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5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58화
[어우, 웃기만 해도 화보네요.] [원래 예능이 이렇게 좋은 거였어요? 나 1년 치 칭찬을 다 받고 가겠어.]민망하다며 얼굴에 손부채질 한 이서후가 또다시 자연스럽게 배새벽과 멤버들을 화제에 올렸다.
[아내님이랑 신혼 생활을 즐기는 건 정말 좋은데, 아들 방이 빈 걸 보면 좀 쓸쓸하기도 해요. 이렇게 빨리 떨어져서 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그럼요, 그럼요. 자식이 독립하면 마음이 허하죠.]이미 자식들을 다 키운 MC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신나게 주억거렸다.
[지금 알콩이는 어디 사는 거예요?] [멤버들이랑 숙소에 살아요. 그룹으로 활동하니까 한집에 사는 게 스케줄 하러 다니기 편하잖아요.] [아, 그렇겠다. 멤버가 아홉이면 그거 다 픽업하다가 한나절이지.]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직 아들을 끼고 사는 최명식은 언젠가 다가올 자녀의 독립이 걱정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최명식이 물었다.
[연락은 자주 해요?] [아휴…….]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서후가 말도 말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과연 국민 배우답게 자연스러운 표정 변화가 일품이었다.
[형들이랑 사니까 너무 재미있나 봐요. 집에 도통 연락을 안 하네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음악 방송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죠, 뭐.] [어우, 새벽 씨가 너무했네. 새벽 씨, 이 방송 보면 아버님께 전화 한 통 해 주세요! 알겠죠?]카메라를 향해 MC가 말하자 멤버들의 시선이 짠 것처럼 배새벽에게 모였다.
배새벽은 부루퉁하게 뿔이 나서 화면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런, 아직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한 보따리인데 벌써 끝마칠 시간이라고 합니다. 오늘 어떠셨나요?] [네, 오늘 정말 재미있었고요. 흔쾌히 함께 나와 준 이서후 배우님께 감사합니다! 저희 두 사람이 나오는 ‘일필휘지’가 다음 달에 개봉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 저도 하는 건가요? ‘일필휘지’ 파이팅입니다!] [서후 씨, 레굴루스 이야기는 안 하나요?] [방송 내내 열심히 했으니 PD님이 충분히 살려 주실 거라 믿습니다.]MC의 능청스러운 질문에 이서후가 씨익 웃었다.
이서후의 바람대로 오늘 방송에서 레굴루스는 무척이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편집되었다.
방송이 끝난 후엔 레굴루스의 ‘Only my you’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이야, 새벽이 아버님이 진짜 발 벗고 홍보해 주셨네.”
“난 오늘부터 이서후 배우님 완전 팬이야! 이제부터 ‘서후앓이’라고 불러 줘!”
조금 전 샤워를 끝내고 합류한 선우이경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새 이서후의 팬클럽 명을 검색해 본 범세혁도 한마디 거들었다.
예찬이 보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면서도 효과적인 홍보였다.
‘아이돌, 특히나 남자 아이돌의 곡은 믿고 걸러 듣는다는 풍조가 팬덤 밖으로 전반적으로 깔린 이 시대에 타깃층이 아닌 사람들의 유입은 어려운 일이니까.’
레굴루스의 곡을 접하게 된 계기가 이서후에 대한 호감, 혹은 그 이서후가 그렇게 떠들어 대는 레굴루스가 뭔가 하는 궁금증이어도 상관없었다.
‘알콩 메이커’에 대한 추억이나, 성장한 알콩이에 대한 그리움이라면?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계기 같은 건 결국 사소한 일이지 않은가.
중요한 건 그 이후였다.
예찬은 언제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음악을 더 많은 사람이 들어 주기를 바랐다.
‘아이돌이란 정체성을 무엇보다 우선해서 앨범을 만들지만, 그렇다고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부끄러운 무대를 하진 않으니까.’
그렇게 새로 관심을 가진 사람 중 단 한 명이라도 레굴루스를 좋아하게 된다면 풍악을 울려도 모자랄 일이었다.
“알…… 새벽아, 괜찮아?”
