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4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43화
신 PD를 주연으로 한 브이로그를 만족할 만큼 찍은 레굴루스 멤버들은, 실의에 빠진 신 PD와 그의 짐을 작은 방에 잘 모셔 두고 거실에 모였다.
코앞으로 다가온 데뷔 무대를 위해 마지막 ‘별자리 좌담’을 하기 위함이었다.
‘별자리 좌담’이란 채은성이 강력하게 주장해 정해진 이름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멤버 회의였다.
“다들 준비는 됐죠?”
예찬의 말에 둥글게 둘러앉은 멤버들이 차례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N-net의 엔카운트다운을 시작으로 지상파 음악 방송까지 연일 강행군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데뷔 무대라고 하니 괜히 긴장될 수 있겠지만, 엔카는 츄마프에서, 내일 할 두 곡은 쇼케이스에서 이미 해 봤어요. 그러니 평소처럼만 합시다.”
이번에도 멤버들이 차례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구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예찬의 물음에 선우이경이 기다렸단 듯이 손을 들었다.
“지금 잠깐 연습실에 가서 딱 한 번만 맞춰 보고 오면 어떨까?”
멤버들의 얼굴에 혹하는 기색이 일었으나 예찬은 고개를 저었다.
“새벽부터 사전 녹화 준비할 거 생각하면 자는 게 맞아요. 또 없어요?”
눈만 멀뚱히 뜨고 있는 멤버들을 확인한 예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한마디는 우휘겸 차례였죠?”
예찬이 우휘겸을 바라보며 묻자 살짝 긴장한 표정의 우휘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우휘겸의 얇은 입술이 열렸다.
“오늘의 한마디는 ‘종과득과’입니다. 오이를 심으면 오이가 난다는 사자성어로, 우리가 노력한 만큼 노력의 결실을 거둘 것이라는 의미로 선택했습니다.”
‘오늘의 한마디’는 레굴루스의 자체 회의 ‘별자리 좌담’의 마지막 순서였다.
회의마다 좋은 뜻을 가진 속담이나 고사성어, 명언 등을 멤버들이 번갈아 가며 조사해 다른 멤버들에게 알리는 코너였다.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인 만큼 리스피릿처럼 신비주의로 밀고 갈 수도 없으니, 머지않아 예능에 나갈 일이 생기겠지.’
그럴 리야 없겠지만 아무도 불러 주지 않으면 아예 NJ를 등에 업고 자체 제작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었다.
‘무식한 것도 개성이 되는 세상이라지만, 멤버 전원이 공평하게 멍청하면 그냥 바보 합창단이잖아.’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멤버 대다수가 영리하다는 수식어가 붙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지능과 지식이 반드시 비례하진 않았다.
‘다른 놈이 말한 건 몰라도 자기가 조사해 온 것 정도는 외우지 않겠어?’
예찬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멤버들이 손뼉을 치는 사이, 순간 은근하게 느껴진 시선에 예찬은 고개를 돌렸다.
“……와, 그 ‘오늘의 한마디’는 정말 촬영 중이 아니어도 하는군요.”
작은 방의 문을 살짝 연 신 PD가 멤버들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예찬은 조용히 바닥에 내려 둔 캠코더를 집어 들었다.
“잠깐, 예찬 씨! 그걸 왜 만지시는 거죠? 진정하세요!”
누가 봐도 진정해야 하는 사람은 신 PD였다.
예찬이 태연자약한 얼굴로 대답했다.
“신 PD님이 더는 촬영 못 하겠다고 하셔서 그만둔 건데, 이제 기운을 좀 차리신 거 같아서요.”
“아닌데요?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데요?”
온몸으로 자신이 지친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신 PD가 그대로 바닥에 철썩 눌어붙었다.
멤버들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으나 신 PD는 얼굴을 붉힐지언정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오늘 ‘별자리 좌담’은 여기까지 하고, 다들 빨리 잡시다.”
“다들 오늘도 고생했어. 얼른 자자.”
자리를 털고 일어난 멤버들이 각자 자신의 침대 안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커뮤니티 반응만 잠깐 확인할까.’
고민하던 예찬은 이층 침대 위로 올라오기 전, 정의탁이 양 마릿수를 중얼거리던 것을 떠올리고 얌전히 눈을 감았다.
