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4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39화
앨범의 아웃트로까지 전부 들은 이후엔 각 곡에 대한 짧은 설명을 이어 갔다.
멤버들 모두 데뷔 앨범에 과몰입해 틈만 나면 앨범 이야기를 떠들어댄 덕인지 말문이 막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이번엔 앨범 말고 레굴루스에 관하여 이야기를 좀 나눠 볼까요?]앨범에서 레굴루스 쪽으로 화살표의 방향이 바뀌었다.
예찬은 담담히 MC 앤드류의 질문을 기다렸다.
[먼저 이름이죠! 츄마프 생방송에서 우리 레굴루스의 팀명을 공개했잖아요? 저도 그 이후로 레굴루스의 뜻을 조사해 봤는데요. 이야, 멋진 뜻이 아주 많더군요.]거기까지 말한 MC가 멤버들에게 순서를 넘겼다.
사전에 맞춰 본 대로 심상록이 마이크를 잡았다.
[네, 레굴루스는 사자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로 ‘왕자’나 ‘작은 왕’을 의미합니다. 왕자 후보생에서 진정한 왕자가 된 저희와 꼭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나요?]* * *
도무지 뺄 수 없는 일정 때문에 태블릿으로 생중계를 보고 있던 이모 씨가 혀를 찼다.
‘어울리긴 개뿔.’
분명 작가가 써 준 대본이 틀림없었다.
NJ의 직원이자 일반인 코스프레 중인 레굴루스의 남성 팬 이모 씨는 발음이 묘한 이름에 이제야 좀 익숙해졌거늘, 굳이 다시 불을 지피는 저 행태에 분노했다.
레굴루스란 이름을 지은 게 NJ인지 츄마프 제작진인지는 모르겠지만 멤버들 입을 통해 세탁기를 돌리려는 모습이 괘씸했다.
화면 속 MC가 과장되게 감탄했다.
[이름만 들어도 멋졌는데 뜻까지 들으니 딱 여러분을 위한 이름이네요! 그런데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이 레굴루스의 멤버 중 한 사람이라면서요?]“……어?”
생각지도 못한 충격 발언에 이모 씨가 입을 벌린 사이.
화면 너머,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운 모두의 리더이자 뭐든지 잘하는 예찬이 손을 들어 올렸다.
‘……설마?’
[네, 레굴루스는 제가 추천한 이름입니다.]예찬의 두 눈이 화면 너머로도 그 기백이 느껴질 만큼 결연하게 빛났다.
선우이경이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츄마프 생방 전에 데뷔했을 때 원하는 그룹 이름을 하나씩 적어서 내게 했었거든요.] [아, 그럼 혹시 예찬 씨가 1등이라 예찬 씨가 낸 이름을?] [그건 아니고, 그중 하나를 제작진분들이 골라 주셨어요.] [얘기를 들으니 다른 분들은 어떤 이름을 쓰셨는지 궁금하네요! 기억나는 분 있나요?]MC의 물음에 멤버들이 자신이 써냈던 이름을 하나둘 대답했다.
[전 ‘프린시스’요. 스펠링은 ‘princes’고요. 심플하게 왕자의 복수형이죠.] [저는 ‘프리즘’을 써냈어요.]츄즈 마이 ‘프린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몇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모 씨는 괜히 예찬의 눈치를 살폈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예찬 씨한테는 내가 보이지도 않지만…….’
직장 건물 내에서 레굴루스 멤버들과 마주쳤을 때 실수하는 일 없도록 혼자 있을 때도 멤버들에게 경칭을 붙이는 이모 씨는 처음엔 레굴루스란 이름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아이돌 이름이 원래 다 이렇지 않나, 정도의 감상?
그러나 인터넷에서 데굴데굴 이리저리 굴리며 놀림당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이름의 심각성을 느끼고, 이런 이름을 지어 준 회사 혹은 제작진을 원망하고 있었다.
양심 고백을 하나 더 하자면 타 팬덤에게 깔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먼저 까는 시늉을 한 적도 있었다.
