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8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79화
공지는 레굴루스에 대한 악의적 비방, 명예 훼손, 모욕, 성희롱, 허위 사실 유포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하여 고소를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법적 대응을 이어 갈 것이기에 적극적인 제보를 부탁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합의나 선처는 없다라…… 깔끔하군.’
예찬은 제보 메일의 주소까지 오탈자가 없는지 살펴보다 고개를 저었다.
‘습관이 진짜 무섭긴 무서워.’
LEE 엔터에선 예찬이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공지를 내는 게 당연했다 보니, 뭐만 올라왔다 하면 괜스레 매의 눈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전과 달리 지금은 이런 주말에도 충분히 일을 해 줄 인력이 있음에도 말이다.
‘이런 게 바로 습관성 인간 불신……?’
“예찬아, 이제 네 차례야.”
생각에 빠져 있는 예찬의 어깨를 심상록이 잡았다.
예찬은 가볍게 끄덕이고 조금 전까지 심상록이 있던 자리에 앉았다.
“예찬이 너는 별로 손 볼 곳이 없네. 머리가 하나도 안 눌렸어. 안 잤구나?”
기꺼운 기색이 역력한 헤어스타일리스트의 목소리를 들으며 예찬은 엷게 웃었다.
* * *
멤버들이 다 같은 마음으로 고소를 결정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음악 방송을 무사히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예찬은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빠르게 줄어드는 게시물과 댓글의 수를 잠시 구경했다.
공지를 띄운 것만으로 이 정도의 효과였으나, 고소장을 받았다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하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삭제되는 글들이 많을 터였다.
‘뒤늦게 지워봐야 소용없지만.’
음방이 끝났을 무렵 연락해 온 도지윤 팀장은 팬들에게서 제보 메일이 쏟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SNS 속 팬들도 고소 공지에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었다.
– 오늘을 위해 모아 둔 PDF가 얼마던가…!
– 진짜 NJ 일 드럽게 못한다고 욕할 때쯤 꼭 사이다를 준단 말이야?
– 합의 선처 없음 최고야 짜릿해
물론 예상했던 것처럼 이 고소 공지의 시발점이 된 코피 사진에 관한 기사와 아이튜브 영상들도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 츄마프 출신 아이돌 레굴루스의 고소 공지, 그 원인은 불화설?
– 레굴루스, 멤버 간 폭행으로 코피? 악의적 비방 법적 대응 경고
– 아이돌 하예찬 코피 난 이유는 폭행? 아니면 과로? 소속사 고소 의사 밝혀
이 좋은 이슈를 그냥 넘길 리 없는 기자들은 어김없이 누르지 못하곤 못 배길 제목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막상 기사 내용은 인터넷상에서 레굴루스와 관련해 루머가 퍼졌고, 그에 따라 NJ 측에서 고소 공지를 띄웠다는 것뿐이었다.
어찌나 두루뭉술 써 두었는지 혹여 NJ 측에서 따지고 들어도 빠져나갈 구멍이 아주 튼튼하게 뚫려 있었다.
아이튜브는 더 가관이었다.
– 채은성과 하예찬 유혈사태, 이미 조짐이 있었다! 팬들이 찾아낸 증거 모음
– NJ 고소 예고에 멤버 관리나 잘하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 역대급 인성을 자랑하는 아이돌 채은성
– 하예찬 말고도 피해자가 있었다! 레굴루스 채은성, 멤버 폭행에 왕따까지?
– 코피돌 하예찬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12가지 사실
‘미치겠다. 코피돌이래…….’
예찬은 차가운 눈으로 어이없는 제목들을 훑었다.
누구보다도 조회수를 더 빨아먹기 위해 칼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버 렉카들은 고소 공지에도 거침없었다.
‘고소 당해서 내는 벌금보다 조회수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더 크니까 저러는 거지. 겸사겸사 채널 규모도 더 키우고.’
저 중에서도 정말 인생을 막장으로 사는 몇몇은 고소장이 날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걸 찍어 올리면 또 크게 한탕 해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예찬과 레굴루스, 나아가 NJ는 저들이 활개 치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끝까지 해 보자고.’
