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7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77화
“이건 어제 사진이잖아?”
티셔츠를 대충 주워 입은 채은성은 게시글을 확인하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 일단 회사에서 사실 관계를 확인해 달라고 하셨거든. 뭐 사고 친 게 아니라 과로 때문이라고 내가 말씀드렸어. 그리고 앞으로의 대응 말인데…….]홀로 방으로 자리를 옮긴 예찬은 드디어 좀 진정한 매니저의 말을 한 귀로 들으며 거실의 상황을 주시했다.
황급히 댓글을 확인하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려는 채은성이 양옆에서 튀어나온 우휘겸과 배새벽에게 저지당했다.
“아니, 댓글 좀 보여 줘 봐.”
“……안 보는 게 나을 거 같아.”
조심스러운 우휘겸의 대답에 동의하듯 배새벽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여러분? 제 멘탈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약하지 않아요?”
“…….”
채은성의 반항에도 두 사람은 묵묵부답이었다.
[최초 유포로 보이는 글도 찾긴 했는데 해외 사이트에 내용 없이 사진만 올린 거라서…… 예찬아, 내 말 듣고 있는 거지?]예찬은 전화기를 고쳐 잡으며 대답했다.
“듣고 있어요, 형. 고소는 어려울 것 같다는 거죠?”
조심스레 예찬을 불렀던 매니저가 한숨을 내쉬었다.
[요약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도지윤 팀장님은 악의적으로 퍼 나른 사람들이라도 고소하자고 하셨는데, 이게 기사가 난 것도 아니잖아. 섣불리 고소했다가 포털 사이트 메인에라도 걸리면…….]“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래도 사태가 더 커질 수 있으니 DBS 측에 CCTV를 좀 보관해 달라고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어어, 그렇지! DBS 복도니까 CCTV가 있겠다. 회사에 연락해 볼게!]“잘 부탁드려요.”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예찬은 습관처럼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정찬양…… 짓이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지만, 그건 아니야.’
리스피릿 대기실에서 나와 바로 방송국 출구로 갔을 때 벌어진 일이니 정찬양이 사진을 찍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니면 정찬양의 사주를 받고 우릴 쫓아다니는 누군가가 찍었을 수야 있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찍었는지가 아니라 멤버들의 멘탈을 어떻게 지킬지였다.
‘이런 일은 이제 시작인 거니까.’
아이돌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은 사생부터 기자까지 널리고 널렸다.
직접 쫓아다니지 않더라도, 눈에 불을 켜고 무언가 가십거리가 없는지 찾는 사람은 그보다 더 널려 있었고.
공개하고 싶지 않은 개인사를 파고든다든지.
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이 퍼진다든지.
불화설, 혹은 더 나아가 탈퇴설이 퍼진다든지.
아니면 지금처럼 사진이나 영상의 앞뒤를 잘라 오해가 생기도록 유도한다든지.
‘차라리 나 혼자 엮인 거면 편한데.’
거실에선 아직도 댓글을 보느니 마느니 실랑이 중이었다.
예찬은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꾹 참고 거실로 나왔다.
“예찬아! 건호 형이랑 통화는 잘 끝났어? 회사에선 뭐래?”
가장 먼저 예찬을 발견한 선우이경이 아는 척을 해 왔다.
다른 멤버들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그래. 와, 이런 일이 많다고 듣긴 했는데 실제로 겪으니까 아찔하다, 그치?”
선우이경은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질까 걱정이 되었는지 일부러 가볍게 물어 왔다.
멤버들이 그새 조금 초췌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찬은 채은성을 향해 몸을 슬쩍 틀었다.
“채은성, 너는 괜찮아?”
“안 괜찮을 수가 없는 상황이야, 지금.”
누구보다 질린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채은성이 기운 없이 대답했다.
채은성은 여전히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던 우휘겸과 배새벽을 차례차례 떼어 냈다.
“말이 어떻게 퍼진 건지 누가 슬슬 알려 주지 않을래? 내가 얘를 패서 코피를 터트렸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 도는 거예요?”
