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7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78화
예찬은 회사에 의견을 전하기 전, 멤버들에게 한가지 약속을 받았다.
“고소를 하는 건 좋은데, 이거 하나만 확실하게 해요. 절대로 중간에 발 빼자고 하기 없기.”
이전에 먼저 고소하겠다고 길길이 날뛰다가 막상 여론이 좋지 않자 꼬리를 말고 도망친 놈이 아직도 선명해서 한 말이었다.
‘그래서 그다음 회차엔 고소를 안 했지.’
당시에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억울하다며 화내는 놈의 얼굴을 보고 싶은 얄팍한 복수심도 없잖아 있었던 것 같다.
멤버들은 무슨 당연한 말을 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이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어?”
“한번 시작한 이상 끝을 보겠어요!”
“옳소!”
“옳소…….”
채은성이 어울리지 않게 소극적으로 호응했다.
예찬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채은성, 괜히 너 때문에 일이 커졌다고 생각하지 마.”
“별로 그런 생각 안 했거든?”
채은성은 어색한 얼굴로 소매 끝을 만지작거리다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예찬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네 입장이었다면, 너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이었을 거야.”
“그건…… 그렇겠지만…….”
예찬이 단호한 어투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주지시키자 채은성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여전히 불편한 기색이 남아 있었으나 저 정도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예찬은 여기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결심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우리 팀 새침데기 포지션은 정의탁이니까 너무 새침하게 굴지도 말고.”
“그래, 그건 의탁이 꺼…… 엥?”
“잠깐만요. 멋대로 이상한 이미지 씌우지 말라고요!”
귀를 의심하는 채은성의 뒤에서 발끈한 정의탁이 튀어나왔다.
“자자, 의탁아. 형들 얘기하게 잠깐만 진정하고 있자.”
“진정 못 해요! 에잇, 이거 놓으라고요!”
심상록이 본격적으로 날뛰려는 정의탁을 저지했다.
‘역시 팔씨름 9위라 그런지 5위에게도 쉽사리 제압당하는군.’
“예찬이 형, 그 눈빛 뭐예요? 되게 불순한데요?”
버둥거리는 와중에도 정의탁이 예리한 지적을 날렸다.
예찬은 듣지 못한 척 딴청을 피웠다.
* * *
[NJ 일 좀 해라 XX]어제 점심에 사진 퍼졌는데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음?
뭔 일 처리가 X소보다 못해 답답해 뒤지겠네
누가 구구절절 해명문 쓰랬냐 그냥 아니라고 공지라도 내라고 개소리하는 애들 더 늘어나기 전에
– 피드백을 어케 함 빼박인데ㅋㅋㅋㅋㅋㅋ 합성이라고 우기는 거 보고 있음 애잔함……
└ ㅇㅇ…… 그냥 잠잠해질 때까지 조용히 있자
└ 빼박 ㅇㅈㄹ 퇴스피릿은 걍 노관심이니까 꺼져 ㅎㅎ
└└ 떡밥이 얼마나 없길래 여기까지 오냐ㅠㅠ
– 채 씨 츄맢 때부터 인상이 좀 그랬는데 다들 좋아해서 말 못 하고 있었음
└ XX 쎄믈리에 안 지겹냐?
– 예찬이 너무 불쌍해ㅠㅠㅠ 노래 셔틀 작곡 셔틀 다 해 줬는데 결과가 이거냐고
└ 역시 솔로가 답이다
└└ 윗댓 어그로니까 먹금 ㄱ
– 현타 오짐ㅋ…… 인성이 터졌으면 들키질 말든가 XX
└ 팬코 안 지겹니?
– 근데 하예찬도 그냥 당하고 있을 상은 아니지 않음? 걍 둘이 싸운 거 누가 찍어서 일 커진 것 같은데
└ 채은성은 좋겠다 사람 때려도 팬들이 실드 쳐 주고
└ ㅇㅈ 코피는 살짝만 빗맞아도 날 수 있는 거 아님? 여기 댓글 쓰는 애들은 친구랑 싸우다가 코피 난 적 한 번도 없어?
