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6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68화
숫자를 외치는 목소리들은 살았다는 듯 화색이 돌았다.
예찬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누가 보면 내가 되게 잡는 줄 알겠네.’
어이가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괜히 짜증을 낸 것 같아서 명치 부근이 뭔가 막힌 것처럼 갑갑했다.
“구, 점호 끝입니다.”
어김없이 배새벽이 마지막을 알렸다.
조심스레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찬이 형, 화났어요?”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자 뒷자리에 앉아 있는 정의탁이 손가락으로 예찬의 뒷목을 아프지 않게 콕콕 찔러 댔다.
예찬은 그 손을 딱히 제지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가서 쉬라는데 왜 굳이 불편하게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날이 섰던 목소리가 한풀 꺾여 나왔다.
정의탁의 목소리가 한결 밝아졌다.
“같이 들어가는 게 좋아서 그렇죠. 라디오 듣고 있었어요. 우리 얘기 엄청나게 하던데요?”
라디오에 같이 나갔다고 해도 믿겠다며 정의탁이 너스레를 떨었다.
예찬은 관자놀이를 꾹 누르고 차 안의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제가 예민했어요.”
“아니야, 예찬아. 그럴 수 있지.”
“그래, 너 오늘 좀 이상하더라.”
예찬의 사과에 완벽하게 반응이 갈렸다.
똑같은 타이밍에 입을 연 심상록과 강해솔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
어색한 침묵에 갇힌 두 사람을 내버려 둔 채 선우이경이 뒷자리에 앉은 정의탁과 배새벽에게 말을 걸었다.
“말투가 조금 세긴 했지만 예찬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야. 쉴 수 있을 때 쉬어 둬야지. 앞으론 이럴 땐 먼저 숙소 들어가서 편하게 있어.”
“에이, 그렇지 않아도 방송만 안 나가는 거지 사녹이다, 연습이다, 밤낮없이 사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요.”
정의탁의 말을 들은 선우이경이 생글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안 할 수 있는 날엔 굳이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어린이 친구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형들 마음을 알아주렴.”
“으, 몇 살이나 차이가 난다고 그래요.”
정의탁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질색한 목소리와 달리 표정은 그저 멋쩍어 보였다.
그 옆에 앉은 배새벽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정리되자 멤버들이 하나둘씩 잠에 취해 고개를 떨궜다.
예찬은 한결 조용해진 차 안에서 가만히 눈만 감고 있었다.
“어이.”
소리를 죽인 목소리와 함께 옆구리에 무언가 닿는 감각이 있었다.
살짝 한쪽 눈을 뜨자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른 강해솔이 보였다.
‘왜?’
입 모양으로 묻자 좀 더 목소리를 낮춘 강해솔이 말했다.
“너 내일은 작업실 나오지 마.”
내일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음악 방송이 없는 날이었다.
멤버들 모두 느지막이 일어나 하루 종일 연습실에 박혀 있기로 동의한 상태였다.
예찬과 강해솔은 간만에 작업실에도 출근하기로 했었다.
“뭐야. 쫓아내는 거야?”
“누가 쫓……! 아니, 차라리 그렇게 생각해. 넌 오늘부로 작업실에서 쫓겨났으니까 집에서 얌전히 이불 덮고 잠이나 자라.”
‘아하.’
예찬이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를 피로 누적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예찬은 남들 다 연습하고 있을 때 혼자 숙소에서 쉴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예찬은 강해솔을 향해 미소 지었다.
“마음만 받을게, 형. 오늘 잘 자면 멀쩡해질 거야.”
‘사실 피곤한 거랑은 좀 다른 문제지만.’
정찬양의 시커먼 속내를 까 보지 않는 이상 이 찜찜한 마음은 가시지 않을 것이었다.
“뭐래.”
본심을 들킨 게 민망했는지 강해솔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 이상 설득해 봐야 소용이 없어 보였는지 강해솔은 더 이상 같은 주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 * *
어김없이 바쁜 한 주가 시작되고 빠르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레굴루스는 여전히 음악 방송에선 리스피릿의 박수 셔틀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중간에 공개된 타이틀곡 안무 연습 영상이 꽤 화제를 끌어모았다.
“예찬아, 우리 챌린지 영상 하나 찍을까?”
뮤직캐슬 본방송이 시작되기 전, 준비를 전부 마친 심상록이 챌린지 전용 스마트폰을 들고 다가왔다.
