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4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47화
태권 소녀 기해랑은 웬일로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얌전히 돌아온 기태랑과 다소 거리를 두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기태랑이 어색하게 물어 왔다.
“너 오늘은 도장 안 가?”
“이거 보고 갈 거야. 너는 도장 안 나오냐?”
“야, 너는 오빠한테 말투가 대체…… 하, 아니다. 말을 말자.”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띠꺼운 동생의 말투에 기태랑은 고개를 젓고 TV로 눈을 돌렸다.
[체리 씨, 오늘 정말 사랑스러운 무대를 준비했다면서요?] [네! 저희 버블리의 팡팡 튀는 매력을 담은 버블버블, 기대 많이 해 주세요!]화면에서는 엔카운트다운의 MC들이 다음 무대를 안내하고 있었다.
기해랑은 발을 들어 엄마 아들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왜?”
“레굴루스는 언제 나오는 거야?”
기태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PD님이야?”
“그런 것도 몰라? 방송도 나갔었잖아.”
심지어 같은 방송사 아니었냐며 기해랑이 면박을 주자, 기태랑은 황당함에 말을 더듬었다.
“아니, 그거랑 이거는 완전 별개…….”
“하여간 도움이 안 돼, 도움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이럴 줄 알았으면 남지유가 전 멤버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같이 갈 거냐고 물었을 때 따라갈 걸 그랬다.
‘어색할 거 같기도 하고, 레굴루스 무대도 보고 싶어서 집에 남은 건데 괜히 동생한테 욕만 얻어먹고…….’
같이 태권도를 하던 시절엔 그래도 위아래는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다음 차례는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성이죠!] [왕위를 계승하고 나타난 아홉 명의 왕자님들! 엔카에서 최초 공개하는 레굴루스의 무대입니다!]기태랑이 속으로 구시렁거리는 사이 드디어 레굴루스의 차례가 되었다.
남매의 눈이 동시에 빛났다.
MC석에서 무대로 이동한 카메라는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선우이경을 담았다.
얼핏 보면 옅은 데님 바지에 흰 셔츠를 걸친 가벼운 차림새였다.
그러나 카메라가 다가갈수록 셔츠에 알알이 수놓은 비즈들이 화려하게 빛났다.
이윽고 수록곡인 ‘Day & Day’의 전주가 시작되고, 선우이경이 소파 등받이에 팔을 올리며 랩을 시작했다.
[어제보다 좀 더 커진 보폭에의미 없는 리듬을 실어.]
‘쇼케이스랑 완전 다르게 무대를 꾸몄구나.’
기태랑이 새삼스레 감탄했다.
분명 준비 기간이 빠듯했을 텐데, 선우이경의 얼굴엔 말 그대로 여유가 흘러넘쳤다.
[그래, 산다는 건 이렇게평범한 매일이 쌓이는 반복이겠지.]
선우이경의 첫 파트가 끝나 갈 무렵, 뒤쪽에서 튀어나온 심상록이 소파 등받이에 걸터앉았다.
선우이경과 눈을 마주친 심상록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Day after day,단조롭게 이어진 매일의
A, B, C, D. Day by day,
이제 좀 부질 있게 엮여 봐.]
카메라가 심상록을 비추는 사이 나머지 멤버들도 소파 근처로 다가와 있었다.
선우이경의 옆자리에 무릎을 세워 앉은 예찬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예찬이 소파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화면이 바뀌었다.
[Someday,바라던 그곳에 도달하겠지.]
‘와, 순간 이동……!,이 아니라 사전 녹화! 화면 전환 끝내준다.
어느새 무대 중앙에 예찬을 중심으로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으로 선 멤버들이 한 몸처럼 각을 맞춰 움직였다.
기태랑은 침을 꿀꺽 삼켰다.
보통 수록곡은 어지간한 그룹이 아닌 이상 이쯤에서 자를 법한데, 엔카운트다운은 통 크게 풀 버전을 방영할 모양이었다.
무대에 완전히 몰입한 기태랑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지! 데바데는 댄스 브레이크가 하이라이트인데 그걸 자르면 안 되지!’
과장을 보태지 않아도 백 번 넘게 돌려 본 그 댄스 브레이크가 시작되었다.
