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8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82화
“크흠, 정말 개…… 성적인 맛이네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내려놓은 계정엽 작곡가의 평을 마지막으로 갈색 팀의 불고기 시식이 끝났다.
“기, 김 작가. 나 물 좀…… 우욱!”
심사 위원들이 반드시 신 PD도 시식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결과, 신 PD 또한 심상록이 빚어낸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물체를 입에 넣게 되었다.
“으, 으허억…….”
“그럼 빨리 다음 팀도 진행하죠.”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이가원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신 PD를 대신해 하얀색 팀을 향해 눈웃음을 보냈다.
그러나 이가원의 눈가도 자세히 보니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과연 1군 아이돌. 표정 관리가 일품이었다.
심상록과 우휘겸, 정의탁이 스태프들과 함께 주방을 정리하는 사이.
하얀색 팀 삼총사가 앞치마로 모자라 머리에 흰 두건까지 쓰고 나타났다.
‘아니, 저거 그냥 흰 티셔츠를 접어서 쓴 거 아니야?’
열심히 머리를 만져 준 스타일리스트가 보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심사 위원님들! 선우이경!”
“……강해솔.”
“배새벽입니다.”
삼총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상한 포즈까지 만들어 왔다.
선우이경을 중심축으로 날개를 펼친 한 마리의 새가 자태를 뽐냈다.
‘육해공 중 공 담당이라고 저런 포즈를 만들어 왔나?’
왼쪽 날개를 맡은 강해솔은 비록 이름은 한 박자 늦게 말했으나 뻗은 팔의 각도는 칼 같았다.
“어우, 이런 건 언제 준비했대.”
“이경이네, 이경이.”
멤버들을 알 만큼 아는 트레이너들이 귀엽다는 듯 말을 얹었다.
신 PD는 초점이 명확하지 않은 눈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어, 하얀색 팀의 메뉴는 닭볶음탕입니다…….”
아직도 시식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신 PD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두 번째 팀의 메뉴를 공개했다.
하얀색 팀의 세 사람도 레시피가 인쇄된 종이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우리도 뭔가 파란 걸 찾아오자!”
저쪽 팀의 준비성에 위기감이라도 느꼈는지 채은성이 예찬과 범세혁의 팔뚝을 잡아당겼다.
쓸데없이 강력한 힘에 휘청거리며 예찬이 고개를 내저었다.
“저런 거 다 부질없다. 요리가 중요해, 요리가.”
“하예찬 넌 로망이 없어, 로망이!”
팀 경기라면 유니폼과 구호를 맞추는 게 기본 아니냐며 채은성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빛나는 당신의 별’ 있잖아? 유니폼은 여기 있고.”
예찬은 황당하단 얼굴로 스태프에게 전달받은 파란색 앞치마를 흔들었다.
“진짜 말이 안 통한다. 이럴 땐 다수결이지. 범세혁,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경이 형네는 요리 좀 할 거 같지 않아? 이번엔 진짜 한 입 달라고 할까?”
범세혁은 두 사람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이 팀, 괜찮은 건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팀워크가 개판인 건 알겠다.
그에 비해 닭볶음탕 삼인방은 꽤 훌륭한 호흡을 보여 주고 있었다.
선우이경은 제법 난관이라 예상했던 닭 손질을 척척 해냈고, 강해솔은 야무진 손놀림으로 채소들을 다듬었다.
그 사이 막내 배새벽은 양념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대해도 되겠는데?”
“그렇다고 너무 안심하진 말아요. 불고기도 볶기 전까진 그럴듯했어.”
심사 위원들이 속닥거리는 소리에 옆에 서 있던 심상록의 고개가 스르륵 내려갔다.
“괜찮다고 해야 할 타이밍인 건 알겠는데, 차마 괜찮다는 말이 안 나오네요.”
정의탁의 말은 그다지 차갑지 않았다.
그저 솔직한 본심을 담아 담백했다.
그래서 심상록은 더 고개를 깊게 숙였다.
너른 어깨가 과장을 보태 반토막으로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
우휘겸은 팀원들을 번갈아 바라보다 결국 말을 아꼈다.
제아무리 우휘겸이라 한들 심상록에게 괜찮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어이쿠, 해솔아 조심!”
“깜짝이야. 고마워요, 형.”