└└ 찐따 특 : 혼자만 친구라고 생각함
– 쌍방이니 뭐니 주장하는 새끼들 다 죽여 버릴 거야 내 새끼 진짜 불쌍하다 씨X 작곡 셔틀 노래 셔틀 다 했는데 처맞기까지 해야 하냐고
└ 하예찬 무슨 셔틀 버스 기사임? 존X 셔틀 타령해 대네
– XX 사생이 찍은 거 소비하지 좀 마라
└ 지 새끼 코피 터진 거 아니라고 태평하게 소비 이 지X
“아이고, 다들 관심법 쓰고 난리들 나셨네. 지들이 궁예야? 얼씨구. 아주 당당하게 타팬이라고 밝히고 나대는 또라이도 있네?”
레굴루스의 스타가요 사전 녹화에 참여하고 온 프리랜서 정모 씨는 곧장 귀가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난밤처럼 PDF 수집에 열을 올릴 계획이었다.
사실 조금 전에 확인한 게시물과 댓글 정도면 애교라 볼 수 있었다.
그녀가 PDF로 박제하고 있는 것은 그보다 훨씬 천박하고 날것의 글들이었다.
‘NJ가 과연 이 PDF를 받아 줄지 의문이지만.’
어제저녁부터 급속도로 퍼진 예찬과 채은성의 사진은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연예계에서 제일 뜨거운 이슈였다.
이른 새벽 스타가요 사전 녹화에 참여한 팬들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으나, 멤버들은 지금 상황을 모르는 건지 얼굴에 그늘 한점 보이지 않았다.
예찬과 채은성은 평소보다 과하게 친한 척을 하거나 서로 어색해하지도 않았다.
‘다행이긴 한데 NJ 미친놈들은 진짜 일 안 하나?’
흡사 이중인격자 수준으로 마음을 갈대처럼 바꿔 가며 PDF를 정리한 정모 씨는 SNS 팔로워도 과감하게 정리했다.
‘차단, 차단, 또 차단!’
정모 씨는 이를 득득 갈며 헛소리를 지껄이는 SNS 지인들을 차단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 그룹인 만큼, 팀 전체보다 멤버 개인을 응원하는 기질이 강했다.
그 여파인지 이번 사태에 관하여 개소리를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정모 씨도 팀 전체보다는 하예찬 개인을 응원하는 기질이 강했으나 정도를 모르는 멍청이들이 너무 많았다.
‘아는 거 없으면 제발 입 다물고 있으라고! 아니면 혼자 벽 보고 중얼거리든가! 탈퇴니 원래부터 인성이 터졌다니, 진짜 지X을 해라, 지X을.’
츄마프와 레굴루스의 데뷔 리얼리티인 레온에의 채은성 파트를 잘라 와서 조목조목 시비를 걸고 있는 글을 캡처한 정모 씨는 과감하게 차단 버튼을 눌렀다.
그사이 지켜보던 사이트와 SNS의 게시물은 빠르게 갱신되고 있었다.
‘오냐, 어디 이번 주말 불태워 보자!’
어차피 급한 마감도 끝냈겠다, 이 판국에 새로운 떡밥이 나오지도 않겠다, 남는 게 시간이었다.
심기일전한 정모 씨가 새 게시물을 클릭하려던 순간, 예상치 못한 알림이 울렸다.
[휴식 시간 잠깐 라이브! 복숭아들 커몬~]‘라이브를 한다고? 지금?’
믿을 수 없는 알림에 눈을 한 번 세게 비볐으나 알림은 여전히 스마트폰 상단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어그로들이 미쳐서 날뛸 텐데!’
정모 씨는 급하게 라이브에 접속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막 라이브를 시작했음에도 채팅창은 난리가 나 있었다.
멤버들은 팬들이 들어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지, 소파에 앉아 고개를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하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다들 정면을 보고 있어서 아무도 채팅창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NJ 진짜 돌았나? 채팅방 이대로 냅둘 거야?’
[몇 분 들어오셨어요? 아, 그러면 이제 인사해도 되겠다.]앞쪽에 앉아 있는 스태프에게 시청자 수를 물어본 예찬이 멤버들에게 눈짓을 보내고 인사 구호를 선창했다.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 [복숭아들 보고 싶었어요!] [안녕~!]단체 인사가 끝나고 멤버들은 자유롭게 각자 인사를 날리며 손을 흔들었다.
