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7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74화
잠깐 흐름이 끊겼던 촬영은 기태랑이 휴지를 잔뜩 들고 온 다음 다시 시작되었다.
존댓말과 반말을 자유롭게 오가고 있는 남지유가 큐시트를 들어 올렸다.
“이렇게 모였는데 츄마프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첫인상이 어땠는지 다들 기억나시나요?”
‘첫인상이라…….’
예찬을 포함한 멤버들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전부 말하는 건 어려울 거 같고, 각자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의 첫인상을 말해 볼까요?”
“질문 있습니다!”
범세혁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네, 세혁 씨.”
“이거 MC님들도 포함인가요?”
“앗.”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을 받은 남지유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예찬은 그사이 자리 배치를 확인했다.
‘선우이경 왼쪽이 남지유, 남지유의 왼쪽이 범세혁이네.’
남지유 쪽은 자리 배치가 괜찮아 보였다.
예찬의 시선이 이번엔 기태랑을 향했다.
‘배새벽 왼쪽에 기태랑이 앉아 있고, 기태랑의 왼쪽은 채은성인가. 문제가 있다면 이쪽인데…….’
“괜찮을 거 같은데요?”
“그러게. 우리끼리 첫인상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지유랑 태랑이가 있는 건 특별하잖아.”
다들 재밌겠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오직 채은성만이 어색하게 눈을 굴리고 있었다.
가장 왼쪽에 앉아 있던 선우이경이 활기차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나부터 시작할게. ‘앗, TV에서 봤던 남지유 선배님이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지.”
“아잇, 이경이 형! 그거 말고요! 좀 더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인상을 떠올려 주세요! 잘생겼다! 미남이다! 이런 거요!”
“지유야, 욕망이 너무 투명하게 드러나는데?”
선우이경의 첫인상을 조종하려던 남지유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남지유가 아련한 눈빛으로 범세혁을 바라보았다.
“나는 세혁이 처음 봤을 때가 아직도 선명해.”
“언제였어요? 등급 테스트 때?”
정의탁이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니, 사전 인터뷰 때. 의탁이 너…… 우리 날짜 겹쳤는데 기억 못 하는구나?”
“진짜요? 아니 잠깐만요, 지유 형은 이미 그때 연예인이라 봤으면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
“나도 기억 안 나는데…….”
“정식으로 인사한 건 아니었어. 내가 멀리서 일방적으로 본 거라 너흰 못 봤을 수도 있겠다.”
전 루벨 엔터 출신의 두 아이돌이 각자 자기 머리를 짚고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하자, 남지유가 조금 더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어디 보자. 별생각 없어 보이는 범세혁은 내버려 두고.’
예찬은 기억해 내야만 한다며 머리를 꾹꾹 누르고 있는 정의탁의 마음의 짐을 덜어 주기로 했다.
“의탁아, 너무 무리하지 마. 내 생각에 너는 분명 덜덜 떠느라 주변을 못 봤을 거야.”
“위로하는 거예요, 놀리는 거예요?”
정의탁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예찬을 위협했다.
“하하, 예찬이랑 의탁이는 합숙 때도 사이좋더니 더 친해졌네.”
“부러워여!”
“뭐, 그렇죠.”
남지유와 기태랑의 감탄에 예찬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새침데기 정의탁의 얼굴에만 불이 났다.
“그, 그렇긴 뭐가 그래요!”
“아무튼 그때 세혁이를 처음 봤는데, 머리 진짜 작다! 딱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 머리가 진짜 주먹만 한데 눈, 코, 입이 다 들어가 있어. 심지어 눈, 코, 입이 다 잘났어.”
깔끔하게 정의탁을 무시한 남지유는 그때의 놀라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놓고 극찬을 받은 범세혁은 잠시 좋다고 실실 웃더니 곧 오른쪽 옆에 앉아 있는 정의탁을 바라보았다.
“난 의탁이 츄마프에서 처음 본 거 아닌데. 츄마프 말고 그냥 처음 봤을 때 얘기를 하면 되나요?”
“그럼요.”
