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7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75화
예찬이 초반에 자신을 대놓고 피했던 걸 떠올리기라도 했는지, 의외라는 감정이 우휘겸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아직 다 갚지 못한 마음의 빚이 예찬의 양심을 쿡쿡 찔렸다.
“……고마워.”
잠시 눈을 크게 떴던 우휘겸이 이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그렇게 보였다는 건데 뭘 고맙기까지.”
예찬은 목 뒤를 주무르며 시선을 피했다.
“어우, 우리 팀 분위기 훈훈하다, 훈훈해.”
“예찬이가 보면 은근히 사람을 감동시킨다니까.”
‘그런 거 아니거든.’
겸연쩍은 예찬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멤버들은 흐뭇하게 두 사람을 지켜봤다.
“자, 그럼 이번에는 휘겸 씨가 상록 씨의 첫인상을 말해 주시죠!”
완전히 상황에 몰입한 기태랑과 달리 MC의 입장을 잊지 않은 남지유가 진행을 이어 갔다.
심상록을 향해 돌아앉은 우휘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되게 성격 좋아 보인다?”
“왜 의문형이야.”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심상록은 웃으며 우휘겸을 타박했다.
물론 하이에나들은 작은 꼬투리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정의탁 씨, ‘보인다’라는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 이거 되게 애매하죠. 보이기는 그런데 실제로는 좀 아니다, 이런 뉘앙스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보였다’보다는 낫긴 한데 역시 애매하죠?”
“과연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선우이경과 정의탁의 만담에 범세혁까지 끼어들어 고개를 연신 끄덕여 댔다.
“아니, 그런 게 아닌데…….”
“우리 멤버들, 오늘도 업보를 차곡차곡 쌓는구나.”
곤란한 듯 심상록의 눈치를 보는 우휘겸과 달리, 정작 심상록은 언젠가 업보를 돌려받을 날이 기대된다며 태연하게 웃었다.
“다음은 내가 느낀 새벽이 첫인상이지? 어, 나도 츄마프가 아니라 알콩 메이커 때 새벽이를 처음 봤는데, 그때 인상을 말해도…….”
“안 돼요. 츄마프 때 인상으로 말해 주세요.”
배새벽은 심상록이 주접을 부릴 수 있는 여지를 단칼에 잘라 냈다.
“안 되는구나…….”
풀이 죽은 심상록은 잠시 생각을 더듬었다.
“새벽이가 등급 테스트하러 무대 위로 올라가는데, 진짜 이렇게 예쁘게 생긴 애는 처음 본다고 생각했어. 꼭 인형이 걷기도 하고 말도 하는 게 신기한 느낌?”
“인정! 뭔가 이슬만 먹고 살 것처럼 생겼죠! 말 섞어 보니까 아 그건 아니구나, 했지만.”
“의탁이 형, 그게 무슨 뜻이야?”
한 차례도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말이 많을 수 있지…….’
이어 정의탁을 만족스러울 때까지 달달 볶은 배새벽이 기태랑의 첫인상을 회상했다.
“태랑이 형은 등급 테스트 때보다 레크리에이션 때가 더 기억에 남아요. 되게 붙임성 좋고 사교적인 형이구나 했어요.”
“어흑, 등급 테스트를 잊어 줘서 고마워. 모두 새벽이처럼 잊어 주면 좋겠어여.”
등급 테스트 당시 최하위권을 기록했던 기태랑이 장난스럽게 눈물을 훔치는 척했다.
기태랑에겐 유감스럽게도 이 장면이 아이튜브에 공개되면 찾아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터였다.
“와, 레크리에이션 진짜 추억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태랑이가 사회 봤었지?”
“그때 다들 처음에 누구랑 짝이었어?”
공통 주제가 나오자 다들 또 지금 상황을 잊고 이야기에 몰입했다.
“난 예찬이랑 휘겸이가 진짜 이상한 애들인 줄 알았어. 눈 마주치지 말아야지 생각했었는데…….”
“아, 나도 나도. 진짜 저 정도로 독해야 여기서 살아남는구나 싶었지.”
예찬도 빌어먹을 시스템 때문에 웃자고 하는 게임에 죽자고 덤볐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았다.
