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5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53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고작 팔씨름 하나에 이렇게 목숨 걸고 있는 게 좀 우습단 생각이 들었다.
“시작!”
그러나 막상 시합이 시작되자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예찬은 빠르게 경기에 몰입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우휘겸의 셔츠의 등짝만 봐도 우휘겸과 배새벽이 지금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지 느껴졌다.
“아, 반팔 입힐걸…….”
근처에 서 있던 스타일리스트가 아쉽다는 듯 탄식했다.
“오오!”
막상막하로 보였던 전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승패가 갈렸다.
굳건해 보이던 우휘겸의 팔이 점차 바닥을 향해 흔들렸고, 이내 심판이 판정을 내렸다.
“배새벽 선수의 승리입니다!”
배새벽이 숙였던 몸을 바로 했다.
그제야 제대로 얼굴이 보였다.
얼핏 인형처럼 보이는 섬세한 얼굴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말끔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으응, 너도.”
이번에도 우휘겸에게 먼저 인사를 한 배새벽이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브이.”
무표정으로 당당하게 브이를 날리는 배새벽을 향해 형들이 미친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배새벽, 사랑해!”
“새벽아, 진짜 찢었다!”
“형 멋있어요!”
‘방금 형 누구야?’
예찬의 경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멤버들은 더 크게 배새벽을 부르짖었다.
“배새벽! 배새벽! 배새벽!”
거의 광신도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쉽사리 열기가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았는지, 멤버들과 함께 배새벽을 부르짖는 신 PD를 대신해 FD가 나섰다.
“여러분, 아직 4강 경기가 남아 있습니다. 조금만 조용히 해 주세요.”
그렇다.
FD의 말대로 이번 팔씨름 대회의 하이라이트이자, 레굴루스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가 바로 이어질 예정이었다.
“1번 채은성 선수와 5번 하예찬 선수, 앞으로 나와 주세요.”
“비장한 BGM 좀 깔아 주세요!”
선우이경이 손을 들고 외쳤다.
‘진작 떨어진 놈이 말이 많군.’
예찬은 4강 진출자다운 태도로 턱을 치켜들었다.
채은성도 지지 않고 거만하게 예찬을 내려다보았다.
“용케 여기까지 올라왔네.”
“내가 할 말이야.”
“졌다고 울지 마라.”
“너야말로 시합 한 번 더 해서 졌다고 변명할 거면 지금이라도 더 쉬겠다고 해. 얼마든지 기다려 줄 테니까.”
“저 여러분, 한마디씩만 하시면 됩니다만…….”
가시가 박힌 말들이 오고 가는 사이에 끼어 있는 게 불편했는지 FD가 은근히 말을 끊었다.
채은성과의 신경전은 악수할 때조차 끊이질 않았다.
“의탁이랑 붙으면서 너무 힘을 뺀 거 아니야? 영 맥을 못 추는데?”
“너 설마 이게 힘을 다 준 건 아니지? 태어난 지 두 달 반 된 강아지가 물어도 이것보단 더 간지럽겠는데?”
“당연히 아니지. 제대로 잡으면 네 가느다란 손이 버티지 못하니까 봐주고 있는 거야.”
“너, 지금 인터넷에 허장성세라고 검색해 볼래? 딱 너를 위한 사자성어인데.”
“저기, 두 분. 지금은 손에 힘주시면 안 되는데요…….”
“…….”
이번에도 FD가 개입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조용해졌다.
잠시라도 틈을 보였다간 또다시 입을 바쁘게 놀릴 것 같았는지 FD가 빠르게 시합을 진행했다.
“그럼 준비하시고, 시작!”
‘좋아, 단숨에……!’
쿵!
생각을 이어 가기도 전에 단숨에 시합이 끝났다.
예찬은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닿은 자신의 손등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잡고 있던 손을 빼낸 채은성이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어…… 이 정도로 부실하다니, 뭔가 내가 미안한데……?”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어린애를 때려눕힌 기분이라며 채은성이 찝찝함을 감추지 못했다.
예찬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
– 운이 좋았네, 채은성.
– 시합 한 번 더 해서 졌다고 변명할 거면 지금이라도 더 쉬겠다고 해. 얼마든지 기다려 줄 테니까.
– 너 설마 이게 힘을 다 준 건 아니지? 태어난 지 두 달 반 된 강아지가 물어도 이것보단 더 간지럽겠는데?