바로 아래에 필사적으로 잠자리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 양이 있는데 도와주진 못할 망정 괜히 부스럭거리고 싶진 않았다.
* * *
레굴루스 멤버들이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은 밤.
인터넷 연예 커뮤니티는 늦은 밤답게 북적거렸다.
당장 다음 주로 다가온 모의고사의 압박감을 잊기 위해 수험생 최모 양도 그 북새통을 유랑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돌에겐 1g도 관심이 없는 그녀는 한눈에 레굴루스와 연관된 제목들만 클릭하고 있었다.
[이클립틱 아직도 입에 안 붙긴 하는데]레굴루스 먼저 봐서 그런지 이름 귀여운 거 같음ㅋㅋㅋ
애칭인 복숭아는 진짜 귀여운 거 맞음
– 진지하게 듣다가 팬덤 이름 이큽이라고 하는 줄 알고 기절할 뻔해서 이클립틱 상대적 천사 됨 ㅋㅋㅋㅋ
└ 아니 그건 어떻게 들어도 사레들린 거였자넠ㅋㅋ
– 다들 복숭아래서 일단 복숭아인 척하고 있긴 한데 사실 백도파라 뭔가 찔림
└ 뭔 소리야 복숭아는 황도지
└ ㅁㅈㅇ
흐뭇하게 화면을 쳐다보던 최모 양의 얼굴이 마지막에 달린 댓글을 보고 절로 찌푸려졌다.
– 레굴루스 불쌍해ㅠ NJ빨로 겁나 빨아 주더니 막상 까 보니까 노래도 구려 안무도 구려 츄마프로 떡상했음 뭐 하냐고 이름부터 구리잖아……ㅠㅠ 하 ㅈㅂ 실력 없으면 자체 프로듀싱 하지 말라고 왜 하냐고 도대체 왜!!!!! 걍 안 나대고 곡 받아 왔으면 이렇게까지 개같이 망하진 않았을 텐데 지팔지꼰이라 걍 애잔함……
‘뭐야, 이 저급 어그로는.’
역대급 노래와 안무에 애들 목과 관절을 걱정할지언정 퀄리티에 대한 불호글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든 요즘, 참아 주기 힘든 헛소리였다.
간만에 키보드를 신나게 두드리려던 최모 양은 우선 새로 고침을 눌렀다.
아니나 다를까 비웃는 댓글이 그새 우르르 달려 있었다.
└ 그래 울지 말고 말해 봐…
└ 응 ㅈ망돌인 니 새끼 걱정이나 해~
└ 얘 나랑 같은 곡 들은 거 맞음?
└ 하 타격감 제로라 뿌듯하다
└ 22222 욕해 봤자 결국 실력이 증명하죠ㅋ
└ 이참에 너도 입덕하자 츄마프 엑기스 모음집 링크 남김 꼭 봐바 ㅎㅎ
└ ㄱㅅㄱㅅ
흔히들 인터넷 어그로엔 먹이를 주지 말라고들 하지만 그냥 넘기기엔 너무 멍청한 댓글이었다.
대댓글을 보며 속이 시원해진 최모 양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새로 고침을 하기로 했다.
– 그래 정신 승리 열심히 해 둬ㅜ 어차피 음방 1위 한 번 못 하고 뒤에서 쭈글 대고 있을 건데 지금 말곤 또 언제 신나 있겠니^^
‘……허, 그냥 길 가던 어그로가 아니라 리스피릿 팬인가 보네. 견적 딱 나온다, 나와.’
최모 양은 어그로가 먼저 쓴 댓글과 지금 단 댓글을 다시 확인하며 코웃음을 쳤다.
다시 보니 걱정되는 양 써 놓은 개소리들이 리스피릿 팬들이 외쳐 대는 말과 꼭 닮아 있었다.
자고로 있는 놈들이 더 극성맞다지만 1군 아이돌 팬이 이렇게 품위 없게 굴다니.
어지간히 레굴루스의 데뷔 앨범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하긴, 쟤네 데뷔 때부터 수록곡엔 꼭 정찬양 참여했다고 여기저기서 부심을 얼마나 부려 댔는데.’
리스피릿 팬이 아닌 최모 양도 기억할 정도로 커뮤니티란 커뮤니티마다 유난을 그렇게도 떨어 댔다.