‘우리도 이름 별로인 거 알고 있으니까 신경 끄고 지나가란 뜻으로 했던 건데…… 예찬 씨가 지은 건 줄 알았으면 안 했지!’
이모 씨의 미안한 마음이 닿았는지 화면 속 예찬이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팬분들이 레굴루스란 이름 네 글자를 언제 어디서 들어도 뿌듯할 수 있도록 앞으로 좋은 모습 많이 보여 드릴게요. 지켜봐 주세요.]‘……리더!’
이모 씨를 새삼스레 설레게 만든 예찬의 당찬 포부 선언이 끝나자 멤버들이 의미심장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 * *
이번 토크 타임의 하이라이트 시간이 드디어 찾아왔다.
멤버들은 더 참기 힘든지 입이 근질근질한 티를 내고 있었다.
예찬과 눈빛을 교환한 MC 앤드류가 진행을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감을 잡기 위해 팬들은 예찬과 MC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분들이 있기에 레굴루스가 있고, 이분들을 위해 우리 레굴루스 여러분이 이렇게 앨범을 열심히 준비한 건데. 이분들이라고 계속 부르는 건 너무하겠죠?] [옳으신 말씀입니다.]예찬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공식 팬덤명을 발표하려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잠시 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리던 예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영원한 저희의 파트너, 레굴루스의 공식 팬클럽 이름을 지금 발표하려고 하는데요. 멤버들이 각자 의견들을 낸 다음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정했습니다.]예찬은 채은성을 향해 손짓했다.
긴장과 희열로 얼굴색이 복잡해진 채은성이 벌떡 일어났다.
[발표는 팬클럽 이름으로 선정된 이름을 후보로 낸 우리 채은성 씨가 맡아 주시겠습니다. 은성 씨?] [넵! 사랑하는 공주님들의 새로운 이름은…….] [두구두구두구.]멤버들은 채은성을 바라보며 입으로 북소리를 냈다.
선우이경이나 범세혁은 아예 손으로 바닥을 두드리는 시늉까지 하고 있었다.
[바로 이, 큽!]숨 막히는 정적 속에 눈치 없이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사레가 들린 채은성이 입을 막고 기침을 하는 사이, 등 뒤로 팡파르 소리에 맞춰 공식 팬덤 이름이 크게 떠올랐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팬덤 명이 공개되었음에도 객석은 고요했다.
‘아무래도 환호할 분위기는 아니지…….’
예찬은 객석에서 시선을 돌려 아직도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는 채은성을 바라보았다.
주변에 앉아 있던 멤버들이 급하게 채은성의 등을 두드리거나 손수건을 건네주고 있었다.
예찬은 팬클럽 이름 발표를 맡게 된 후, 잠을 이루지 못하던 채은성이 떠올렸다.
자기 전 이불 속에서, 차로 이동하는 중에, 옷을 갈아입거나 머리를 손질받는 중간마다 혼자 팬덤 이름을 중얼거리며 연습하던 채은성의 모습이 차례차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안 됐다.’
간신히 진정했는지 채은성이 허리를 세웠다.
기침 때문인지 억울해서인지 눈가가 촉촉해 보였다.
허망한 얼굴로 잠시 뒤편에 둥둥 떠 있는 팬덤 이름을 확인한 채은성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흠, 흠. 어, 그러니까 팬클럽 이름은…….]“은성아 울지마!”
“괜찮아!”
[……안 웁니다.]객석에서 튀어나온 따스한 위로에 정신이 들었는지, 침착함을 되찾은 채은성이 발표를 계속했다.
[저희 레굴루스의 공식 팬클럽 이름은 ‘이클립틱’입니다.]그제야 눈치 없이 ‘ECLIPTIC’이란 스펠링을 띄우고 있던 전광판의 화면이 변했다.
우주로 변한 화면에 사자자리와 그중 가장 빛나는 별인 레굴루스.
그리고 그 바로 옆을 지나는 황도, 영문명 ‘ecliptic’이 떠올랐다.
