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00)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199화
“앗, 형들 다 갈아입었네! 그럼 우리도 얼른 준비하러 가죠, 해솔이 형!”
“어, 그거 좋은 생각이다.”
예찬을 발견한 정의탁이 살았다는 듯 강해솔의 팔을 잡아당겼다.
강해솔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타일리스트를 찾아 떠났다.
“분위기 뭐야?”
뒤에서 튀어나온 선우이경이 썰렁한 촬영장 내부를 쓱 둘러보더니 심상록의 옆구리를 찔렀다.
심상록은 곤란한 듯 웃음을 흘리며 막 현장에 도착한 두 사람을 위해 작게 속삭였다.
“하하, 보면 알 거야.”
“그, 다시 한번 가 보죠.”
때마침 감독이 재촬영의 신호를 보냈다.
“네!”
비장한 얼굴로 대답한 채은성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곧이어 감독의 시작 사인이 떨어지고, 우휘겸이 앉아 있는 소파를 향해 채은성이 힘차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예찬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게 무슨…….’
“컷! 은성 씨, 지금 팔다리가 같이 나가고 있어요.”
“앗! 죄송합니다!”
예찬이 뻣뻣한 각목처럼 삐걱삐걱 움직이는 채은성에게 경악하는 사이, 감독이 NG를 외쳤다.
예찬은 절로 벌어지려는 입을 간신히 다물었다.
‘너무 충격적이라서 같은 쪽 팔다리가 나가는 건 눈치채지도 못했어.’
기름칠을 안 한 지 백 년은 지난 태엽 인형처럼 뻑뻑한 움직임이었다.
관절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와…….”
옆에 서 있던 선우이경의 입에선 감탄 아닌 감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광경을 먼저 지켜봤을 심상록은 두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계속 저랬어요?”
“응…….”
아까부터 첫 장면만 계속 찍고 있다며 심상록은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 함정이 있다면 정의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황하면 바로 발연기가 튀어나오는 정의탁이라면 모를까, 시도 때도 없이 비타시드의 캐치프레이즈를 외쳐 대던 채은성이 저렇게 버벅거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바로 어젯밤만 해도 백 텀블링을 하면서 ‘나만의 맞춤 비타민’을 외치지 않았던가.
‘실전에 약한 건가? ……무대에선 전혀 안 그런데.’
“휘겸이랑 포지션을 바꿔 보면 안 되나? 휘겸이가 이끌어 주면 좀 나을 수도 있잖아.”
연달아 NG를 내는 채은성을 지켜보던 선우이경이 심상록과 예찬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심상록이 어쩐지 텅 빈 눈으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이게 포지션 바꾼 거야.”
“그 말은, 설마 휘겸이도……?”
믿고 싶지 않다는 듯 머뭇거리는 선우이경의 물음에 심상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찬은 파멸적인 연기를 펼치는 채은성에게서 간신히 눈을 떼고 소파에 앉아 있는 우휘겸을 바라보았다.
‘정말이다.’
그저 앉아 있는 것만으로 어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사람 수준이었다.
“어우, 오늘 촬영 길어지겠는데.”
예찬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선우이경이 혀를 내둘렀다.
“일단 잠깐 쉬었다 갈게요. 그, 콘티 좀 이리 줘 봐.”
뭘 찍었다고 쉬어 가냐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이래서야 도무지 진행이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촬영을 중지한 감독은 빠르게 콘티를 뒤적였다.
연기가 필요한 파트를 최대한 편집하려는 의도겠지만, 잘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냥 앉아 있는 것도 어색한 놈들이 뭘 할 수 있을지…….’
잠시 동선을 확인해 보던 채은성이 고개를 털며 멤버들을 향해 다가왔다.
“나 그렇게 어색…… 아, 대답 안 해도 돼. 표정이 전부 말해 줬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은 채은성이 머리를 쥐어뜯으려는 걸 말렸다.
“떽! 손 내려! 지금 만지면 머리 세팅 다시 해야 한다?”
“……그래, 고맙다.”
“숙소에선 괜찮았는데. 둘 다 너무 긴장한 걸까?”
