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92)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91화
주말이 지나고 사람들이 일주일 중 가장 증오하는 월요일이 돌아왔다.
요일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는 아이돌의 삶을 살고 있는 멤버들이었으나,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긴장하고 있었는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시간 딱 맞고, 미세 먼지 농도 괜찮고.’
스마트폰을 확인한 예찬은 곧 울릴 예정인 알람을 끄고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그 뒤 침대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예찬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암막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여는 것이었다.
“으으음.”
“……누구? 몇 시? 예찬이?”
잠귀가 예민한 멤버들이 뒤척이거나 아는 척을 해 왔지만 목표물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이미 숙소에 들어온 지도 한 달 하고도 보름 남짓.
목표물 중 하나와는 그전에 잠시 예찬의 집에서도 같이 지냈으니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목표물을 향해 다가간 예찬은 과감하게 이불을 젖혔다.
“청소년들. 기상합니다, 실시.”
활기찬 월요일.
스케줄이 없는 고등학생들은 학교에 가야 했다.
* * *
“애들은 깨웠어? 오, 옆에 달고 있구나.”
예찬이 방 안에 있는 화장실에 정의탁을 밀어 넣고 옆구리에 배새벽을 끼고 나오자 주방에서 얼굴을 내민 선우이경이 아는 체를 해 왔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좋은 냄새가 예찬의 신경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예찬은 우선 잠에 취해 아직 제 발로 걷지 못하는 배새벽을 화장실까지 옮기고 나왔다.
“우리 예찬이, 아침부터 고생이 많다.”
화장실 문을 닫는 소리가 나자 이번에도 주방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주방으로 이동하자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선우이경이 계란말이를 그릇에 옮겨 담고 있었다.
찌개 끓는 소리가 예찬의 귀를 자극했다.
“웬일로 아침을 만들었어요?”
지난번 요리 대회를 통해 어느 정도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침밥을 준비한 것은 처음이었다.
대충 빵에 잼이나 발라서 먹일 생각이었던 예찬은 제법 본격적으로 준비된 식사를 보고 의아해졌다.
“애들이 처음으로 일주일 내내 등교하는데 아침이라도 든든하게 먹여서 보내야지.”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엔 두건까지 야무지게 쓴 선우이경이 과장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선우이경은 차림새를 훑는 예찬의 눈빛을 느낀 건지 그대로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기까지 했다.
선우이경의 말대로, 그간 가뭄에 콩 나듯 학교에 얼굴을 비추던 고등학생 두 사람은 이번 주와 다음 주 내내 정상적으로 등교를 할 예정이었다.
“다음 주 화요일부터 기말고사래. 놀랍지?”
“……중간고사는 언제 봤대요? 그게 더 놀라운데.”
자식에게 무심한 학부형 같은 소리를 하며 예찬이 완성된 반찬을 식탁으로 나르는 사이, 분홍색 교복 셔츠에 흰 바지를 입은 정의탁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교복 바지가 흰색이라니…….’
새삼스럽지만 청소년들에게 자비 없는 색상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정의탁이 감탄했다.
“와, 이거 다 형들이 준비한 거예요? 형들도 피곤할 텐데…….”
“나 말고 이경이 형이.”
“냄새 좋다. 아침밥 했어?”
“대체 누가 그렇게 부지런한 일을……?”
정의탁의 뒤를 따라 심상록과 강해솔, 그리고 우휘겸도 방에서 나왔다.
‘아직도 자고 있는 건 범세혁이랑 채은성인가.’
줄줄이 방에서 빠져나온 네 사람이 식탁 차리는 것을 돕는 것을 확인한 예찬은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을 가득 채운 2층 침대 중, 역시나 두 군데에만 불룩한 이불 덩어리가 남아 있었다.
“일어나라, 잠꾸러기들아. 애들 학교 갈 때 우리도 연습실 가기로 했잖아.”
“연습실!”
연습실이란 말에 이불 한 덩이가 벌떡 일어났다.
머리가 까치집이 된 범세혁은 곧장 침대를 벗어나 연습실, 연습실 노래를 부르며 화장실로 향했다.
예찬은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일어나라, 밥 먹을 시간이다.”
“으으, 엄마 5분만…….”
“누가 엄마야.”
앞서 청소년들을 깨울 때처럼 이불을 확 걷으려 했으나 스무 살 아들의 반항이 거셌다.
“딱 5분만…….”
“그러니까 내가 어제 일찍 자랬지? 인터넷 좀 한다고 늦게까지 거실에 있을 때 알아봤다니까.”
