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06)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05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예찬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이었다.
앨범에 한 곡 정도 더 넣어야 구색이 맞을 것 같아서 급하게 휘갈긴 이 곡은 원로 배우 길원종의 주장처럼 유행을 선도할 곡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8, 90년대 포크송 계열이지. 유행은 한참 전에 지났지만 마니아들은 남아 있는 곡.’
어쩌면 그렇기에 길원종의 귀에 더 좋게 들렸을지도 몰랐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길원종은 ‘당싶말’이 예찬이 작사, 작곡했다는 말을 들은 후 예찬을 천재라며 치켜세우기까지 했었다.
– 거, 같은 앨범에 들어 있던 자꾸 데이 뭐시기 하는 곡은 솔직히 나 같은 노인이 듣기에 좀 난해했는데,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말 좋았네.
예찬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는 원로 배우와 함께 어색하게 웃었다.
그 ‘데이’ 타령하는 곡도 자신이 만들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기에.
앞서 말했듯 ‘당싶말’은 앨범 트랙 리스트를 채우기 위해 빠르게 만든 곡이었다.
그러나 예찬은 작업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퀄리티를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즉 앨범에 실어도 부끄럽지 않은 퀄리티라 실었다는 의미다.
물론 곡이 얼마나 괜찮은지와 관계없이 ‘당싶말’의 흥행은 아예 기대 밖의 영역이었다.
‘소화할 수 있는 곡 스펙트럼이 넓다는 이야기 정도나 나올까 했는데.’
예찬은 예기치 않은 흥행에 부스터를 달아준 택톡 앱에 접속했다.
들어가자마자 ‘당싶말’을 배경음으로 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여긴 워낙 유행을 타는 곳이라…….’
무언가 흥하면 우후죽순 비슷한 것이 양산되다 보니, 벌써 ‘당싶말’을 사용한 영상이 실시간으로 쏟아진 상태였다.
예찬은 차분히 그중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영상을 살폈다.
듣기 편한 멜로디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운 가사이다 보니, 드라마나 웹툰의 여러 장면을 넣어 편집한 영상들이 이것저것 보였다.
‘해외 쪽에도 반응이 오면 좀 오래가겠는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체크한 예찬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했다.
‘챌린지를 만드는 건 좀 과한가? 도지윤 팀장님께 연락해서 기사 좀 뿌리고…….’
“예찬! 보드게임 할 건데 너도 할래?”
거실 쪽이 소란스럽다 싶더니 또 보드게임을 할 생각인지 예찬의 이름을 우렁차게도 불렀다.
잠시 스마트폰과 문을 번갈아 바라보던 예찬은 스마트폰을 대충 던져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할래요.”
거실로 나오자 둥글게 자리를 잡고 앉은 멤버들이 조금씩 엉덩이를 움직여 예찬이 앉을 공간을 만들었다.
어차피 지금은 휴가 기간이 아니던가.
그냥 좋은 우연이 겹쳤다고 좋아하고 끝내면 됐지 굳이 뭘 할 필요까지야.
가벼운 마음으로 카드를 받아 들며 예찬은 자신이 이전과는 확실히 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될 곡이면 잘되겠지.’
* * *
보드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멤버들은 밤 아홉 시가 되자 경건한 자세로 TV 앞에 모였다.
이전에 게스트로 촬영했던 유피테르의 컴백 기념 예능 스페셜이 방영하는 날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방에서 스마트폰을 주워 온 예찬은 팬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 예고편만 몇 번 돌려 봤는지 모르겠음ㅠㅠㅠ
– 애들 꼴랑 5분 나오고 끝 이런 건 아니겠지?
– 광고 ㅈ나 많이 하네 ㅆㅂ 암넷 새끼들은 적당히를 몰라
얼마 전 올라온 예고편에 레굴루스가 유피테르의 숙소에 방문한 모습이 꽤 길게 잡혔었다.
얼굴을 흐리게 처리했지만 누가 봐도 레굴루스 멤버들이었기에 다들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한다!”
범세혁의 말에 예찬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TV에 집중했다.
처음엔 유피테르 멤버들의 앨범 준비 과정을 맛보기처럼 보여 주더니 곧이어 장소가 숙소로 바뀌었다.
