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8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88화
배새벽과 채은성의 박진감 넘치는 결승전이 끝난 후에도 팔씨름은 계속되었다.
[저, 휘겸이랑 제대로 붙어 보고 싶어요.]‘제대로 붙긴 뭘 붙어.’
정확한 순위를 매겨 보자는 채은성의 호승심이 빚어낸 참극이라고 예찬은 생각했다.
[휘겸이 형이 은성이 형 이겼어요? 그럼 휘겸이 형이 토털 2등?] [아니지, 이경이 형이랑도 해 봐야지.] [이경이가 예찬이 이겼으니까 다음은 나랑 예찬이가 하자.] [상록이 형, 형이 범세혁 이겼죠?]적당히 비하인드로 뺄 거라 생각했던 번외 경기도 아주 꽉꽉 채워서 담았다.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따져 가며 순위를 정하는 걸 보고 있으니, 과연 저놈들이 학교에서도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했을지 의문이 들었다.
‘적어도 난 안 했지.’
화면 속 예찬은 시합을 거듭하며 차근차근 지쳐 가고 있었다.
[이제 나는 누구랑 하면 돼?] [이경이 형, 저랑 해요.] [은성아, 나는 예찬이랑 하면 된다고 했나?] [범세혁 너는…… 음, 굳이 해야 하나?]어차피 결과가 뻔하지 않겠냐는 채은성의 말에 예찬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이었다.
[예찬이가 그렇게 약해?]눈을 동그랗게 뜬 범세혁이 악의 없이 물었다.
그렇다.
범세혁은 정말 단 한 점의 악의도 없이 물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 물러설 수 없었다.
‘……물러섰어야 했는데.’
물론 그건 당시의 기분이고 지금으로선 제 손으로 무덤을 파러 가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범세혁, 당장 이리 와.]미래를 알 리 없는 당시의 예찬은 아무도 하지 않은 도발에 제멋대로 넘어갔다.
그에 그치지 않고 팔씨름 테이블을 팡팡 두들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대결의 결과는 다들 알고 있는 대로였다.
예찬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고스란히 방송을 탄 후, 마지막으로 선우이경과 심상록의 맏형 대결이 있었다.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받아들이겠습니다.]모든 시합이 끝나고 1위를 차지한 배새벽이 근엄한 표정으로 소감을 말했다.
배새벽은 상품으로 받은 3일 치 메뉴 선정권을 전부 고기로 쓰겠다고도 선포했다.
그렇게 막내의 당당한 선언과 함께, 감동과 재미가 끊임없이 몰아쳤던 리얼리티 5화가 끝났다.
“이야, 재미있었다!”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네요.”
배새벽은 신이 난 신 PD가 들이민 비하인드 카메라를 향해 브이 세리머니를 재현하고 있었다.
시끌시끌한 거실 속에서 홀로, 아니 정의탁과 둘이서만 굳어 있던 예찬은 화면이 꺼진 스마트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반응 찾아보는 게 이렇게 두렵다니.’
보지 않아도 우승을 차지한 배새벽과 함께 오늘의 MVP 취급을 받고 있는 게 누구일지 뻔했다.
* * *
레굴루스는 음악 방송 활동을 마친 뒤에도 끊임없이 스타 라이브와 SNS 활동을 이어 가고 있었다.
덕분에 매일 쏟아지는 떡밥을 받아먹기만 해도 배가 부른 이클립틱이었으나, 오늘은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예찬이 예상한 것처럼 방송이 끝나고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반전 매력을 뽐낸 예찬과 배새벽이었다.
남몰래 밀었던 ‘하예찬 괴력설’이 휴지 조각이 되었음에도 박모 씨는 기분이 좋았다.
‘오늘 진짜 보람찼다. 연약한 예찬이 귀여워.’
그저 방송을 봤을 것뿐인데, 왜 이렇게 알찬 하루를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예찬에 대한 분석도 깔끔하게 바꿔 끼웠다.
방송이 끝나고 N-net 홈페이지에 올라온 리얼리티 편 당 시간 추가 공지도 반가웠다.
‘참 늦게 띄우긴 했지만.’
오늘만 해도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방송 시간이 배로 늘어서 다들 놀라지 않았는가.
다만 좋은 쪽으로 놀라웠기에 팬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박모 씨가 콧노래를 부르며 특히 귀여웠던 부분을 다시 찾아보는 사이, 아이튜브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울렸다.