근래 배새벽을 부를 때 실수하는 일이 드물었던 심상록이 긴장했는지 알콩이를 부를 뻔했다.
배새벽과 부모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봤기에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섬세한 걸로 심상록에게 절대 뒤지지 않을 정의탁이나 우휘겸도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
‘범세혁이나 선우이경처럼 거리낌 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게 더 특이할지도.’
멤버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은 배새벽은 방송을 보는 내내 퉁명스럽던 표정을 저 멀리 내다 버리고 가뿐해 보였다.
“상의 없이 멋대로 우리 얘기를 한 건 좀 짜증 나네요. 형들이나 회사에도 죄송해요.”
배새벽이 꾸벅 고개를 숙이자 그제까지 별말 없던 강해솔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왜 네가 죄송할 일이야.”
“맞아. 그리고 좋은 말씀만 해 주셨는데 뭐.”
“그럼 그럼. 무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서후 배우님이 직접 홍보해 주셨는데 우리가 감사하지!”
“아버님 덕분에 우리 방송 점수도 쏠쏠히 올랐을걸.”
“예찬이는 잠깐 쉿 하고 있어.”
다들 칭찬 릴레이를 하는 분위기길래 좋은 점을 하나 더 짚어 줬더니 바로 제지를 당했다.
한발 뒤로 떠밀린 예찬에게 채은성이 은밀하게 다가왔다.
“하예찬, 우리 이번 주에 DBS 라디오 두 개나 잡혀 있는 거 알고 있어?”
“……알지?”
이 얘길 왜 굳이 귓속말로?
최근에 첩보 영화라도 봤는지 멤버밖에 없는 거실을 예리하게 경계하며 채은성은 속삭임을 이어 갔다.
“리스피릿 선배님들은 이번 주엔 DBS 라디오가 없으셔.”
근데 어쩌라는 거지?
“……요점만 말해 봐.”
“어휴, 성격 급하긴. 우리가 잘하면 다음 주엔 방점으로 선배님들을 이길 수 있다는 뜻이야.”
장단 좀 맞춰 주면 덧나냐며 채은성이 툴툴거렸다.
예찬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런 채은성을 흘겨보았다.
“갑자기 왜 리스피릿…… 선배님들이랑 방송 점수 계산을 하는데?”
“당연히 우리가 선배님들이랑 다음 주에도 1위 후보로 맞붙을 테니 그렇지. 어느 부분이 유리하고 불리한지 잘 따져 봐야 할 거 아니야.”
뭘 그런 당연한 걸 묻고 있냐며 채은성이 혀를 찼다.
예찬은 더더욱 미심쩍은 표정이 되었다.
“……너 리바디 아니었어? 지금 이야기는 리스피릿이랑 붙어서 이기고 싶단 걸로 들리는데.”
예상치 못한 전개에 예찬은 그룹명 뒤에 경칭을 붙이는 것도 잊은 채 떨떠름하게 말했다.
채은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한 거 아니야? 아무리 존경하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영광이지만. 선의의 경쟁을 할 생각이 없으면 데뷔하면 안 되지. 같이 후보에 오른 상대를 응원하는 건 우리 팬들에게 실례잖아.”
얼떨결에 채은성이 가지고 있는 아이돌로서의 마음가짐을 확인한 예찬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놀랍군. 중증의 정찬양 팬이라 리스피릿이랑 엮인 일엔 기대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멀쩡한 소리를 하다니.’
예찬의 마음의 소리가 들릴 리 없는 채은성이 진지한 얼굴로 충고를 곁들였다.
“그리고 리스피릿 아니고 리스피릿 선배님.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우리끼리 있을 때도 조심해야 어디 가서 실수 안 하는 거야.”
지당한 말씀이었다.
“어, 음, 그래. 고맙다. 조심할게.”
예찬은 얌전히 수긍했다.
순순한 태도에 만족했는지 뿌듯한 표정이 된 채은성이 말을 이어 갔다.
“아무튼 뮤직캐슬은 다른 곳보다 방송 점수 비중이 큰 편이니까 음반만 좀 보강할 수 있으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예찬, 네가 도지윤 팀장님이랑 친하니까 팬 사인회를 어떻게 더 잡을 수 없어?”