여전히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한 레굴루스 멤버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굉장히 존경하는 선배님들이라 너무 떨리네요.] [저희가 정말 이제 막 데뷔한 상태라 연예인 친구, 아, 친구라고 하면 실례일까요? 아무튼 연예인 지인도 없는데 이렇게 대선배님들과 함께하게 돼서 너무 큰 영광이에요.] [유피테르 선배님의 숙소라니!]대충 주인공인 유피테르의 얼굴에 금칠하는 내용들이었다.
예찬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면 저쪽 팬덤도 만족스럽겠군.’
잘나가는 후배의 롤 모델 포지션을 싫어하긴 쉽지 않다.
인터뷰가 끝나자 화면은 유피테르의 숙소로 바뀌었다.
[오늘은 저희 숙소에 아주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바로바로 요즘 제일 핫한 신인 레굴루스입니다!]이후 유피테르와 레굴루스가 방금 막 만난 것처럼 악수하는 장면이 나왔다.
예찬은 레굴루스 멤버들이 허리를 펼 새도 없이 인사하는 것을 보고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주 공손해.’
[오늘은 저를 제외한 유피테르 멤버들이 리더가 되어, 후배 레굴루스 여러분과 팀을 나눠 함께 보물을 찾으러 떠날 예정입니다!]유피테르의 비주얼 강연록이 유쾌하게 진행을 시작했다.
뒤이어 팀 나누기가 시작되었다.
9년 차 아이돌의 아찔했던 장기 자랑을 다시 볼 마음이 들지 않았던 예찬은 재빨리 스마트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돌았냐ㅋㅋㅋㅋㅋㅋ
– 이go1 트레이너님 원래 저런 이미지임??
– 황시우 왜 벗는데 누구한테 어필하고 싶은 건데
– 그 와중에 요염하게 벗어서 자존심 상함 ㅅㅂ
– 우리 애들 장기 자랑도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9년 차 선배님의 독기 미쳤넼ㅋㅋㅋㅋㅋㅋㅋ
인간이라면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몸 사위에 이클립틱들이 아낌없이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예찬은 힐끗 고개를 들었다.
타이밍 좋게 채은성의 감격한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한껏 내려간 눈썹에 촉촉한 눈동자, 벌어진 입이 인상적이었다.
SNS도 채은성의 이름으로 도배됐다.
– ㅋㅋㅋㅋㅋ은성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표정 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은성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예찬은 방금 나온 채은성의 표정이 팬들 사이에서 꽤 유행하는 짤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격렬했던 장기 자랑이 끝나고, 레굴루스 멤버들은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유피테르의 세 멤버는 부끄러움이란 단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뻔뻔하게 허리를 숙여 화답했다.
[그럼 지금부터 팀장 뽑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레굴루스 맏형이랑 막내가 누구인가요?] [아, 저요.] [여기요.]심상록과 배새벽이 손을 들자 강연록은 두 사람을 잽싸게 붙잡아 앞으로 끌고 왔다.
[그럼 두 사람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부터 뽑는 걸로 하겠습니다! 안 내면 진 거, 가위, 바위, 보!]다시 봐도 빠른 진행이었다.
상황 파악도 다 하지 못한 두 사람은 마법의 가위, 바위, 보 주문에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새벽 씨의 승리! 그럼 어린 순서부터 팀장을 고를게요! 새벽 씨, 누가 마음에 들어요?] [저는 주태현 선배님으로 하겠습니다.]0.1초의 망설임도 없는 화끈한 대답이었다.
배새벽의 간택을 받은 유피테르의 메인 댄서 주태현이 감격스럽다는 듯 입가에 손을 올렸다.
“이야, 다시 봐도 우리 막내는 브레이크가 없구나. 멋지다.”
그러거나 말거나 뽀송한 얼굴로 덤덤히 서 있는 배새벽을 보며 선우이경이 감탄했다.
[이의 있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대답할 정도로 주태현이 잘했습니까? 정확히 어디가 저보다 좋았죠?]화면 너머에서 유피테르의 리더이자 작곡가 컬렉터 황시우가 손을 번쩍 들고 끼어들었다.
대선배님의 예기치 못한 반항에도 배새벽은 흔들리지 않았다.
[제일 제 취향이었습니다.] [아, 그거라면 인정입니다.] [취향은 존중해야죠.]덤덤한 대답에 황시우가 빠르게 물러났다.
