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6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67화
‘떡밥이…… 너무 많다……!’
프리랜서 정모 씨는 지친 몸을 침대에 묻고 새로 갱신된 게시물들을 빠르게 훑었다.
[오늘 자 팬싸 장인 아이돌] [내가 보려고 만든 범세혁 팬싸 후기 모음] [알콩 메이커 once again 0화 레굴루스 cut 기차] [202X0611 레굴루스 팬싸 후기] [오늘 음가 사녹에서 예찬이랑 해솔이 귓속말하는 거 본 사람?] [선우이경 계속 금발해 아니야 흑발해 아니야 금발……] [팬싸 포카 양도나 교환 구합니다] [상록이가 나보다 배알콩한테 진심인 거 같은데;;;] [음가 착장 전설의 레전드]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후 팬 게시판에서 왔습니다^^]음악 방송부터 첫 팬 사인회, 거기에 완전체로 지상파 예능 출연까지 너무 많은 일들이 쏟아졌다.
‘아직 어제 라디오랑 리얼리티도 세 번밖에 복습 못 했는데……!’
상반기가 끝나 가다 보니 프리랜서인 그녀에게도 일이 쏟아지고 있었다.
‘관계자 미팅만 다녀와도 기 빨리는데 본가까지 들렀다 오느라 알메겐 본방도 놓치고…… 이게 사는 거냐고요.’
피곤에 절은 몸은 이대로 쏟아지는 잠에 순응하라고 속삭였지만, 내일도 음방에 사인회에 라디오라는 스케줄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밀리면 복습하기 힘드니까 대충만 훑어보자.’
정모 씨는 가장 먼저 팬 사인회 후기를 확인하기로 결심했다.
홈마들이 담아 온 기적 같은 얼굴을 먼저 확인하기 위해 SNS에 접속했다.
어떤 각도에서도 굴욕 없이 반짝이는 예찬의 얼굴이 그녀를 반겼다.
‘이 사람, 진짜 잘 찍는단 말이지…….’
정모 씨는 슬쩍 사진에 박혀 있는 워터마크를 확인했다.
‘예찬론’이란 심플한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츄마프 시절부터 거의 모든 스케줄을 따라다니는 홈마였는데, 변함없이 사진의 질과 양이 대단했다.
오늘도 예찬을 잔뜩 찍어 왔는지 이 시간까지 사진이 갱신되고 있었다.
‘하, 아까 택시에서 프리뷰로 봤을 때도 좋았는데 고화질로 보니까 더 미쳤네.’
커다란 리본 머리띠를 하고 깜찍하게 양손으로 꽃받침을 한 사진에 오늘의 베스트 컷 상을 주려던 정모 씨는 뒤이어 올라온 왕관을 쓰고 수줍게 웃는 사진을 보고 고민해야만 했다.
예찬에 대한 진한 사랑이 느껴지는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입맛이 썼다.
‘이걸 실물로 못 보다니…….’
물론 앞으로도 팬 사인회는 수도 없이 열릴 테고, 모든 오프라인 행사에 참석할 수는 없을 테니 마음을 비우는 게 맞았다.
그렇지만 역시 예찬의 기억에 길이 남을 첫 번째 사인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전부 저장해서 분류한 정모 씨는 이번에는 글로 된 후기들을 찾아 읽었다.
어김없이 참한 얼굴에 설레는 저음을 가졌는데 센스도 있고 팬 서비스는 더 미쳤다며 예찬을 부르짖는 글들이 가득했다.
보면 볼수록 배가 아팠지만 그렇다고 그만 읽을 수도 없었다.
‘이번 주는 도저히 시간을 뺄 수가 없어서 다음 주 팬싸에 올인했는데…… 되겠지? 아니, 돼야만 한다…….’
* * *
몰아치는 스케줄과 함께 좋은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그로들이 심혈을 기울여 쓴 글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히는 것이 예찬의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제대로 상승세에 올랐을 땐 옆에서 무슨 악담을 해도 별 타격이 없으니까.’
무엇보다 이클립틱을 고무되게 만든 건, 거의 수상이 확정된 다음 주 뮤직캐슬 1위 트로피였다.
– 오늘 알메겐에 브금으로 노래 틀어 줬던데 이것도 방점에 들어감?
