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6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61화
샐러드로 대충 배를 채운 멤버들은 숙소에서 옷을 갈아입자마자 다시 차에 올라탔다.
“얘들아, 점호 좀…….”
“일이요.”
조심스러운 매니저의 부탁에 예찬은 힘차게 1을 외쳤다.
아홉 명 전부 차에 탄 것을 귀로 확인하고 나서야 매니저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안 늦겠죠?”
조수석에 앉은 심상록이 시계를 확인하고 매니저에게 물었다.
“괜찮아. 사녹도 생각보다 빨리 끝났잖아.”
엔카운트다운 사전 녹화가 끝나자마자 멤버들이 재빨리 움직인 것은 곧 시작되는 DBS의 라디오 방송, ‘두 시의 오르골’에 게스트로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은성아 봐봐, 여긴 진짜로 게살이 들어간대.”
“그런 문구 말고 퍼센트를 확인해 봐. 10퍼센트도 안 될걸?”
라디오라고 긴장한 사람이 있으면 좀 말이라도 걸어 볼까 차 안을 둘러보았으나 다들 멀쩡해 보였다.
“그럴 리가! 이름부터 ‘진짜’ 게맛살인데? 봐봐, 여기 게살 6…… 60이 아니라 6퍼센트라고?”
멀쩡하다 못해 아직도 게맛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놈들도 있고.
* * *
“오늘 ‘두 시의 오르골’ 2부엔 특별한 손님들이 게스트로 와 계시는데요. 보이는 라디오가 아니라서 이 훤칠한 얼굴들을 저만 바라보는 게 너무 송구하네요. 앞날이 창창한 신인 그룹, 레굴루스입니다.”
라디오 진행자의 소개가 끝나자 예찬이 곧장 구호를 선창했다.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
“어우, 저는 아이돌 그룹들의 이 인사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뭔가 나까지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진행자는 손뼉까지 쳐 가며 레굴루스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자, 물론 다들 유명하시지만 혹시 여러분과 초면이실 우리 청취자분들을 위해 한 분씩 짧은 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의 리더 하예찬입니다.”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의 맏형 1을 맡고 있는 심상록입니다.”
“저는…….”
“잠깐만! 미안한데 잠깐만 멈춰 봐요.”
진행자가 빠르게 손을 휘저으며 다음 순서인 우휘겸을 멈췄다.
큰일이 난 게 아니라 재미를 위해 말을 끊은 게 보여서 다들 긴장하진 않았다.
“상록 씨, 맏형이면 맏형이지 1은 뭔가요?”
“아, 저랑 저 친구가 동갑이라서요.”
심상록이 태연하게 건너편에 앉아 있는 선우이경을 가리켰다.
“그래서 둘이 맏형 1이랑 맏형 2로 나눈 거예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진행자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막내도 막내 1, 2, 3 이렇게 다 있는 건 아니죠?”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의 하나뿐인 막내 배새벽입니다.”
배새벽이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각자 소개가 끝난 후 라디오는 평화롭게 흘러갔다.
“레굴루스, ‘두 시의 오르골’ 들어 본 적 있어요?”
“저 애청자입니다!”
“오, 이경 씨! 언제부터요?”
“지난주부터요!”
선우이경의 힘찬 대답에 진행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여러분, 우리 레굴루스 친구들의 출연 일정이 잡힌 게 지난주랍니다. 그때부터 애청자가 된 거예요?”
“그렇습니다!”
“크, 솔직해서 좋네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두 시의 오르골’의 대표 코너인 음악 퀴즈가 이어졌다.
“정답!”
“세혁 씨, 이거 세혁 씨가 맞히는 게 아니라 청취자분들이 맞히는 거예요.”
“아, 맞다. 아는 문제가 나와서 저도 모르게…….”
“하하, 문제의 보기를 세혁 씨가 읽어 주시겠어요?”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퀴즈의 정답을 맞히기 위해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청취자들의 메시지들엔 걸러지지 않은 날것의 말들이 섞여 있었다.
– [4875] 4번!