멤버들이 슬그머니 채은성과 예찬의 눈치를 살폈다.
보아하니 예찬이 통화하는 사이 채은성을 붙잡고 있던 둘을 빼곤 다들 댓글을 좀 찾아본 모양이었다.
예찬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어차피 오늘 내로 해결될 일도 아니니 숨겨 봤자 의미가 없었다.
“맞아. 불화설이야. 건호 형 말로는 네가 나랑 츄마프 때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고 시끌시끌하대.”
“뭐? 츄마프 때 너랑 말 한 마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데 무슨 불화?”
채은성의 경악에도 예찬은 막힘없이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화가 나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채은성이 인적이 드문 방송국 구석에서 하예찬을 패다가 코피가 터졌다고 하던데.”
“말도 안 돼! 전에도 말했잖아! 나 폭력 같은 거랑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이번에도 예찬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네가 날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긴 한데, 소수는 너랑 내가 정정당당하게 주먹다짐을 한 결과 내가 일방적으로 발려서 코피가 터졌다고 하더라. 그 증거로 네 머리가 엉망인 거라나?”
“아무튼 내가 네 코피를 터트렸단 거잖아!”
억울해 죽겠다며 채은성이 방방 뛰었다.
“코피가 난 친구를 돕는다는 정상적인 해석은 없어?”
“네 표정이 워낙 살벌해서…….”
“사진! 사진 좀 다시 보여 주세요!”
예찬의 떨떠름한 대답에 채은성이 외쳤다.
어깨를 으쓱한 선우이경은 돌려받았던 스마트폰을 다시 건넸다.
지체 없이 사진을 확대한 채은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 이거는 내가 봐도 표정이 영…… 나 진짜 이러고 있었어?”
“나도 몰랐는데 그랬나 봐.”
사진 속 채은성의 표정은 정말로 누구 한 대 칠 것처럼, 혹은 이미 친 것처럼 살벌했다.
매니저의 말에 따르면 채은성의 팬들조차 차마 채은성이 무고한 피해자라는 주장은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쌍방이라고 주장하는 게 그쪽이랬나?’
그에 비해 사진 속 예찬은 순한 양처럼 고개까지 조아리고 있었다.
실상은 코피가 나서 본능적으로 숙였을 뿐이지만 말이다.
채은성은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사진 속 자신과 예찬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예찬은 가볍게 손뼉을 쳐서 멤버들의 집중을 유도했다.
“이게 바로 순간 캡처의 힘이란 거죠. 채은성이 좀 사납게 생기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닌데, 사진이 굉장하죠?”
“자기도 사납게 생겼으면서…….”
구시렁대는 채은성을 무시하고 예찬은 하려던 말을 계속했다.
이번엔 채은성과 예찬이 엮였지만, 다른 멤버들도 앞으로 신물이 날 정도로 겪을 일이니 다들 한 번쯤 생각해 두는 게 나았다.
“이후에 은성이가 손으로 제 코를 막아 준 거나, 저 대신 출입문을 열어 준 사진은 하나도 안 올라왔죠. 이걸 찍은 사람이라면 분명 그 장면도 봤을 텐데 말이죠.”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개입했다는 예찬의 지적에 불편한 공기가 거실에 내려앉았다.
“이번엔 퇴근길 사진이었지만, 다음엔 또 어떤 게 올라올지 몰라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나 촬영장에서 대기할 때, 하다못해 화장실에서 줄을 서고 있을 때일 수도 있고요.”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나서 고개를 돌리자 정의탁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뭐, 뭘 봐요! 침 삼키는 사람 처음 봐요?!”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자 정의탁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파닥거렸다.
예찬은 정의탁의 머리를 대충 북북 쓰다듬고 말했다.
“따로 사진이 찍힌 게 아니라도, 우리가 나온 영상들도 앞뒤 자르고 이어 붙이면 얼마든지 이상하게 편집할 수 있고요.”
예찬은 귀를 기울이고 있는 멤버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사람인 이상, 잘못을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악의적인 편집을 당할 수 있어요.”
