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7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69화
[레굴루스, 축하드립니다!]이변은 없었다.
무대 위에 처음으로 레굴루스를 위한 축포가 터졌다.
트로피를 건네받으면서도 어쩐지 실감이 들지 않았다.
‘정신 차려야지. 일단 소감을 말하고…….’
손에 가득 찬 트로피에서 눈을 뗀 예찬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까지 환하게 빛나던 응원봉들이 전부 꺼져 있었다.
‘아…….’
그제야 예찬은 그것들이 레굴루스가 아닌 리스피릿의 응원봉임을 깨달았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MC의 말에도 예찬은 불이 꺼진 응원봉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예찬아.”
어깨에 묵직한 손길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선우이경의 선명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소감 말해야지.”
장난기 없는 웃는 얼굴과 마주하자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예찬은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 * *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우리 이클립틱, 응원해 줘서 정말 고맙고 함께 힘내 준 우리 멤버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 NJ 스태프 여러분도 정말 고맙습니다.]어떤 상황이든 당황하는 법이 없던 예찬이 다소 횡설수설 소감을 마치고 마이크를 선우이경에게 넘겼다.
‘예찬이도 사람이었구나.’
레굴루스의 기념비적인 음악 방송 첫 1위의 순간을 무대 아래에서 실시간으로 지켜 보던 홈마 박모 씨는 감탄했다.
최애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자 가슴이 울렁거렸다.
‘진짜 귀엽다. 너무 기특해. 장하다, 예찬아!’
무대 위 예찬은 다른 멤버들의 소감을 들으며 손에 쥔 트로피를 자꾸 만지작거렸다.
역사에 길이 남을 레굴루스의 첫 1위였으나, 시간 관계상 모든 멤버가 소감을 말하기도 전에 앙코르용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박모 씨는 아쉬운 마음으로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음…… 시간이 있었어도 말은 다 못 했겠네.’
채은성은 1위가 발표된 순간부터 두 눈이 수도꼭지가 된 것처럼 눈물을 펑펑 쏟아 냈었다.
지금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아예 쪼그리고 앉아서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어깨를 들썩이는 중이었다.
정의탁은 저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런 채은성의 어깨를 토닥거리고 있었다.
의젓한 맏형 이미지가 강한 심상록도 눈물을 참는 건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츄마프 마지막 순위 발표식에서도 눈이 살짝 촉촉해진 것으로 그쳤던 배새벽마저, 이번엔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있었다.
박모 씨의 코끝도 덩달아 찡해졌다.
‘얘들아, 이제 진짜 꽃길만 걷자!’
그 와중의 귀에 들리는 앙코르 라이브가 완벽해서 전율이 일었다.
심지어 눈물 콧물을 다 흘리고 있는 채은성마저 자기 파트 때는 노래를 부르고 다시 울었다.
멤버들의 연습량이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 * *
– 대기실에 있어.
무슨 정신으로 1위 소감을 말한 다음 앙코르까지 부르고 내려온 건지도 모르겠는 와중에 스마트폰엔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지만 이 메시지를 누가 보낸 건지 알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대기실에 있는데 뭐. 이따위로 문자를 보내면 내가 갈 것 같나 보지?’
……아마 갈 것이다.
“하예찬, 준비 다 했어?”
코를 훌쩍거리며 채은성이 다가왔다.
대성통곡이라도 했는지 화장을 했음에도 코끝이 빨개져 있었다.
‘정신이 없어서 다들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네.’
사실 아까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났다.
숙소로 돌아가면 우선 1위 발표 영상부터 먼저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마지막이야.”
크로스백 끈을 꼭 부여잡은 채은성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른 멤버들은 예찬이 심란해하고 있는 사이 돌아갈 준비를 끝마친 모양이었다.
스태프들도 저 멀리서 정리하는 몇몇을 빼곤 이미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잠시 고민하던 예찬은 이내 트로피와 가방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한데, 나 잠깐 들를 데가 있어.”
“지금?”
채은성이 눈을 크게 떴다.
미심쩍은 얼굴엔 ‘이 새끼가 1위 하더니 정신이 빠졌나?’라고 쓰여 있었다.