오히려 더 흥미롭다는 듯 남지유가 과장스럽게 눈을 깜빡거렸다.
“되게 성격이 급한 애라는 인상이 강했던 거 같아요! 뭔가 조그맣고 되게 어린데 항상 이렇게 인상을 쓰고 잰걸음으로 돌아다니더라고요.”
범세혁은 정의탁을 흉내 낸답시고 검지로 양쪽 눈썹 끝을 무섭게 들어 올렸다.
“내가 언제 그러고 다녔어요!”
“어, 딱 저 표정이요!”
정의탁이 벌떡 일어나며 버럭 화를 냈으나 범세혁은 전혀 굴하지 않았다.
신이 난 카메라들은 앞다투어 정의탁의 얼굴을 담았다.
“세혁이가 의탁이 처음 만난 게 언제였다고 했지?”
“소속사 들어가고 반년 만에 츄마프 나왔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의탁이 요새 무시무시하게 커지는 거 보면 그땐 훨씬 작았을 수도 있겠다.”
나머지 멤버들도 정의탁의 과거를 상상하며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을 뿐,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예찬은 아직 자리에 앉지 못한 정의탁을 자신이라도 위로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의탁아.”
“예찬이 형은 말하지 마요.”
“……아니, 위로를 해 주려고.”
“응, 그거 하지 마요.”
‘……이 자식이?’
웃음이 헤픈 멤버들은 이번엔 깔끔하게 블로킹 당한 예찬을 보고 깔깔대고 있었다.
“흠! 이제 제 차례죠? 저 갑니다?”
예찬에게 불의의 일격을 먹인 정의탁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신의 왼쪽에 앉아 있는 멤버를 확인했다.
“어…… 해솔이 형이시구나.”
넘쳐흘렀던 자신감은 5초도 가지 못하고 허무하게 흘러내렸다.
어딘가 맥 빠진 정의탁의 목소리에 강해솔의 눈매가 조금 더 매서워졌다.
“그 표정은 뭐야? 내 첫인상이 어땠길래?”
“어, 뭐…….”
그런 강해솔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정의탁은 흐리멍덩한 얼굴로 말꼬리를 흐렸다.
“어떤 대답이든 솔직하게 말하면 화내지 않겠어. 그럼 5초 준다. 5, 4…….”
“너무 빠르잖아요! 좀 천천히 세요!”
“3, 2…….”
정의탁이 기겁해서 날뛰든 말든 강해솔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아, 알았어요, 알았어! 되게 날라리같이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됐죠?!”
“날라리?”
다급한 정의탁의 외침 속에 들어 있던 단어를 강해솔이 되짚었다.
정의탁은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강해솔을 경계했다.
“분명 화 안 낸다고 했어요!”
“화는 안 나. 좀 의외일 뿐이지.”
“의외라기엔 해솔이 너 되게 날라리 상이긴 해. 성격은 전혀 아니지만.”
입이 근질근질한 걸 참을 수 없었는지 선우이경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힐끗 선우이경을 바라본 강해솔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날라리라는 게 의외라는 게 아니고요. 한평생 자기 얼굴을 거울로 봐 왔을 의탁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게 의외라서…….”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와, 이 형들은 나 놀리는 재미로 사나 봐!”
정의탁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예찬은 잠시 정의탁과 강해솔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객관적으로 더 양아치처럼 생긴 건 해솔이 형이지만…….’
강해솔의 어깨에 친근함을 담아 손을 올린 예찬이 말했다.
“의탁이 말은 친밀감이 느껴졌단 뜻 아닐까요? 그동안 줄곧 거울을 바라보며 찾아온 동지를 만났다는 느낌?”
“아, 예찬이 형!”
지금은 정의탁을 몰아갈 때였다.
“형 얼굴도 날라리랑 한 끗 차이인 거 알죠?”
예찬은 대답 대신 얄밉게 미소를 지었다.
“이익!”
악당 졸개가 할 법한 신음이 정의탁의 앙다문 잇새로 흘러나왔다.
강해솔은 아직도 어깨에 얹혀 있는 손을 따라 예찬의 얼굴로 시선을 움직였다.