평소에는 매니저가 보관하는 이 스마트폰은, 데뷔 이후 약 이 주 만에 생긴 레굴루스의 ‘택톡’ 공식 채널을 위해 존재했다.
아이돌 같은 경우에는 신곡 하이라이트 구간으로 만든 댄스 챌린지가 택톡에서 얼마나 흥하는지로 활동의 성패가 갈리기도 했다.
‘그걸 이 주 만에…….’
다른 아이돌들은 컴백 전에 챌린지 먼저 홍보하기도 하는데, 무려 이 주가 다 되어서 공식 채널이 나오다니 한숨이 푹푹 나올 것 같았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SNS를 관리할 인원을 좀 뽑아 달라고 도지윤 팀장이 진작부터 요청했다는데 위쪽에서 들은 척도 안 한 모양이었다.
결국 도 팀장이 윗선 앞에서 대자로 드러눕고 나서야 급하게 인력을 보충해 줬다는 소문도 뒤에 따라붙었다.
‘점잖은 도지윤 팀장이 정말로 그랬을 것 같진 않지만.’
“예찬아?”
잡생각이 길어진 모양이었다.
심상록이 허리를 굽혀 앉아 있는 예찬과 시선을 맞췄다.
“아, 죄송해요. 챌린지 찍자고 했죠? 찍죠.”
예찬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도 하고 싶습니다!”
“저도요!”
준비를 다 끝낸 채은성과 범세혁도 합류했다.
예찬은 대답 대신 간의 탈의실 파티션을 옆으로 치워 공간을 확보했다.
“이 정도면 넷이 충분히 추겠다.”
“넷 아니고 다섯이요.”
자연스럽게 끼어든 배새벽이 말했다.
그사이 매니저에게 건네받은 삼각대에 스마트폰을 설치한 심상록이 재빨리 멤버들 곁으로 돌아왔다.
타이머를 설정해 뒀는지 저 멀리서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렸다.
“1절 하이라이트 구간인 거 알지?”
“당연하죠.”
채널만 나중에 생겼다 뿐이지, 진작 챌린지에 쓸 영상은 여럿 찍어 뒀던지라 새삼스레 촬영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 큐트 버전 ‘Only my you’ 갑니다!”
“큐트요?”
그러나 주제가 생기면 이야기가 좀 달랐다.
촬영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막 끝나기 직전에 예찬이 정한 오늘의 주제에 멤버들은 당황한 티를 팍팍 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애교를 방출하며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맞췄다.
“뭐야, 뭐야. 자기들끼리만 재밌는 거 하고 있네! 우리도 끼워 줘!”
영상을 서너 번쯤 다시 찍었을 무렵, 나머지 멤버들의 준비도 전부 끝난 모양인지 성큼성큼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스마트폰이 있던 자리도 어느새 카메라 감독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번엔 큐트 버전으로 다 같이 한번 해 보죠.”
“릴레이처럼 한 명씩 나오는 걸로 하자. 세로라서 다 같이 나오기 너무 힘들어.”
예찬의 말에 강해솔이 제안해 왔다.
“릴레이 좋네요. 게다가 큐트 앤드 하트 콘셉트로 가요. 자기 차례에 무조건 한 번씩 하트 날리기.”
귀여운 척에는 이제 도가 텄는지 채은성이 한 단계 난이도를 높였다.
“하트 한 번 받고 중복은 없기로 갑시다! 같은 하트는 재미없잖아요.”
무슨 자신감인지 정의탁이 난이도를 또 높이며 턱을 치켜들었다.
순식간에 이 짧은 챌린지 영상에 귀여운 척을 하며 앞 사람과 겹치지 않는 하트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규칙이 생겼다.
“그런데 중복 하트를 만든 사람은 어떻게 하지?”
“탈락?”
“어디서 탈락하는 건데? 레굴루스?”
“아, 상록이 형! 레굴루스 탈퇴라니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응? 미안해?”
“그런 거 말고 꿀밤 맞기로 하자.”
“생방 때 혹 달고 올라가겠는데요.”
벌칙을 놓고 시시덕거리던 멤버들은 급기야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했다.
순서가 뒤일수록 새로운 형태의 하트를 만들기 불리하다며 호들갑도 떨었다.
“가위 바위 보!”
예찬은 네 번째 순서였다.
‘쉽군.’
