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9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93화
예상했던 대로 유피테르의 선공개곡은 너끈히 다음 주 1위를 차지할 성적을 냈다.
“선배님들, 곡 정말 잘 듣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오느라 힘들진 않았어요?”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기합이 팍팍 들어간 티를 내며 선우이경이 힘차게 대답했다.
“편하게 해요, 편하게. 우리 그래도 꽤 자주 봤잖아요.”
그런 선우이경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며 유피테르의 메인 보컬이자 츄마프의 심사 위원이었던 이가원이 웃었다.
곧이어 선우이경의 뒤에 서 있던 예찬에게 시선을 준 이가원은 더 진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금방 또 만났네요.”
“아, 네. 영광입니다, 선배님.”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 예찬은 대선배님을 만난 후배답게 싹싹하게 웃어 보였다.
얼마 전 요리 대회 심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이가원이 남겼던 의미심장한 말이 떠올랐다.
– 그러면 조만간 또 봐요.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었냐고.’
“다른 애들은 잠깐 자리를 비워서, 편하게 앉아 있어요.”
동시에 이가원이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실내가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개성적…… 아니, 솔직히 좀 난해하군.’
속으로 가볍게 품평하며 예찬은 ‘유피테르의 숙소’ 안으로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레굴루스가 왜 유피테르의 숙소에 왔는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금 과거를 회상할 필요가 있었다.
* * *
각자 희망하는 다음 앨범의 발매 시기와 콘셉트 논의를 끝내고 도지윤 팀장에게 전달까지 마친 예찬과 멤버들은, 앞으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끝없는 연습과 곡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분! 드디어 날짜와 장소가 잡혔습니다! 다음 주 유피테르 숙소예요!”
신 PD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연습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기 전까진 말이다.
대체 저 아저씨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심상록이 가장 먼저 목소리를 냈다.
“……유피테르 선배님들 숙소요?”
“네! 날짜는 다음 주 월요일이고, 시간은 오후 2시예요! 올림포스 측에선 오전부터 촬영하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의탁 씨랑 새벽 씨 기말고사 기간이라 오후로 미뤘습니다!”
‘멤버들의 학교 일정까지 전부 꿰고 있는 나, 기특하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신 PD가 뺨을 씰룩거렸다.
정의탁이 어이가 없단 표정으로 대답했다.
“월요일이 시험 첫날이라 그다음 날도 시험 보는데요?”
“네? 어차피 시험공부 안 하잖아요.”
“…….”
첫날인 게 무슨 상관이 있냐는 듯 신 PD가 되물었다.
맞는 말을 얄밉게 하기 대회가 있다면 손쉽게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의탁의 사나운 눈매가 한층 더 사나워졌다.
“그런데 갑자기 유피테르 선배님들이 왜 나오는 건데요?”
예찬은 잠시 옆길로 샜던 이야기를 다시 본 궤도로 돌렸다.
다른 멤버들도 영문을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신 PD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런 멤버들보다 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한 신 PD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무슨 촬영이라뇨? 당연히 N-net에서 제작하는 유피테르 컴백 기념 예능 스페셜인데요.”
들어 본 적 없었다.
아니, 유피테르가 컴백할 때마다 N-net 측에서 짧게는 1부에서 길게는 3부 정도로 예능이나 다큐를 만드는 거야 본 적이 있다.
다만 레굴루스가 거길 나간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여전히 멤버들의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느낀 신 PD는 잠시 고민하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제가 말을 안 했었나요? 그때 요리 대회 상품이 원래 여기 나가는 거였는데.”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신 PD가 재빨리 덧붙였다.
“여러분이 전화번호부 이름 변경으로 바꾼 그 상품이요.”
“…….”
“원래는 1위 팀 세 명만 나가는 걸로 하려고 했는데, 가원 씨가 그냥 전원이 출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설명을 안 했었나요? 요새 정신이 이렇게 없다니까요, 하하하!”
“…….”
평소라면 까먹을 게 따로 있지, 이런 걸 까먹냐고 쏘아붙였겠지만 할 말이 없었다.