‘와, 이렇게 보니까 또 다르다…….’
직캠이 많이 올라온 터라 여러 각도로 본 무대였으나, 방송국 카메라는 또 달랐다.
무엇보다 채은성의 우아하고 힘 있는 현대 무용 동작을 천장에서 잡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으아, 진짜 학원 등록해?’
지난 쇼케이스를 처음 봤을 때도 충동적으로 근처의 현대 무용 학원을 알아봤던 기태랑이었다.
팬들의 엄청난 함성과 함께 ‘Day & Day’의 무대가 끝나고 바로 타이틀곡인 ‘Only my you’가 시작되었다.
잠깐 흐려졌던 화면이 세트를 바꾼 무대를 비췄다.
테일러드 재킷에 타이, 그리고 반바지 차림을 한 레굴루스 멤버들은 저마다 다른 포즈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
[You, Only my you.]은은히 흐르는 전주에 예찬의 부드러운 저음이 섞였다.
‘타이틀곡도 쇼케이스랑 오프닝이 다르네?’
분명 리프트를 타고 올라왔었는데, 지금 포즈는 오히려 뮤직비디오의 도입부와 닮아 있었다.
[하예찬! 심상록! 선우이경!] [강해솔! 범세혁! 우휘겸!] [채은성! 정의탁! 배새벽!]본격적으로 곡이 시작되기 전, 팬들이 박자에 맞춰 멤버들의 이름을 외쳤다.
‘채은성! 정의탁! 배새벽! ……아, 기해랑 진짜 왜 도장 안 간 거야!’
기껏 응원법을 열심히 외워 왔건만, 옆에 앉아 있는 기해랑의 눈치가 보여서 멤버들을 속으로만 부를 수밖에 없었다.
[오직 나의 너를 만나고 싶어.나의 너에게 바치고 싶어.]
배새벽이 입을 열기 무섭게 나머지 멤버들이 빙글 돌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악과 완벽하게 들어맞는 동작과 박자에 기태랑은 소름이 돋은 팔뚝을 쓸어내렸다.
혼자 앉아 있던 배새벽은 양옆에선 선우이경과 심상록의 손을 잡고 허리의 힘으로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노래를 부르면서 말이다.
[서서히 너의 색으로새벽녘의 하늘을 물들여 가.]
‘저게 가능해?’
남보다 운동에 이골이 난 기태랑이기에 더 놀라웠다.
배새벽은 저렇게 온몸을 쓰는 동작을 하면서 호흡도 음정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애들은 정말 빨리 크는구나…….’
같이 ‘Don‘t bother’를 연습할 때도 분명 잘하긴 했지만, 저렇게 다른 차원의 괴물 같진 않았는데 놀라운 일이었다.
이어진 강해솔의 파트는 감히 평가하기조차 송구했다.
[절대라는 말을믿어 본 적 없는 나지만,
널 만나고 완전히 달라졌어.]
꽉 맨 넥타이가 답답한지 검지로 넥타이를 헐겁게 만든 강해솔이 카메라를 향해 씩 웃었다.
[네가 영원을 바란다면내가 영원히 바라볼게,
Only my you.]
“와…….”
몇 번을 들어도 놀라우리만치 달달한 가사에 기태랑은 입 밖으로 감탄을 뱉고 말았다.
심지어 속삭이듯 마지막 파트를 읊은 강해솔은 짧지만 부드럽게 한쪽 눈을 감았다.
츄마프 당시 강해솔과 같은 조가 된 것은 마지막 경연 딱 한 번이었다.
기태랑은 완벽주의자 기질이 다분하던 까칠하고 살짝 무서운 강해솔을 떠올렸다.
‘그 해솔이 형이 저런 가사를 썼다는 것만으로 이미 놀라운데, 그게 잘 어울리니까 더 놀랍다.’
[네가 지켜봐 준다면별을 따는 것쯤이야.
그러니 언제나 나를 바라봐 줘.]
정의탁이 미성이 귀를 사로잡았다.
그 뒤로는 둘씩 짝을 지은 멤버들이 쉴 새 없이 페어 안무를 이어 가고 있었다.
