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8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81화
‘2회, 3회도 할 생각인 건가.’
의욕에 불타는 건 고마웠지만, 레굴루스의 데뷔 리얼리티가 12부작인 걸 잊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지금까지 찍은 것만 넣어도 분량 초과일 텐데.’
매주 금요일에 방영 중인 ‘Regulus : Debut on air’는 지난주에 4화까지 방영을 마쳤다.
4화가 끝난 뒤에 붙어 나온 5화 예고에선 드디어 데뷔 쇼케이스와 음악 방송 첫 데뷔가 나와 팬들의 기대를 한껏 모으고 있었다.
그와 별개로 데뷔 준비 기간과 데뷔 후 첫 주는 거의 24시간 밀착 카메라로 촬영을 진행했다 보니 찍어 놓은 것에 비해 방영된 것은 정말 한 줌이었다.
‘이달 초에 촬영했던 팔씨름 대회도 아직 방영 전이니까.’
예찬을 비롯한 레굴루스 멤버들은 팔씨름 대회가 끝난 이후로 때때로 서로를 팔씨름 대회 순위로 불렀다.
아주 가끔 스타 라이브 중에도 무심코 그렇게 부른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팬들이 머리를 모아 무슨 순위인지 추측하느라 채팅창이 바빠졌다.
“예찬 씨!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정신 빼놓고 있어요! 예찬 씨가 제일 먼저 뽑아야죠!”
신 PD의 깐족거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스태프가 제비뽑기 상자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뽑아요, 뽑아!”
“…….”
눈이 마주친 신 PD가 예찬을 재촉했다.
처음 이 숙소에 들어올 때의 공손했던 태도를 잃고 점점 더 까불거리는 신 PD에게 처지를 상기시켜 줘야 할 것 같았다.
이른 시일 내에 신 PD를 응징하기로 결심한 예찬은 스태프 곁으로 다가가 상자 안에 손을 넣었다.
손가락 끝에 둥근 공 형태가 걸렸다.
예찬은 그대로 가장 먼저 잡힌 공을 꺼냈다.
“예찬 씨, 파란색 팀!”
신 PD의 외침에 어김없이 화이트보드가 등장했다.
화이트 보드엔 이미 세 가지 색으로 나누어 둔 팀명이 붙어 있었다.
독특하게 갈색, 파란색, 하얀색이었다.
‘보통 빨강, 노랑, 파랑으로 하지 않나?’
의아한 눈빛이 느껴졌는지 신 PD가 설명을 보탰다.
“아무래도 개인전으로 진행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그게 궁금한 게 아닌데.’
신 PD는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상 설명하지 않고 다음 사람을 불렀다.
“다음은 상록 씨!”
대기하고 있던 심상록이 재빨리 상자에서 공을 들어 올렸다.
갈색 공이 커다란 손에 딸려 나왔다.
그 뒤로도 멤버들이 차례차례 공을 뽑았다.
화이트 보드의 빈칸에도 점차 이름이 채워졌다.
“새벽 씨 흰색 팀! 이걸로 세 분씩 세 팀으로 나뉘어졌네요.”
신 PD의 말을 들으며 예찬은 화이트 보드를 바라보았다.
갈색 팀 ― 심상록, 우휘겸, 정의탁
파란색 팀 ― 하예찬, 범세혁, 채은성
하얀색 팀 ― 선우이경, 강해솔, 배새벽
“우리 팀 좀 괜찮은데? 해솔이랑 새벽이 요리 좀 해 봤어?”
“얘들아, 형이 미리 사과할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멤버들은 이미 셋씩 영혼의 단짝처럼 찰싹 붙어 있었다.
예찬이 속한 파란색 팀도 마찬가지였다.
“싸우자, 이기자, 해내자!”
365일 중 364일은 기분이 좋은 것 같은 범세혁이 예찬과 채은성의 어깨에 매달려 방방 뛰고 있었다.
‘하필 범세혁이라니…….’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의 폭탄이라고 짐작되는 범세혁이 한 팀이 된 것은 유감이었다.
‘얘가 요리를 잘하면 그게 반전 아니냐고.’
예찬이 아는 사람 중 제일 생활력 없는 놈이 범세혁이었다.
아이돌 안 했으면 큰일 날 놈 1순위이기도 했다.
‘얘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요리가 뭐 있으려나…….’
