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85)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84화
“전화번호부잖아요.”
하염없이 흔들리는 멤버들의 동공을 본 배새벽이 짧게 덧붙였다.
‘전화번호부가 뭐?’
물론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콩, 아니 새벽아…… 혹시 형들이 뭐 섭섭하게 한 거 있니?”
“아니면 우리 새벽이 꿈이 하극상이니?”
“네? 전혀요.”
다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순식간에 멤버들이 배새벽을 둘러쌌다.
좀 더 자세히 캐 본 결과, 배새벽은 전화번호부에 순수하게 데이터를 기록하는 용도 외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이름만 있으면 알아볼 수 있는데 호칭을 붙여야 하나요?”
배새벽의 전화번호부에서 ‘배해선’과 ‘이서후’로 저장된 부모님의 이름을 확인한 멤버들은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웠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사람마다 정리법이 다르니까!”
부모님도 이렇게 저장했는데 형들을 이름으로만 저장한 게 뭐 어떻겠는가.
전화번호부 공개가 전부 끝난 후엔, 하얀색 팀의 세 사람이 다른 멤버들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이름을 바꾸는 시간을 가졌다.
“은성이 형, 제 이름 존경하는 배새벽 님으로 바꿔요.”
“뭐? 전화번호부는 그냥 전화번호부라며!”
채은성의 반발에도 배새벽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형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시잖아요.”
“크으, 이거 언제까지 유지해야 하나요? 일주일? 아니면 한 달?”
“은성이 형, 왜 이렇게 아마추어처럼 구세요. 당연히 제가 만족할 때까지죠.”
분한 얼굴로 채은성이 제작진을 향해 물었으나, 배새벽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배새벽의 태도가 너무 단호하니 제작진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강해솔은 딱히 바꾸고 싶은 게 없다며 고민을 거듭하다 범세혁을 불렀다.
“여기서 나는 뭐야?”
“형 이거요.”
“……좋은데?”
범세혁이 손으로 짚은 이모티콘이 강해솔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대체 뭐길래…….’
“예찬아, 빨리빨리 바꿔야지. 더 굉장한 이름으로 바꾼다?”
강해솔과 범세혁 쪽으로 슬쩍 고개를 들이밀려는 예찬을 선우이경이 타박했다.
예찬은 가볍게 눈을 흘기고 다시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이름을 바꾸는 데 집중했다.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고 땅처럼…… 다음이 뭐였지?’
요구 사항이 어찌나 긴지 장장 일곱 줄을 넘도록 이름이 끝나질 않았다.
‘왜 이름엔 글자 수 제한이 없는 거야…….’
적당히 두어 줄 채우면 이 이상 쓸 수 없다고 나올 줄 알았는데, 도무지 한계에 닿질 않았다.
그때 신 PD가 틀어박혀 있던 작은 방의 문이 벌컥 열렸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레굴루스 1위를 축하합니다!”
음정과 박자가 어긋난 축하 노래와 함께 신 PD는 초를 붙인 케이크를 들고 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편하게 늘어져 있던 멤버들이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팡, 소리와 함께 폭죽이 도미노처럼 터졌다.
거실에서 철수 준비를 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주머니에서 하나둘 폭죽을 꺼내 터트리고 있었다.
“레굴루스의 엔카운트다운 첫 1위를 축하합니다!”
“축하해요!”
사방에서 축하의 말과 함께 카메라 렌즈가 들이밀어졌다.
“우리 1위 했어요?”
“와, 너무 좋아!”
리스피릿이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후보에서 물러나면서 레굴루스가 자연스레 1위를 이어받은 모양이었다.
예상대로의 결과였지만 멤버들은 천장까지 뛰어오를 듯 기뻐했다.
촬영 마지막 무렵 뒤늦게 합류한 스태프가 숨겨 두었던 1위 트로피를 꺼내서 건넸다.
“짠! 방송국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받아 왔습니다.”
“따끈따끈한 1위 트로피!”
멤버들은 트로피를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예찬은 거실 장에 장식되어 있는 뮤직캐슬 1위 트로피를 힐끗 확인했다.
이걸로 두 번째 1위 트로피가 숙소에 입성하게 되었다.