열심히 의견을 피력하던 채은성은 이제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슬며시 하고 싶었던 말을 털어놓더니 예찬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도 팀장이랑 친하다고? 금시초문인데.’
어쨌거나 채은성의 말엔 일리가 있었다.
DBS의 뮤직캐슬은 방송 점수로 쌓은 성이냐고 팬들이 이를 갈 정도로 방송 점수의 영향력이 무시무시했다.
심지어 어떻게 그 점수를 매기는지도 정확하게 공개되어 있지 않았다.
채은성의 말처럼 만약 이대로 리스피릿이 방송 점수를 거의 받지 못하고, 레굴루스가 지금보다 좀 더 방송 점수를 얻게 된다면.
음원 추이가 이인삼각이라도 하는 양 지금처럼 거의 흡사하게 간다면.
음원보다는 확실히 밀리는 음반 판매량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인다면.
‘……실낱같지만 1위의 가능성이 보인다.’
삼 주 연속 1위를 한 리스피릿이 영예로운 퇴장을 하기 전에 정찬양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것도 무려 지상파 음악 방송에서 말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승리의 가능성’이 저 멀리 빼꼼 고개를 내밀고 레굴루스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예찬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우선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도지윤 팀장님께 말해 볼게.”
“정말?”
밑져야 본전으로 나름대로 용기 내 꺼낸 말이었는지 채은성의 얼굴이 만개한 꽃처럼 밝게 피었다.
“우리가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이쪽 일이 뭔들 안 그렇겠어! 기대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예찬이 덧붙인 한마디에 완전히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로 채은성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꾹 누르던 채은성을 뒤로한 예찬은 다시 배새벽과 멤버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여주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것도 마무리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자, 여러분.”
예찬은 그 분위기에 쐐기를 박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큰 프로그램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은 만큼, 내일도 그에 걸맞게 좋은 모습 보여야죠. 이제 해산하고 얼른 잡시다.”
오늘 참여했던 HBS의 케이블 음악 방송 더스테이지에 이어, 내일은 CBC의 케이블 음악 방송인 쇼챌린저가 기다리고 있었다.
예찬의 말에 수긍한 멤버들이 거실에서 흩어졌다.
‘그래 봐야 여덟이 한방에서 다시 모이지만.’
혼자만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선우이경에게 눈인사를 건넨 예찬은 큰 방으로 들어왔다.
사다리를 타고 이층 침대 위에 오르자 아래쪽에서 정의탁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 끌까요?”
이층 침대 위쪽에 자는 멤버들 중에서도 특히 전등 바로 아래라 눈이 부실 예찬을 배려한 말이었다.
“상록이 형 거실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들어온대. 그냥 둬도 괜찮아.”
눈을 꼭 감은 채로 예찬이 말했다.
아래쪽에서 도란도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요새 신 PD님 집에서 영 못 보는 거 같지 않아?”
“많이 바쁘신가 봐. 편집도 하시면서 우리 스케줄도 다 따라다니시잖아.”
“얼굴이 퀭해지긴 하셨더라.”
“다음 주도 바쁘긴 하지만 사인회는 없으니 좀 나아지시려나?”
그 사인회를 내일 추가로 잡아 보려 하는 예찬은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음악 방송이 끝나고 도지윤 팀장을 찾아가려던 예찬의 계획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좀 더 빨리 이루어졌다.
[여러분께는 정말 미안하지만, 급한 스케줄이 두 개 잡혀서요.]스피커폰 모드로 설정한 매니저의 휴대 전화 너머로 도지윤 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막 사전 녹화를 마친 멤버들은 무대 의상도 갈아입지 못한 채 도 팀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말을 고르는 건지 잠시 침묵한 도 팀장이 본론을 꺼냈다.
[일단 오늘 방송이 끝나고 바로 ‘알콩 메이커, once again’ 녹화에 잠깐 참여해 주실 수 있을까요?]……무슨 어게인이라고?
이번에도 짠 것처럼 멤버들의 시선이 배새벽의 얼굴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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