마찬가지로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던 메인 보컬 이가원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크흠, 그럼 다음은 의탁 씨!]이다음 빵 터진 MC 강연록이 바닥을 치며 웃은 장면과 그런 강연록의 엉덩이를 황시우가 걷어차는 장면은 편집한 모양이었다.
헛기침을 한 강연록은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며 진행을 이어 갔다.
[저는 이가원 선배님으로 하겠습니다.]비장하게 앞으로 한 걸음 나온 정의탁이 이가원을 골랐다.
[오케이, 의탁 씨는 가원 씨 팀. 그럼 다음이…….] [네? 이, 이유는 안 물어보시나요?]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지 정성들여 고민하고 나온 정의탁이 당황했다.
햇병아리 후배의 마음을 읽은 강연록의 눈에 순식간에 장난기가 서렸다.
[아니, 의탁 씨. 아주 거창한 이유가 준비되어 있는 모양인데요? 이거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죠?] [그, 그렇게까지 거창한 이유는 아닌데…….] [에이, 그렇게 빼지 마시고요. 자, 가원 씨의 어떤 점이 의탁 씨를 매료시킨 거죠? 정확히 어떤 동작이었나요? 가원 씨! 재현할 준비 좀 해 주세요.] [준비 완료입니다.]이가원이 정의탁을 향해 진한 눈웃음을 보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순식간에 선배 둘에게 몰린 정의탁이 어깨를 움츠렸다.
고개를 푹 숙인 정의탁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그냥 가원 선배님께 츄마프 때 여러모로 많이 배워서 선택한 건데…… 죄송합니다…….]개미만 하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져서 끝에 가선 거의 속삭이는 수준이 되었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의탁아! 형이 잘못했어!]진심으로 풀이 죽은 모습에 양심이 쿡쿡 찔렸는지 강연록과 이가원이 존댓말까지 던져 버리고 정의탁을 붙잡았다.
이쯤 되니 황시우와 주태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애기한테 뭐 하는 짓들이야. 당장 무릎 꿇어라.] [우우우, 형들이란 것들이 못났다, 못났어.]“…….”
유피테르 멤버들 사이에 껴서 우왕좌왕하는 자신을 바라보던 정의탁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웅얼거리는 음울한 목소리가 무릎 사이로 새어 나왔다.
“장난을 장난으로 받지 못하고…….”
“신인다웠다, 의탁아.”
“너는 최선을 다했어, 의탁아.”
맏형들이 나름대로 듬직하게 어깨를 두들겨 주었지만, 정의탁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예찬은 정의탁을 위로하는 대신 슬쩍 SNS를 확인했다.
– 의탁아ㅋㅋㅋㅋㅋㅋㅋㅋ
– 막내즈 둘이 성격 다른 거 왜케 귀엽지? 생긴 거랑 성격 따로 노는 것도 개좋ㅠㅠㅠㅠㅠㅠ
– 의탁이 울리고 우쭈쭈하고 싶다
– 하 정의탁 누가 그렇게 귀엽게 굴래 누나 오늘 잠 다 잤다
잠시 이 열렬한 인터넷 현장을 정의탁에게 보여 줄지 고민했던 예찬은 조용히 화면을 껐다.
‘……관두자.’
반응이 좋으니 수치스러워하지 말고 자랑스러워하라고 했다간 아예 방으로 들어가 버릴 수도 있었다.
[다음 차례는 누구랬죠? 예찬 씨?] [아니요, 선배님! 동갑 중에 제일 생일이 늦은 건 저 채은성, 11월 1일에 태어난 바로 저입니다!]어찌어찌 정신을 차린 정의탁이 원래 자리로 들어갔더니 이번엔 채은성이 뚝딱거렸다.
긴장한 티가 팍팍 나는 채은성은 묻지도 않은 생일까지 읊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번엔 채은성의 고개가 스르르 내려가더니 제 무릎에 닿았다.
“미쳤나 봐…….”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동시에 좌절하고 있던 정의탁은 살그머니 고개를 들어 화면 속 채은성의 추태를 즐기기 시작했다.
“아이참, 은성이 형. 아이고, 이를 어째…….”
오늘도 어김없이 훈훈한 레굴루스의 팀워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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