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0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00화
“얘들아, 과일 먹어.”
방문을 연 하경의 눈에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컴퓨터 앞에 붙어 있는 소년 둘이 들어왔다.
피용, 뿅, 쿠왕.
효과음이 방 안에 가득한 가운데, 두 사람 모두 화려한 모니터에 집중하느라 하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희들, 할 일은 다 하고 게임하는 거야? 고등학교는 요새 숙제 안 내주나?”
하경의 말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예찬의 어깨가 미약하게 움찔거렸다.
눈을 가늘게 뜬 하경은 쟁반을 책상에 내려놓고 예찬의 등을 콕콕 찔렀다.
“예찬 학생? 찔리는 게 있나 본데요?”
드디어 뒤를 돌아본 예찬이 억울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아니, 나는 아이돌 연습생이니까 학교 숙제 좀 안 해도…….”
“그래서 네가 지금 학생이야, 아니야?”
“……학생이죠.”
“학생의 본분은 다 하셔야죠? 숙제 가방에 있어? 꺼내 봐. 형이 봐줄게.”
빨리 끝내고 쉬라며 손을 내미는 하경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던 예찬이 입을 열었다.
“형, 우리 나이 차이가 얼마인데…… 마음만 받을게?”
요즘 고등학생 숙제를 어떻게 하경이 도울 수 있겠냐는 듯 예찬이 고개를 젓자 하경이 자존심이 상한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야, 나 이래 봬도 고등학교 다닐 때 수행평가는 항상 만점이었거든? 그리고 그동안 공부했던 클래스가 있지! 너, 형이 수능 얼마나 잘 본 줄 알아? 언수외 등급이……!”
“언수외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이미 엄청나게 거리가 느껴지는데요, 형님? 지금은 국영수라고요.”
말허리를 똑 자른 예찬의 지적에 하경의 얼굴에 허망함이 어렸다.
“……국영수라니, 진짜 낯설다. 언어 듣기 평가가 없어진 것도 나 몇 년 전에 알았어…….”
“언어 듣기 평가? 그게 뭔데? 국어에 듣기 평가가 있었다는 거야? 왜?”
“난 왜 없냐고 묻고 싶어…….”
천진난만한 10대의 물음에 드디어 30대에 진입한 하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말 그만 돌려, 요놈아. 너희들 이렇게 게임만 하면 바보 된다?”
“게임 만드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예찬이 투덜거리자 하경은 쟁반에서 들어 올린 사과로 입을 막았다.
“시끄러워. 내가 만든 게임은 거들떠도 안 보는 주제에! 숙제 안 꺼내면 형이 직접 가방 뒤진다?”
“우우, 청소년의 사생활을 보호하라! 보호하라!”
그새 사과를 삼킨 예찬의 장난스러운 투정 소리가 점점 먹먹해졌다.
‘이번에도 꿈이었구나.’
지나온 과거라고 부르면 좋을지, 아니면 사라진 과거라고 부르면 좋을지 모를 꿈이 끝나 가고 있었다.
* * *
“예찬아, 슬슬 일어나자.”
부드럽게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눈을 뜨자 환한 조명에 눈이 부셨다.
‘……조명? 아, 머리하러 왔었지. 일찍 끝나서 대기석에 잠깐 앉아 있었는데…….’
잠시 잠들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리고 있자 심상록이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피곤했어? 완전 곤하게 자더라.”
“힘내요, 예찬이 형. 모레부터 휴가잖아요.”
얼마나 휴가를 기대하고 있는 건지, 날짜가 다가올수록 얼굴이 피어나는 정의탁이 엄지를 치켜올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예찬 말고 다른 멤버들도 대부분 시술이 끝나 있었다.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넷…… 배새벽 빼고 다 있네.’
그때 매니저가 안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얘들아, 새벽이는 더 걸릴 거 같다네. 너희 먼저 회사로 들어갈래? 내가 남아서 기다릴 거니까 너희는 인섭이랑 들어가면 돼.”
“어느 정도 걸리는데요? 잠깐이면 같이 들어가는 게 좋은데.”
곱슬머리를 쫙쫙 펴려면 족히 세 시간은 걸릴 것 같다는 매니저의 말에 멤버들은 얌전히 헤어샵을 빠져나왔다.
