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19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98화
“다들 여기요, 여기!”
현장에 도착하자 신 PD가 누구보다 먼저 멤버들을 반겼다.
“와, 신 PD님을 보니까 긴장이 싹 사라지는데요?”
첫 광고 촬영에 다소 굳어 있던 정의탁이 감탄했다.
낯선 환경이 주는 압박이 익숙한 얼굴을 보니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신 PD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반년 전, 아니, 삼 개월 전의 자신에게 말하면 머리에 총이라도 맞았냐는 소리가 절로 나왔을 일이었다.
“레굴루스 여러분,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소란스러움을 눈치챈 광고주 측 담당자가 형식적인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신 PD를 만나 한결 가벼워졌던 멤버들의 어깨에 다시 힘이 바싹 들어갔다.
“NJ배러푸드의 박민주입니다.”
담당자가 명함을 건넸다.
NJ배러푸드 박민주란 이름 옆에 과장이란 직함이 적혀 있었다.
이번에 레굴루스에게 들어온 것은 소속사인 NJ 측 광고였다.
공손히 명함을 받은 예찬은 멤버들을 살짝 돌아보고 힘차게 구호를 시작했다.
“둘 셋.”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다.”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레굴루스입니댝! 큽!”
지금 한 놈 혀 씹었는데?
예찬은 머릿속으로 방금 귀를 어지럽힌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는 한편, 담당자를 향해 싹싹하게 미소 지었다.
“리더 하예찬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죠. 도지윤 팀장님도 오늘 오신다고 들었는데, 아직 안 오셨나 보네요.”
“아, 지금 주차장이시라고 연락받았습니다.”
담당자가 입구 쪽을 살피자 예찬이 재빨리 대답했다.
타이밍 좋게 도지윤 팀장이 막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들 여기 모여 계셨군요.”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도지윤 팀장은 먼저 멤버들을 한 명씩 살핀 후 광고 담당자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박민주 과장님.”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지윤 팀장님.”
도 팀장과 짧게 악수를 한 담당자는 다시금 얼굴에 의례적인 미소를 띠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오늘 콘셉트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멤버들과 도 팀장을 안쪽으로 이끈 담당자가 감독으로부터 콘티 용지를 받아 건넸다.
“오늘 광고할 제품인 비타시드는 기본형인 알약으로 시작해 가루형, 액상형, 거기에 젤리형, 캔디형, 마지막으로 이번에 나온 물 대용의 음료까지 다양한 형태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안다.
‘광고 찍기로 한 이후에 전부 사서 먹어 봤으니까.’
첫 광고의 설렘에 눈이 살짝 돈 멤버들은 시중에 나온 모든 종류의 비타시드 제품을 사 왔다.
지금도 숙소의 거대한 냉장고 음료 칸은 방금 담당자가 말한 물 대용의 음료로 가득 차 있었다.
‘제로 칼로리가 아니었다면 막았겠지만.’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비타시드의 캐치프레이즈는 ‘내 몸에 비타민을 심어 봐! 꼭 맞는 나만의 맞춤 비타민, 비타시드!’이고요.”
그것도 안다.
다람쥐가 도토리 주워 담듯 열심히 모은 비타민을 그냥 하하 호호 먹었겠는가.
어떤 종류든 비타시드 제품을 입에 넣기 전에 나만의 CF를 만드는 것이 요 며칠 숙소의 유행이었다.
‘해솔이 형이랑 우휘겸도 할 정도니까.’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잠꼬대로 비타시드의 캐치프레이즈를 중얼거리는 놈이 하루에 하나씩은 나올 정도였다.
멤버들은 어느새 긴장했던 기색은 전부 지우고 자신만만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번엔 담당자 옆에 앉아 있던 감독이 입을 열었다.
“오늘 촬영할 제품은 총 다섯 가지입니다. 알약형, 액상형, 캔디형, 젤리형, 그리고 음료형인데요. 알약형은 단체로, 나머지 네 가지는 멤버를 나눠서 촬영할 겁니다.”
“촬영 인원은 제가 지금 나눠드릴게요.”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담당자가 덧붙였다.
동시에 담당자의 눈이 날카롭게 멤버들을 스쳤다.