뒤이어 자연스럽게 정의탁과 자리를 바꾼 범세혁의 파트가 이어졌다.
문득 레굴루스의 쇼케이스를 보고 난 후 남지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솔직히 떨어져서 지금도 아쉽긴 한데, 레굴루스 애들 합이 기가 막히긴 해. 얼굴도 다 다른 느낌으로 잘생긴 데다가 키도 훤칠하고. 음색도 겹치는 사람이 없는데 조화가 괜찮거든.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이런 조합이 나오다니, 기적에 가깝다며 남지유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태랑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 형, 저도 목소리는 안 겹치는 거 같고, 키는 185cm인데여. 저도 레굴루스랑 합이 괜찮을 거 같지 않아여?
천진난만한 기태랑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남지유가 대답했다.
– 태랑아…… 너는 춤이랑 노래가 조금…… 알지?
‘알긴 뭘 알아여!’
안쓰러운 듯 자신을 바라보던 남지유의 표정을 떠올린 기태랑은 속으로만 버럭 화를 낸 다음 다시 화면 속 레굴루스에 집중했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너만 내 곁에 있다면.
Thank you, my you.
넌 내게 축복 그 자체.
다른 게 대체 뭐가 중요할까.
네가 내 옆에 있는데.]
선우이경의 볼로 타이가 조명 빛을 받아 반짝였다.
금발에 짧은 머리가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이젠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 사이 절정으로 치달은 노래를 이끄는 것은 레굴루스의 리더이자 기태랑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하예찬이었다.
[그래, Only my you.오직 나의 너를 만나고 싶어.]
같이 합숙하며 가까이에서 볼 때도 대단했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인 게 느껴졌다.
‘만약 아이돌의 별이 있다면, 예찬이 형은 분명 거기서 태어난 사람일 거야.’
[이제 Only my you.오직 나의 너를 만나러 왔어.]
타이틀곡이 끝나고 기태랑은 벅차오른 감동을 참지 못해 소파에서 일어났다.
짝짝짝짝.
기태랑은 비장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놀리려면 놀리고, 욕하려면 욕해라, 기해랑!’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기해랑의 뾰족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기태랑은 슬며시 손을 멈추고 소파를 돌아보았다.
맙소사.
“……너 울어?”
기태랑과 대련하다가 잘못 맞아 코피가 터졌을 때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던 기해랑이,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뭐래, 사람 우는 거 처음 보냐?”
기해랑은 소매로 거칠게 눈물을 닦으며 짜증스럽게 기태랑을 노려보았다.
기태랑은 잠시 화면과 기해랑을 번갈아 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네가 이렇게까지 레굴루스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어. 음, 내가 멤버들이랑 만나게 해 줄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해랑이 벌떡 일어났다.
“네가 뭔데 레굴루스한테 누굴 만나 달라 말라야? 너, 그딴 짓 하면 진짜 그날이 제삿날인 줄 알아라? 어?”
코앞에 삿대질을 하며 엄마 아들에게 무섭게 윽박지른 기해랑은 기분을 잡쳤다며 도복을 챙겨 든 채 그대로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아니, 나는 나 때문에 네가 레굴루스를 알았으니까…… 그리고 아까부터 오빠한테 너라고…….”
홀로 거실에 남은 기태랑은 상대에게 닿지 않을 말을 기운 없이 흘렸다.
* * *
기태랑이 동생의 하극상에 망연자실하던 그 무렵, 예찬은 또다시 화장실에서 반갑지 않은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아, 레굴루스 하예찬 맞죠? 대훈이가 워낙 얘기를 많이 해서. 혹시 나 알아요?”
‘화장실에 무슨 마가 끼었나.’
굿이라도 한판 벌이면 좀 나아질까 생각하며 예찬은 사회인의 가면을 썼다.
“당연히 알죠. 리스피릿의 박마루 선배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후배의 싹싹한 인사에 스무 살 박마루가 커다란 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아, 좀 쑥스럽네요.”
리스피릿의 메인 댄서이자 예찬과 같은 날 LEE 엔터의 연습생이 되었던, 한때는 둘도 없는 친구였던 남자가 기억 속 그대로 멋쩍은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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