정모 씨는 주먹을 꽉 쥐었다.
‘보통 이 타이밍에 태블릿 가져와서 채팅창 보기 시작하던데…….’
정모 씨는 조금이라도 깨끗한 채팅창을 만들기 위해 ‘하예찬 사랑해’로 도배를 할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오늘따라 누구 하나 태블릿을 챙겨 올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평소엔 채팅창 엄청 열심히 보는데…… 역시 애들도 알고 있…… 그렇다기엔 너무 태연해 보이는데?’
[시간이 애매하게 떠서 점심은 본방송 끝나고 먹으려고요. 메뉴도 다 정해 뒀어요.] [혼자만 알아, 혼자만! 우리도 좀 알려 줘요!] [그건 먹기 전의 즐거움으로 놔두자.]멤버들은 얼핏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고 있는 것 같았으나 가만히 듣고 있으니 미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평소라면 화면 너머의 이클립틱들에게 무언가 물으며 이야기를 이어 갈 텐데, 오늘은 답이 필요 없는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아는구나……!’
묘한 감정들이 정모 씨의 가슴에서 교차했다.
그 와중에 팬들을 달래 주려고 라이브를 하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또 당사자도 힘들 텐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짠하기도 하고.
이 와중에 채팅창을 더럽히는 놈들에게 화가 나기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애들이 이렇게라도 신경 쓰고 있다는 티를 냈으니 제정신인 팬들은 입조심하겠지.’
그때 자신의 소소한 근황 이야기를 전하던 심상록이 예찬을 향해 넌지시 말을 걸었다.
[예찬이는 너무 일을 열심히 해. 활동 끝나면 진짜 침대에 묶어 놓고 쉬게 해야 한다니까.] [와, 웬만하면 시간이 금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고 반박하겠는데…… 며칠 전에 코피까지 나서 못 하겠네요.]‘네? 뭐요? 코피요?’
오늘 라이브 콘셉트는 간접 어필 아니었나요?
최애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화제의 단어가 나오자 눈이 번쩍 뜨였다.
채팅창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음방 끝나고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코피가 나서요. 그때 마침 은성이랑 둘이 있었는데, 얘가 놀라서 손으로 막더라고요. 너 순발력은 있더라.] [솔직히 네 주머니에서 손수건 나오는 거 보고 후회했어.] [저런. 손수건 정도는 필수 소지품 아닌가요?] [그래서 나도 그날 바로 손수건 주문했잖아. 근데 주말 껴서 그런지 아직 안 왔어.]그 후 주제는 자연스럽게 인터넷 주문으로 넘어갔다.
[난 인터넷 주문은 잘 안 하게 되는 거 같아. 뭔가 직접 보고 사야지 쇼핑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세혁이 형, 대체 어느 시대 사람이에요.] [난 다른 건 괜찮은데 옷은 보고 사는 게 좋아.] [너희가 옷을 안 사서 자꾸 남의 걸 입는구나.] [해솔이 형 거는 어차피 작아서 아무도 안 입지 않아?] [……하예찬 너!]평소라면 변함없이 귀여운 멤버들의 모습에 난리가 났겠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채팅방은 여전히 갑작스레 들이닥친 ‘코피 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아닌 척 덮으려는 거 티 나서 모른 척도 못 하겠다;
– 예찬이 불쌍해ㅠㅠㅠ 가해자 새끼 실드도 쳐 줘야 함ㅠㅠㅠ
– 적당히 좀 합시다. 이 정도면 애들이 거의 대놓고 헛소리하지 말라고 얘기한 거 아닌가요?
– 채은성탈퇴해채은성탈퇴해채은성탈퇴해채은성탈퇴해
– 오늘 예찬이 표정 안 좋은 거 못 봤냐고 이딴 거 할 시간에 가해자랑 피해자 분리하라고 XX
– 하예찬 여론 형성하는 거 완전 영악 그 자체ㄷㄷㄷ 저 정도는 돼야 아이돌 서바에서 1등 하는구나ㄷㄷㄷ
커뮤니티와 SNS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라이브 종료 후 NJ 측에서 한 공지가 올라오자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NJ ENM입니다. 당사 아티스트에 관한 악성 게시물 관련 법적 대응 진행에 관하여 공지드립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