– 안 알려 주셔도 괜찮습니다.
– 예찬 씨!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번엔 진짜 괜찮은 상품이거든요?
– ‘이번엔’이라니, 요새 상품이 영 아닌 걸 아시긴 아셨군요. 다행이에요.
신 PD가 상품 설명을 하려고 했을 때 칼같이 잘라 낸 것이 바로 예찬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시답잖은 상품이겠거니 했…… 잠깐.’
“PD님은 유피테르 선배님들 컴백도 알고 계셨겠네요?”
예찬의 질문에 신 PD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그야 당연하죠! 어, 예찬 씨 눈빛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 이건 좀 진심인데?”
“…….”
예찬은 자신이 한 번 입을 막은 건 사실이니 말을 아꼈다.
앞으론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겠다는 작은 교훈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그렇게 유피테르의 숙소에 찾아오게 된 레굴루스 멤버들은 자리를 비운 유피테르 멤버들이 돌아올 때까지 거실에 앉아 잠시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커피라도 한 잔씩 줄까요? 아니면 녹차? 홍차? 오렌지 주스?”
이가원이 사람 좋게 생글거리며 권유했다.
물론 선후배 관계가 철저한 이 업계에서 하늘 같은 9년 차 대선배에게 차 심부름을 시킬 놈은 없었다.
“저는 오렌지 주스요!”
정정한다.
한 놈 있었다.
‘범세혁……!’
“세혁 씨는 오렌지 주스, 다른 멤버들은?”
이가원의 물음에 군기가 바짝 든 멤버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도요.”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주스를 따라도 될까요? 정말 주스만 꺼내겠습니다.”
“하하하. 상록아, 말 편하게 해. 오늘 손님으로 온 거잖아. 다들 아는 형들 집에 놀러 왔다고 생각해요.”
아직 촬영 시작도 안 했으니 편하게 있으라며 이가원이 웃었다.
‘되겠냐.’
“와, 그러면 숙소 구경 좀 해도 되나요?”
정정한다.
되는 놈도 있었다.
‘범세혁……!’
“그럼요.”
주스를 거실 테이블에 내려놓은 이가원이 범세혁과 그 옆에 앉은 예찬에게 손을 내밀었다.
넙쭉 그 손을 잡고 일어난 범세혁과 달리, 예찬은 경계 어린 시선으로 이가원과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다른 애들 방은 안 되고 제 방이랑 공용 공간 정도지만요.”
이가원은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좀 더 가까이 손을 뻗었다.
“선배님 방은 어디인데요?”
범세혁은 당장이라도 이가원의 방으로 뛰어 들어갈 기세였다.
‘……저 망둥이만 보낼 순 없지.’
예찬도 결국 눈앞의 손을 잡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만족스럽게 웃은 이가원이 다른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또 같이 구경할 사람?”
아닌 척했지만 다들 궁금했는지 하나둘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고 있었다.
“그러면 제 방부터 보러 갈까요?”
“네, 선배님!”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요.”
‘……그런다고 부를 놈이 있겠냐고 하고 싶다만.’
“네, 가원이 형!”
그래, 있을 거 같았다.
넉살 좋게 호칭을 바꾼 범세혁이 쫄래쫄래 이가원의 뒤를 따랐다.
“와, 형이 생겨서 너무 좋아요.”
조금 전까진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던 선우이경도 능글능글 웃으며 이가원의 옆에 섰다.
“아, 이경 씨가 상록이랑 같은 최연장자였죠? 스물세 살이었나?”
“어우, 형님! 이경 씨라니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래요, 천천히 편하게 할게요.”
손사래까지 치는 선우이경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이가원은 슬쩍 예찬이 서 있는 뒤쪽을 바라보았다.
“예찬이도 괜찮죠?”
“네, 괜찮습니다.”
‘이미 호칭을 바꿨으면서.’
범세혁이라도 여기서 안 된다고 하진 못할 것이다.
‘아닌가? 쟤는 하나?’
