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03)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02화
“하예찬 표정 뭐야.”
접수를 마치고 돌아온 예찬과 눈을 마주친 채은성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기석에서 번호가 불리길 기다리는 사이, 예찬의 얼굴이 좀 보인 모양이었다.
예찬은 창구에서 짓고 있던 선량한 표정을 1g도 남김없이 날려 버리고 턱을 치켜들었다.
“내 표정이 뭐.”
“가증스럽다, 가증스러워.”
채은성은 혀까지 쯧쯧 차더니 창구로 향했다.
다소곳해진 채은성의 얼굴이 시야에 훤히 들어왔다.
방금 왜 남의 표정을 운운했는지 어이가 없어질 정도로 선량한 표정이었다.
옆에 서 있던 정의탁도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입을 열었다.
“이런데 오면 어쩐지 공손해지긴 하죠. 딱히 공손하다고 빨리 처리되는 게 아닌 걸 알지만요.”
예찬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쟤는 조금만 더 공손했다간 굽신거릴 수준이지만.’
잠시 후, 무사히 접수를 마치고 돌아온 예찬과 채은성의 눈이 마주쳤다.
“……뭐, 뭐!”
예찬은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레 찔린 채은성은 말을 더듬었다.
* * *
세 사람이 여권 발급 신청을 하는 사이, 회사에서는 멤버들과 스태프 몫의 항공권을 마련해 두었다.
“어찌 저찌 같은 비행기 타고 가게 됐네. 다행이지?”
먼저 본가로 가도 좋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 굳이 숙소에 남아 있던 선우이경이 싱글거렸다.
예찬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오슬로까지 몇 시간 걸린대요? 직항은 없죠?”
“어, 한 번 경유하나 봐. 운 없으면 40시간도 걸린다는데, 우린 그래도 20시간 안쪽이야. 전날 밤 출발, 다음 날 아침 도착.”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채은성은 호기심이 들었는지 항공권을 검색하더니 경악했다.
“가, 가격이 장난 아닌데요? 스태프들까지 다 가려면 이게 다 얼마야…….”
“그거 편도 가격이니까 곱하기 2 해야 한다.”
예찬의 지적에 채은성은 히익,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막았다.
예찬은 그런 채은성을 바라보다 말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인당 이백 정도는 NJ가 아니라 중소 기획사였어도 투자할 만한데.’
채은성이 쇼케이스나 음악 방송에 드는 비용을 들으면 기절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산서 받을 때 꼭 구경해야지.’
예찬이 혼자만의 버킷리스트를 세우던 중, 소파에 앉아 있던 선우이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새벽이 오면 집에 갈 거지? 의탁이는 괜찮아? 몇 시 비행기야?”
“원래 방학식 끝나고 가려고 했던 거라 시간은 넉넉해요. 새벽이는 저랑 예찬이 형이 기다리면 되니까 형들 먼저 가 보셔도 되는데.”
“그래? 그럼 나는 간…….”
“에이, 정 없게 어떻게 그래!”
범세혁이 장난스럽게 정의탁의 어깨를 흔들었다.
동시에 정의탁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가방을 들어 올린 강해솔은 정 없는 놈이 되었다.
“…….”
예찬은 지금이라도 다시 가방을 내려놓아야 할지 고민하는 강해솔의 등을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의탁이 말대로 우리 둘이 숙소에 있을 거니까 다들 얼른얼른 갑시다. 그래야지 매니저 형들도 마음 편하게 집에 가지 않겠습니까! 특히 기차 타고 가는 사람들, 괜히 차 놓치고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예찬의 말에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 강해솔과 범세혁, 그리고 채은성이 각자 자신의 표 시간을 확인했다.
“난 넉넉하게 몇 시간 뒤로 예매하긴 했는데 앞차로 바꿀 수 있을 거 같긴 해.”
“나도.”
“어, 다들 KTX 타요? 같은 차로 바꿔요!”
두 사람의 표를 확인한 범세혁이 기차 여행이라며 좋아했으나 채은성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논산 가는 KTX는 부산에 안 가. 노선이 달라. 논산은 호남선이란 말이야.”