* * *
‘왜 뭐가 없지?’
레굴루스가 불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꾸역꾸역 본방송을 켜 두고 중간중간 나오는 문자 투표 결과를 확인하던 홈마 박모 씨는 잠잠한 공식 SNS를 자꾸 새로 고침하고 있었다.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하면 사진이나 영상, 혹은 라이브로 소감을 전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오늘 스케줄도 없을 텐데?’
그때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올라왔다.
– 엔카 1위 감사합니다! 이클립틱 덕분이에요!
레굴루스의 공식 츄위터에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멤버들의 단체 사진이 네 장을 꽉꽉 채워 올라왔다.
‘귀여워! 그런데 웬 앞치마?’
박모 씨는 예찬의 얼굴을 한 번씩 확대해 보며 저장 버튼을 연타했다.
공개된 스케줄은 없었는데 무슨 요리 교실이라도 열었나 보다.
‘아니면 쇼케 때 말했던 요리 대회?’
박모 씨의 심장이 설렘으로 두근두근 떨렸다.
좋은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 복숭아들 덕분에 너무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노래와 퍼포먼스로 찾아뵐게요. 사랑합니다!
단체 사진 아래로 이번엔 멤버 개인 메시지와 독사진 넉 장이 차례차례 올라오고 있었다.
‘예찬아!’
예의 바른 텍스트에 그녀가 사랑하는 하예찬이 그대로 묻어났다.
박모 씨는 가슴을 마구 두드리며 멘트를 캡처하고 사진을 저장했다.
조금 진정된 뒤에 확인한 다른 멤버들의 메시지들도 전부 팬들에 대한 애정이 뚝뚝 흘러넘쳤다.
박모 씨가 모든 사진을 저장하고 폴더별로 분류까지 마쳤을 즈음, 이번엔 임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새로운 사진들이 올라왔다.
츄위터와는 다른 사진으로 열 장을 꽉꽉 채워 올린 것을 보니 SNS 담당자가 뭘 좀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사진을 씹고 뜯고 맛보고 있자 이번엔 아이튜브에 감사 인사 영상이 올라왔다.
[여러분! 1위 감사해요!] [트로피 너무 영롱하죠? 진짜 너무 뽀뽀해 대서 닳겠어요!] [저렇게 말하는 채은성이 제일 많이 했대요!]‘너희들이 더 영롱하다……!’
아이튜브 영상이 끝날 즈음엔 스타 라이브 알림이 도착했다.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 [이클립틱! 우리 1위 했어요!] [감사합니다!]그새 앞치마를 갈아입고 꽃단장을 마친 멤버들이 환한 얼굴로 라이브를 시작했다.
[어, 오늘 올라간 사진에 왜 앞치마를 하고 있었냐고요? 그건 비밀입니다!] [앞치마를 입고 숙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 것 같나요, 여러분? 그래요, 바로 공예입니다!] [너무 억지잖아요. 우리 복숭아들이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요.]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라이브는 이어졌다.
범세혁이 댓글을 읽기 위해 태블릿을 들자, 순식간에 채팅창이 범세혁을 부르짖는 글들로 도배되었다.
댓글을 눈으로 훑던 범세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마를 더듬었다.
[어? 얼굴에요? 그거 먹물일걸요?]‘먹물?’
불현듯 찾아온 떡밥의 예감에 박모 씨가 귀를 기울였다.
그사이 예찬은 이마를 가린 범세혁의 손을 치웠다.
[안 묻었는데?]멀끔한 이마를 확인한 예찬의 말에 범세혁이 이상하다는 듯 이마를 문질렀다.
[진짜? 얼굴에 김 묻었다고 했는데?]똑같은 까만색이라 먹물을 김으로 착각한 줄 알았다는 범세혁의 말에 채은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끼어들었다.
[야, 그거 잘생김…….] [잘생김? 아……!]채은성이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냐며 팬들이 자주 하는 드립 강좌를 시작했다.
[팬 사인회에서 저 애인이랑 같이 왔어요, 하고 말을 하는 거지.] [애인이랑 같이 당첨된 거야? 대단한데!] [그게 아니야! 그다음 거울을 보여 주는 게 포인트라고. ‘여기 제 애인이요!’하고.] [……와!]– 으, 은성아! 그만둬!
