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5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57화
다음날부터는 비슷한 일상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음악 방송이 빠짐없이 잡혀 있었다.
사전 녹화와 생방송, 그리고 생방송이 끝난 후 사인회까지 빡빡한 일정이었다.
[네, 생방송 더스테이지! 드디어 6월의 첫 번째 위너 공개만을 남겨 두고 있는데요!] [전 세계 K-pop 팬들이 직접 뽑은 더스테이지 위너를 함께 확인해 볼까요?]MC들의 말에 예찬은 자세를 좀 더 바로잡았다.
레굴루스가 첫 출연과 동시에 처음으로 1위 후보에 오른 ‘더스테이지’는 3대 지상파 중 하나인 HBS의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는 음악 방송이었다.
케이블 방송이니만큼 보통 연차가 쌓인 아이돌들은 나오지 않았으나, 현 아이돌 1군 중의 1군인 리스피릿은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어김없이 출석 도장을 찍었다.
[먼저 사전에 집계된 음원과 음반 점수입니다.] [다음으로 동영상과 방송, 사전 투표 점수입니다.] [생방송으로 진행한 실시간 앱 투표 점수 보여 주세요.]MC들의 말과 동시에 1위 후보에 남은 다섯 팀의 점수가 실시간으로 프롬프터에 표시되었다.
긴장한 멤버 몇이 가슴 앞에 양손을 곱게 모았으나 사실 결과는 투명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점수를 합친 총점 공개해 주세요.]뻔하디뻔한 결과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6월의 첫 번째 더스테이지 위너는, ‘리스피릿’! 축하합니다!]MC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승자를 위해 준비된 폭죽이 터졌다.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은 정찬양이 환하게 미소 지었고, 객석은 리스피릿의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독한 놈.’
더스테이지는 특이하게 방송에 출연한 가수들로만 순위를 집계했다.
리스피릿이 없었다면 오늘 1위는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은 레굴루스였을 거란 뜻이다.
‘그거 막아 보겠다고 거들떠도 안 보던 더스테이지에 아득바득 기어 나오냐?’
자신과 팀원들을 갈아 넣어서라도 예찬과 레굴루스의 앞길에 재를 뿌리겠다니, 대단한 의지였다.
예찬은 분노를 박수로 승화시켰다.
열렬히 박수갈채를 보낸 예찬과 레굴루스 멤버들은 리스피릿의 상투적인 1위 소감을 들은 후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이 짓을 아마 이번 주 내내, 그리고 다음 주까지 해야 하는 건가. 아, 더스테이지랑 쇼챌린저는 리스피릿도 이번 주가 첫 출연이니 다다음주까지 박수 셔틀을 해야 할지도.’
각오했던 바이지만 카메라를 피해 은근히 거만한 시선을 보내는 정찬양이란 정말 꼴 보기 싫은 존재였다.
그렇게 평이하게 저물어 가던 일상이 급변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얘들아, 이리 좀 나와 봐!”
샤워 순서를 기다리며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심상록이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심상록답지 않은 다급한 목소리에 예찬은 머리를 말리던 것도 팽개치고 재빨리 거실로 나왔다.
“무슨 일인데요?”
“이거…….”
심상록은 어째서인지 손가락질이 아니라 곱게 편 양손으로 공손하게 브라운관을 가리켰다.
예찬은 그 손을 따라 브라운관으로 시선을 옮겼다.
[와, 진짜 너무 깜짝 놀랐어요! 이서후 씨, 예능에서 정말 보기 어려운 얼굴 아닙니까?] [하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저 그렇게 어려운 남자 아닌데 말이죠.]“푸흡!”
배새벽이 사람 좋게 웃는 자기 부친의 얼굴을 보고 마시던 우유를 시원하게 뿜었다.
옆에 서 있던 우휘겸이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으로 묵묵히 뒷수습을 시작했다.
예찬은 화면 상단의 로고와 방송사를 빠르게 확인했다.
‘DBS의 화여주?’
말할 화(話)에 더불 여(與), 술 주(酒) 자를 써서 ‘화여주’란 제목을 붙인 프로그램.
매주 화요일 밤, 유명 MC가 각종 분야의 스타들을 초대해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하는 특별할 것 없는 포맷이었다.
