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6화
– 예찬이는 의외로 인터넷 반응을 잘 찾아보는구나.
잠시간의 정적 후 이어진 심상록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묻어있었다.
‘저렇게 웃을 힘이 있으면 아직 괜찮지.’
제대로 번아웃이 오면 웃음은커녕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예찬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런 일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형, 지금 시간 있어요?”
자정에 가까워진 시계를 확인하고도 예찬은 망설임 없이 의자에 걸어 둔 점퍼를 집어 들며 물었다.
“없어도 내줘요.”
* * *
‘어떻게 할까.’
예찬은 택시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고민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서울의 야경처럼 예찬의 머릿속도 빠르게 굴러갔다.
심상록의 연습생 기간은 7년. 공교롭게도 리셋 전 예찬의 연습생 기간과 같았다.
긴 연습생 생활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
보통의 또래와 다른 생활, 끝없는 경쟁, 자신을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보는 주변의 어른들.
언제 데뷔하게 될지도, 데뷔를 하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도 안개에 쌓인 것처럼 그저 막막할 뿐이다.
심상록은 츄마프를 통해 드디어 짙은 안개 속에서 한 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뭘 해 보기도 전에 악플들이 쏟아지니 당혹스러웠겠지.’
예찬이나 리스피릿의 다른 멤버들도 심상록과 비슷한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대충 어떤 심정일지는 뻔히 보였다.
리셋을 할 때마다 여러 번 해결한 문제였다.
예찬은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문제는 그 해결법이란 게 문제가 생기기 전에 해결해 버리는 거라는데 있지.’
예찬은 리스피릿의 멤버들이 데뷔는 그저 아주 길고 지난한 길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달을 때까지 멤버들을 금이야 옥이야 꽁꽁 싸고돌았다.
인기 있는 연예인에게는 악플이나 찌라시가 필연적으로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때까지 댓글을 포함한 모든 피드백을 직원들을 통해 걸러 듣게 했다.
조금 삐끗하면 리셋을 해서 더 촘촘하게 통제하면 되었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갈 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시작조차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택시가 멈추자 코끝이 빨개진 심상록이 빠르게 다가왔다.
“예찬아.”
아무래도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옷차림이 얇았다.
‘쯧, 몸이 재산인 연습생이.’
“오는데 힘들진 않았어?”
“택시 타고 와서 괜찮아요.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요, 형.”
약속 장소로 삼았던 무인 카페는 주택가에 있다 보니 다행히 이런 시간까지 손님이 있진 않았다.
예찬은 평소와 다르게 안절부절못하는 심상록을 자리에 앉혀 놓고 음료 자판이 앞에 섰다.
‘커피를 마시기엔 너무 늦었고, 에이드는 차가우니 거르고……이 시간에 뭐 먹는 거 아닌데. 맹물 가져다주면 선 넘는 거지?’
잠시 고민하던 예찬은 따뜻한 우유 두 잔을 뽑아 자리로 돌아왔다.
한 잔을 심상록 앞에 내려놓은 예찬은 심상록이 감사 인사도 채 꺼내기 전에 맞은편에 앉으며 다짜고짜 물었다.
“저한테 왜 전화했어요?”
“갑자기 만나자고 한 건 너면서 이제 와서 그걸 묻는 거야?”
차갑게 식은 손을 컵으로 데우며 심상록이 마른 웃음을 흘렸다.
“내가 왜 전화했는지 눈치챘잖아.”
예찬은 빼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유는 알아요.”
갑작스러운 악플에 뺨 맞고 동종 업계 지인에게 심정을 털어놓고 싶어지는 것은 이해한다.
“근데 왜 저였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그 상대가 만난 지 고작 보름 남짓한 예찬이었을까?
예찬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는 심상록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어 질문했다.
“형도 저랑 데뷔하고 싶어요?”
재는 것 없이 꽉 찬 직구에 얻어맞은 심상록은 잠깐 놀란 얼굴이 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좀 성급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너랑 데뷔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됐다.’