“오, 예찬이가 사랑하는 해솔이의 첫인상! 흥미진진한데요!”
“오늘 자리 배치가 끝내주네요, 이경 씨.”
‘호들갑 떨긴.’
맏형 둘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죽이 척척 맞았다.
예찬은 태연한 척 코웃음을 친 다음, 곧이어 턱은 살짝 내리고 눈은 살짝 치켜뜨며 강해솔을 올려다보았다.
“와, 예찬이 형 제일 자신 있는 각도로 보는 거 봐!”
“우우, 가증스럽다! 우우우!”
“얼굴 공격은 반칙입니다!”
“형, 저는 좋아여.”
“태랑이 자리에선 예찬이 뒤통수만 보이지 않니?”
주변의 야유에도 예찬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강해솔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들이켰다.
“저기요, 하예찬 씨. 지금 귀여운 척해 봐야 소용없거든요? 첫인상 얘기할 거거든요?”
“누가 뭐래? 그리고 저 귀여운 척한 적 없는데요? 척이 아니라 그냥 귀여운 건데요?”
예찬은 더 뻔뻔하게 양 볼을 부풀리고 그 옆에 주먹을 가져다 대기까지 했다.
정면에서 안구 테러를 당한 강해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겼군.’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눈을 뜬 강해솔은 기운 없이 입을 열었다.
“후…… 하예찬의 첫인상…… 음, 등급 테스트 때는 그냥 노래 되게 잘 부른다고 생각했었고, 진짜로 말을 섞은 건 주제곡 연습 때인데 되게 잔소리 많고 오지랖은 태평양이라고 느낀 거 같은데…….”
“아, 완전 인정! 잔소리쟁이야 진짜!”
“역시 해솔이 형! 사람 보는 눈이 탁월하시네요!”
멤버들은 좋다고 손뼉을 쳤으나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예찬은 입이 슬그머니 튀어나왔다.
그때 여전히 예찬 쪽을 보지 않고 있던 강해솔이 조그맣게 말을 이었다.
“뭐, 그래도 쌀쌀맞게 생긴 거랑 다르게 애가 배려심 있고, 섬세하다고 생각한 거 같아요. 완전 첫인상은 아니지만 좀 지나면서 보니 리더십도 있고.”
“해솔이 형……!”
감동으로 짙게 물든 목소리가 강해솔을 불렀다.
예찬은 강해솔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아니, 지금보다 더 잘하면 부담스러울 거 같은데.”
강해솔의 떨떠름한 표정에도 예찬은 맞잡은 손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 둘만의 세계로 떠났네.”
“사이가 좋은 건 좋은 일이지.”
“얘들아, 이경이 형도 데려가 줘~!”
“이만 놔라.”
멤버들이 한마디씩 할 때마다 입을 삐죽거리던 강해솔이 매몰차게 예찬의 손을 쳐 냈다.
예찬은 어깨를 으쓱하고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얌전히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멤버가 소리 없이 눈을 반짝였다.
‘내 왼쪽은 얘였지.’
예찬의 왼쪽에 앉아 있는 우휘겸의 눈은 걱정과 기대감이 딱 반씩 섞여 있었다.
예찬은 잠시 고민했다.
‘첫인상이라…….’
솔직한 첫인상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학폭러’였으니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데면데면했는데 첫인상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적당히 대답하려던 예찬의 머릿속에 아득히 먼 과거의 한 장면이 선명하게 번뜩였다.
–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 최선이 S라고 믿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반복된 시간 속에서, 토씨 하나 변하지 않고 우휘겸이 매번 똑같이 했던 말이었다.
‘그건 정말 좀…… 그랬지…….’
LEE 엔터 연습실 구석에서 태블릿을 통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분명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소름이 돋았었다.
그러나 오해와 세월이 쌓이며 그 시절 느꼈던 감정은 이미 잠잠해진 지 오래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 예찬을 비웃듯 훅, 커다란 불꽃이 가슴 가득 일렁였다.
예찬은 머리를 굴리는 대신 그냥 이 순간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진솔한 첫인상이 시간을 뛰어넘어 우휘겸에게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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