– 흑흑 얘들아 용서해 줘ㅠㅠㅠ
– 대리 수치심 미쳤다…
– 다시는 노잼드립하지 않을게ㅠㅠㅠㅠㅠ
채은성의 과하게 자세한 설명과 신세계를 보았다는 범세혁의 반응에 채팅창이 시끄러워졌다.
한편으로 채은성이 모르는 드립을 준비해 가겠다며 타오르는 팬들도 있었다.
– 내가 진짜 기발한 거 만들어서 간다 각오해라
– 은성이 저렇게 잘 아는 거 보면 좋아하는 게 분명함
– 이렇게 된 이상 드립을 칠 수밖에 없어……!
[여러분, 강좌는 여기까지 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이 눈부신 트로피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트로피를 꺼내 온 예찬이 말리고 나서야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그 후로도 여느 때처럼 삼천포로 빠져 가며 라이브는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리스피릿이 다 먹고 흘린 걸 주워 먹고 좋아한다며 비아냥거리는 어그로들이 가여워 보일 정도로 팬들의 마음이 충만해지는 하루였다.
* * *
다음 날 뮤직캐슬은 레굴루스와 똑같이 방송에 불참한 리스피릿이 1위를 가져갔다.
어차피 우연이 두 번 반복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아쉽지는 않았다.
“똑똑. 들어가도 됩니까?”
작업실 밖에서 선우이경이 입으로 노크 소리를 냈다.
“들어오세요.”
예찬보다 먼저 강해솔이 대답했다.
예찬은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저녁이네.’
며칠 전부터 강해솔을 꼬드겨 새로운 곡 작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아직 멤버들과 정확한 다음 앨범 일정을 얘기해 보이진 않았으나, 예찬의 서두르는 태도를 보아 공백이 길지 않으리란 것은 다들 은연중에 예상했을 것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선우이경이 느물느물 웃었다.
“작곡가 선생님들, 작업은 잘되고 계신지요? 오늘은 리얼리티를 봐야 해서 이만 퇴근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전 괜찮아요. 너는?”
작업하던 화면을 정리하며 강해솔이 예찬을 돌아보았다.
예찬이 흔쾌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오늘 따로 퇴근할게요. 먼저들 들어가세요.”
“어허! 무슨 섭섭한 소릴!”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늘 드디어 우리 하예찬 선생님의 팔씨름 실력이 방송을 타는 날 아닙니까. 다 같이 축하해야죠.”
‘이 자식이?’
매섭게 노려봤으나 효과는 없었다.
그렇다.
어제 신나게 멤버들이 스타 라이브를 끝낸 후, 마치 배턴 터치라도 하듯 아이튜브에 올라온 ‘Regulus : Debut on air’ 5화의 예고편엔 대망의 팔씨름 대회가 짧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진짜 됐어요! 여기서 혼자 본다고요!”
“어허! 정 없게 왜 이러실까?”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예찬을 달랑 들어 올린 선우이경이 당당하게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예찬아, 형이 잘 저장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조금 늦게 뒤에 따라붙은 강해솔이 얄밉게 덧붙였다.
“아, 화장실 급하다고요!”
“방금 다녀왔으면서 거짓말이 어설프구나, 우리 의탁이.”
엘리베이터 앞에는 예찬과 마찬가지로 멤버의 어깨에 둘러메진 정의탁이 어설픈 반항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의탁은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던 것 같았다.
“신 PD님 카메라 세팅하고 기다리고 계시겠지?”
“당연하지. 이런 날 리액션 비디오를 안 찍으면 그건 신 PD님이 아니지.”
“와, 나 너무너무 설레요.”
“팬들도 되게 기대하고 계시던데요.”
로비에서 마주친 직원들은 짐짝처럼 실려 있는 예찬과 정의탁을 보고 잠깐 놀라더니 이내 멤버들을 웃는 얼굴로 배웅했다.
무슨 촬영이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리얼리티 기대할게요!”
“레굴루스 파이팅!”
“감사합니다!”
수많은 사람 중 딱 두 사람만 불행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