일이 생각처럼 진행되는 것에 예찬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으나 태연한 척 표정을 가다듬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딱히 캘 생각이 없었다.
‘눈이 제대로 달린 놈이면 나랑 같이 데뷔하고 싶은 건 당연하니까.’
예찬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좀 전의 전화는 이미 저를 한 팀이라고 생각하셔서 의지했다고 해석해도 될까요?”
“으음, 그래.”
아주 좋았다.
기억 속의 심상록은 어느 팀에 들어가도 보통 이상은 하는 연습생이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찢었다.’라는 수식어가 붙을 법한 무대는 어째서인지 최하위권 연습생들과 한 팀이 되었을 때만 나왔다.
당시에는 저 혼자 다 해 먹어야 성에 차는 놈이라 잘난 놈들이랑 상성이 안 맞나 싶었는데, 직접 만나서 본 결과 심상록의 심하게 강한 책임감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판단을 내렸다.
심상록은 항상 초반에 푸쉬를 받았으니 어느 순간 이렇게 뒤로 살금살금 욕을 먹는 걸 보고 지금처럼 멘탈이 나갔을 터였다.
뛰어난 실력의 연습생들과 한 조가 되면 그 상태로 어찌저찌 묻혀 가서 튀지 않았다.
반대로 최하위권 연습생들과 한 팀이 되면, 자신이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발동해 한계를 뛰어넘은 결과를 낸 것 같았다.
‘이걸로 왜 심상록이 이상한 조원들을 만났을 때 데뷔율이 높았는지 밝혀졌군.’
자연스럽게 자신과 심상록을 한 팀으로 묶은 예찬은 유쾌하게 손뼉을 한번 쳤다.
“잘됐네요. 그럼 우리 장래의 팀원끼리 터놓고 얘기해보죠. 우선 지금 신경 쓰이는 악플이 올림포스나 유피테르 빨로 센터 된 거라는 내용 맞아요?”
“어? 으음, 맞아. 사실 악플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내가 지레 찔려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거니까…….”
예상했던 내용 그대로였다.
남의 것을 홀랑 가로채고도 뻔뻔하게 낯짝을 들고 활개 치는 정찬양 같은 놈도 있는데, 자기가 쌓은 과거로 덕을 보면서도 이렇게 삽질하는 심상록 같은 놈도 있다니.
참 세상사란 얄궂었다.
“찔릴 게 뭐가 있어요?”
예찬은 단호한 목소리로 심상록의 말을 끊었다.
심상록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무슨 학교 시험 보는 거 아니잖아요. 단순히 실력으로 순위를 정할 거면 노래방 기계라도 가져다 놓고 채점하라고 하지 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겠어요?”
후, 한숨을 쉰 예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이 올림포스 연습생이 아니었는데 거짓말을 한 거면 모를까, 그때 연줄로 주목받는 게 뭐가 문제에요? 그리고 그날 유피테르 선배님이 먼저 형한테 아는 척하신 거잖아요. 아, 형이 먼저 아는 척 안 한 건 잘했다고 생각해요. 일개 연습생이 1군 아이돌에게 노골적으로 들이댔으면 지금 욕먹는 건 간지러운 수준이었을 테니까요.”
숨도 쉬지 않고 이어지는 말에 심상록은 눈만 깜빡거렸다.
“……예찬이 너 래퍼 해도 되겠다.”
“말 좀 빨리한다고 래퍼 해도 된다니. 래퍼를 얕보지 마시죠?”
예찬은 이번엔 주머니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온라인 투표 결과는 봤어요? 첫날부터 지금까지 형이 1등인 거 알죠?”
“어? 으응.”
심상록이 민망한지 말끝을 흐렸다. 예찬은 개의치 않고 화면을 켜서 츄마프 투표 페이지를 열었다.
99명의 연습생 중 가장 위쪽에 심상록의 증명사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람이란 게 그렇죠. 백 마디 칭찬보다 한 마디 욕이 더 기억에 남고, 신경 쓰이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예찬이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제 생각엔 그래서야 연예인 하면서 제 명에 못 살아요.”