지금까지 뱉은 말들이 비수가 되어 예찬을 찔렀다.
“하예찬, 왜 그래? 혹시 다쳤어?”
시간이 지나도 예찬이 고장 난 것처럼 그대로 있자 채은성이 걱정스레 고개를 들이밀었다.
“무슨 문제 있어?”
“설마 손목 다친 거 아니지?”
주위에서 걱정하는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들은 예찬은 곧장 얼굴을 들었다.
저놈들까지 다 몰려왔다간 진짜 쪽팔려서 관짝에 못 박고 드러누워야 할지 모른다.
“괜찮습니다. 완전 멀쩡해요.”
이미 화살은 시위를 벗어났으니, 차라리 뻔뻔하게 나가야겠다.
예찬은 당당히 얼굴을 들고 멤버들과 스태프들에게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어필했다.
“……너 얼굴 이렇게 빨개진 거 처음 봐.”
마음과 달리 얼굴은 제어가 안 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미 퇴로는 없었다.
예찬은 마지막 자존심을 부렸다.
“내 얼굴 원래 이 색깔인데.”
“……그래, 그런 거로 하자.”
채은성이 안쓰러운 듯 표정을 누그러트렸다.
‘이게 아닌데.’
동정 어린 시선에 가냘프게 버티고 있던 자존심마저 바스러졌다.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간 예찬을 정의탁이 위로했다.
“거, 사람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있는 거잖아요. 컨디션만 좋았으면 1초 컷까진 아니었을 거예요.”
예찬과 호각을 다투다 패배한 정의탁으로선 당연히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탁은 1초 컷 미만이니까.
“원래는 좀 쉬었다가 결승전을 하려고 했는데…… 채은성 선수, 괜찮겠어요?”
FD는 묘한 침묵과 함께 예찬 쪽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너무 쉽게 꺾어서 지칠 것도 없지 않았냐는 뜻이었다.
채은성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보다 오히려 새벽이가 지쳐 있을 거 같은데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진 예찬이 휘청거렸다.
굴욕이었다.
“저 괜찮아요.”
“그럼 바로 결승을 진행할까요? 1번 채은성 선수는 이쪽으로, 7번 배새벽 선수는 이쪽으로 서 주세요.”
덤덤한 얼굴의 배새벽과 살짝 뺨이 상기된 채은성이 FD의 지시대로 자리를 잡고 섰다.
“악수 한 번 해 주시고요.”
FD가 조종하는 마리오네트라도 된 것처럼 두 사람은 얌전히 악수를 주고받았다.
“자, 다음은 서로를 향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멋진 시합을 하자.”
“서로 최선을 다해요.”
채은성은 준결승과는 다르게 점잖은 모습을 뽐냈다.
“그럼 이번엔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을 가족들에게 영상 편지 한번 갑시다!”
“네?”
“왜 그런 짓을…….”
결승이라고 FD가 많이 신이 났나 보다.
채은성과 배새벽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으나, 하라는 대로 가족들에게 짧은 영상 편지를 남겼다.
그 후로도 FD는 삼행시 등 이상한 것을 요구했고, 두 사람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얌전히 요청에 부응했다.
“훗, 결승전을 치르기 전에 완벽하게 체력을 회복시켜 주려고 시간을 끄는군.”
옆에 서서 그 꼴을 지켜보던 신 PD가 흐뭇하게 중얼거렸다.
‘오히려 체력이 떨어질 거 같은데요.’
원래도 제정신이 아닌 양반이었지만 오늘은 상태가 특히 심각했다.
이런 스포츠 대결은 앞으로 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예찬은 신 PD와 조심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자, 그럼 준비되셨죠? 시작!”
FD가 드디어 시합의 시작을 알렸다.
느슨해져 있던 분위기에 순식간에 날이 섰다.
침묵 속에 치열한 공방이 오고 갔다.
쿵.
마침내 한 사람의 손등이 바닥에 가볍게 닿는 소리가 났다.
“……배새벽 선수의 승리입니다!”
30여 초 만에 배새벽이 채은성의 팔을 완전히 눕혔다.
“제1회 레굴루스 배 팔씨름 대회의 우승자는 배새벽 선수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번에도 대전 상대를 향해 똑같은 인사를 남긴 배새벽이 카메라를 찾았다.