그러나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 MC 특유의 입담과 작가들의 철저한 사전 조사로 꽤 인기가 있었다.
리스피릿 또한 막내인 김대훈이 성인이 된 이후에 다같이 출연했었다.
‘하지만 이서후가 나왔던 적은 없는데.’
무엇보다 이서후 같은 스타 중의 스타가 출연한다면 몇 주 전부터 시끌시끌했어야 했다.
[하하하, 제가 정말 열심히 졸랐습니다. PD님, 저 칭찬 좀 해 주세요!]예찬의 의문을 풀어 주듯, 이번에 이서후와 같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 최명식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아하니 메인 게스트인 최명식이 깜짝 게스트 형식으로 이서후를 부른 모양이었다.
[이서후 씨, 우리 명식 씨랑 엄청 가까운 사이인가 봐요. 우리 작가들이 그렇게 매달릴 땐 웃기만 하셨다면서 이렇게 얼굴을 보여 주시다니.] [하하하, 왜 이렇게 과장하세요.] [흠흠,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국민 배우 이서후의 절친이라고요.] [어우, 감사합니다. 그럼 우리 서후 씨가 온 기념으로 건배 한 번 할까요?]‘처음 듣는 얘긴데.’
화면을 뚫을 기세로 노려보며 예찬은 심상록 옆에 앉았다.
잠시 술잔을 기울인 세 사람은 곧 근황 이야기에 들어갔다.
[제가 요즘엔 예능에 잘 출연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 예전엔 아니었거든요. 친근의 아이콘 하면 이서후였던 시절이 있었어요.] [아, 알죠, 알죠. 우리 DBS 불후의 명작 ‘알콩 메이커’가 있지 않습니까?]MC의 발언에 배새벽은 얌전히 우유가 든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까 같은 불상사를 일으키지 않기 위함인 듯했다.
최명식이 손뼉을 짝 치며 반가운 티를 냈다.
[알콩 메이커! 진짜 오랜만에 듣는데요? 알콩이는 잘 있어요, 서후 형?] [잠깐 스톱! 이서후 씨가 형이에요?] [아, 왜 이러세요! 저 절대 노안 아닙니다! 서후 형이 동안인 거예요!]최명식의 우는 소리에 스튜디오가 한바탕 웃음으로 뒤집혔다.
분위기가 가라앉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서후였다.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사랑하는 배 대표님과 우리 알콩이랑 같이 DBS에서 오래 신세를 졌었죠. 요즘 우리 알콩이, 아니, 아들이 연예계에 발을 딛게 되면서 알콩 메이커가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잖아요?]이쯤 되니 예찬은 이서후가 왜 이 프로그램에 나왔는지 확신이 들었다.
최명식이 어수룩한 얼굴로 되물었다.
[알콩이가 연예계요? 언제? 어디요?] [이봐요, 명식 동생. 세상 돌아가는 걸 너무 모르는 거 아닌가요? 우리 알콩이, 아니 배새벽 군! 아이돌로 데뷔했어요. 요새 얼마나 핫한데요!]이서후와 동갑인 MC가 최명식을 향해 혀를 찼다.
동시에 자막으로 레굴루스의 단체 사진과 이름이 떠올랐다.
[(사진) 빛나는 아이돌계의 신예, 레굴루스(REGULUS)!]“헉! 우리다!”
“와, 새벽이 이름 나왔다.”
정의탁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숨을 들이켰다.
그새 샤워를 마치고 합류한 범세혁은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좋아했다.
그 옆에선 우휘겸이 우유를 닦은 수건과 바닥을 적시는 물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심상록이 보면 난리 나겠는데.’
TV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는 심상록을 곁눈질한 예찬은, 우선 범세혁이 어깨에 장식처럼 걸치고 있는 수건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감싸 놓았다.
그사이 걸레를 가져온 우휘겸이 바닥의 물을 훔쳤다.