예찬은 자신과 짝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거센 파도에 휩쓸려야만 했던 우휘겸을 바라보았다.
질색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게 재미있었나?’
“그때는 서로 이름도 잘 모르고 어색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친해진 거 보면 참 신기해.”
“당시엔 힘들어 죽을 거 같았는데 돌이켜 보니 추억이 되긴 되네요.”
“자자, 이제 레크리에이션 얘기는 여기까지! 지금 시간이 없나 봐요. 다음은 우리 MC 태랑이가 받았던 은성 씨의 첫인상 타임!”
제작진 쪽에서 신호를 받았는지 급하게 분위기를 환기한 남지유가 다음 차례를 지목했다.
“앗, 드디어 제 차례가 왔군여! 전 은성이 형 처음 보고 진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몸을 움직이나 했어여! 진짜 공중에 멈춰 있는 거 같았어여!”
“아, 등급 테스트 때 했던 현대 무용 말하는 거지?”
흥분한 기태랑의 말에 남지유가 설명을 덧붙였다.
“맞아여! 저 현대 무용은 그날 처음 봤는데 무슨 마법 같았어여!”
잔뜩 흥분한 기태랑이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고등학교 때까지 현대 무용을 전공했던 채은성은 등급 테스트 무대에서 짧은 안무를 준비해 펼쳤다.
기태랑과 달리 현대 무용 무대를 여러 번 본 예찬이 느끼기에도 체공 시간이 남달랐다.
“나도 그때 깜짝 놀랐어. 공중에 와이어를 매달아 놓은 거 아닌가 했었는데.”
“저는 나중에 집에 가서 현대 무용 공연들 찾아봤었잖아요.”
쏟아진 칭찬 세례에 평소라면 의기양양했을 채은성이 조신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러곤 작은 목소리로 감사 인사.
참 오랜만에 입이 열린 것치곤 순식간에 닫혀 버렸다.
‘이 자식 왜 이래?’
채은성의 상태가 이상한 걸 느낀 건 예찬뿐이 아니었다.
남지유가 다소 호들갑스럽게 채은성을 불렀다.
“자자, 드디어 마지막 순서는 은성 씨네요! 은성 씨가 느낀 이경 씨의 첫인상! 들려 주시죠!”
“아, 네…… 이경이 형의 첫인상 말이죠…….”
채은성은 조심스레 저쪽 끝에 앉아 있는 선우이경을 바라보았다.
선우이경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요상한 자세를 취하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으. 진짜 별로다.”
못 볼 걸 보고야 말았다는 듯 채은성이 급하게 고개를 털었다.
“네? 첫인상이 별로였다고여?”
“네, 그런 걸로 해 주세요.”
기태랑이 되묻자 좀 전까지 쭈뼛거리던 태도는 저 멀리 치운 채은성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성아! 너무하지 않니?!”
“너무한 건 형의 윙크죠.”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 채은성이 칠색 팔색 하는 얼굴로 어깨까지 부르르 떨었다.
첫인상 인터뷰가 끝나고, 이어진 몇 가지 질문들에 대답하고 나자 촬영을 끝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다.
“오늘 이렇게 나와 주셔서 다들 고마웠어여. 진짜 여러분의 의리, 잊지 못할 거예여.”
기태랑이 감동했다며 정말로 눈가를 적셨다.
“아이고, 저희야말로 불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언제든 또 불러 주세요.”
“형…….”
“태랑아, 왜 울어.”
맏형 둘이 나서서 기태랑을 달래는 사이 남지유가 예찬에게 다가왔다.
“예찬아, 고마워.”
“뭘요. 이거 내일 아이튜브에 올라온다고 했었나요?”
“으응. 되게 빠르지?”
남지유가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레굴루스의 화제성을 최대한 이용해 보려는 의지가 드러나긴 했다.
“아직 채널도 공개 안 하지 않았어요?”
“맞아. 찍어 놓은 건 많은데 회사 쪽에서 승인이 안 떨어졌거든. 우리, 너희 뮤비 리액션이랑 안무 영상 리액션도 찍어 놨다?”