“잔소리 완전 우리 엄마랑 싱크로…….”
“어머님께 실례되는 소리 그만하고 일어나!”
예찬이 이불을 걷어 내려 했으나 채은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에 취해 있는 놈치고 대단한 악력이었다.
‘힘만 더럽게 세 가지고!’
이불을 사이에 두고 예찬과 채은성이 실랑이를 하는 사이, 누가 봐도 얼굴에 물만 대충 적신 주제에 상쾌한 얼굴을 한 범세혁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굿모닝!”
“안 굿모닝…….”
이불 속에 농성 중인 채은성이 기운 없이 대답했다.
그때 방 밖에서 심상록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벽아, 아직도 씻는 거야? 물소리가 안 들리는데? 새벽아, 새벽아? 내 말 듣고 있니?”
‘이런.’
예찬은 힘을 줘서 잡고 있던 이불을 휙 놓고 다시 거실로 나갔다.
배새벽을 넣어 놓은 화장실 문을 두들기던 심상록이 반가운 얼굴로 예찬을 돌아봤다.
“예찬아, 새벽이 화장실 들어간 지 꽤 됐지? 아무 소리가 안 나서.”
문고리를 살짝 돌려 보자 역시나 잠겨 있다.
잠결에도 문은 꼭꼭 잠그다니.
철저하다고 칭찬해 줘야 할지 망설여졌다.
“다시 잠들었나 봐요. 우휘겸.”
“응.”
기다렸다는 듯 우휘겸이 젓가락 한쪽을 내밀었다.
비몽사몽으로 화장실에 들어간 멤버가 그대로 잠드는 일은 전에도 종종 발생했기에 다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문고리 구멍에 신중하게 젓가락을 밀어 넣은 예찬이 문고리를 내리며 젓가락을 움직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달칵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배새벽은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쿨쿨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어이쿠, 새벽아. 정신 차려 봐. 세수하고 학교 가야지?”
심상록이 배새벽을 일으켜 세우는 것까지 확인한 예찬은 우휘겸에게 채은성을 깨우는 미션을 넘겼다.
“애가 버틴다. 과감하게 이불을 벗겨 버려, 2위.”
“으응…….”
잠에 취한 3위 따위, 제정신인 2위의 상대가 되지 못할 터였다.
“형, 한 개만 먹어 봐도 돼요?”
“그래, 근데 거기 꼬투리 쪽 먹어.”
“와, 맛있다!”
그새 주방까지 나온 범세혁은 막 나온 따끈따끈한 반찬을 얻어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이 많으니 챙길 놈이 배로 늘었지만, 챙기는 놈은 그 이상으로 늘어서 할 만한데?’
리스피릿이 데뷔했을 당시를 떠올린 예찬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데뷔 당시 예찬의 나이는 열일곱.
막내인 김대훈이 열여섯, 맏형인 이희샘이 열아홉이었으니 전원 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이었다.
그래서 드물게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평소보다 더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곤 했다.
‘자꾸 교복이 바뀌어서 나중엔 누구 교복인지 택에 이름까지 써 뒀지.’
심심하면 등교 거부를 선포하는 맏형을 어르고 달래는 것도 예찬의 일이었고, 혼자만 중학교에 가는 게 싫다며 징징대는 막내를 아프지 않게 쥐어박는 것도 예찬의 일이었다.
“예찬이 형, 제 명찰 어디 있는지 못 봤어요?”
마침 향수를 자극하는 교복을 입은 정의탁이 다가왔다.
예찬은 대답 대신 몸을 움직여 정의탁의 이름이 박힌 명찰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로부터 5분 뒤, 무사히 멤버 전원이 식탁을 가운데에 두고 둘러앉았다.
아직도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부터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밥.
대체 언제 만든 건지 감탄이 절로 나오는 간장불고기에 빛깔이 고운 계란말이.
그리고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갓 무친 나물들까지.
색색으로 물든 식탁을 본 멤버들의 눈이 빛났다.
“잘 먹겠습니다!”
“이경이 형, 고맙습니다!”
일제히 인사를 마친 멤버들이 수저를 들어 올렸다.
“다음 주부터 시험이라며?”
“뭐, 일찍 끝나니 좋죠.”
“너희 근데 점심은 어떻게 먹어? 반에 친구는 있어? 학년이 달라도 같이 먹을 수 있나?”
“보통 학년 별로 점심시간이 다르지 않아요? 우리 학교는 선배들부터 먹었던 거 같은데.”
‘확실히 우리 학교도 3학년부터 먹긴 했지.’