└ 들어갈 듯? 방점 기준이 정확히 나온 적은 없는데 누가 다른 가수들 방점이랑 나왔던 프로그램 정리한 거 있다 그거 참고해
– 저쪽도 오늘 DBS에 뭐 나온 거 있어?
└ 없었음
└└ 지네 오빠들이나 빨 것이지 남의 집에 관심 X나 많네 미친X들
└└└ 왜 여기까지 기어 들어와서 자기소개하냐
– 우리 지금 방점 몇 점인지 알 수 있음? 저쪽 방점 우리보다 훨씬 밀리는 거 맞지? 혹시 내일 하루 만에 만회할 수 있는 정도임?
└└└ 너무 차이 나서 조작 아니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봄
└└ 조작은 츄마프가 한 게 조작이지ㅋㅋ
└ 점수는 방송 나오기 전까지 알 수 없음 근데 진짜 미세하게 앞서는 게 아니라 점수 크게 차이 나서 순위 뒤집힐 일은 없을 듯
└└ 그걸 니가 어케 암? DBS계자세요?
‘……음.’
글마다 댓글로 깽판을 치고 있는 게 전부 리스피릿의 팬이라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다음 주 뮤직캐슬 트로피를 누가 받을지가 K-pop 팬들에게 큰 화젯거리가 된 것은 확실했다.
‘다들 레굴루스의 우위를 점치고 있어.’
레굴루스가 아이돌 1군이자 대선배인 리스피릿에게 트로피를 빼앗기는 것과, 리스피릿이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인 레굴루스에게 트로피를 빼앗기는 것은 무게가 달랐다.
레굴루스가 대기업인 NJ 소속인 것도, 대 히트 프로그램 출신인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앞의 2주는 리스피릿이 연속으로 1위를 가져갔던 것?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았다.
음원 성적이나 음반 판매량도 마찬가지였다.
‘신인한테 트로피를 뺏겼다는 결과만 가지고 천 년 동안 조롱하겠지.’
지금 레굴루스에게 달라붙은 것은 장난처럼 보일 정도로, 온갖 어그로들이 몰려들어 리스피릿과 리바디를 물어뜯을 것이다.
예찬은 엄지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목표했던 대로 일이 착착 나아가고 있음에도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스케줄로 바쁠 땐 이런 잡생각이 안 드는데…… 대체 정찬양은 무슨 꿍꿍이인 거지?’
다음 주 음악 방송에 반영되는 성적 집계일은 내일 하루.
아무리 계산해도 남은 하루 동안 레굴루스가 쌓은 방송 점수를 뒤집을 순 없었다.
‘1위를 넘겨주기 싫다면 진작 수를 썼어야 했어.’
그렇지만 정찬양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이런 상황에 내가 어떻게 하는지 봐 왔을 텐데, 왜 이렇게 반응이 없지?’
예찬이 겪어 온 시간을 정찬양이 지켜봤다면, 다음 주 뮤직캐슬 방송이 끝나고 어떤 파장이 있을지 모를 리가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 * *
마지막까지 경계를 놓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예찬은 다음 날 스케줄에 임했다.
샵에서 꽃단장을 마친 레굴루스가 오늘 처음으로 임한 스케줄은 HBS의 음악 방송인 스타가요 사전 녹화였다.
“아, 예찬이 형!”
새벽부터 방송국 복도에서 마주친 김대훈이 반갑게 예찬에게 아는 척을 해 왔다.
예찬과 멤버들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오늘은 데뷔이래 처음으로 리스피릿과 사녹 시간이 겹치는 날이었다.
정확히는 레굴루스의 다음 차례가 리스피릿이었다.
덕분에 대기하는 동안 두 그룹 팬의 신경전이 초여름의 더위를 싸늘하게 식혔다는 것 같았다.
‘원래 더 늦은 시간으로 잡아 주는데 웬일이래.’
리스피릿은 이 꼭두새벽에 사녹을 할 연차나 위치가 아니었다.
예찬은 김대훈의 뒤에서 여유롭게 웃으며 인사를 받는 정찬양을 흘낏 확인했다.
이 순서마저 정찬양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와, 오랜만에 새벽 사녹인데 이렇게 형이랑 겹치니까 너무 좋네요.”
김대훈이 눈치 없이 복도를 막고 싱글벙글 웃었다.
“아, 예…….”