주차해 둔 차에 훌쩍 올라탄 강해솔이 안전띠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빨리 머리를 바꾸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강해솔의 말에 예찬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찬이 꼭 섭외해 달라고 부탁했던 사진작가가 모레 출국할 예정이라는 말에 당장 내일 재킷 사진을 찍게 되었다.
‘아직 곡도 나오지 않았는데 말이지.’
정해 둔 콘셉트가 확실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이번에도 손가락만 빨며 다른 작가를 구할 뻔했다.
옆에 앉은 예찬을 유심히 살펴보던 강해솔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몇 달간 금발로 지내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너 좀 괜찮다?”
“형도 그래.”
“그래? 내 눈엔 왜 이렇게 낯설지…….”
강해솔은 어둡게 물들인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차 창문에 바뀐 머리를 비춰 보던 선우이경이 멤버들을 향해 물었다.
“머리한 거로 복숭아들에게 스포하기 싫은데, 사진 공개할 때까지 숨기는 건 무리겠지?”
“숙소랑 연습실만 오가면 가능할지도. 그런데 그동안 라이브 안 하고 버틸 수 있겠어?”
“크, 못 버틸 듯.”
심상록의 말에 선우이경은 빠르게 항복을 선언했다.
정의탁도 포기하면 편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일단 모레부터 휴가잖아요. 그때 탈탈 털릴 거 같은데.”
“어? 휴가 때 돌아다닐 거야? 난 본가에 박혀 있으려고 했는데.”
“의탁이 젊다, 젊어.”
“그러게. 10대는 다르네.”
“전 집에 가려면 일단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요! 공항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형들의 몰아가기에 오늘도 훌륭히 걸려든 정의탁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난 매일매일 비니 쓰고 다닐 거야.”
“7월 중순인데 덥지 않겠니, 은성아?”
“해내 보이겠어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은성은 서프라이즈를 성공하고야 말 거라며 의지를 활활 불태웠다.
“이참에 다 같이 비니 쓰고 다녀 볼까?”
“이 여름에 단체로? 독하다는 소리 듣겠는데.”
“비니루스로 이름도 개명 당할 듯.”
“난 독종루스에 한 표.”
시답잖은 소리가 오고 가는 가운데 차가 회사 입구 근처에 멈췄다.
“얘들아, 이클립틱 님들 계신 거 같은데?”
“이런.”
매니저의 말에 창문 밖을 슬쩍 확인한 심상록이 침음성을 흘렸다.
“모자 있는 사람 있어?”
심상록의 말에 다들 후드티를 야무지게 뒤집어쓰거나 근처에 던져두었던 모자를 찾아 썼다.
“비니 필요하신 분?”
분주한 가운데 채은성이 가방에서 자연스럽게 비니 뭉치를 꺼내며 흔들었다.
“은성이 너, 준비성 있구나.”
“얘 보면 항상 가방이 빵빵하다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색색의 비니로 무장한 멤버들이 당당하게 회사 정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몇 분 뒤. 레굴루스가 다음 컴백 준비를 시작한 것 같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화제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 * *
다음 날, 레굴루스 멤버들은 휴가를 보내기도 전에 다음 활동의 첫 스케줄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 세트장 되게 멋진데.”
촬영 준비를 끝낸 선우이경이 웅장한 분위기의 세트장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우휘겸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고 있는 게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예찬의 눈에도 어지간히 돈을 쏟아부은 태가 났다.
“예찬아.”
준비가 끝난 멤버들이 세트장 구경에 한창이던 때, 심상록이 예찬을 불러 세웠다.
이곳으로 오는 차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밝았던 얼굴이 다소 흐려져 있었다.
세트장 투어 대열을 이탈한 예찬이 심상록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어요?”
“별건 아니고.”
주변을 둘러본 심상록은 목소리를 낮췄다.
“조금 전에 나길이한테 연락이 왔거든. 우리 컴백 날짜 언제냐고 물어보던데…….”
어제 뜬 비니 사진을 토대로 레굴루스의 컴백이 임박했단 기사까지 떴으니 연락이 올 만했다.
