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9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96화
“두고 보세요! 제 선견지명에 놀라게 될 테니까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 정말 두고 볼 만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도 예찬은 신 PD를 응원하기로 했다.
‘꿈을 크게 갖는다고 나쁠 건 없지…….’
“그 눈빛은 뭡니까, 예찬 씨?”
묘하게 따스한 예찬의 눈빛에 신 PD가 진저리 치는 것을 끝으로 파티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거실과 주방을 정리하며, 신 PD는 레굴루스의 비하인드 영상도 자신이 담당하기로 했다고 자랑스레 가슴을 폈다.
“너무 바쁘지 않으시겠어요?”
“뭐 다른 사람이 맡으면 제가 한 것처럼 괜찮은 영상이 안 나올 테니, 그거 보고 스트레스받는 것보단 그냥 몸이 좀 바쁜 게 낫죠.”
신 PD는 자신이 당연히 레굴루스의 비하인드 영상을 볼 거라는 전제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걸 전부 챙겨 보는 건 PD가 아니라…….’
“복숭아다…….”
생각의 마무리는 배새벽이 육성으로 대신해 주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작업하던 곡을 급하게 손보고 싶다는 핑계를 댄 예찬은 먼저 회사에 도착했다.
아침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숟가락을 들고 현관까지 쫓아 나온 선우이경을 떼어 내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아홉, 아니 열 명이 한집에 살고 있으니 도무지 혼자 있을 시간이 없어.’
다 같이 회사로 나와도 마찬가지였다.
홀로 작업실에 들어온 예찬은 의자에 몸을 묻고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예찬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내 생각도 들리는 거 같으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도 알겠지? 어디 터놓고 얘기해 보자고.”
예찬은 평소 홀로그램 창이 튀어나오는 정면을 향해 말을 걸었다.
늘 절묘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던 걸 생각하면 예찬의 속마음도 들리는 게 분명했다.
‘가끔 이상한 선택지를 고르면 당황하는 거 같았으니 전부 들리는 건 아닌가? 아니면 어떤 순간에만 들리는 건가? 그도 아니면 생각을 읽는 데 시간이 걸려서 생각과 행동이 동시에 나오면 늦는다든지?’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근래 예찬이 주야장천 생각하던 일이니, 한 번쯤은 들렸겠지.
지금쯤은 대답도 준비해 놨으리라 믿고 싶었다.
“너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최근 거짓말처럼 조용한 홀로그램 창은 이번에도 침묵을 지켰다.
예찬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 침착하게 보이지 않는 상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있잖아, 나한테 자꾸 퀘스트 같은 걸 시키는 걸 보면 너도 뭔가 목적이 있는 거잖아? 그리고 그 퀘스트들 꼬락서니를 보니 내가 아이돌로서 대성하길 바라는 거 같고. 그러면 차라리 터놓고 구체적으로, 아니 최종적으로 원하는 걸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
본의는 아니지만 어쨌든 동고동락하는 사이가 된 걸 인정하게 된 예찬이 어깨를 으쓱였다.
“츄마프 때는 잘도 이상한 선택지를 띄우더니, 지금은 또 잠잠하고.”
이번에도 상대의 반응은 없었다.
예찬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화를 내도 소용이 없는 상대다.
‘이 정도는 예상했어. 참자, 하예찬.’
마음을 다잡은 예찬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면 내가 다른 생각할 틈을 주기 싫었던 건가? 머리 굴리지 말고 현재에나 집중하라고? 확실히 츄마프 땐 네가 언제 튀어나와서 깽판 칠지 모르니 정신없긴 했네. 요새는 너 아니어도 하루하루가 정신없었고.”
의자 등받이에 좀 더 몸을 기댄 예찬이 중얼거렸다.
“나랑 레굴루스를 1군 아이돌로 자리 잡게 만들고 싶은 거면 그렇다고 말하라니까? 어차피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라고. 이미 장기 플랜이 다 세워져 있으니, 네가 쓸데없이 기간을 정해 주는 게 더 독이야. 아니면 더 큰 목표라도 있어? 빌보드? 아니면 그래미?”