예찬의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 PD가 또 헛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팀이 나뉘어졌으니 이제 순서를 정해야겠죠? 각 팀 대장의 장기 자랑으로 순서를 정하겠습니다!”
“네? 뭐라고요?”
“와, 멋지다!”
“보여 줘! 보여 줘!”
황당해하는 멤버들과 달리 트레이너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츄마프 심사 위원분들을 모셔 놓고 그냥 넘어가는 것도 아쉽지 않습니까! 그렇죠, 여러분?”
“네!”
“아니요!”
멤버들과 트레이너들의 대답이 엇갈렸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저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예찬은 헛된 반항을 그만두고 범세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범세혁, 다녀와라.”
“어? 나?”
“그래, 너. 너만 믿고 있으마.”
“우리 파란 팀의 운명은 네게 달렸어!”
어느새 합세한 채은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말에 범세혁도 비장한 얼굴이 되었다.
“좋아, 나만 믿으라고!”
갈색 팀의 대표는 정의탁, 하얀색 팀의 대표는 강해솔이었다.
“왜 내가…….”
“나이가 뭐라고…….”
가위바위보로 뽑힌 강해솔과 어리다는 이유로 뽑힌 정의탁의 얼굴에 음울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럼 의탁 씨부터 갑시다!”
“네!”
물론 할 땐 하는 성격들이라 막상 장기 자랑은 최선을 다해 임했다.
“정의탁 미친 거 아니야?!”
“강해솔 최고다!”
“범세혁! 범세혁! 범세혁!”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심사석에서도 뜨거운 호응이 끊이질 않았다.
물론 프로답게 심사는 엄격했지만.
“심사 위원님들의 집계 결과가 나왔습니다! 1등 파란색 팀, 2등 하얀색 팀, 3등 갈색 팀!”
“아! 괜히 열심히 했어!”
어찌나 춤을 열심히 췄는지 아직도 숨을 헐떡대고 있던 정의탁이 외쳤다.
멤버들은 팀과 상관없이 정의탁을 위로했다.
“의탁아, 졌지만 잘 싸웠어.”
“형은 진정한 프로야.”
“눈부셨다, 정의탁!”
“됐어요, 말뿐인 위로!”
과장된 칭찬에 정의탁은 토라진 것처럼 팩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숨기진 못했다.
“저흰 제일 마지막에 할게요.”
“우린 두 번째로 할까? 처음은 너무 부담스럽잖아.”
“뭐, 이럴 줄 알았어요…….”
요리 순서는 장기 자랑 결과와 정반대로 정해졌다.
첫 번째 순서인 심상록, 우휘겸, 정의탁이 갈색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 들어섰다.
신 PD가 세 사람이 만들어야 할 요리 이름을 발표했다.
“갈색 팀이 만들 요리는…… 불고기입니다!”
“불고기요?”
“그렇습니다! 사실 여러분의 팀명인 갈색, 파란색, 하얀색은 각각 육, 해, 공을 뜻하는 색이었습니다! 갈색 팀의 요리 주제는 육! 그중에서도 불고기를 만들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신 PD는 종이에 미리 프린트해 놓은 불고기 레시피를 갈색 팀 대장인 정의탁의 손에 쥐여 주었다.
“레시피를 숙지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부터 딱 5분입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 사람은 종이에 들어갈 기세로 머리를 박았다.
그 사이 스태프들이 재빨리 냉장고며 선반에서 재료들을 꺼내 세팅했다.
‘그럼 우리는 해산물 요리겠군.’
메뉴까지 정할 필요가 없는 건 다행이었으나, 하필 재료 손질이 복잡한 해산물인 건 좀 유감이었다.
‘난데없이 바닷가재 이런 게 나오진 않겠지?’
“5분 지났습니다!”
시간이 되자 신 PD가 칼같이 레시피가 적힌 종이를 빼앗았다.
정의탁이 검지를 들어 올리며 호소했다.
“이거 영상 한 번만 보여 주시면 안 돼요? ‘적당히 볶는다’는 너무 애매하잖아요!”
“팽이버섯은 밑동을 잘라 내고 가볍게 씻어서 준비한다, 밑동을 잘라 내고, 밑동을 먼저 잘라…… 다음으로 대파는 흐르는 물에 씻은 다음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썰어서…….”
“상록이 형, 그렇게 너무 꼼꼼히 외우는 것보단 흐름만 파악하는 게…….”
“잠깐만, 휘겸아. 말 걸지 말아 줘! 까먹을 것 같아!”