고작 벌금형으로 끝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가 빨리는 게 뭔지 제대로 경험하게 해 주지.’
이 지지부진한 싸움에선 지치지 않는 자가 이길 것이고, 그건 예찬의 특기였다.
“예찬이 형, 그만 음흉하게 웃고 얼른 씻어요.”
“…….”
다사다난했던 주말이 끝나가고 있었다.
* * *
활동 4주 차에 접어든 레굴루스는 음악 방송 무대 대신 회사 연습실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출연하지 않으면 1위 트로피를 받을 수 없는 마이너 음악 방송들 때문에 배가 아팠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내 사심 때문에 4주 차까지 음방에 나가자고 할 순 없지. 다음 앨범 준비도 시작해야 하고.’
잡혀 있던 사인회들도 주 초에 전부 마무리되어 요 며칠은 정말로 숙소와 회사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악플러 고소 공지와 함께 두문불출하는 레굴루스를 두고 사이버 렉카들이 또 이상한 소문을 지어내고 있었으나 별걱정은 들지 않았다.
‘도지윤 팀장님, 고소에 진심이더라고.’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을 보면 새로운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도지윤 팀장을 믿고 있으면 될 것 같았다.
“5분 끝! 다들 다시 일어납시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선우이경이 알람이 울리기 무섭게 벌떡 일어나더니 짧은 휴식의 끝을 알렸다.
예찬도 뒤따라 일어서려는데 잠잠하던 스마트폰이 울렸다.
[츄마프 남지유 형]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한 예찬은 양해를 구하고 복도로 나왔다.
등 뒤로 문이 닫히자 새어 나오던 노랫소리가 뚝 끊겼다.
‘방음 좋고.’
속으로 작게 휘파람을 분 예찬은 전화를 받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네, 지유 형.”
[어, 예찬아! 잘 지냈지?]스마트폰 너머로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민망한 기색이 느껴지는 남지유의 목소리가 울렸다.
복도에 아무도 없다지만 굳이 여기서 통화를 이어 갈 필요는 없었다.
예찬의 발이 자연스레 작업실로 향했다.
“잘 지냈죠. 형도 잘 지내죠?”
[윽…… 놀리는 거 아니지?]“제가 형을 왜 놀려요.”
작업실 문을 꼭 닫은 예찬은 어깨에 대충 끼고 있던 핸드폰을 제대로 들었다.
남지유의 한숨 소리가 귀로 파고들었다.
[영상 업로드 늦어져서 미안해.]“토요일에도 사과하셨으면서 뭘 또 사과해요. 진짜 괜찮다니까요.”
[그래도……. 하, 진짜 우리 회사 왜 이러냐.]남지유와 기태랑의 채널에 지난 일요일 업로드하기로 돼 있던 레굴루스의 영상은 날짜가 밀려났다.
토요일에 퍼지기 시작한 코피 사진의 여파였다.
덩달아 토요일에 올릴 예정이었던 ‘유랑 채널’의 첫 영상도 밀려난 상태였다.
그날 바로 전화를 해 온 남지유는 무척이나 미안해했으나, 예찬은 남지유의 회사 입장도 이해가 갔다.
‘일이 어떻게 해결될지도 모르는 시점에 우리 영상을 올리는 건 너무 도박 같았겠지.’
NJ도 아닌 남지유의 회사가 질 리스크가 아니었다.
“저흰 진짜 괜찮아요, 형. 형이야말로 채널 오픈이 또 밀려서 섭섭하겠어요.”
예찬은 온화한 목소리로 남지유를 위로했다.
[그렇게 말해 주니까 진짜 고맙다. 나는 괜찮아. 아, 그리고 좀 전에 다시 업로드 날짜가 정해졌거든…….]“그래요? 다행이네요.”
[저기 그래서 말인데, 예찬아…… 그때 6월 며칠 기대해 달라고 예고용으로 영상 찍었던 거 기억나니?]“아, 네. 기억나죠.”
예찬 본인이 듣기에도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
남지유와 기태랑이 인사를 전하는 첫 영상 직후에 올릴 용도로 그런 걸 찍긴 했었다.