홀로그램 창은 여전히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예찬은 좀 더 솔직한 본심을 내보였다.
“대체 요새 왜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조용해? 그게 더 불안하거든? 어디 아파?”
대놓고 원하는 바를 말하면 최선을 다해서 협조하겠다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눈살을 찌푸린 예찬이 물었다.
“아니면 너도 뭐, 정찬양처럼 내가 1군이 되면 내 자리를 홀랑 가로채겠다, 그런 야망을 품고 있는 거냐? 나 지금 죽 쒀서 개 줄 준비 하는 거야?”
치칙.
처음으로 홀로그램 창이 반응했다.
[절대 아니야.]어쩐지 평소보다 창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비아냥거리는 말에 튀어나오다니.
‘이러면 빈정거릴 수밖에 없잖아.’
예찬은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잘 지내보려는데 정말 비협조적인 놈이었다.
“그걸 어떻게 믿어.”
또 대답이 없다.
이 정도로는 놈을 자극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너 말이야.”
이윽고 숨을 들이마신 예찬은 터무니없는 날것의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랩 배틀이었으면 5분도 안 돼서 상대방이 제발 그만하라고 바닥에 엎드려 질질 짤 정도로 엄한 말들이 공기 중에 흩어져 갔다.
[절대 아니야.]홀로그램 창이 글자를 띄운 채로 가냘프게 흔들렸다.
‘반응이 있는데?’
다시 숨을 들이켠 예찬이 2차전을 막 시작한 순간, 작업실 문이 열렸다.
이미 입 밖으로 쏟아진 단 네 마디의 비아냥을 들은 상대는 잠시 굳어 있다가 복도를 살폈다.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상대는 조심스레 작업실 문을 닫고 들어왔다.
“……너 랩 배틀 프로그램 나갈 건 아니지?”
작업실 문에 등을 댄 채로 강해솔이 물었다.
“……그럴 리가.”
“그러면 방금 건 대체…… 설마 우리 2집 가사는 아니지?”
강해솔은 아무리 삶이 퍽퍽해도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을 잃으면 안 된다며 충고했다.
“해솔이 형, 날 뭐로 보는 거야. 방금 건…… 음, 그래. 새로운 장르에 관한 짧은 탐구였어.”
예찬은 손을 내젓는 척하며 눈앞의 홀로그램창을 치웠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
예찬이 옆에 있는 의자를 팡팡 두들기자 강해솔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요 반년간 봐 온 예찬의 이미지와 조금 전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의 괴리에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도움이 안 되는 홀로그램 창 새끼.’
예찬은 속마음을 숨기고 생글생글 웃었다.
겨우 의자에 엉덩이를 걸쳐 앉은 강해솔은 여전히 예찬이 수상한 듯 곁눈질하다 대답했다.
“……우리 다음 앨범까지 시간이 별로 없잖아. 네가 작업실에 간다는 데 나 혼자 게으름 피울 순 없지. 근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더니, 왜 아직 컴퓨터도 안 켰어?”
불이 꺼진 모니터를 보며 강해솔이 물었다.
‘이렇게 빨리 올 줄 알았으면 뭐라도 켜서 건드려 놓을 것을.’
그렇지만 성실한 강해솔을 원망하진 않았다.
‘성실하면 좋지.’
속으로만 고개를 끄덕인 예찬은 대충 둘러대기 시작했다.
“아, 오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괜찮은 거 같아서.”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혼자 작업실에 오기 위한 핑계였으니까.
“건호 형한테 다시 데려다 달라고 하긴 뭐해서, 천천히 작업해야지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형만 온 거야? 아니면 멤버들은 연습실에 있나?”
“애들 둘만 학교 가고 나머지는 연습실. 근데 너……누구한테 도둑질당한 적 있어? 내용이 구체적이던데…….”
조금 전 들었던 충격적인 네 마디를 떠올리며 강해솔이 물었다.