[하하, 저희 애들이 좀 핫하긴 하죠.]MC의 칭찬을 이서후는 빼지 않고 받더니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건 제가 여러분을 위해 가져온 레굴루스의 데뷔 앨범이에요.] [레굴루스? 팀명이에요?] [응, 작은 왕이라는 뜻을 가진 사자자리에 속한 별 이름이거든. 그래서 로고에 이렇게 사자랑 별이 들어간 거야.]이서후의 막힘없는 설명에 맞춰 데뷔 앨범에 박혀 있는 레굴루스의 로고가 확대되었다.
“와, 아버님 정말 감사하다…….”
심상록이 순수한 감탄을 흘렸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굴면 바보라도 알 수밖에 없었다.
이서후가 왜 그토록 사양하던 예능에 친히 걸음을 한 것인지 말이다.
[앨범은 아드님께 받아 온 거예요?] [아니요. 제가 사비로 사 왔습니다. 제 아들이라 팔이 안으로 굽는 게 아니라, 진짜 들어 있는 노래가 좋더라고요. 다들 한 번씩 꼭 들어 주세요.] [서후 씨, 이제 보니까 명식 씨에 대한 의리가 아니라 아드님 응원하러 나온 거 같은데요?] [하하, 세상엔 겸사겸사라는 좋은 단어가 있지요.]심지어 이서후는 자신의 의도를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지난번에 응원한다는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지원사격 한 번 제대로 해 주는군.’
노골적으로 홍보를 하면 자칫 비호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으나 이서후는 예외였다.
열에 아홉은 호감을 느끼는 번듯한 외형, 그 외형 못지않은 신이 내린 연기 실력으로 국민 호감 이미지를 가진 이서후였다.
그러니 이런 팔불출 기질마저 ‘알콩 메이커’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며 훈훈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예찬의 예상대로 방송은 이서후와 그의 아들이 속한 그룹 레굴루스에 대하여 호의적으로 흘러갔다.
[서후 씨가 특히 추천하는 곡이 있어요?] [흠, 사실 곡들이 거의 같은 팀 형들이 작사 작곡한 곡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제 귀엔 다 너무 번듯해서 딱 하나를 꼽기가 좀 그런데…….] [와, 작사 작곡을 직접 했어요?] [아, 그런 거 들어봤어요. 자체 프로듀싱 돌이라고 하지 않나요? 어우, 멋지다.] [명식 씨도 멋진데요. 그런 요즘 말을 어디서 들었어요?]이서후는 자연스럽게 멤버인 예찬과 강해솔이 작사 작곡을 맡았다는 정보를 풀었다.
MC와 최명식도 그런 이서후에게 열심히 장단을 맞춰 주었다.
[와, 이야기하다 보니까 ‘알콩 메이커’ 너무 그립네요.] [인정합니다. 우리 알콩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아기 아니었습니까. 휴, 전 아기를 낳으면 다 알콩이 같을 줄 알았어요.] [명식 씨, 이거 방송 나가면 집에 못 들어가겠는데요?] [괜찮아요. 저희 아들은 저 나오는 프로그램은 절대 안 보거든요, 하하하.]자학 개그를 친 최명식이 호탕하게 웃었다.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경청하던 이서후가 말을 받았다.
[저도 가끔 ‘알콩 메이커’ 시절이 그립더라고요. 분명 테이프에 녹화해 뒀었는데 다 어디로 사라진 건지…….] [와, 테이프 녹화! 진짜 오랜만에 듣네요. 진짜 요즘은 다시 보기가 잘 되어 있는데, 고전 프로그램은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요. 이거 어떻게 안 됩니까, PD님?] [어떻게 좀 해 주세요, PD님!]이서후가 아쉬운 듯 말끝을 흐리자 MC와 최명식이 거들었다.
그 후로도 세 사람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서후가 입을 열면 어떤 주제로 시작하든 결국 배새벽과 레굴루스의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집이라…… 요샌 알콩이가 없어서 신혼 분위기가 됐어요.] [아니, 형님. 제가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알콩이가 있을 때도 배 대표님이랑 형님은 항상 꿀 떨어지는 신혼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어요!]거나하게 취한 최명식의 말에 이서후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도무지 다 큰 아들이 있을 것 같은 얼굴은 아니었다.
이서후의 소년 같은 미소를 보자 묘한 예감이 예찬을 휘감았다.
이 짧은 방송이 어쩌면 레굴루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줄지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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