바쁜 와중에 채은성이 한 땀 한 땀 직접 그린 이미지였다.
[흔히들 연예인을 별에 비유하죠. 레굴루스가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일등성 중 가장 황도에 가까운 별이란 이야길 듣고, 황도를 뜻하는 이클립틱을 팬덤 명으로 정했습니다.]또박또박 연습한 멘트를 완성한 채은성이 뿌듯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이클립틱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빛나는 별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예찬은 작은 사고가 있었으나 꿋꿋하게 소임을 다한 채은성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뒤를 따르듯 멤버들과 MC, 그리고 팬들도 손뼉을 쳤다.
채은성은 화답하듯 이쪽저쪽을 향해 허리를 숙이다 마이크를 다시 들어 올렸다.
[아, 그리고 팬덤 애칭인 복숭아는 저희끼리 이야기하다가 황도 복숭아 얘기가 나와서 부르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부른 게 바로 의탁이에요.] [그런 건 말 안 해도 된다고요…….]오늘 하루 정신력 소모가 너무 컸는지 한풀 꺾인 목소리의 정의탁이 대답했다.
[이클립틱 사랑해요!]가만히 듣고 있던 배새벽이 갑자기 외쳤다.
[……갑자기?] [제일 먼저 말하고 싶었어요.]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안이 벙벙해 있는 멤버들을 향해 배새벽은 태연히 말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멤버들이 말을 얹었다.
[와, 새벽이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럼 내가 두 번째! 이클립틱 진짜 사랑해요!] [내가 세 번째 할래!] [이클립틱 포에버!]누가 더 이클립틱을 향해 절절한 사랑 고백을 하는지 경쟁하던 멤버들을 진정시킨 것은 MC였다.
[자, 여러분. 팬덤 이름 말고 또 전해야 할 소식이 있지 않나요?] [아, 내일부터 레굴루스의 공식 팬클럽 이클립틱 1기를 모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레굴루스의 공식 SNS에서 더 자세한 소식을 확인하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완전히 자기 멘트를 잊은 채 고개만 끄덕이고 있던 우휘겸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럼 이쯤에서 레굴루스와 이클립틱을 만나게 해 준 그 곡을 들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여러분, 준비되셨나요?]토크 코너에서 정해진 내용을 전부 끝내자 MC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순서를 예고했다.
마찬가지로 멤버들이 일어서자 급하게 올라온 제작진들이 의자를 치웠다.
[레굴루스가 부르는 ‘Choose your prince’! 함께 들어 보시죠!]“와아아아!”
“아아악!”
팬들의 열렬한 환호에 호응하듯 계정엽 작곡가가 약간 변주를 준 츄유프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Choose your prince.네가 선택하는 세계,
그 끝에 내가 있기를.]
예찬의 목소리와 함께 레굴루스 버전의 츄유프가 시작되었다.
* * *
‘Choose your prince’가 끝나 갈 무렵, 츄유프의 마지막 소절과 섞이게 작업한 ‘I′m your prince’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편곡 잘했네.’
넋을 놓고 태블릿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김대훈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대후니~ 우리 슬슬 나갈 준비해야 한다.”
안으로 성큼 들어온 박마루의 말에 김대훈은 볼멘소리를 냈다.
“아니, 대답도 안 듣고 들어올 거면 노크는 왜 해요?”
“내가 그랬나?”
“항상 그러거든요?”
두 사람이 시답잖은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에도 태블릿은 끊임없이 노래를 재생하고 있었다.
[I‘m your prince.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갈게.]
“오, 그거 레굴루스 데뷔 쇼케이스지?”
박마루가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다.
김대훈은 미간을 좁히고 태블릿을 끌어안았다.
“형이 어떻게 알아요?”
“그야 좀 전에 찬양이도 그거 보고 있었으니까.”
“찬양이 형이요?”
의외의 대답에 김대훈은 태블릿을 안고 있던 손에서 힘을 빼고 화면을 확인했다.
조명 아래 빛나는 예찬의 얼굴이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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