간 보기에 열중한 강해솔이 머리에 뒤집어쓴 티셔츠를 냄비에 빠트릴 뻔한 위기를 넘기자, 하얀색 팀은 점점 더 거칠 것이 없었다.
“저의 팀의 닭볶음탕을 맛보시죠!”
심지어 플레이팅까지 제법 그럴듯했다.
의기양양하게 김이 폴폴 오르는 그릇을 내민 선우이경의 양옆에서 강해솔과 배새벽은 예의 날개 포즈를 취했다.
강해솔은 부끄러운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으나 배새벽은 더할 나위 없이 당당했다.
먹음직스러운 닭볶음탕의 자태에 심사 위원들의 젓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오, 맛있다!”
“감자도 잘 익었네.”
직전 불고기의 충격이 너무 컸는지 평소 칭찬이 인색한 트레이너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게 요리지!”
신 PD도 주먹까지 불끈 쥐고 닭볶음탕을 찬양하고 있었다.
“칫, 우리가 불고기 뒤여야 했는데.”
승리욕에 눈이 먼 채은성이 심상록의 등에 비수를 하나 더 꽂았다.
“하하…….”
“우리 몇 점 나올까요?”
정의탁이 기운 없이 중얼거렸다.
짧은 심사평이 오가며 심사 위원들이 앞에 놓인 종이에 점수를 매겼다.
그렇지만 발표는 세 팀의 요리가 전부 끝난 후에 있을 예정이었다.
“……마이너스는 없겠지?”
우휘겸의 말에 악의는 1퍼센트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순도 100퍼센트의 걱정과 진심만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심상록은 무너졌다.
“미안하다……!”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닌데…….”
“이미 지나간 거 어쩌겠어요. 우리가 예능 분량 뽑았다고 생각해요, 상록이 형.”
갈색 팀이 심상록을 달래는 것을 구경하는 사이, 맛있는 냄새가 어쩐지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밥이랑 먹으면 딱 좋을 거 같은데!”
고개를 돌리자 어디선가 닭볶음탕 한 그릇을 얻어 온 범세혁이 닭고기 한 점을 입에 홀랑 넣고 입맛을 다셨다.
“범세혁, 무슨 짓이야! 지금 이걸 먹으면 배불러서 간을 잘 볼 수가 없잖아!”
적군의 요리를 음미하고 있는 범세혁을 본 채은성이 기겁했다.
당장이라도 그릇을 빼앗을 것처럼 손을 뻗은 것은 덤이었다.
안타깝게도 썩 좋지 못한 판단이었다.
“앗 뜨거!”
마음이 급해져서 아예 그릇째 입 안에 닭볶음탕을 때려 붓던 범세혁이 비명을 질렀다.
“왜 그래?”
“세혁이 형, 무슨 일이에요?”
옆에서 속닥거리던 불고기 메이커들이 깜짝 놀라서 이쪽을 돌아보았다.
이 상황을 고스란히 지켜본 예찬이 범세혁을 향해 물었다.
“괜찮아?”
“안 갠차나…… 혀 데써…….”
그릇을 채은성의 손에 넘긴 범세혁이 자기 입 안을 향해 손 부채질했다.
그 와중에 어떻게 다 먹긴 했는지 그릇엔 양념만 남아 있었다.
졸지에 빈 그릇을 넘겨받은 채은성이 억울한 표정으로 예찬에게 물었다.
“……내가 잘못한 거야?”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울망거리는 범세혁의 시선도 따라왔다.
예찬은 두 사람을 향해 냉정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무튼 나는 잘못이 없어.”
잘못은 눈앞의 멍청이 둘이 했다.
“파란색 팀! 준비할게요!”
그새 즐거운 시식회가 끝났는지 스태프들이 예찬과 두 얼간이를 불렀다.
“네!”
예찬은 재빨리 앞치마를 두르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파란색 팀이 만들어야 할 요리는 바로, 낙지볶음입니다! 빠밤!”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부활한 신 PD가 입으로 자체 효과음까지 내 가며 음식명을 발표했다.
동시에 예찬이 공손하게 내민 손 위로 레시피 종이가 내려앉았다.
예찬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낙지를 먼저 밀가루로 씻은 다음 내장을…… 내, 내장을 손으로 뜯어…… 소, 손으로……?’
