지! 츄마프 땐 솔직히 연습할 시간도 거의 없었잖아!”
“전 일 년을 연습해도 저 춤을 출 자신이 없어여, 지유 형…….”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기태랑의 말에 남지유가 멈칫했다.
“아니, 그래도 일 년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안 되나?”
기태랑은 다시 고개를 저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진짜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구여, 저건.”
“하, 지금 그 표정을 카메라에 담았어야 했는…… 아니, 우리 리액션 영상 찍자고 해 놓고 먼저 보면 어떡해!”
완전히 정신을 차린 남지유가 삼각대와 카메라를 가져오며 짜증을 냈다.
“너무 궁금해서 앞부분만 살짝 보려고 했는데…… 헤헤.”
지은 죄가 있는 기태랑이 남지유의 눈치를 살피며 웃었다.
“웃지 마라, 정든다.”
“에이, 형! 정들면 좋은 거져.”
“하, 우리 아이튜브 첫 콘텐츠는 레굴루스 뮤비 리액션으로 하려고 했는데.”
“지금부터 찍으면 되져! 어쩌다 뮤비를 봤는데 이건 너무 대단해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되지 않을까여?”
“……그런가?”
“그럼여!”
“흠흠, 그럼 지금부터 찍게 자리에 잘 앉아 봐.”
“넵!”
카메라 위치를 조정한 남지유가 촬영 버튼을 누르고 잽싸게 기태랑의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유랑’ 채널 시청자 여러분. ‘유랑’의 ‘유’를 맡고 있는 남지유.”
“‘랑’을 맡고 있는 기태랑이에여!”
남지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태랑이 뒤를 이었다.
예찬은 아직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츄마프 출신이자 레굴루스의 열성 팬인 아이튜버가 머지않아 탄생할 예정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