[1234] 퇴굴루스ㅋㅋㅋㅋㅋ [4321] 정의탁사랑해정의탁사랑해정의탁사랑해정의탁사랑해정의탁사랑해정의탁사랑해정의탁사랑해정의탁사랑해“정답은 4번이었고요, 전화번호 뒷자리 4875님, 치킨 기프티콘 보내드리겠습니다.”
“와, 의탁 씨 목소리 정말 독특한데 좋네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생방송 횟수에 비해 스펙터클한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누구 하나 그런 메시지에 당황한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럼 레굴루스의 ‘Day & Day’, 잠시 듣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라디오를 시작한 뒤 네 번째로 레굴루스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Inaugurate’ 앨범에 수록된 노래 중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제외하면 타이틀곡만 남아 있단 뜻이었다.
진행자와 짧은 대화로 친목을 다졌던 지난 쉬는 시간들과 달리 이번엔 멤버 전원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스튜디오 한쪽에 준비된 스탠딩 마이크 쪽으로 간 멤버들을 향해 진행자가 물었다.
“자리가 너무 좁죠? 그룹이 나오면 다들 힘들어하더라고요.”
“괜찮습니다.”
우휘겸과 선우이경 사이에 낀 강해솔이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안 되겠다. 조금씩 자리 좀 넓혀 봅시다.”
진행자의 말에 스태프들과 멤버들까지 합세해 최대한 마이크 사이의 거리를 벌렸다.
“어깨가 살짝 겹치긴 하는데 아까보다 훨씬 편한데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한결 쾌적해진 공간에 멤버들이 좋아하는 사이, ‘Day & Day’의 마지막 후렴구가 흘러나왔다.
스태프들이 빠르게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레굴루스의 ‘Day & Day’ 어떠셨나요? 저는 인생곡이 하나 더 추가된 기분이에요.”
진행자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음에도 정의탁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면 이번엔 레굴루스의 ‘Only my you’를 라이브로 들어 볼까요?”
진행자의 멘트가 끝나자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You, only my you.”
춤을 추면서도 하지 않았던 실수를 여기서 하는 놈은 없었다.
무사히 라이브가 마무리되며 곧 라디오가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진행자와 라디오 스태프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멤버들은 사인 앨범을 돌렸다.
“여기 폴라로이드 좀 찍어 주시겠어요?”
애청자들에게 경품으로 보낼 폴라로이드까지 찍고 DBS 방송국을 벗어나자, 곧장 N-net 스튜디오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었다.
“일이요.”
“이 있습니다!”
“삼도요~”
달리다시피 주차장에 도착해 잽싸게 차에 올라탄 멤버들은 매니저가 부탁하기도 전에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구, 점호 끝.”
“어, 그래, 얘들아. 고맙…… 여보세요?”
N-net 스튜디오로 이동하는 사이, 회사 측에서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라디오 반응이 괜찮아서요. DBS의 라디오에 한 번 더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새로 뽑은 직원인지 낯선 목소리가 차 안에 퍼졌다.
[펑크 때우는 거라 좀 급하긴 해요. 이번 주 일요일 밤인데 괜찮을까요?]“어, 잠시만요.”
운전 중이다 보니 당연히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기에 멤버들의 귀에도 소리가 그대로 들어왔다.
이번 주 일요일은 낮엔 음악 방송이, 저녁엔 팬 사인회가 잡혀 있었다.
‘밤이면 딱이네.’
예찬은 피곤이란 단어를 뇌 내에서 깔끔히 지웠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란 말이 왜 있겠는가.
같은 생각을 한 건 예찬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뒷자리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예찬의 옷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
꼭 하고 싶다는 채은성의 의지가 느껴졌다.
예찬은 스피커폰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어때요?”
역시나 고개를 젓는 사람은 없었다.
거울을 통해 멤버들을 확인한 매니저가 곧장 하겠다는 답을 전했다.
[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통화가 끝나자마자 멤버들이 흥분해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 이번 주에 DBS 라디오에 세 번이나 나가는 거지?”
“이 정도면 방송 점수 진짜 기대할 만하지 않아?”