정찬양의 참여도 0퍼센트인 앨범이 리스피릿의 커리어에 떡하니 껴 버린 것만으로 이미 날벼락일 터였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 레굴루스의 데뷔 앨범이 츄마프 때의 두 곡 빼곤 전부 멤버들의 자작곡이라니, 배가 아플 만도 했다.
실제로 앨범 트랙 리스트가 공개되기 전까지 리스피릿의 타깃은 정찬양 닮은 꼴로 화제였던 범세혁이였다.
그러나 트랙 리스트가 공개된 이후론 정찬양과 비슷한 나이에 아이돌 작곡가 롤로 비교 대상이 될 소지가 다분한 예찬과 강해솔로 방향을 바꿨다.
그중에서도 예찬이 같은 나이에, 메인보컬 포지션, 게다가 그룹의 리더라는 점까지 겹치다 보니 아주 눈엣가시인 모양이었다.
예찬과 정찬양의 커리어를 비교한 글을 어찌나 퍼 날랐는지 어떤 커뮤니티에 들어가도 인기 글에 꼭 껴 있었다.
‘갓 데뷔한 신인이랑 4년 차랑 비교하는 게 말이 되냐고. 어디 레굴루스가 4년 차 돼 봐라. 리스피릿 같은 게 감히 같은 선상에 이름이나 올릴 수 있을지!’
* * *
레굴루스와 마찬가지로, 리스피릿 또한 내일 엔카운트다운으로 이번 활동의 스타트를 끊을 예정이었다.
“우리 이번이 첫방인데 1위라며?”
간만에 기분이 좋아 보이는 맏형 이희샘의 말에 최선이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요일 컴백이라고 리바디들이 무지하게 힘낸 모양이에요.”
“난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힘내면 그게 가능해? 1위 기준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야?”
“아, 희샘이 형! 4년 차가 그것도 모르면 어떡해요.”
“얼씨구. 박마루 넌 어디 잘 아는지 보자. 내가 지금부터 찾아서 확인할 테니까 한번 말해 보시지.”
멤버들이 음악 방송 순위 기준에 대해 찾아보며 웃고 떠드는 사이, 리스피릿의 막내 김대훈은 묘하게 위축된 표정으로 불안한 듯 연습실 문을 힐끔거렸다.
“김대훈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왜 그러고 있냐?”
어느새 이야기가 마무리됐는지 김대훈의 곁으로 다가온 이희샘이 어깨에 팔을 걸쳤다.
“아니, 찬양이 형은 언제 오나 해서요…….”
“너 찬양이한테 뭐 죄지었어? 왜 이렇게 주눅이 들었대?”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두 사람 곁으로 다가온 최선이 고개를 기울여 김대훈의 낯빛을 살폈다.
“죄는 무슨! 그런 거 아니거든요?”
김대훈이 날카롭게 반응하자 이희샘이 휘파람을 불었다.
“얘 정색하는 거 보니까 진짠데?”
“아, 대훈아, 또 무슨 죄를 지었어. 진짜 팀 분위기 어쩔 거야.”
박마루도 실실 웃으며 김대훈을 긁었다.
“진짜로 그런 거 아니라고요!”
“우리 막내, 미성년자 때 치는 사고 스케일도 이런데 성인 되면 어마어마하겠다, 정말.”
“어우, 형님. 우리 팀 계속 갈 순 있는 건가요?”
김대훈이 발끈할수록 형들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번졌다.
‘아오, 잘못은 내가 아니라 찬양이 형이 했다고요!’
김대훈은 이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던 남자의 심정임을 절절히 느꼈다.
라디오가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레굴루스의 데뷔 쇼케이스의 나머지 부분을 시청한 김대훈은 경악했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던 정찬양이 콕 집어 ‘질의응답’을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던 것과, 그 ‘질의응답’에서 일어난 아찔한 사고가 어쩐지 완전히 별개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기분 나쁜 추측이 등줄기를 스쳤다.
츄마프 PD의 난입으로 사태가 극적으로 마무리된 후, 김대훈은 저도 모르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찬양을 바라보았다.
정찬양은 김대훈의 어깨너머로 태블릿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대훈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정찬양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눈을 마주친 정찬양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 아쉽다.
……뭐가?
김대훈은 떠오른 물음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다.
돌아올 대답이 두려웠기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