채은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범세혁이 이번엔 강해솔을 향해 물었다.
“해솔이 형도요?”
“천안은 둘 다 가긴 해.”
“그럼 누구랑 같이 탈 거예요?”
순식간에 동갑내기 둘의 빛나는 시선을 받게 된 강해솔은 곤란한 기색도 없이 답했다.
“더 빨리 출발하는 거.”
“건호 형! 우리 당장 출발해요! 지금 나가면 부산 가는 기차 시간이랑 딱 맞아!”
“건호 형! 5분만 있다가 출발해요! 5분 후가 좋아요!”
순식간에 시끄러워진 세 사람의 등을 떠밀며 매니저 한 명이 숙소를 떠났다.
“휘겸이랑 상록이는 내가 나가면서 태워다 줄게.”
우휘겸은 광주까지 내려가지 않고 어머니가 거주하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표하자 선우이경은 별거 아니라며 웃어 보였다.
“그럼 이따가 인섭이 형이 새벽이랑 의탁이만 데려다주시면 되는 거지?”
깔끔하게 교통정리까지 마친 선우이경은 차 키를 집어 들었다.
“다들 재밌게 건강하게 놀고 월요일에 봅시다.”
“의탁이는 공항 도착하면 연락하고.”
“월요일에 봐.”
짧은 인사를 남긴 세 사람이 빠져나가자 숙소가 순식간에 썰렁해졌다.
“예찬이 형, 진짜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요?”
이 황량한 숙소에 혼자 남을 것이 걱정되는지 정의탁이 예찬의 옆구리를 찔렀다.
“괜찮다니까. 아니, 오히려 좋다! 이 숙소가 다 내 거야!”
예찬은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의탁의 구겨진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첫 휴가 날짜가 정해진 후, 예찬은 멤버 전원에게 최소 한 번 이상 이번 휴가를 함께 보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 어머니가 너를 보고 싶어 하셔서…….
– 같은 서울이니까 편하게 갔다가 오면 될 거 같은데.
– 예찬아, 너 부산 가 본 적 있어?
– 휴가 때 할 거 없으면 나랑 내려가든지.
– 너 논산 가 본 적 있어? 논산은 역에 내리면 공기가 여기랑 달라.
– 우리 집에 강아지 보러 갈래?
예찬이 혼자 살던 집도 얼마 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는 걸 알고 있던 멤버들은 예찬이 외로이 숙소에 남을 것을 걱정했다.
‘처음엔 내 앞에서 가족 얘기도 안 하려고 했단 말이지.’
어쩌다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면 흠칫거리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그런 배려가 오히려 더 불편하다는 말에 다행히 그 말도 안 되는 눈치 보기는 끝을 봤다.
‘리스피릿 놈들도 초반엔 이랬었지.’
막 옛 생각에 빠지려는 예찬의 옆구리를 정의탁이 다시 한번 찔렀다.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표 예매할래요? 비행기 타면 제주도도 금방이에요. 진짜로.”
맨몸으로 가도 된다며 정의탁이 진지하게 말했다.
예찬은 검지를 들어 정의탁의 미간을 쓱쓱 문질러 폈다.
“정의탁 씨, 신경 써 준 건 고마운데 저는 편하게 숙소에서 쉬는 게 좋습니다. 의탁 씨도 가족들 만나고 제대로 회포를 풀고 와야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당장 달려올 테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제주도에서 달려오기 전에 좋든 싫든 끝나지 않을까?’
그러나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냈다간 이 소심한 놈이 안 간다고 거실 바닥에 드러누울 수 있었다.
“그거 믿음직스럽네요.”
예찬은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새벽을 데리러 갔던 매니저가 돌아왔다.
“부모님이 진짜 형이랑 같이 와도 된다고 했는데. 같이 밥이나 먹을래요?”
꾸물꾸물 짐 가방을 챙긴 배새벽이 현관까지 배웅을 나온 예찬에게 물었다.
‘정의탁과 똑같은 패턴이군.’
예찬은 이번에도 칼 같은 거절을 돌려주었다.
“맛있게 잘 먹고 와. 나는 이미 완벽하게 늘어질 3박 4일 치의 계획이 있다고.”