‘비하인드!’
재생 중인 영상을 멈춘 박모 씨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아이튜브를 확인했다.
역시나 방송이 끝난 후 공개되는 비하인드 영상 알림이었다.
‘오늘은 네 개나 되네?’
[DonA 5화 비하인드 : Inaugurate 수록곡 녹음 현장 대공개] [DonA 5화 비하인드 : 대회 전 물어보았다! 레굴루스 멤버들의 마음속 팔씨름 순위는?] [DonA 5화 비하인드 : 제1회 레굴루스 배 팔씨름 대회 장외 반응] [DonA 5화 비하인드 : 팔씨름 대회 이후 짧은 이야기]주르륵 올라온 영상들의 제목을 먼저 눈으로 훑던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미친!”
마지막을 제외하면 다들 하나같이 30분이 넘었다.
방송에서 잘린 인터뷰 풀버전을 올려 줄 때도 길긴 했지만, 오늘은 아예 새로운 콘텐츠들이었다.
‘……왜 이렇게 퍼 주지?’
회사나 제작진이 일을 잘하면 그냥 좋아하면 좋을 텐데 불안감이 앞섰다.
오랜 시간 앞통수, 뒤통수 가릴 것 없이 얻어맞으며 팬질을 해 온 결과 생긴 버릇이었다.
아무쪼록 레굴루스와 NJ가 이 버릇을 고쳐 주길 바라며, 박모 씨는 첫 번째 비하인드 영상을 클릭했다.
* * *
“우리 지금 되게 핫한 거 알아요, 형?”
다음 날 아침, 양치질을 하고 있는 예찬과 눈이 마주친 정의탁이 던진 첫마디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고 싶지 않지만 알 것 같았다.
대충 고개를 끄덕인 예찬은 입 안의 거품을 신 PD라 생각하며 세면대에 뱉었다.
‘신 PD……!’
지난밤, 예찬은 정말 최소한의 반응만 살피고 그대로 잠들 생각이었다.
뒤이어 올라온 비하인드 영상들만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세 영상 모두 본편 못지않은 편집으로 절로 탄성이 나올 만한 퀄리티를 자랑했는데,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네 번째 영상이었다.
[시끄러워, 9등.] [아니, 8등이나 9등이나!] [그래, 9등아.] [형, 뭔가 되게 없어 보이는 생각하고 있죠? 얼굴에 티 나요.] [응, 9등.] [아, 진짜!] [2등 어디 갔어?] [7등이랑 화장실 갔어요.] [얘들아, 4등 왔다~! 뭐 사 왔게~?]‘대체 언제 찍은 거냐고.’
별다른 편집 없이 서로를 순위로 부르는 멤버들의 모습을 쭉 담아낸 영상은 압도적인 조회 수를 자랑했다.
엑기스만 담아 편집한 영상도 SNS를 타고 널리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다.
[꼴등즈야, 잠깐 이리 와 볼래?] [꼴등즈가 뭐예요, 꼴등즈가!] [죄송한데 9등과 묶지 말아 주세요. 차라리 범세혁이랑 ‘꼴등바로윗즈’로 묶어 주세요.] [그게 뭐예요! 나도 딱히 형이랑 묶이고 싶지 않거든요?]그리고 그 영상에서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한 것은 예찬과 정의탁이었다.
‘입은 옷을 보고 며칠에 있었던 일인지도 다 정리했던데…….’
팬들의 탐정 뺨치는 추리력은 언제 봐도 정말 놀라웠다.
이클립틱은 정말로 이 짧고 굵은 영상의 단 1초도 허투루 소비하지 않고 있었다.
“형 덕분이에요. 어찌나 저를 9등이라고 구박했는지 끝도 없이 영상이 나오던데요.”
아예 문 앞에 자리를 잡고 툴툴거리는 정의탁과 화장실 거울을 통해 눈이 마주친 예찬은 생긋 웃었다.
“역시 형밖에 없지?”
“어휴! 말을 말아야지! 괜히 내 속만 더 터지지!”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며 뿔이 난 정의탁이 멀어져 갔다.
입가를 수건으로 훔친 예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도 슬프다고, 나도…….’
이 슬픔은 가만히 있는다고 사라질 종류가 아니었다.