“상상해 본 거야, 상상! 만약 도둑이 내 소중한 것을 훔쳐 갔다면 어떻게 말할지!”
“도둑 울겠는데.”
“울어야지! 남의 걸 훔쳐 가 놓고 웃으면서 살면 되겠어?”
예찬의 말에 강해솔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몰입을 잘하네.”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러운 재능이라며 강해솔이 덧붙였다.
“그래도 진짜 도둑을 만나면 경찰에 신고해. 욕하는 것도 다 에너지인데 그런 데다 쏟기 아까워.”
강해솔의 말에 예찬은 웃었다.
자연스레 정찬양이 떠올랐다.
강해솔이 들은 욕설은 홀로그램 창을 향한 것이었지만, 진짜로 예찬의 것을 훔친 놈은 정찬양이었기 때문에.
예찬이 도둑맞은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유감스럽게도 말이야.’
예찬은 데스크톱 전원 키를 누르며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직접 해결하는 수밖에.’
도둑이 잘 먹고 잘사는 걸 보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보단, 그 도둑을 망하게 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경찰에 신고하는 걸로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까?’
답은 알 수 없었다.
예찬은 잠시 치워 버린 홀로그램 창을 떠올렸다.
사라지기 직전, 흔들리던 글자는 ‘미안해.’로 바뀌어 있었다.
* * *
“집에 한 번도 안 내려오냐고 난리예요.”
정의탁의 푸념에 ‘Regulus : Debut on air’ 7화를 보기 위해 거실에 모여 앉은 멤버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의탁이네 부모님은 그러실 만하지. 숙소 들어오기 전에도 못 뵀잖아.”
“부모님 말고 누나들이요.”
“아, 누님들.”
심상록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방학도 안 했는데 매일 귀찮게 군다고요.”
그렇지 않아도 학교 빠지는 날이 많은데 너무하다며 정의탁이 투덜거렸다.
“사랑이시네.”
“사랑이죠.”
멤버들은 그런 정의탁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분명 엄청나게 잔소리하려고 부르는 게 분명해!”
평소라면 정의탁을 놀리는 데 한몫 거들었을 예찬이었으나 이번엔 말을 아꼈다.
‘내가 끼어들면 괜히 불편할 수도 있어.’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가 나왔을 때 예찬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급하게 말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난 정말로 별생각 없는데.’
솔직히 지금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힘들었던 것보다, 리스피릿 놈들이 저질렀던 망나니짓들이 더 생생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그보다 더 열받는 건 정찬양이고.’
“그럼 방학하고 휴가 받아야지 내려가겠네?”
“근데 우리 휴가가 있어요?”
“그러게. 너무 자연스럽게 2집 준비를 시작해 버렸네.”
어느새 이야기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2집으로 바뀌었다.
예찬은 잠시 앞으로의 스케줄을 생각했다.
‘알메겐 촬영은 3주씩 몰아서 찍으니 괜찮고. 콘셉트 촬영 끝나고 뮤비 촬영 전에 며칠 정도는 괜찮을 거 같은데.’
그래도 활동이 끝났는데, 사흘 정도는 숙소를 벗어나 자유를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의탁아, 방학이 언제라고 했지?”
“7월 20일이요. 수요일이에요.”
“그러면 그다음 날인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를 휴가로 할까? 어때요?”
가족들이랑 느긋하게 보려면 주말이 껴 있는 게 낫겠지.
예찬이 멤버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21일부터…… 안 돼요!”
“아니, 그건 아니지!”
“그날은 좀 아닌 거 같은데!”
그러나 달력을 확인한 멤버들은 득달같이 일어섰다.
하나같이 안 된다고 말할 뿐 정확한 이유는 어물쩍 넘기고 있었다.
‘뭐가 문제지? 21일, 22일, 23일…… 아.’
잠시 날짜를 헤아려 본 예찬은 멤버들이 정색한 이유를 눈치챘다.
‘내 생일이 꼈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