‘우리 학교’라 함은 현재 예찬이 가지고 있는 졸업장에 적힌 학교가 아니라 지금 정의탁과 배새벽이 다니는 학교를 뜻했다.
그렇다.
과거 예찬은 지금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의 학교를 졸업한 졸업생이었다.
교복이 매우 예쁘고 또 매우 불편한 전 모교는 현직 연예인의 편의를 그 이상으로 잘 봐줬다.
그렇기에 예찬과 리스피릿 멤버들은 데뷔 후 항상 같은 학교로 전학 절차를 밟곤 했다.
김대훈의 경우엔 전학이 아니라 입학이었지만 말이다.
예찬과 박마루, 그리고 최선이 1학년일 때 혼자 3학년이었던 이희샘은 이상한 낯가림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급식실 앞에서 꿋꿋하게 세 사람을 기다리곤 했다.
‘이희샘이 졸업한 다음 들어온 김대훈은 알아서 반 친구들이랑 잘 먹었지만.’
예찬은 잠시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과거를 회상했다.
“의탁이랑 새벽이 밥 혼자 먹는 거야?”
형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정의탁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런 걱정을 해요! 형들이야말로 학교 다닐 때 친구 많았어요?”
뾰족한 대꾸에 멤버들이 잠시 시선을 교환하더니 다시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야 많았지. 나 딱 봐도 친구 많아 보이지 않아?”
“밥 같이 먹을 사람 정도는 있지. 그래도 매일같이 학교에 갔는데.”
“너흰 학교에 제대로 못 나갔으니까 형들이 걱정하는 거지.”
‘……나는 있었나?’
그러니까 과거, 정의탁과 같은 교복을 입던 시절 말고 지금의 예찬 말이다.
만나 본 적도 없는 형까지 생겨 버린 지금의 하예찬.
‘……솔직히 고등학교 이름도 갑자기 물어보면 헷갈릴 것 같은데.’
과거가 바뀌고 반년이 흘렀으나 사적인 질문은 여전히 곤란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터였다.
‘이 모든 건 정찬양 때문…….’
돌고 돌아 모든 일의 원흉을 저주한 예찬은 도톰한 계란말이를 입에 집어넣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야 드디어 정신을 차린 배새벽까지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진작 방에서 차 키를 챙겨 나온 선우이경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준비 다 했으면 갈까?”
오늘은 매니저가 휴가를 냈기 때문에 선우이경이 두 청소년의 등교를 책임지기로 했다.
“그냥 다 같이 가요!”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범세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요. 이경이 형 혼자 갔다가 다시 오기도 애매한데 지금 다 같이 나가요.”
범세혁처럼 고양이 세수도 하지 않은 주제에 채은성이 잘도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할까?”
“아, 나 폰만 가져올게.”
“저도요.”
먼저 말을 꺼낸 범세혁과 채은성을 제외하면 다들 어느 정도 사람 몰골을 갖췄기 때문에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경이 형만 학교까지 갔다 오기 외로우니까 같이 다녀와요!”
“난 괜찮은데?”
“에이, 사양하지 말아요.”
“그래, 애들 다니는 학교도 한번 구경할 겸 그러자.”
정의탁과 배새벽이 다니는 학교보단 회사가 훨씬 가까웠으나, 만장일치로 우선 어린이 둘을 학교에 내려 준 다음 회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건호 형 이번 주 수요일까지 휴가랬지?”
“아니, 화요일까지.”
그리고 화요일부터 새 매니저가 붙을 예정이라고 도지윤 팀장에게 연락이 온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당일에 엎어질지도 모르니까.’
확실히 매니저가 더 필요하긴 했다.
레굴루스는 지금까지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나 대부분이 단체 스케줄이었다.
앞으로 작게는 등하교부터 알콩 메이커 촬영 등, 개인이나 그룹 스케줄이 하나둘 잡힐 것을 생각하면 적절한 시기였다.
‘아홉이나 되는 멤버들을 혼자 챙기느라 건호 형이 고생 많았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홀쭉해진 매니저를 떠올리며 예찬은 앞으로도 매니저가 담당하기 좋은 착한 연예인으로 있을 것을 새삼스레 다짐했다.
“헉! 레굴루스!”
“정의탁이다!”
“어떡해! 차에 더 있어!”
이런저런 수다 끝에 도착한 교문 앞에 정의탁과 배새벽을 내려 주자 주위에서 소란이 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직후 SNS와 커뮤니티는 국내에서 귀엽기로 유명한 교복을 입고 등교한 막내들과 두 사람을 배웅한 형들 이야기로 시끌시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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