가장 가까운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그려 보인 배새벽은 곧장 다음 카메라를 찾았다.
아무래도 회의실 내에 있는 모든 카메라에 브이를 보여 줄 모양이었다.
‘무표정이라 잘 모르겠지만 신나긴 신난 모양이네.’
카메라를 찾아 떠나는 발걸음에 어쩐지 리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칫, 은성이 형이 이겼어야 그나마 상대가 너무 강했다고 얼버무리는 건데!”
뒤에선 정의탁이 음흉한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사이 제작진들은 3위 결정전을 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3위까지 상품을 주기로 했으니 4강 탈락자들끼리…… 음…….”
힐끔힐끔 이쪽을 보는 게 어차피 예찬이 우휘겸에게 상대도 되지 않을 게 뻔한데, 굳이 한 번 더 예찬에게 수치를 줘야겠냐는 눈치였다.
‘제길.’
마음 같아선 호기롭게 한판 해 보겠다고 나서고 싶었다.
그러나 채은성에게 대판 깨지고 정신을 차린 이성이 예찬을 말렸다.
“저기.”
얌전히 패배를 승복하고 자리로 돌아왔던 채은성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회의실 안의 시선이 채은성에게 모였다.
“아직 라이브까지 시간도 있으니, 차라리 정확하게 순위를 매기면 어떨까요? 새벽이가 1등인 건 확실하지만 나머지는 대진표 운도 있었을 거 같아요.”
거기까지 말한 채은성은 반대편에 서 있는 우휘겸을 바라보았다.
채은성의 눈동자 깊은 곳이 호승심으로 화르륵 타올랐다.
“저, 휘겸이랑 제대로 붙어 보고 싶어요.”
난데없는 도전에 우휘겸의 눈이 커졌다.
제작진들이 잠시 눈빛을 주고받더니 대표로 신 PD가 나섰다.
“선수, 아니 멤버분들도 괜찮다면 그렇게 할까요?”
그렇게 끝난 것 같았던 팔씨름 대회는 곧장 2막을 열었다.
토너먼트에서 만났던 멤버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들과 거의 한 번씩 시합을 진행한 결과.
1위부터 9위까지의 순위가 정확히 정해졌다.
김상희 작가가 화이트보드에 적힌 토너먼트 표 옆으로 또박또박 순위를 적어 나갔다.
1st. 배새벽
2nd. 우휘겸
3rd. 채은성
4th. 선우이경
순위를 전부 다 적고 몸을 돌린 김상희 작가는 바로 뒤에 서 있던 예찬과 눈을 마주치더니 어깨를 움찔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이내 김 작가의 눈에 연민의 감정이 서렸다.
5th. 심상록
6th. 강해솔
7th. 범세혁
8th. 하예찬
9th. 정의탁
8위.
다른 말로 끝에서 두 번째.
너덜너덜해진 오른팔이 받아 온 초라한 성적표에 예찬은 넋이 나갔다.
‘범세혁의 오른손에도 졌어…… 심지어 해솔이 형은 이겼는데……!’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예찬이 쉽사리 승복하지 못하고 있을 때, 꼴찌 정의탁이 다가왔다.
정의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니, 예찬이 형. 예전에 ‘Erased’ 본무대 때 수영이는 어떻게 잡았던 거예요? 그때 진짜 팔 힘 진짜 세다고 생각했는데. 위기의 상황에 갑자기 발휘되는 초인적인 힘 같은 거였어요?”
예찬은 정의탁에게 눈을 흘기고 단호히 대답했다.
“시끄러워, 9등.”
“아니, 8등이나 9등이나!”
“그래, 9등아.”
씩씩거리는 정의탁을 내버려 둔 예찬은 상위권 멤버들이 모여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팔이 이렇게 얇은데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온 거야?”
“아무래도 새벽이는 아기장수 우투리가 분명해. 겨드랑이에 날개 있는 거 아니야?”
‘아니, 네놈들 전부 우투리다.’
자신이 약한 게 아니라 저놈들이 괴물인 게 분명하다며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 뭔가 되게 없어 보이는 생각하고 있죠? 얼굴에 티 나요.”
“응, 9등.”
“아, 진짜!”
그렇게 8등과 9등에겐 상처만 남긴 제1회 레굴루스 배 팔씨름 대회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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