잘못이 없다는 말을 강조하며 예찬은 채은성과 눈을 마주쳤다.
채은성의 어깨가 작게 움찔거렸다.
‘어쩐지 아까부터 괜히 큰소리치는 게 딱 센 척하는 것 같더라.’
“그냥 사고 같은 거예요. 내가 아무 잘못 안 해도 일어날 수 있는.”
예찬은 아무렇지 않게 눈을 돌리고 한 번 더 강조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해솔이 말했다.
“그렇지만 그 사고를 일으킨 사람은 명백히 잘못이 있지.”
“뭐, 그렇죠.”
“그러면 그쪽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형 순진하시네.’
예찬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를 달래듯 강해솔을 어르기 전에 선우이경이 나섰다.
“맞아. 선량한 아이돌을 건드리면 아픈 꼴을 본다는 걸 알려 줘야지.”
‘아니, 이 사람은 왜 이래? 이미지에 안 맞게 꿈같은 얘길 하시네.’
예찬의 미적지근한 눈빛에도 선우이경은 굴하지 않았다.
“그동안 연예인들은 왜 그렇게 고소를 안 하는지 계속 답답했거든! 우린 그렇게 답답하게 살지 말자!”
당장 고소장을 쓰러 갈 기세로 선우이경이 외쳤다.
이래도 되는 건가 멤버들이 슬슬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의외의 방향에서 긍정의 답이 흘러나왔다.
“……저도 이경이 형이나 해솔이 형 말이 옳다고 생각해요. 잘못을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는 게 맞잖아요.”
우휘겸이 조곤조곤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가짜 학폭 사건에 휘말렸을 때, 조용히 넘어가려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
‘자기 일이 아니라서 그런가?’
“휘겸이 말 잘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처벌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죠. 휴, 속이 다 시원하네.”
범세혁과 정의탁도 동의했다.
‘……이게 아닌데?’
예찬이 하고 싶었던 말은 앞으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테니 멘탈 단단히 붙잡으라는 것 정도였다.
연예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예찬이 보기엔 결국 조용히 지나가는 게 제일 좋고 편했다.
“회사에 얘기하고 고소해야겠지? 휘겸이네 어머님 쪽으로 진행할 수 있으려나?”
“전 고소장 양식 좀 찾아보려고요.”
“아예 인쇄해서 가져오자.”
“잠깐만, 다들 기다려 봐!”
쓸데없이 행동들이 재빨랐다.
불도저 같은 멤버들을 멈춰 세우는 데 성공한 예찬이 빠르게 말을 시작했다.
“고소를 하게 되면 이 사건에 대해 모르던 사람들도 알게 될 거고, 별것도 아닌 일로 예민하게 군다며 욕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렇다고 이런 일들이 완전히 사라질까? 그것도 아니지. 게다가 이미지 훼손이라며 광고주들도…… 아, 광고는 지금 하는 게 없구나.”
예찬의 말을 신중하게 듣고 있던 심상록이 말했다.
“나도 이전에 올림포스에 있을 때 이런 일은 웬만하면 조용히 넘어가는 게 낫다고 들었어. 괜히 불씨를 부풀리는 거라고. 정 억울하면 그냥 심한 악플들이나 모아 뒀다가 나중에 고소하라고.”
역시 전 대형 연습생다운 발언이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고소할 수 있으면 하고 싶어. 난 그때 형들이 힘들어 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거든. 우리 팬들도 그렇지 않을까?”
‘심상록 너마저……!’
“고소라는 게 그렇게…….”
예찬은 다시금 차분히 설명을 시작하려 했다.
그때, 과거의 목소리가 예찬의 발목을 잡았다.
– 연예인 하기 쉬운 줄 알았어? 어리광 부리지 말고 정신 차려.
벌어졌던 예찬의 입이 붙었다.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덩치로 쭈뼛거리고 있는 채은성과 눈이 마주쳤다.
적어도 지금은 그때와 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예찬을 멤버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마침내 고개를 든 예찬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할까요, 고소?”
이런.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너무 신나는 목소리가 나와 버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