심상록의 말을 들은 채은성과 우휘겸이 눈을 마주쳤다.
본인들도 자기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뮤비랑 앨범 재킷 사진은 둘 다 잘 찍었잖아.”
“앗, 그러네요?”
선우이경과 범세혁도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예찬도 잠시 지난 뮤직비디오 촬영을 떠올렸다.
‘그러게. 그땐 둘 다 딱히 못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채은성도 놀랍다는 듯 자신의 입가를 가렸다.
“그때보다 더 퇴화했나……?”
“몇 달이나 지났다고!”
채은성의 가정을 부정한 예찬은 혼란스러워하는 발연기즈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광고는 처음이니까 떨릴 수도 있지. 신경 쓰면 쓸수록 더 어색해지니까 너무 의식하지 말고.”
예찬의 위로에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인 우휘겸과 달리 채은성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예찬, 왜 이렇게 친절해? 소름 돋는데?”
“……나야말로 네 연기 덕분에 아까부터 소름이 가라앉질 않는다.”
“우리 어린이들, 싸움은 이따 집에 가서 하자.”
선우이경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는 예찬과 채은성을 떼 놓았다.
조금 전부터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있던 심상록이 말했다.
“잠깐 이거 봐 볼래? 인터넷에 긴장 푸는 방법이라고 치니까 나온 건데…….”
“심호흡하기? 우휘겸, 한번 해 보자.”
가장 위쪽에 적힌 방법을 확인한 채은성이 우휘겸의 손을 덥석 잡고 천천히 심호흡을 시작했다.
선우이경과 예찬도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거 말고 또 뭐 있어? 따뜻한 차 마시기, 편안한 향기 맡기, 낮잠 자기…….”
“제가 차 타 올게요.”
“향기, 향기…… 아! 핸드크림 찾아오겠습니다!”
배새벽과 범세혁이 말릴 새도 없이 튀어 나갔다.
“은성 씨, 휘겸 씨. 콘티를 좀 바꿨는데 한번 봐주시겠어요?”
타이밍 좋게 감독이 대폭 축소된 콘티를 가지고 다가왔다.
“다들 고마워요. 진짜 열심히 하고 올게요.”
얼마 뒤 손에서 핸드크림 냄새를 폴폴 풍기며 따끈한 차를 마신 두 사람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촬영에 임했다.
“맛. 있. 게. 피. 로. 를. 풀. 고. 싶. 을. 때. 가. 있. 지.”
“내. 몸. 에. 비. 타. 민. 을. 심. 어. 봐!
‘음, 여전히 발연기네.’
물론 그렇게 쉽게 문제가 해결될 리 없었다.
“자, 잠깐만 끊었다가 가겠습니다.”
당황한 감독이 도망치자 채은성은 그 자리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미치겠다! 긴장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니까 더 긴장돼……!”
“나도…….”
고개를 푹 숙인 우휘겸이 당장이라도 꺼질 것처럼 힘없는 목소리로 동의했다.
“포기하지 마! 노래, 노래를 듣자! 이거 릴렉스에 좋은 음악이래!”
“형들 사탕 드실래요?”
“긴장 해소엔 스트레칭이 답이래. 자, 팔을 쭉 뻗는 것부터 실시.”
중간부터 합류한 정의탁과 강해솔도 적극적으로 긴장을 푸는 방법을 읊었다.
그때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얘, 얘들아. 허억, 헉, 이, 이거 먹자.”
고개를 돌리자 최근 새로 들어온 매니저가 이쪽을 향해 주먹을 내밀고 있었다.
꾹 쥐고 있던 손을 펼치자 자그마한 우황청심환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섭이 형, 약국까지 뛰어갔다 온 거예요?”
“주, 주차장에서 여기까지만.”
“아이고…… 고생하셨어요, 형!”
멤버들이 매니저의 공을 치하하는 가운데, 채은성과 우휘겸은 제대로 감동받았는지 눈이 촉촉해졌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도요!”
이후 의약품의 힘을 빌려 긴장을 잊은 두 사람은 제법 괜찮은 연기를 보여 주었다.
