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8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86화
광고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었다.
2부는 쇼케이스 이후 음악 방송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친 레굴루스의 모습을 1부보다 조금 더 산뜻한 분위기로 조명했다.
음방 데뷔 무대를 치른 멤버들의 짧고 굵은 소감도 끝나자, 드디어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팔씨름 대회가 시작되었다.
예찬의 홈마이자 전직 회사원인 박모 씨는 조금 전까지 감동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던 기분을 개운하게 털어 냈다.
‘자, 얼마든지 와라.’
웃을 준비를 마친 박모 씨는 TV를 향해 자세를 바로잡고 앉았다.
어제 예고가 뜬 이후, 팬들 대다수가 멤버들의 입에서 종종 나왔던 게 이 팔씨름 순위일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그녀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럼 예찬이가 8위라는 거잖아? 물론 8위여도 재밌…… 귀엽지만 Erased 때 김수영을 한 팔로 잡은 게 아직도 두 눈에 생생한데, 말도 안 되지.’
위기의 순간,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을 뿐이라고 해석하는 팬들도 있었으나 박모 씨의 생각은 달랐다.
‘평소에도 짐을 얼마나 야무지게 잘 옮기는데.’
진지하게 하예찬 괴력설을 미는 그녀는 팬들의 기대를 기분 좋게 배신하는 반전이 있길 기대하며 화면에 집중했다.
이윽고 눈에 익은 개인 인터뷰실에 두 사람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찬 씨와 은성 씨의 다툼이 이번 팔씨름 대회의 시발점이 되었다던데, 사실인가요?]인터뷰실보다 더 익숙해진 메인 PD의 목소리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잠시 서로를 흘겨본 예찬과 채은성은 차례대로 입을 열었다.
[시발점이라고 하니까 좀 거창하게 들리는데, 사실이긴 하죠.] [오늘 하예찬에게 패배의 쓴맛을 보여 줄 생각입니다.] [지금 그런 질문 아니거든?] [대답은 이미 네가 했잖아.] [그 다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나요?]처음보다 좀 더 매섭게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에게 PD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조금 민망한 듯 저 먼 곳을 바라보던 예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대단한 건 아니고 2화 방송을 보다가 좀 얘기가 나왔어요.]말이 시작됨과 동시에 예찬이 설명하는 장면이 과거 회상처럼 짧게 화면에 비쳤다가 다시 인터뷰실로 돌아갔다.
[이불 위에서 장난치다가 제가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부실하다고 먼저 시비를 걸더라고요.] [부실하다고까지는 안 했지! 그냥 종이 인형인 줄 알았다고 했거든?] [그게 그 말이거든?] [완전 다르거든? 너야말로 무식하게 버틴다고 했거든?] [자자, 두 분 그만하시고.]유치한 말다툼에 다시금 불이 붙을 기미가 보이자 PD가 재빨리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가만히 있으면 또 주제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예찬이 채은성을 가리키며 재빨리 외쳤다.
[다른 건 다 그러려니 하는데 손목을 잡고 팔씨름을 해도 이긴다잖아요! 자기가 무슨 천하장사야?] [네가 상상 그 이상으로 비리비리하니까 그렇지! 억울하면 지금 손목 내놓든지!] [누가 못 할 줄 알고? 야, 바닥에 엎드려!]‘하예찬, 완전 스무 살 그 자체…… 아니, 저건 그보단 초등학생에 가까운가……?’
동갑내기 친구를 이겨 먹겠다고 바락바락 악을 쓰는 예찬의 모습이 무척이나 새로웠다.
너무 귀여워서 비명이 새어 나올 것만 같았던 박모 씨는 양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았다.
그 사이 엉망으로 끝난 인터뷰 대신, ‘축! 제1회 레굴루스 배 팔씨름 대회’라고 적혀 있는 현수막이 화면에 떠올랐다.
[친애하는 레굴루스 여러분! 오늘 이렇게 제1회 레굴루스 배 팔씨름 대회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메인 PD의 목소리와 함께 대회에 참가할 아홉 멤버의 얼굴이 한 번씩 클로즈업되어 나왔다.