예찬에게도 리스피릿의 이대훈과 유피테르의 이가원, 그리고 작곡가 PiPiPi에게서 연락이 왔으니 말이다.
– 예찬이 형! 진짜 컴백해요? 너무 바쁘게 살잖아요! 그러다 병나요!
– 예찬 씨, 컴백 기사 봤어요. 혹시 우리 음방에서 볼 수 있나요?
– 설마 이번 앨범 곡도 이미 완성된 건 아니겠죠? 제가 그동안 만든 곡을 일단 들어 보고 이야기를 다시…….
예찬은 순서대로 ‘나중에 보자’, ‘시기가 겹치지 않을 거 같다’, ‘마음만 받겠다’는 요지의 대답을 남겼다.
‘PiPiPi는 계속 전화를 해 대서 좀 귀찮았지.’
지독하게 울리던 휴대폰은 지금 촬영하러 왔다는 말을 전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마찬가지로 다른 멤버들도 꽤 연락이 온 것 갈긴 한데, 박나길은 좀 결이 달랐다.
“나길이 형이랑 평소에 연락하고 있었던 건 아니죠?”
“으응, 번호를 바꾼 다음에 바뀌었단 연락을 하긴 했는데 딱히 답장은 없었어.”
‘그 정도면 본인도 연락하기 민망했겠는데.’
그쪽과 레굴루스의 컴백 시기가 겹칠까 봐 걱정돼서 간을 보는 게 티가 나도 너무 났다.
‘그나마 심상록이 제일 찔러보기 좋을 것 같았나?’
속으로 짧게 생각한 예찬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9월 중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요.”
배새벽은 가능하다면 저쪽을 납작 눌러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굳이 피해 가겠다는데 꾸역꾸역 날짜를 맞출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곧 공개될 일정인데 굳이 형이 숨기거나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지? 후, 다행이다. 혹시 극비로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어.”
속이 시원해졌다며 심상록이 상쾌한 얼굴로 웃었다.
심상록은 멤버들에게도 말해 두겠다며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이 시작되었다.
사진작가의 스태프진 뒤로 비하인드 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편집 때문에 바쁘다며 어제 온종일 자리를 비웠던 신 PD가 첫 순서인 예찬을 반겼다.
“예찬 씨, 머리가 꼭 츄마프 때 같고 멋지네요!”
그때 우리 참 좋았죠, 라며 아련한 눈빛을 보내는 신 PD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 예찬은 바로 카메라 앞으로 걸어갔다.
뒤편에 설치된 계단과 근처의 벽을 둘러보고 있을 때 찰칵, 셔터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창백한 얼굴을 한 사진작가가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무표정으로 예찬을 바라보았다.
“테스트 컷 좀 찍었습니다. 좋네요.”
“감사합니다.”
리스피릿 시절부터 점찍어 둔 작가였는데, 놀라울 정도로 일정이 잘 맞지 않아 예찬도 직접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번에도 작가가 여기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했다는 연락이 올지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예찬이 감상에 젖어 있는 사이, 사진을 확인하며 작가가 말했다.
“재킷 좀 벗죠. 어깨에 걸치는 게 낫겠어.”
일사불란하게 다가온 스태프들이 예찬의 재킷을 벗기더니 어깨에 얹었다.
“조명 위치도 바꾸지. 그래, 그쪽으로.”
이번에도 스태프들이 착착 움직였다.
짧은 지시에도 망설임 없이 작가의 의도를 구현하는 스태프들을 구경하고 있자 어쩐지 예찬의 기분이 좋아졌다.
‘딱딱 맞아들어가니까 좀 짜릿한데.’
주변을 정돈한 작가는 다시금 예찬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넥타이는 틈 없이 끝까지 올리죠. 그대로 팔짱 끼고. 벽에 어깨가 살짝 닿도록 기대요.”
지시에 맞춰 예찬이 자세를 취하자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하던 작가가 다시 뷰파인더에 눈을 맞췄다.
세세하게 모든 것을 컨트롤한 것치곤 표정에 대한 오더는 없었다.
‘재밌는 방식이네.’
예찬은 지금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와 가장 걸맞은 표정을 만들었다.
찰칵.
그 순간 경쾌한 셔터음이 울렸다.
마치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