활동기엔 아홉이 하나인 것처럼 다녀야 한다고 말하던 예찬이 대놓고 개인행동을 하러 가겠다니 그럴 만도 했다.
예찬은 들고 있던 트로피를 채은성의 손에 쥐여 주었다.
“잠깐 보자는 사람이 있어서.”
“……너 미쳤어?”
채은성은 더욱 경악한 얼굴이 되었다.
무슨 상상을 했는지 알 만했다.
‘같이 출연한 누군가한테 번호라도 줬다고 생각하나 보군.’
예찬은 자신의 설명이 짧았음을 인정했다.
“진정해, 채은성. 남자고, 선배야.”
예찬의 설명에도 채은성의 표정은 쉬이 풀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정한 예찬은 채은성의 어깨에 툭 손을 얹고 자리를 벗어났다.
“예찬이 형? 어디 가요?”
대기실 문 근처에서 기다리던 멤버들이 스쳐 지나가는 예찬을 불렀다.
예찬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고개를 돌려 대꾸했다.
“잠깐 선배님 호출. 택시 타고 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요.”
오래 끌 생각은 없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주차장에 멤버들을 잡아 두는 건 좀 미안했다.
대답도 듣지 않고 빠르게 복도를 빠져나온 예찬은 목표로 한 문 앞에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예의고 뭐고 가져다 버리고 열어젖히고 싶었으나 때와 장소를 가려야만 했다.
똑똑똑.
문을 세 번 두드리자 안쪽에서 곧장 답이 돌아왔다.
“들어오세요.”
‘재수 없는 목소리.’
안쪽에서 허락도 떨어졌겠다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안녕.”
정찬양은 벤치처럼 생긴 긴 의자에 앉은 채로 예찬을 향해 반갑게 손을 들어 보였다.
다른 멤버들과 스태프들은 이미 퇴근했는지 리스피릿의 대기실 안에는 정찬양 외엔 보이지 않았다.
예찬은 등 뒤로 문을 닫고 천천히 정찬양을 향해 다가갔다.
* * *
[솔직히 뮤캐는 이제 지상파로 치기 좀 그래] [방점캐슬이 방점한 오늘 자 방점캐슬 점수표.jpg] [뮤직캐슬 오늘 1위…… 진짜 환멸난다] [1위 못 한 거 아쉽긴 한데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냐]‘며칠 전부터 질 것 같으니 방점 타령하면서 밑밥 깔고 다니더니…… 아주 단단히 돌았네.’
프리랜서 정모 씨는 악에 받쳐 커뮤니티를 도배하는 리바디들의 행태에 코웃음을 쳤다.
새로 고침을 누르자 또 다른 글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방점캐슬 만행 모음] [퇴스피릿 퇴스피릿 했는데 진짜로 퇴물 되니까 얼떨떨하네] [데뷔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인한테 1군이 밀린 거 실화냐?] [뮤직캐슬 점수 제도 개편 안 하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시청자 게시판 ㄱㄱ]여기가 오늘의 맛집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리바디를 긁는 글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화면을 훑던 정모 씨는 한 게시 글을 클릭했다.
[대기업에 국민 배우 애비까지 등에 업었는데 점수 차이가……]‘음, 제목 자극적이고.’
본문으로 살짝만 더 선을 넘어 주면 PDF로 딸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음원 음반 시청자 선호도 소셜미디어 점수 다 발리고 방송 점수 딱 하나 이겼는데 1위…… ㅎㅎㅎ
처음엔 화났는데 이젠 걍 애잔함
츄읍읍 때문에 기대했을 텐데 생각만큼 안 뜨니까 소속사고 방송국이고 애비까지 동원해서 이렇게까지 한 거잖아ㅋㅋㅠ
ㅇㅅㅎ는 뭐 이해 감…… 자기 이미지 나락으로 처박으면서까지 자식 새끼 홍보하는 참부모 인정한다 ㅂㅅㅂ은 꼭 효도하고
아무튼 오늘 일로 진짜 보석은 주변에서 아무리 질시하고 깎아내려도 그 빛이 변하지 않는다는 거 깨달음
반대로 가짜 보석은 아무리 주변에서 별의별 미사여구를 붙여도 결국 가짜라는 것도
‘아, 오글거려…….’