해산물이 주재료라고 들었을 때 충분히 각오를 다졌다고 생각했는데 좀 부족했나 보다.
내장이란 글자를 본 순간부터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낙지…… 살면서 만져 본 적도 없고 만질 일이 있으리라 생각해 본 적도 없어.’
심지어 상대는 살아 있을지도 몰랐다.
“얘들아, 낙지 손질은 내가 할게! 나 혀 때문에 간을 못 볼 거 같아서 차라리 낙지를 맡을래!”
그때 구원의 손길이 예찬에게 내려왔다.
예찬은 성스러운 목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예찬이 막 후광이 빛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기도 전에 옆에서 튀어나온 손이 머리를 원위치시켰다.
“하예찬! 레시피에 집중해!”
어떤 상황이든 몰입을 잘하는 채은성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목소리만 들으면 이건 뭐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 저리 가라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예찬은 머리에 손을 얹은 채로 다시 레시피에 집중했다.
“범세혁이 낙지 손질을 맡고 내가 양념장을 만들게. 채은성 너는 채소 손질을 맡아. 그다음부터는 진행 상태를 보고 조율하자.”
“좋아.”
“알겠어.”
두 사람이 동의했다.
빌어먹을 낙지를 선점해 준 범세혁에게 감사하며 예찬은 레시피의 마지막 문장까지 빼놓지 않고 다시 한번 훑었다.
‘그나저나 왜 정의탁이 영상을 보여 달라고 했는지 알겠군.’
아마도 고의겠지만 제작진이 전해 준 이 레시피는 과정 사진이 너무 적었다.
영 낯선 음식이 아닌 점에 감사하며 예찬은 머릿속으로 요리 과정을 재생해 보았다.
“시간 종료입니다! 제한 시간은 앞의 두 팀과 동일하게 60분! 시작해 주세요!”
신 PD의 외침과 동시에 예찬과 채은성, 범세혁은 주방 카운터 안쪽으로 달려갔다.
“낙지, 넌 내가 맡는다!”
늠름하게 낙지에게 선언한 범세혁은 밀가루 봉투를 화끈하게 열었다.
그리고 낙지가 들어 있는 통을 향해 마찬가지로 화끈하게…….
“야, 멈춰!”
반사 신경이 좋은지 범세혁은 사고를 치기 전에 무사히 멈췄다.
고춧가루가 든 양념통을 든 예찬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밀가루를 얼마나 부으려고?”
“얼마나?”
양 따위 생각조차 안 해 본 얼굴이었다.
‘안 말렸으면 저거 한 통을 다 부었겠군.’
예찬의 눈빛이 흉흉하다고 느꼈는지 범세혁이 밀가루 봉투 중간 정도를 가리켰다.
“요 정도?”
“…….”
정답이 아니라는 건 예찬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럼 요 정도?”
범세혁은 손가락의 높이를 조금 더 낮추는 게 아니라 높였다.
예찬은 대답 대신 조용히 밀가루 봉투를 들었다.
“밀가루는 내가 부어 줄게.”
“아휴, 감사합니다.”
더없이 무해한 미소를 지은 범세혁이 얌전히 예찬에게 낙지가 들어 있는 싱크대 앞자리를 넘겨주었다.
‘쉽지 않을 것 같긴 했는데…….’
힐끗 옆을 바라보니 채은성이 냉장고에서 필요한 재료를 척척 꺼내고 있었다.
한 놈이라도 알아서 잘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움직이는 낙지와 눈이 마주칠까 눈을 가늘게 뜬 예찬은 적절한 양의 밀가루를 부어 준 다음 잽싸게 몸을 돌렸다.
“어라?”
그러나 두 걸음도 채 옮기기 전에 불길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진심으로 돌아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이돌이라면, 아니 한 팀의 팀원이라면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때가 있었다.
예찬이 무거운 몸을 간신히 다시 돌린 것과 동시에 범세혁의 놀란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먹물이 튀어나왔어……!”
어떻게 한 건지 낙지 먹물을 반듯한 이마까지 튀긴 범세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예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엔 무자비하게 붙잡힌 낙지가 눈물처럼 먹물을 흘리고 있었다.
예찬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전화번호부는 포기하자.’
다시 생각해 보니 하예찬으로 저장된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