너희 부모님, 특히 어머님과 밥을 먹었다간 체할 것 같다는 말은 예의상 입에 담지 않았다.
공항까지 가려면 또 한참이라는 예찬의 재촉을 듣고 나서야 배새벽과 정의탁, 그리고 매니저는 현관문을 열고 떠났다.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던 예찬은 몸을 돌리고 시원스레 기지개를 켰다.
드디어 진짜 휴가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 * *
“이 몸 도착! 어라? 신발이 왜 이렇게 많아?”
“왔냐.”
예찬은 주스를 마시다 말고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힌 범세혁을 향해 대충 고개를 까딱거렸다.
신발을 홀랑 벗어 던진 범세혁이 성큼성큼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세혁이 하이.”
“야, 너는 부산까지 갔으면서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범세혁보다 한발 먼저 도착해 거실을 점령하고 있던 선우이경과 강해솔이 순서대로 말했다.
그 옆에 앉아 보드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배새벽과 채은성은 범세혁이 온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참고로 이 보드게임은 숙소 가구를 채우던 당시 범세혁이 정성껏 골라 온 것 중 하나였다.
“어, 세혁이도 왔네.”
“짐 이리 줘.”
주방 쪽에서 나오던 심상록도 아는 체를 했다.
우휘겸은 양손 무겁게 돌아온 범세혁의 짐을 건네받았다.
복작거리는 거실 한가운데 서서 눈을 깜빡거리던 범세혁이 물었다.
“오늘 16일 맞죠? 17일 아니고.”
예찬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오늘은 7월 16일 토요일.
휴가가 시작된 둘째 날이었다.
‘월요일에 보자며.’
이 걱정 많은 놈들은 집에 도착한 지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숙소로 돌아온 것이었다.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심상록이었다.
‘무려 어젯밤에 돌아왔지.’
– 이제 숙소가 더 편한 거 같아. 잠을 못 잘 거 같더라고, 하하.
심상록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예찬을 향해 머쓱한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이름값을 하고 싶은 건지 배새벽이 돌아왔다.
– 아빠가 일찍 촬영이 있다고 해서 가는 김에 태워 달랬어요.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늘어지게 하품을 한 배새벽은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 겉옷을 입고 침대에……! 그래, 애가 얼마나 피곤했으면…… 아니, 그래도 옷은 좀 갈아입어야…….
혼란에 빠진 심상록을 남겨 둔 채 예찬도 자기 침대로 다시 올라갔었다.
얼마 후 날이 밝자 선우이경과 우휘겸이 돌아왔고, 점심을 먹고 나니 강해솔과 채은성이 돌아왔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이 되니 범세혁이 도착한 것이다.
‘다 큰 성인 남자가 혼자, 그것도 숙소에서 3박 한다고 큰일 나냐고.’
휴가가 분명히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나도 끼워 줘! 이번 판 언제 끝나?”
“범세혁, 조용히 기다려라. 집중이 안 되잖아.”
“예민한 거 보니까 은성이가 지고 있나 보네.”
“아, 아닌데요!”
‘사람 좋은 것도 정도가 있지.’
몇 달 만에 얻은 휴가인데 꽉꽉 채워서 놀고 올 것이지, 다들 짠 것처럼 이렇게 빨리 돌아오다니 머리가 아팠다.
‘좀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예찬은 한숨을 삼켰다.
그런 복잡한 마음도 모르고 멤버들은 서로 마음이 통했다며 실실 웃고 있었다.
“차라리 다음 휴가 때는 다 같이 여행이나 갈까?”
“그거 괜찮은데요! 해외 어때요? 기왕 여권도 만들었겠다!”
“가 보고 싶은 나라 있어?”
“이경이 형이 추천해 줘요. 왠지 형은 세계 일주를 해 봤을 거 같은 느낌이야.”
밝은 얼굴로 다음 휴가를 계획하는 멤버들을 보고 있으려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 떠올랐다.
예찬은 느슨해지는 입가를 굳이 단속하지 않고 멤버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전 오로라 보러 가고 싶어요.”
이왕 꾸는 꿈, 크게 꾸는 게 좋지 않겠는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