대체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긴장한 심상록이 침을 삼켰다.
“영 욕먹는 게 적성에 안 맞으면 때려치우는 게 맞는데, 형은 저랑 아이돌 하기로 했으니 그건 안 되고. 어쩔 수 없네요. 이제 인터넷에서 다른 건 찾아보지 말고 그냥 딱 이 투표 페이지만 봐요.”
“……어?”
예상치 못한 말에 심상록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예찬은 그편이 차라리 보기에 낫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뭘 놀라요. 원인을 뻔히 아는데 그걸 치워야죠.”
“네 말도 일리는 있는데…… 그래도 내가 뭘 잘못하고 있을 수 있으니 기사 댓글이나 SNS는 좀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꼭 알아야 할 내용이 있으면 회사에서 알려주겠죠. 아니면 제가 알려줄게요.”
“네가?”
심상록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예찬은 그런 심상록을 흘겨봤다.
“우리 같은 팀 하기로 했잖아요. 번거롭지만 팀원을 위해서 이 정도는 하죠, 뭐.”
예찬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시큰둥하게 말했다.
심상록과 문제없이 함께 데뷔할 수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충분히 들일 가치가 있었다.
“그러니 형도 ‘팀’을 위해 궁금해도 인터넷은 좀 참아 봐요.”
“……그래, 알겠어. 고마워, 예찬아.”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띠운 심상록을 보며 예찬은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상록이 형, 제가 형이랑 같이 데뷔하고 싶다고 말한 거 진심이에요. 그리고 전 제가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거든요.”
예찬의 눈이 빛났다.
“그러니까 형도 죽을힘을 다해서 따라와 주세요.”
다소 뻔뻔한 요구에 심상록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이럴 땐 네가 옆에서 도울 테니 같이 힘내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나?”
어딘가 허탈하게까지 들리는 심상록의 목소리에 예찬은 정색했다.
“둘 다 온 힘을 달려도 모자랄 판에 무슨 이인삼각 하는 소리예요. 그 속도로 업계 정상에 설 수 있겠어요?”
“정상이라니, 예찬이 너 욕심이 많구나.”
긴장이 완전히 풀렸는지 등받이에 몸을 편하게 기댄 심상록이 픽 웃었다.
“당연하죠. 전 할 거면 무조건 1등만 합니다.”
“츄마프도?”
예찬은 일부러 더 과장되게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올렸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형은 꼭 8등을 해야지, 아님 9등을 할 거야! 이런 안일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그건 아니지만…….”
심상록이 망설였다.
주제곡 센터에 현시점 온라인 투표 1위가 패기가 없었다.
“형도 1등 하겠다는 마음으로 해요. 그런 마음이 있어야 좋은 무대가 나온다고요. 아이돌은 뭐니 뭐니 해도 무대로 말해야죠.”
“……맞아, 나도 1등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해 볼게.”
예찬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심상록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무사히 문제를 해결한 예찬은 후련한 마음으로 택시를 불렀다.
“그럼 합숙 때 봐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
어두운 거리와 대조적으로 예찬을 배웅하는 심상록의 표정은 한결 밝아 보였다.
뭐, 이 몸에게 걸리면 햇병아리 연습생 멘탈 관리 정도야 간단하지.
예찬이 기분 좋게 택시 좌석의 안전띠를 맨 순간이었다.
[파티 생성!> [축하합니다! 처음으로 파티를 생성한 당신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1 포인트가 추가됐어요!>깜짝이야!
긴장을 풀고 있던 예찬은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을 간신히 삼켰다.
‘파티라니 또 뭔데.’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뒤로하고 상태창을 불러내자 못 보던 항목이 생겨나 있었다.
플레이어 ― 하예찬 LV. 9
??? 파티 소속.
택시 기사의 눈치를 살피며 은근슬쩍 이름 아래에 생긴 수상한 항목을 누르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 파티 (2/9)
― 하예찬 (파티장)
― 심상록
이게 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