가장 앞에 선 놈이 비킬 생각이 없으니 뒤에 선 정찬양도 자연스레 발을 멈춘 상태였다.
나머지 놈들은 아직 준비 중인지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요새 거의 매일 만나긴 하는데, 1위 발표 때 무대에서 잠깐 보는 거라 제대로 말도 못 했잖아요. 그쵸?”
“네…….”
김대훈은 영양가 없는 소라만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보는 눈이 많은 방송국 내에서 차마 하늘 같은 선배님이 아는 체를 하고 있는데 바쁘니 이만 가 보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자식…… 정찬양한테 보여 주려고 이러는 거 같은데?’
생긋거리는 김대훈이 여느 때처럼 친한 척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잘 보니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정찬양을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대체 뭔 생각들인 건지…….’
정찬양이라도 나서서 이 수상한 수다쟁이를 좀 치워 줬으면 했지만, 이놈도 무슨 꿍꿍이인지 음침한 미소를 지을 뿐 딱히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상황을 끝낸 것은 조금 늦게 복도에 모습을 드러낸 리스피릿의 메인 댄서 박마루였다.
“대훈아, 후배님들 이제 퇴근하셔야 하는데 너무한 거 아니야?”
“네? 아, 네…….”
생각했던 전개와 다르게 흘러갔는지 김대훈이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정찬양을 바라보았다.
정찬양은 김대훈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태연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후배님들, 미안해요. 얼른 들어가 보세요.”
박마루가 사람 좋게 웃으며 김대훈과 정찬양을 복도 벽면으로 밀었다.
예찬과 레굴루스 멤버들은 고개를 숙이고 사람이 지나다닐 공간이 생긴 복도를 빠르게 빠져나왔다.
“……쿡.”
정찬양을 스쳐 지나가던 순간,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느긋한 미소를 지은 정찬양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기분이 확 나빠진 예찬은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김대훈 선배님이 예찬이 되게 좋아하시나 봐. 보는 눈이 있으시네.”
자연스레 예찬과 보폭을 맞춘 선우이경이 휘파람을 불며 작게 속삭였다.
“……그러게요.”
“……흠.”
시큰둥한 대답에 무언가 더 말하려던 선우이경은 예찬의 표정을 확인하더니 말을 아꼈다.
* * *
스타가요의 사전 녹화와 본방송이 끝난 후에 두 번째 사인회가 있었다.
세 시간 남짓한 사인회를 무사히 끝마친 후 DBS의 밤 10시 라디오까지 참여하고 나자 벌써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고생했어요.”
“어서 오세요.”
차 문을 열자 아직 미성년자인 관계로 오늘 라디오에 참여하지 못한 정의탁과 배새벽이 멤버들을 반겼다.
예찬은 차 문을 연 채 황당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뭐야, 너희 왜 안 들어가고 여기 있어? 건호 형, 얘네 숙소에 데려다주고 다시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시간이 촉박했던 관계로 사인회가 끝나고 매니저가 멤버들을 DBS 건물 앞에 내려 준 다음, 미성년자 둘을 숙소에 데려다 놓기로 했는데 왜 여기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예찬의 말에 매니저가 다급히 변명했다.
“그게, 둘 다 여기서 기다리고 싶다고 해서…….”
“그 고집을 들어줬다고요?”
“미…… 미안…….”
“어휴, 애꿎은 건호 형 잡지 말고 나한테 말해요.”
예찬의 싸늘한 목소리에 완전히 기가 죽은 매니저를 대신해 정의탁이 나섰다.
배새벽도 거들었다.
“일단 타요, 형.”
“…….”
아직 팬들도 근처에 있는데 방송국 근처에서 이런 실랑이를 해서 좋을 게 없었다.
예찬은 대답 대신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
그 뒤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나머지 멤버들도 재빠르게 탑승을 마쳤다.
그사이 눈만 데굴데굴 굴리던 매니저가 슬며시 눈치를 보며 시동을 걸었다.
“……그럼 출발할게?”
차마 평소처럼 점호해 달라고 요청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짧게 한숨을 쉰 예찬이 입을 열었다.
“점호해야죠. 일 있습니다.”
“여기 이도 있어요!”
예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심상록이 크게 외쳤다.
“삼, 제대로 탔습니다!”
“사 있어요.”
나머지 멤버들도 한숨 돌렸다는 듯 자기 숫자를 불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