그리고 그 얘기를 지금 꺼내는 이유야 뻔했다.
전화 너머로도 예찬의 기색이 바뀐 게 전해졌는지 남지유는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 날짜 말하는 부분만 다시 촬영하는 건 어려울까? 여기 오는 게 힘들면 그냥 스마트폰으로 촬영해서 줘도 되는데…….]“그건 힘들 거 같아요, 형.”
예찬은 목소리가 너무 차갑게 나오지 않도록 신경 써서 말했다.
‘그쪽 제작진들이 어떻게 안 되겠냐고 쪼아 대서 연락한 거겠지.’
괜히 애먼 사람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 그렇지? 하하, 내가 괜히 불편하게 만든 거 아닌가 미안하다, 야.]“아니에요, 형. 네, 네. 그럼 쉬세요.”
바로 끊기는 좀 머쓱했는지 남지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횡설수설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예찬은 조금 따끈따끈해진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바뀐 날짜가 언제인지도 안 물어봤네…… 뭐 날짜가 완전히 픽스된 거면 저쪽 회사에서 NJ 쪽으로 연락하겠지.’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야기를 꺼낸 남지유에겐 미안하지만, 굳이 이런 일로 재촬영까지 해 줄 생각은 없었다.
‘그쪽이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건 진심이지만, 리스크 없이 이득만 보려는 얌체 짓을 우리가 도울 필요도 없지.‘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예찬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작업실을 빠져나와 연습실로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대형에 끼어 한참 동안 몸을 움직이고 나자 몸도 마음도 시원해졌다.
‘이게 바로 힐링이지.’
누가 들으면 기겁할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예찬은 뽀송한 새 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옆에서 물을 들이켜던 선우이경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런데 예찬이 너, 츄마프 때 알게 된 사람들은 다 그렇게 저장한 거야? 츄마프 누구라고.”
“저장이요? 아, 폰에…….”
좀 전에 전화가 왔을 때 화면을 본 모양이었다.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저장해야 찾아보기가 편하거든요.”
“그럼 우리는?”
어딘지 기대감이 서린 눈으로 선우이경이 예찬을 바라보았다.
선우이경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어느새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예찬은 말 대신 행동으로 대답했다.
“레굴루스 선우이경 형?! 우리 사이에 너무 정 없지 않아?”
예찬이 내민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한 선우이경이 우는 소리를 냈다.
예상 그대로의 반응에 예찬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는 형은 어떻게 저장했는데요.”
“ㄱ하예찬.”
“……그것도 정 없긴 매한가지 아니에요?”
“앞에 기역 붙였다니까? 이러면 제일 위에 뜨는 거 몰라? 이게 사랑이지 뭐가 사랑이야!”
사랑은 무슨.
예찬이 보기엔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었다.
때마침 하이에나처럼 끼어들 타이밍을 노리고 있던 멤버들이 손을 뻗어 왔다.
“어디 좀 봐요! 뭐야, 난 레굴루스 정의탁이네?”
“그럼 의탁이 너만 다를 줄 알았어? 난 나만 내 친구 은성이, 이런 식으로 저장되어 있는 게 더 소름일 듯.”
“이경이 형, 성은 떼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제가 떼 줄까요?”
“뭐야, 하예찬. 왜 나는 없어?”
강해솔의 말에 소란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예찬이 너 설마…… 해솔이 번호는 아예 저장도 안 한 거야?”
“예찬이 형 무서운 사람이네!”
“리더가 멤버 괴롭힌다!”
‘이 사람들이…….’
예찬이 평소 강해솔에게 유독 살갑게 구는 걸 뻔히 알고 있으니 더 신나서 저런 장난을 치는 게 보였다.
“너 똑바로 저장해 둬라.”
그새 자기 스마트폰을 꺼낸 강해솔이 예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잠깐. 저장 안 한 게 아니라…….”
예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 글자가 커다랗게 화면에 떠올랐다.
[해솔이 형]홀린 듯 화면에 고정되었던 멤버들의 시선이 매서운 화살촉이 되어 일제히 예찬에게 향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