“얘들아, 너무 죽어라 하진 마. 곧 생방송인데 주객전도가 되면 안 되지. 무대는 후반이어도 중간에 인터뷰도 있는 거 알지?”
분위기가 너무 과열된 것 같았는지 매니저가 슬쩍 주의를 주었다.
땀범벅이 된 채로 방송을 타는 불상사를 막고 싶은 모양이었다.
“에이, 건호 형도 참. 걱정 붙들어 매세요, 하하.”
“이경이 네가 웃으니까 되게 불안해진다, 야.”
“네? 아하하!”
선우이경은 매니저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예찬이 보기엔 백 퍼센트, 아니, 이백 퍼센트 진심이었다.
순서가 다 정해지자 멤버들은 카메라 감독의 앞에 일렬로 섰다.
이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온마유의 하이라이트 파트가 재생되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범세혁이 무난하게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하이라이트 안무를 소화했다.
그 뒤로도 초반 멤버들은 평온하게 챌린지를 이어 갔다.
거의 중간이었던 예찬도 볼 하트를 만들고 가장 뒤로 이동했다.
막상 자리를 뒤쪽으로 옮기고 나니, 다들 앞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려고 몸이 반 이상 옆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이게 무슨 릴레이 댄스냐…….’
그렇게 생각하며 예찬 또한 완전히 뒤로 숨지 않고 목을 빼서 앞 상황을 구경했다.
일곱 번째 순서인 정의탁이 힘겹게 하트를 만들고 빠지자 그다음 차례인 우휘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남은 하트가 있나?’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그때.
마지막 차례인 채은성이 우휘겸 옆으로 나왔다.
‘뭐야?’
채은성과 우휘겸의 시선이 마주쳤다.
비장한 공기가 대기실에 감돌았다.
“간다.”
“응.”
작게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은 이윽고 위로 날아올랐다.
“……!”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우휘겸과 채은성이 서로에게 등을 보이며 양쪽으로 펼쳐졌다.
공중에서 마주 닿은 두 사람의 발바닥이 하트의 꼭짓점이 되고 쭉 뻗은 다리와 앞으로 내민 가슴, 뒤로 내민 팔과 꼭 붙잡은 손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하트가 되었다.
순식간에 공중에서 피어난 하트는 곧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기실의 반응은 뜨거웠다.
“으하하하! 아 너무 웃었더니 옆구리 아파!”
“얘들아, 우리 이거 다음 안무에 넣자!”
웃음이 헤픈 선우이경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범세혁은 눈을 빛내며 방방 뛰었다.
주위에 있던 스태프들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와, 보고도 안 믿긴다. 어떻게 한 거예요, 대체?”
“연습도 안 하고 한 번에 성공한 거야?”
열렬한 호응에 채은성은 과장되게 코밑을 훔쳤다.
“훗. 이 정도쯤이야.”
“은성아! 화장 다 했는데 얼굴을 비비면 어떡해!”
“아.”
훈훈하게 잘 달아오른 분위기는 뮤직캐슬 본방송까지 이어졌다.
[전 세계 K-pop 팬들과 함께하는 뮤직캐슬! 이제 이번 주 1위 발표만을 남겨 두고 있는데요.] [과연 이번 주는 또 어떤 멋진 곡이 1위를 차지할지 기대가 되네요!]1위 후보인 레굴루스와 리스피릿은 MC들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나란히 섰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옆 사람에게까지 들릴 것처럼 거셌다.
‘왜 이렇게 난리야.’
객석에선 익숙한 응원봉들이 괜찮다고 외치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응원봉들을 보고 있으려니 입 안이 바싹 말라왔다.
힘겹게 침을 삼켜도 전혀 갈증이 해결되지 않았다.
‘오늘은 우리가 1위를 하는 게 당연해.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가 그렇고, 우리뿐만 아니라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속으로 되새겨 보았음에도 날뛰는 심장은 도무지 얌전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얼굴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았음에도 어쩐지 그 시선의 주인이 정찬양이란 확신이 들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뜨거운 조명 아래 서 있음에도 손가락 끝이 차갑게 식었다.
바닥에 놓인 프롬프트에 쓰여 있는 두 팀의 이름 아래 분야별 점수가 차례차례 표시되었다.
예찬은 말없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윽고 숫자가 멈추고 MC가 1위를 호명했다.
[6월의 셋째 주 생방송 뮤직캐슬, 1위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