적재적소에 밀어 넣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멤버들은 저마다 등을 곧추세우거나 턱을 안으로 당기는 등 자세를 바르게 했다.
담당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티가 좀 많이 났다는 뜻이다.
‘정직한 놈들.’
“……우선 음료는 여기 세혁 씨랑, 새벽 씨, 그리고 상록 씨까지 세 분이 맡겠습니다.”
신중히 멤버들의 얼굴을 두세 번 살핀 끝에 담당자가 결심했다.
“네!”
뽑힌 놈들과 아닌 놈들의 희비가 갈렸다.
신제품인 음료형 비타시드가 오늘 촬영할 물품 중 가장 주력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 다음은 액상형이었나요?”
담당자만 해도 좀 전까진 심혈을 기울이더니, 지금은 목소리부터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범세혁에 배새벽, 게다가 심상록이라…….’
다소 음침하게 생긴 놈이 많은 팀에서 딱 이 셋을 뽑다니.
이온 음료 광고에 흔히 나오는 청량한 감성을 연출하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지는 인선이었다.
“예찬 씨랑 이경 씨가 액상형을 맡고요.”
예찬은 살짝 당황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비타시드가 밀고 있는 액상형 비타민의 주요 효과는 빠르고 강한 피로 해소였다.
‘나랑 선우이경이 좀 찌들어 보였나?’
예찬은 잠시 오늘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어땠는지 진지하게 회상했다.
다른 놈들보다 비타시드를 좀 덜 먹긴 했는데.
“캔디형은…… 해솔 씨랑 의탁 씨가 맡을게요. 마지막으로 젤리형은 은성 씨랑 휘겸 씨가 맡겠습니다.”
멤버를 다 나눈 담당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먼저 음료형은 좀 맑은 느낌으로 촬영을 할 예정입니다. 다음에 2차 촬영은 바닷가에서 흰 셔츠를 입고 자전거를 타거나 요트 위에서 찍을 건데,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 그에 맞춰 오늘은…….”
주력 상품답게 담당자의 입에서 장황한 설명이 줄줄이 이어졌다.
“액상형은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강하게 리더인 예찬 씨랑 맏형 라인인 이경 씨를 골랐고요. 캔디형은 그와 반대로 귀여운 이미지가 들어가면 좋을 거 같아서 나이가 어린 의탁 씨와 느낌이 톡톡 튀는 해솔 씨를 골랐어요. 젤리형…… 은 캔디형과는 다르게 귀여운 젤리와 키가 큰 멤버들로 구성했습니다.”
그에 비해 다른 멤버들의 콘셉트는 대충 한 줄로 끝이 났다.
졸지에 귀여운 이미지를 가진 TOP 2로 뽑힌 강해솔의 눈빛이 흐려졌다.
‘그래도 해솔이 형이 남은 놈 중엔 제일 귀염상 같기도…….’
“콘티 확인하시고 단체 촬영부터 들어가겠습니다.”
예찬이 담당자의 눈썰미에 공감하는 사이, 설명이 끝나길 기다리던 감독이 말했다.
“팀장님은 언제까지 계세요?”
“전 이후에 미팅이 있어서 단체 촬영까지만 보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첫 광고 촬영인데 마지막까지 함께 있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도 팀장이 안색을 흐렸다.
“괜찮습니다!”
“팀장님이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잘 할 수 있습니다!”
‘첫 광고’라는 말에 멤버들의 사기가 다시금 활활 불타올랐다.
이를 알 턱이 없는 광고 담당자와 감독은 대체 평소에 얼마나 군기를 잡았길래 애들이 저러는 건지 알 만하단 눈으로 도지윤 팀장을 흘겨보았다.
‘힘내요, 팀장님.’
* * *
단체 촬영이 끝난 후, 먼저 음료형 비타민 광고를 맡은 세 사람이 옷을 갈아입으러 자리를 옮겼다.
시간이 난 김에 도지윤 팀장을 배웅하고 돌아오자, 마침 담당자가 세 사람에게 한창 당부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 광고에 정말 기대가 크거든요. 사실 이번 광고의 메인 콘셉트가 청량이라…… 여러분만 믿겠습니다.”