“……네.”
“아, 팽이버섯 뭐였지?”
아직 요리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난장판이었다.
‘저 팀은 틀렸군.’
예찬은 갈색 팀을 자연스레 가장 아래에 뒀다.
그리고 여유 만만한 태도로 주방 쪽을 구경하고 있는 하얀색 팀으로 눈길을 주었다.
‘해솔이 형은 그냥 딱 보통 정도고, 선우이경도 생활력이 있지? 배새벽도 뭐든 해 보면 잘하는 타입이고.’
이번엔 양옆에서 조잘대느라 바쁜 같은 팀의 두 사람을 확인했다.
“불고기 맛있겠다. 우리도 먹게 해 주려나? 저기, 작가님. 저희도 먹을 수 있어요?”
“큰일이야, 하예찬! 상대 팀들의 전술을 먼저 보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마지막을 고른 건데, 그 전에 심사 위원들의 배가 다 차면 우리가 불리해!”
“…….”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팀원들의 상태에 예찬은 잠시 웃기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예찬은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마음 굳세게 먹어라, 하예찬. 해솔이 형의 정 없는 전화번호부를 그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야?’
“불고기 진짜 맛있겠지? 아, 점심 먹은 지 꽤 돼서 그런가 진짜 배고프네.”
“……하예찬, 큰일이야! 심사 위원분들도 아직 식사 전이니까 한창 배가 고프실 거야! 그때 먹는 음식은 몇 배는 더 맛있게 느껴지는데……!”
‘안 되겠다. 이 자식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의욕이 뚝뚝 꺾여.’
예찬은 옆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를 최대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눈앞의 풍경에 집중했다.
“상록이 형, 고기 재워야 하니 설탕 좀 찾아 주세요.”
“아까부터 찾고 있는데 설탕이 안 보여.”
“다 하얀데 눈으로만 보면 못 찾죠. 맛을 봐요.”
“어? 설탕은 갈색 아니야?”
갈색 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산산이 조각났던 의욕의 조각들이 절로 붙었다.
정의탁은 의외로 상당히 야무졌고, 우휘겸은 경험이 부족한 티는 났지만 버벅거리면서도 나름대로 제 몫은 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멍이 너무 컸다.
“상록이 형, 불고기를 무슨 솥에 볶아요!”
“어? 고기랑 야채가 다 들어가려면 좀 커야 하지 않나? 그러면 당면을 여기다 삶을까?”
“아니에요, 형! 냄비랑 팬은 제가 찾을게요! 그냥 그것만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놔 주세요.”
“그래, 알았어…….”
풀이 팍 죽은 심상록이 터덜터덜 솥을 가져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으음…….”
그 기운 없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의탁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상록이 형. 고기 한번 볶아 볼래요?”
“내가? 그러면 안 되지 않을까?”
마음 약한 정의탁이 나무 주걱을 심상록에게 내밀었다.
입과 달리 솔직한 심상록의 손은 이미 주걱에 반쯤 닿아 있었다.
“양념도 다 해 놔서 진짜 볶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정의탁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우휘겸도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조금만 해 볼게?”
주방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설렘 때문인지 살짝 상기된 뺨을 한 심상록이 조심스레 주걱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욱한 연기가 주방을 뒤덮었다.
“아, 상록이 형! 뭘 어떻게 한 거예요!”
“미, 미안……!”
세 사람의 콜록거리는 소리는 그 후로 한참 동안 끊이질 않았다.
‘이겼군.’
예찬은 조용히 승리를 점쳤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 알량한 동정심을 끌어온 순간 저들의 패배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갈색 팀의 불고기입니다.”
이윽고 핼쑥한 얼굴로 정의탁이 메뉴를 소개했다.
심사 위원들은 눈앞에 놓인 처참한 몰골의 물체와 갈색 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불고기요?”
“예.”
“……딱 한 입씩만 드셔도 됩니다. 여러분의 건강은 소중하니까요.”
거실 구석에 틀어박혀 눈물이 찔끔 삐져나올 때까지 웃고 돌아온 신 PD가 심사진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다들 할 말을 잃은 가운데 김상희 작가가 범세혁을 향해 다가왔다.
“저, 세혁 씨. 아까 먹고 싶다고 했죠? 어떻게 좀 덜어드릴까요?”
“아니요, 배가 안 고파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 입만 먹고 싶다며 징징거렸던 범세혁은 더없이 의젓한 얼굴로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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