댓글들도 가관이었다.
– ㅈㄴ 공감….. 나도 걍 넘길려고 트로피 그게 뭐라고 얼마나 가지고 싶었으면 이러겠어……
– 윗댓은 보살이냐 난 이거만 생각하면 열받아서 돌아버릴 것 같은데
– 우리 엄마 ㅇㅅㅎ 팬이었는데 이거 얘기 해 줬더니 왜 그 나이 먹고 다 큰 자식 홍보하냐고 실망이라고 하심ㅋㅋ ㅇㅅㅎ 이미지는 확실히 나락 갈 듯
– 예전부터 거기 좀 그랬어 인상부터 좀 쎄하지 않음?
└ 지인이 유명한 관상가신데 얼마 전에 뵀을 때 한 번 걔네 사진 보여 주면서 여쭤봤단 말임 근데 진짜 안 좋다더라……ㅋㅋ 상상 그 이상
└└ 잠깐만 써 줬다가 펑 하면 안 돼?
└└└ 삭제된 댓글입니다.
└└└└ 와 내가 생각한 거랑 존똑이네ㅋㅋㅋㅋㅋ
└└└└└ 미안한데 나도 알려 주면 안 될까??ㅠㅠㅠㅠㅠ
아주 생쇼들을 하고 자빠졌네.
정모 씨는 댓글 창에 마우스를 클릭한 다음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 갓 데뷔한 신인이랑 음원, 음반, 시청자 선호도, 소셜미디어 점수 차이가 얼마나 안 났길래 방점으로 뒤집힘?ㅠㅠ 진짜 1군이 맞긴 함?
엔터를 누른 그녀는 곧장 다음 댓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지들이 본업 놔서 1위 못 해 놓고 피코하지 마라ㅋㅋㅋㅋㅋ 방송에 얼굴이라도 좀 부지런히 비춰 줬으면 이렇게 정신 승리할 일도 없었을 텐데
탄력을 받은 정모 씨의 손은 거침없었다.
– 도둑 타령하는 머갈 텅텅들은 남 새끼 탓할 시간에 뮤캐 점수 제도 언제부터였는지 확인하고 와라 그 조건 못 맞춘 건 니네 새끼들이니까ㅋㅋ 다른 회사는 면접에서 이런 자격증 필요 없었는데 왜 여기는 요구하나요?라고 따질 놈들 다 여기서 정모하고 있나ㅉㅉ
정모 씨의 장문의 댓글 아래로 리바디들의 댓글이 우르르 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이후 첫 1위의 기쁨에 젖어 있던 이클립틱들이 튀어나오고 이도 저도 아닌 어그로들과 구경꾼들까지 가세해 게시판은 오랜 시간 시끄럽게 붐볐다.
* * *
예찬은 정찬양보다 대충 다섯 걸음 앞에 멈춰 섰다.
앞으로 다가오는 예찬을 가만히 기다리던 정찬양이 자기가 앉은 의자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리 와서 앉아 봐, 예찬아.”
‘왜 친한 척 이름을 부르고 지랄이지.’
오랜 지인을 대하듯 스스럼없는 몸짓과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상대의 진영에 들어온 이상 녹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예찬은 표정으로만 욕을 했다.
험상궂은 표정을 마주한 정찬양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웃더니 다시 말을 건넸다.
“올 줄 알았어.”
예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찬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꺼내 정찬양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입조심하는 게 좋을 거란 제스처에 정찬양은 알아서 모시겠다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근처에 있는 의자를 끌어서 정찬양의 앞에 앉고 팔짱을 끼자 권하던 옆자리에서 손을 뗀 정찬양이 눈을 깜빡였다.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그거 알아내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은 건 너한테 배웠지.”
‘그건 그렇지.’
비밀 요원도 아니고 동종 업계 후배 번호 알아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이 이상 쓸데없는 질문은 생략하기로 마음먹은 예찬이 다시 물었다.
“왜 보자고 불러냈는데?”
“화해하자.”
이번에도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예찬은 귀를 의심했다.
“뭐?”
정찬양은 어울리지 않게 수줍은 얼굴로 다시 말했다.
“화해하자고. 우리, 너랑 나.”
……얘 미쳤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