예찬이 고민하는 사이, 이가원은 예찬의 대답이 퍽 만족스러웠는지 기분 좋은 티를 폴폴 풍기며 집 소개를 했다.
“여기가 욕실. 평범하죠?”
“오오오!”
“수도꼭지가 금색이에요!”
“거울에 빛이 들어와요!”
멤버들의 리액션이 워낙 좋았던 것도 기분 상승에 한몫했을 것 같았다.
현관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가 난 것은 다용도실까지 둘러본 멤버들이 다시 거실로 돌아왔을 즈음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으앗, 신발 많아!”
“아직 두 시 안 되지 않았나?”
막 소파에 앉으려던 멤버들은 자세를 바로잡고 집주인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 오랜만이에요! 아니, 레굴루스가 되고 나선 처음 보네요!”
츄마프 당시 특별 심사 위원으로도 한 번 참여하고, 마지막 생방송 때도 얼굴을 비춘 유피테르의 메인 댄서 주태현이 거실로 들어오며 활기차게 인사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선배님!”
“어휴, 다들 왜 이렇게 기합이 들어갔어. 가원이 네가 군기 잡고 있던 거 아니야?”
“……태현아,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애들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다며 이가원이 다소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졸지에 두 살 많은 형에게 애들 취급을 당한 선우이경과 심상록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손님을 불러 놓고 늦어서 미안합니다.”
“다들 반가워요.”
뒤이어 유피테르의 리더 황시우와 비주얼을 맡고 있는 강연록이 들어왔다.
매니저 다섯이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멤버는 넷인데 매니저가 다섯인가.’
역시 대형 기획사의 1군 아이돌다웠다.
“인구 밀도 장난 아닌데.”
“그러게.”
거실을 둘러본 주태현과 강연록이 속닥거렸다.
그 말대로 레굴루스의 매니저들까지, 남정네 스무 명이 한데 모이자 널찍했던 숙소가 비좁게 느껴졌다.
“스태프분들이 사고가 있어서 30분 정도 늦을 거 같다고 하셔서요. 일단 앉아서 기다리고 계시면 될 것 같아요.”
유피테르의 매니저 중 한 사람이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상황을 전달했다.
‘어쩐지 지금까지 촬영 준비가 안 되었더라.’
선반에 놓인 시계는 원래 촬영 시작 시각인 두 시를 십 분 앞두고 있었다.
“뭐 하고 있었어요?”
매니저들은 주방 쪽으로 가서 식탁에 앉고, 남은 사람들이 어찌어찌 비좁게 끼어 자리에 앉자 주태현이 물었다.
질문에 대답한 것은 이가원이었다.
“집 구경.”
“오, 내 방도 봤어요? 끝내주지 않아요?”
“주인 없는 방에 들어가겠냐?”
이가원과 주태현이 투닥거리는 사이, 다른 쪽에선 심상록을 향해 따뜻한 말이 오가고 있었다.
“가원이한테 츄마프에 너 나왔다는 말 듣고 반가웠어. 잘하고 있는 거 같아서 기쁘다, 상록아.”
“네, 감사합니다.”
“상록이야 어디서든 잘할 애지. 데뷔 활동은 끝났댔나?”
“네, 어느 정도…….”
조심스레 대답하던 심상록이 머뭇거리다 물었다.
“혹시 저희 곡 들어 보셨나요?”
“아, 나는 들어 봤어!”
“나도.”
“난 타이틀 말고 그게 좋더라. 발라드곡.”
귀가 밝은 편인지 아직도 저쪽에서 입씨름을 이어 가던 주태현과 이가원이 재빨리 대답했다.
강연록도 고개를 끄덕이며 발라드곡이 좋았다고 연신 중얼거렸다.
심상록은 어딘가 초조한 눈으로 아직 대답하지 않은 유일한 멤버인 황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상록과 눈을 마주치고 있던 황시우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당연히 들었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인 황시우의 눈이 예찬과 강해솔에게 닿았다.
“좋던데.”
굉장히.
당장이라도 상대를 한 입에 집어삼킬 것처럼 눈을 빛내며 황시우가 덧붙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