“내 몸에 비타민을 심어 봐. 꼭 맞는 나만의 맞춤 비타민, 비타시드.”
젤리형 비타민을 꿀꺽 삼킨 우휘겸의 촬영까지 끝나자 촬영장은 환호성과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우황청심환 진짜 대단하다…… 정말로 뭐든지 아무래도 좋은 기분이야.”
긴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 같다며 채은성이 감탄했다.
“그럼 바로 다음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네!”
촬영 시간이 예상보다 지체되어서 그런지 스태프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우리도 청심환 먼저 먹고 시작해야 하나?”
“……일단은 그냥 해 보죠.”
장난스러운 선우이경의 말에 예찬이 어깨를 으쓱였다.
예찬과 선우이경의 촬영은 연습실처럼 꾸민 세트장에서 진행되었다.
“오늘따라 좀 피곤하지 않아?”
“누적된 피로 해소에 딱 좋은 게 있지.”
이미 진이 다 빠져 버린 감독은 남은 멤버들의 촬영도 각오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선전에 깜짝 놀란 감독이 입을 떡 벌렸다.
감독의 눈빛에서 절절한 감격이 느껴졌다.
“내 몸에 비타민을 심어 봐. 꼭 맞는 나만의 맞춤 비타민, 비타시드!”
각자 따로 촬영하는 캐치프레이즈도 NG 없이 한 번에 끝을 냈다.
“크. 역시 못 하는 게 없어, 우리 예찬이.”
“형도 NG 안 냈잖아요.”
“그러게. 나도 연기 좀 하는데? 이참에 우리 같이 연기에 도전해 볼까?”
예찬의 어깨에 팔을 걸친 채로 세트장을 빠져나오며 선우이경이 킬킬 웃었다.
“마지막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자리를 옮겨 다시 새로운 촬영이 시작되었다.
캔디형 비타시드의 광고를 맡은 강해솔과 정의탁이 알록달록 꾸며진 세트장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몇 번의 NG가 있긴 했으나 두 사람의 촬영 또한 순조롭게 끝이 났다.
“달콤하게 비타민을 충전할래?”
사탕을 들고 대본을 읊는 정의탁의 연기는 다소 어색했으나, 채은성과 우휘겸에 비하면 훌륭했기에 감독도 만족한 눈치였다.
‘일단 비주얼이 화려하니 좋네.’
귀여운 세트장과 날카로운 인상의 두 사람이 과연 잘 어울릴지 의문이었는데 생각보다 느낌이 좋았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촬영이 끝나자 멤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쪽저쪽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했다.
드디어 촬영장을 탈출할 수 있다니, 반가운 마음에 절로 허리가 굽혀졌다.
신나게 촬영장 밖으로 나온 선우이경이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고 감탄했다.
“오, 달 떴다.”
“그러게요. 완전 둥근데요? 보름달인가?”
“내일이 보름이래.”
잘 때 빼곤 여간해선 입을 다물지 않는 수다쟁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오른 뒤 점호가 끝나자 풀이 죽은 목소리로 채은성이 말을 꺼냈다.
“모레 중요한 촬영인데, 오늘 너무 늦어져서 미안해요.”
우황청심환의 약발이 떨어지자 놀라울 정도로 사람이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뒤에 앉은 우휘겸도 비슷한 상태로 보였다.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래! 우리 사이에!”
호탕하게 웃으며 범세혁이 우휘겸의 등을 두드렸다.
아무래도 옆자리에 앉은 놈이 멘탈을 보살펴 주는 분위기라 예찬도 조금 귀찮긴 하지만 채은성을 위로했다.
“첫 광고 촬영인데 그 정도면 잘한 거지. 앞으로 익숙해지면 더 나아질 거야.”
“너 오늘 왜 이렇게 친절해? 기분 나빠…….”
좀 거북하다고 덧붙인 채은성은 예찬을 피해 창문 쪽으로 붙어 앉았다.
“……그래, 네 마음 잘 알았다. 다신 너한테 친절하게 굴지 않으마.”
주먹이 운다는 말에 절절히 공감하며 예찬은 갈 곳을 잃은 주먹을 조용히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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