옷도 맞췄는지 다들 깔끔한 흰색 운동복을 위아래로 갖춰 입고 있었다.
이어 예찬이 팔씨름 대회의 상품을 공개했다.
[오늘 팔씨름 대회의 상품은 리더의 권한인 ‘식사 메뉴 정하기’입니다.]1, 2, 3위가 각각 3일, 2일, 하루 동안 식사 시간에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를 권리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시시한 거 아냐?’
그러나 박모 씨와 달리 멤버들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한우! 한우! 한우!] [킹크랩! 킹크랩! 킹크랩!] [얘들아, 그거 각 잡고 먹을 시간은 있고? 그냥 참치김밥 같은 걸로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텐데…….] [무조건 진흙 오리구이!] [독특한데?]무쇠도 씹어 먹을 나이에 얼마나 부실하게 먹고 있으면 저렇게 먹을 것에 집착하는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찡해졌다.
그 와중에 다이어트를 운운하며 상품의 실용성에 불만을 품은 정의탁은 멤버들에게 질 것 같으니 밑밥을 깔아 두는 거라며 놀림을 받았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미안하지만 박모 씨가 봐도 정곡을 찔린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요란스러운 멤버들에게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지 제작진이 자연스럽게 멤버들에게 뽑기 상자를 가지고 다가갔다.
멤버들이 상자에서 뽑은 공을 화면에 보여 주는 모습을 짧게 편집해서 보여 주었다.
박모 씨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은성이가 1번이고 상록이가 2번이니까 첫 경기고, 그다음이…….’
[선우이경, 6번입니다!] [어? 이경이 형, 왜 6번이에요? 제가 6번인데?] [세혁아, 네 거는 9번.] [아하.]이제는 익숙한 묘하게 나사 풀린 범세혁이 선우이경과 자신의 공을 번갈아 바라보는 장면을 끝으로 완성된 대진표가 화면에 나왔다.
‘예찬이 첫 상대는 의탁이구나!’
박모 씨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의탁의 실력이 어떤지도 알 수 없음에도 어쩐지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었다.
‘절대 정의탁 9위설이 돌아서는 아니야! 그걸 믿으면 예찬이도 8위라는 거니까!’
정의탁은 뭔가 만만했다.
정확히 왜라고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그냥 만만했다.
‘……그보다 둘이 처음에 붙으면 9위랑 8위가 될 수 없지 않나?’
역시 팬들이 헛다리를 짚은 게 분명하다고 박모 씨가 고개 주억이는 사이.
선수 선서가 끝나고 드디어 첫 번째 시합이 시작되고 있었다.
[형이라고 해서 봐 드리지 않을 겁니다.]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장착하자 원래도 사나운 채은성의 눈매가 배는 사납게 변했다.
그런 채은성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던 심상록은 당황한 기색 없이 그저 사람 좋게 웃었다.
[서로 최선을 다하자, 은성아.]부드러운 심상록의 말에 채은성이 휙 소리가 날 것처럼 거세게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곤란한 얼굴이 된 채은성이 객석을 향해 우는 소리를 냈다.
[……잠깐. 이거 저만 너무 쓰레기 같지 않아요?] [자, 그럼 자리를 잡아 주세요!] [잠깐만요! 다시 하게 해 주세요! 저기, 선생님? 듣고 계……?!]애타는 외침이 뚝 끊겼다.
채은성의 항의를 깔끔하게 편집으로 쳐 낸 것이었다.
[준비, 시작!]조금 웃음을 흘려버린 박모 씨는 곧바로 시작된 제1시합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은성이가 자신만만한 거 같긴 한데, 겉보기엔 역시 상록이 쪽이…….’
레굴루스가 워낙 가냘픈 그룹이다 보니, 묘하게 건강 미남 이미지가 있는 심상록 쪽으로 마음의 추가 기울었다.
그러나 짧고 굵은 겨루기 끝에 옆으로 넘어간 것은 심상록의 팔이었다.
[채은성 선수, 승리!] [와, 은성이 진짜 안 봐주는구나. 가차 없는데?]자기 팔을 주무르는 심상록과 위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채은성.
그리고 잔뜩 긴장한 예찬의 얼굴이 차례대로 지나갔다.