레굴루스를 향해 기회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 * *
아이돌 당사자들과 회사보다 더 음악 방송의 순위 집계에 민감한 것은 어쩌면 아이돌의 팬들이었다.
레굴루스의 일정표에 DBS 라디오가 하나 더 이름을 올린 순간, 인터넷이 시끌시끌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 나 설레발 좀 칠래 이거 보고 어떻게 안 칠 수가 있냐고 와 어떡하지?? 와 자꾸 설레는데??
– 애들 진짜 너무 열심히 일해 줘서 짠한데 고맙고 장하다ㅠㅠㅠ 사랑해
– 오늘 라디오 너무 잘해서 걱정 하나도 안 된다ㅎㅎ 재밌게 잘하고 와 얘들아~
– 음원 1위 찍었는데 방송도 한 번 더? 진짜 행복해서 죽을 것 같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음ㅋㅋㅋ
축제라도 벌일 기세로 떠들썩한 이클립틱과 달리 리바디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 리 엔터 일 좀 해^^;;; 해탈해서 가만히 있었더니 지들이 잘하는 줄 아나 봐
– 이러다 방점 조지면 책임질 거냐고
– ㅆㅂ 일 ㅈㄴ 못하네 월급 왜 받음? 도대체 회사에서 뭐 함?????? 숨 쉼??????????
– (리 엔터 퇴사율_jpg) 일 잘하는 애들 다 탈주하죠~
– 우리 애들이 죽어라 뛰면 뭐 하냐고 소속사가 일을 이따위로 하는데
– 응응 다음 주 뮤캐 1위 못 하면 불 지르러 갈 거야
– 살려 주세요 제 새끼가 ㅈ소에 갇혀 있어요
– 우리 애들이 저기에 있었으면 ㅅㅂ 지금쯤 빌보드 씹어먹었어
LEE 엔터테인먼트의 직원은 회사의 대들보인 리스피릿의 팬덤 반응을 확인하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팬들은 차마 입에 담기도 두려운 말들을 신나게 뱉어 내고 있었다.
‘하…… 우리가 미쳤다고 욕 처먹고 싶어서 일을 안 하겠냐고.’
그녀는 다시 한번 한숨을 크게 쉬었다.
리스피릿이 데뷔한 지 몇 년인데 회사라고 DBS의 뮤직캐슬이 방점캐슬인 걸 모르겠는가?
‘자기들이 안 한다는 걸 어쩌겠냐고요.’
리스피릿 멤버들은 컴백 일정이 잡혔을 때부터 숨 한 번 제대로 고를 새도 없이 굴렀다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 어차피 뭐 특별히 안 해도 삼 주 연속 1위 하잖아요.
– 맞아! 우리에겐 리바디가 있다고요! 리바디 오늘도 사랑합니다!
– 잠 좀 잡시다, 잠 좀. 우리도 사람인 거 아시죠?
– 그래요. 슬슬 쉬엄쉬엄해도 괜찮잖아요.
정찬양을 제외한 네 사람의 반항에 회사 직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정찬양을 바라보았다.
여느 때라면 멤버들이 헛소리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가며 휘둘렀을 정찬양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어째서인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옅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직원들의 간절한 눈빛을 확인한 정찬양은 입가에 지은 미소를 좀 더 진하게 만들 뿐이었다.
– 뭐, 다들 그렇다니 어쩌겠어요.
‘어쩌긴 뭘 어째! 네가 평소처럼 애들 달달 볶아 줘야지!’
차마 당사자 앞에선 외칠 수 없어서 꾸역꾸역 삼켰으나 여전히 그때를 회상하면 배신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동시에 자신이 몸담은 회사가 얼마나 정찬양에게 의지하고 있는지 실감이 들었다.
‘지금까지 리스피릿 애들은 연차며 위치에 비해 순하고 성실하다고 생각했는데…… 다 찬양이가 컨트롤하던 거잖아?’
그녀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지금까지 리스피릿, 아니 이 회사가 문제없이 굴러가던 건 전부 지금까지 고작 스무 살 남자애가 사령탑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었고.
그 완벽한 사령탑이 제 역할을 관두면 어떻게 될지 감히 짐작되었기 때문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