예찬은 애써 한숨을 삼키고 있는 남지유를 바라보며 조금 안 됐다고 생각했다.
‘비타가 일을 잘하는 기획사는 아니지.’
남지유는 조심스레 목소리 크기를 줄여서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데 너희가 직접 나온다고 하니까 바로 오케이가 나오더라고. 오늘 티저랑 채널 오픈 안내 영상 올라가고 내일 바로 너희 영상을 올리실 거래.”
“NJ에 컨펌도 받아야 하지 않아요?”
도지윤 팀장에게 비타 측과 조건을 조율할 때 꼭 컨펌을 넣으라고 신신당부했던 당사자가 모르는 척 남지유를 떠봤다.
“응, 지금부터 밤새워 서 편집하시고 내일 오전에 컨펌 넣을 건가 봐. NJ가 바로 확인해 주신댔어.”
노동법이 지켜지지 않는 업계다운 하드한 일정이었다.
예찬은 비타의 제작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으면 좋겠네요, 유랑 채널.”
“잘돼야만 해! 내가 저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어리한테 나만 믿으라면서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망하면 진짜 큰일 난다.”
급발진한 남지유가 기태랑 쪽을 바라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츄마프 땐 굉장히 긍정적인 인상이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현실과 거기서 오는 부담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형이랑 태랑이 둘 다 재밌고 성실하니까 잘될 거예요. 다음에 또 불러 주세요.”
“예찬아, 형 지금 되게 절박해서 그런 립 서비스를 진심으로 받는다? 그렇게 막 함부로 여지를 주면 안 돼.”
“립 서비스 아닌데. 오늘 너무 급하게 찍었잖아요. 다음엔 좀 여유 있게 해요.”
“하, 하예찬……! 너 진짜 성스럽다!”
“하하하.”
남지유가 눈부시다는 듯 양손으로 눈앞을 가렸다.
“아무튼, 태랑이랑 너희 덕분에 살았다 진짜. 태랑이는 어떻게 너한테 연락할 생각을 했을까?”
기특해 죽겠다며 남지유가 감탄했다.
예찬은 기태랑의 메시지를 받고 들었던 생각을 전했다.
“태랑이도 유랑 채널에 진심이란 거겠죠. 너무 형 혼자 책임지려고만 하지 말고 서로 믿고 의지해요. 같은 팀원이잖아요.”
예찬의 말을 들은 남지유는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꼭 츄마프 시절처럼 상쾌하게 미소를 지었다.
“촬영 때도 느꼈지만 예찬이 너, 레굴루스에 믿고 의지할 팀원들이 많구나.”
예찬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네? 그래 보여요?”
해솔이 형이라면 모를까 다른 놈들도?’
“응, 그러니까 나보고 태랑이를 믿고 의지하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 아니야?”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남지유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예찬은 잠시 고개를 돌려 추억 여행에 푹 빠진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나 진짜 레크리에이션 때 누구랑 짝이었지?”
“와, 짝이었던 사람은 되게 섭섭하겠다. 어떻게 그걸 기억을 못 해요?”
“나도 기억 안 나는데.”
“세혁이 형은 저였거든요?!”
“정말?”
‘저런 놈들을 내가 의지한다고……?’
예찬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리스피릿 놈들보다는 일부터 열까지 나은 구석밖에 없다고 생각은 한다만.
‘연습도 알아서 잘하고, 스케줄도 더 하고 싶어서 난리긴 하지……? 팬들한테도 다들 잘하고…….’
지금까진 정말 흠잡을 구석이 없긴 했다.
‘……그래도 사람은 언제 변할지 모르니 경계를 놓지 말아야겠어.’
생각보다 자신이 더 풀어져 있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은 예찬은 마음을 다잡았다.
괜히 방심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는 건 이제 사양하고 싶었다.
그런 예찬의 눈에 여전히 이야기에 끼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형, 잠시만요.”
예찬은 남지유에게 양해를 구하고 성큼성큼 목표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목표물은 어디다 넋을 빼고 있는지 예찬이 바로 뒤에 서 있음에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야.”
“아, 깜짝이야! 귓가에 대고 말하면 어떡해!”
소름이 돋았다며 채은성이 눈을 흘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