‘라이벌 분위기 제대로 내는데?’
당장이라도 동갑내기 앙숙인 두 사람이 숙명의 대결을 펼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뒤이어 채은성의 주위를 빙빙 돌며 감탄을 금치 못하는 정의탁과 채은성의 다음 상대인 강해솔을 어쩐지 안쓰럽단 눈으로 바라보는 예찬도 방송을 탔다.
[뭐야, 그 눈빛? 왜 이렇게 불손하게 느껴지지?] […….] [그렇게 이상하게 웃지 말고 대답을 하라고!]대답 대신 묘한 미소를 짓는 예찬의 모습을 잠시 담은 카메라는 그새 갱신된 토너먼트 표로 이동했다.
다음은 또 다른 동갑 콤비인 우휘겸과 범세혁의 시합이었다.
[팔씨름은 키로 하는 게 아니란 걸 보여 주겠어.] [……우리 키가 그렇게 차이가 나진 않는데.] [185cm / 188cm]서로를 마주 본 두 사람의 아래로 자막이 떠올랐다.
자막을 확인한 박모 씨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키 공개를 왜 여기서 한다고?!”
츄마프에서 188cm라고 밝힌 우휘겸을 기준으로 대충 팬들이 추측해 볼 뿐, 지금까지 레굴루스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신장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뜬금없이 팔씨름 대회에서 멤버의 공식 키가 밝혀진 것이었다.
“예찬이도 알려 줘!”
잔뜩 흥분한 박모 씨의 외침은 안타깝게도 화면 너머로 닿을 수 없었다.
박모 씨는 TV 화면에서 눈을 떼고 황급히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실시간 채팅창도 박모 씨처럼 울부짖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 키를 쟀으면 알려 줘!
– 그래서 최단신 강해솔 키 몇인데
– 이렇게 자막에 넣었다는 건 다른 애들도 오늘 넣어 준다는 거지? 믿는다 엔넷?
– 예찬이 키도 제발 알려 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 성장기 배새벽은 매일매일 키를 재서 팬들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 범세혁 키 185 범세혁 키 185 범세혁 키 185
[역시 8강답게 기 싸움이 치열하네요!] [휘겸이 형은 그냥 대답한 거 아닌가요.] [저 왼손잡이인데요.]사람 마음, 아니, 덕후 마음은 다 똑같다는 걸 박모 씨가 확인하는 사이.
TV 스피커를 통해 이런저런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그냥 오른손으로 하고 다음 대회 땐 왼손으로 하면 어떨까?]불현듯 들려온 최애의 목소리에 박모 씨의 고개가 다시 빠르게 TV를 향했다.
[그래, 좋아!]진지한 예찬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범세혁이 밝게 동의했다.
‘그래, 애들 키 얘기는 오늘 끝까지 안 알려 주면 방송 끝나고 시청자 게시판에 남기자. 지금은 본방송에 집중해야지.’
[준비, 시작!]손을 잡으며 또다시 삼천포로 빠졌던 범세혁과 우휘겸이 드디어 정면으로 맞붙었다.
시합이 시작되자 잠시 흐트러졌던 집중력이 다시 확 올라왔다.
‘덩치로 보면 역시 휘겸이? 근데 세혁이도 은근 단단한 느낌인데……!’
입을 꾹 다물고 온 힘을 쏟아 내는 두 미남의 얼굴이 화면에 번갈아 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벼운 쿵, 소리와 함께 범세혁의 팔이 넘어갔다.
언제 진지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일부러 과장되게 분한 얼굴을 한 범세혁이 입을 열었다.
[역시 팔씨름은 키로 하는 거였나……!]막상 이겨 놓고 민망해졌는지 우휘겸은 범세혁의 눈을 피하며 우물우물 대답했다.
힘을 줄 때는 멀쩡했던 두 뺨도 살짝 달아오른 느낌이었다.
[너는 왼손잡이잖아…….]박모 씨는 다시금 입을 틀어막았다.
‘미쳤다…….’
귀엽다 귀엽다 했지만 이렇게까지 귀여운 건 반칙이 아닌가.
너무 좋아서 살짝 무서울 지경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