예찬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오랜 명언에 따라, 슬픔을 나눌 사람을 만들기로 했다.
* * *
회사에 출근 도장을 찍은 예찬은 멤버들을 연습실에 넣고 곧장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예찬의 얼굴 옆으로 불쑥 캔 음료가 내밀어졌다.
“이거 마시고 해.”
예찬은 순순히 음료를 받으며 고개를 돌렸다.
모자를 눌러쓴 강해솔의 팔목엔 편의점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언제 나갔다 왔어?”
“나갔다 온다고 말도 했는데. 집중력 대단하다, 정말.”
자기 몫의 캔을 딴 강해솔이 고개를 저으며 작업실 소파에 앉았다.
예찬은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네 시네? 점심은?”
“아까 시켜 먹는다고 했는데 그것도 못 들었군. 연습실 쪽도 먹었어. 자, 그리고 이게 네 거.”
강해솔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물건을 던졌다.
얼떨결에 받고 보니 속이 꽉 찬 샌드위치였다.
음식을 보자 잊고 있던 허기가 밀려들었다.
예찬은 감사 인사를 하고 샌드위치의 포장을 벗겼다.
“갑자기 배가 확 고프네.”
“그거 먹고 양치하고 연습실로 가야 해. 곧 음가 끝날 시간이라 모여 달래.”
“아, 음가.”
레굴루스는 오늘 음악가온에서 세 번째 1위 트로피를 받게 될 예정이었다.
“건호 형이 트로피 받아 오신댔나?”
“어. 지금 CBC 도착하셨대.”
1위 확정 소식에 거의 날아다녔던 멤버들을 위해 매니저가 따끈따끈한 트로피를 받으러 방송국으로 떠난 모양이었다.
‘음방이 네 시 반쯤 끝날 테니 슬슬 준비해야겠군.’
재빨리 입 안에 샌드위치를 털어 넣은 예찬이 기지개를 켰다.
자리를 비우기 전, 지금 하던 작업을 저장하고 백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새 자리에서 일어나 예찬이 작업하던 화면을 같이 보고 있던 강해솔이 미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하루 종일 그거만 붙잡고 있네.”
“어. 오늘 끝내 버리려고.”
“……너도 참.”
뒷말을 흐린 강해솔은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작업실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강해솔이 물었다.
“영상 편집은 또 언제 배웠어?”
“형, 전에도 말했지만 어지간한 건 인터넷 보면 다 알 수 있어.”
다소 거만한 대답에 눈썹 한쪽이 올라간 강해솔이 다시 물었다.
“자막도?”
“당연하지.”
실은 리스피릿 시절, 영상 업로드 전날 잠수를 탄 쓰레기 같은 스태프를 원망하며 익힌 기술이었으나 그렇게 대답할 순 없었다.
강해솔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흠, 작명이랑 팔씨름 빼곤 다 잘하는 하예찬다운 대답이네.”
“…….”
“그런데 업로드는 어떻게 하게? 우리 개인 SNS가 없잖아.”
“업로드는 신 PD님이 해야지.”
불의의 공격에 잠시 말문이 막혔던 예찬이 사악하게 웃었다.
“신 PD님이 직접 올려야 더 의미 있지 않겠어?”
“……너 지금 아이돌의 얼굴이 아니야.”
“쉿! 신 PD님이다.”
지적을 받고도 보란 듯이 음흉한 웃음을 이어 가던 예찬이 강해솔의 입을 막았다.
“해솔 씨! 예찬 씨! 얼른 와요, 얼른!”
어제부터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는 신 PD가 연습실 문 앞에서 두 사람을 향해 신나게 팔을 흔들었다.
예찬은 그런 신 PD를 향해 마주 손을 흔들며 생글생글 웃었다.
“……너랑은 진짜 척을 지면 안 되겠다.”
강해솔이 질린 눈을 하고 중얼거리자 예찬이 마하의 속도로 대답했다.
“형, 우리 사이엔 ‘척’ 같은 단어는 존재할 수 없어.”
“네, 네, 알겠습니다. 얼른 들어나 가자.”
벌써 오늘만 세 번째로 고개를 내저은 강해솔이 터덜터덜 앞장서 걸었다.
“형, 빨리 걸어야지.”
예찬은 더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해솔의 등을 떠밀며 신 PD와 멤버들이 기다리는 연습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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