저렇게까지 나머지 여섯에 대한 신뢰가 없다니.
‘다다음 앨범 콘셉트는 확 청량으로 가 버려?’
힘든 길을 가고 싶은 충동이 잠깐 치밀었다.
예찬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청량 그 자체인 앨범 트랙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사이 세 사람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실내를 환히 밝힌 조명 덕분인지, 아니면 그간 섭취한 비타민 덕분인지 셋 모두 안색이 아주 훤했다.
크게 연기력을 요하는 광고가 아니라 보고 있기도 편했다.
감독과 담당자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아주 좋아요. 그러면 마지막 멘트 한 번씩 가겠습니다. 먼저 상록 씨부터 갈게요.”
감독의 지시에 따라 의자에 걸터앉은 심상록이 페트병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씩 웃었다.
“내 몸에 비타민을 심어 봐. 꼭 맞는 나만의 맞춤 비타민, 비타시드.”
“컷! 아주아주 좋아요.”
“감사합니다!”
딱 원하는 느낌으로 화면에 잡혔는지 감독이 힘차게 컷을 외쳤다.
심상록이 빠지고 이번엔 범세혁이 창틀에 걸터앉았다.
페트병의 입구 부분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린 범세혁은 가볍게 병을 흔들고 시선을 카메라로 옮겼다.
“내 몸에 비타민을 심어 봐! 꼭 맞는 나만의 맞춤 비타민, 비타시드!”
그 뒤로 날아온 윙크를 정면에서 직관한 담당자의 표정이 전에 없이 풀어졌다.
“컷! 좋습니다!”
감독도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우, 우리 세혁이도 보면 볼수록 만능이라니까.”
멤버들 쪽으로 다가오는 범세혁을 향해 선우이경이 너스레를 떨었다.
형의 칭찬이 싫지 않은 듯 범세혁이 헤실거렸다.
그사이 가벽에 기댄 배새벽의 촬영 준비가 끝났다.
조명이 눈부신 듯 눈을 깜빡거리던 배새벽은 카메라가 돌아가자 순식간에 가면을 썼다.
페트병 상단의 굴곡에 소리가 나지 않게 입을 맞춘 배새벽이 미소 지었다.
예찬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은 팔뚝을 쓸어내렸다.
“내 몸에 비타민을 심어 봐! 꼭 맞는 나만의 맞춤 비타민, 비타시드.”
“……커, 컷! 조, 좋아요! 아주 좋아요!”
타이밍을 놓친 감독이 뒤늦게 ‘좋아요’를 외쳐 댔다.
옹기종기 모여서 구경하던 멤버들도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와, 새벽이 뭐야! 평소에 하던 거랑 완전 다른데?”
“그러니까! 숙소에선 맛보기였던 거야? 요 깍쟁이 녀석!”
“나 순간 여기가 산토리니인 줄 알았잖아!”
“난 푸른 들판이 보였어.”
“나는 바다!”
하루가 다르게 주접이 눈부시게 늘고 있는 형들은 입을 모아 배새벽을 치켜세웠다.
“근데 왜 산토리니야?”
“어…… 도시가 좀 청량한 느낌이야.”
“도시가? 어떻게?”
“그……지붕은 파랗고 벽은 하얗거든. ……사진 볼래?”
“아하! 이렇게 생겼구나.”
그 와중에 채은성은 자신이 친 드립을 범세혁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
예찬은 잠시 동정 어린 눈으로 채은성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신나서 친 드립을 주섬주섬 설명해야 하는 심정을 범세혁은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역시 내 새끼야. 기특하다, 기특해!”
그 와중에 내년이면 배새벽과 일 년에 한 달 빼곤 동갑이 될 정의탁은 시한부 동생을 무척이나 귀여워했다.
광고팀의 분위기도 아주 좋았다.
‘아무래도 첫 광고니까 연기는 기대 안 했을 텐데, 다행인 기분이겠지.’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 가겠다며 채은성이 우휘겸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러면 예찬이랑 이경이 옷 갈아입고 오자.”
“네!”
그리고 몇 분 뒤.
‘……뭐지.’
스타일을 바꾸고 돌아온 광고장은 그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