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09)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08화
‘꽃미남즈’의 힌트는 투명하고 얇은 플라스틱이었다.
찾은 힌트들을 전부 겹치자 둥글게 원형을 그린 글자가 나타났다.
[licgar? 이게 뭐지?] [첫 스펠링이 L이 아닌 거 같은데요? C부터 읽으면 cga…… 이것도 아닌 거 같고…… 아, G부터 읽으면 garlic이네요!]빠르게 중얼거리던 선우이경이 금방 답을 찾아냈다.
“크, 순발력 봐라. 뉘 집 아들인지 훌륭하네, 훌륭해.”
“…….”
가만히 있었으면 멤버들이 알아서 칭찬해 줬을 텐데, 방정맞은 23세 남성이 자화자찬을 시작해 버렸다.
예찬의 떫은 표정과 정면으로 마주친 선우이경은 기분 좋은 티를 팍팍 내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우리 예찬이, 형의 활약에 새삼 반했어?”
“…….”
예찬이 대놓고 눈살을 찌푸리자 좋다고 킬킬 웃기까지 했다.
가끔 보면 남들이 질색하는 데서 쾌감을 얻는 것 같았다.
[갈릭이면 마늘이잖아. 마늘? 어쩌란 거지?] [마늘이 있는 곳을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구내 식당이라든지?] [그럴듯하군. 좋아, 범세혁. 널 내 내비게이션으로 임명하지. 지금부터 식당을 안내한다, 실시!] [실시!]황시우.
이상한 놈인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이상한 놈이었다.
멋대로 남의 집 왕자를 내비게이션 취급한 황시우와 나머지 셋이 작업실을 나서는 것과 맞물려 화면이 다시 예찬네 팀으로 바뀌었다.
‘피에 젖은 보물이 발아래 놓여 있습니다.’라는 힌트를 손에 넣은 네 사람은 계단을 통해 아래층 연습실로 향했다.
[하예찬, 좀 천천히 걸어! 따라가기 힘들잖아!] [그러라고 빨리 걷는 건데. 슬슬 떨어져서 걸어 주면 안 될까?]본능적으로 이 팀에서 가장 듬직한 것이 막내임을 눈치챈 주태현이 배새벽에게 찰싹 달라붙는 바람에, 채은성은 꿩 대신 닭이란 심정으로 예찬의 등에 붙어 있었다.
그 심리를 눈치챈 예찬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고.
엉거주춤 아래층 연습실에 도착한 네 사람은 미리 이야기해 둔 대로 천장을 살폈다.
[저기 뭔가 붙어 있다! 하예찬!] [……?]천장에 붙어 있는 종이를 발견한 채은성이 예찬의 이름을 힘차게 불렀다.
여기서 왜 자신을 부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던 예찬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채은성이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목말 태워야지.] [목말? 내가? 너를?]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에 채은성은 본인이 더 황당하다는 낯짝을 했다.
[……너 목말 태우는 거 좋아하잖아?]채은성이 말을 이해한 예찬의 표정이 무너졌다.
그리고 이게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한 시청자들을 위해, 시기적절하게 자료 화면이 빠르게 흘러나왔다.
츄마프 레크레이션 당시 188cm의 우휘겸을 목말 태운 채, 승리를 향한 투혼을 불태운 예찬의 영상이었다.
채은성의 오해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깨달은 예찬이 이마를 짚었다.
내가 뿌린 씨앗이라고 넘어가기엔 다소 억울했다.
그러나 우휘겸을 목말 태운 것은 본의가 아니라 전부 빌어먹을 선택창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말을 고른 예찬이 입을 열었다.
[……넌 휘겸이보다 무거울 거 같아서 안 돼.] [……너!]당연히 채은성은 난리가 났다.
체중계를 들고 온다며 채은성이 방방 뛰는 사이, 주태현이 배새벽을 가뿐하게 들어 올렸다.
배새벽은 천장에 붙어 있던 힌트를 간단히 손에 넣었고.
[새벽이 너는 살 좀 쪄야겠다. 너희 팀 전체적으로 너무 말랐어.] [선배님도 되게 마르셨는데.] [그래? 사실 이번 활동 준비하면서 5kg 뺐는데 좀 티 나? 내가 봤을 땐 턱선이 좀 달라지긴 했거든. 그런데 어디가 그렇게 마르게 느껴졌어? 역시 턱? 아니면 목? 허리?]선배다운 모습을 뽐내는가 싶더니 분도 가지 못하고 주태현이 흥분했다.
‘한 마디를 하면 몇 마디가 돌아오는 건지.’
예찬과 배새벽은 주태현과 채은성이 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힌트를 확인했다.
힌트에는 다음 장소를 암시하는 단어들이 쓰여 있었다.
[자, 그럼 출발하자!]예찬과 채은성의 입에서도 ‘선배님은 정말 날씬하고 날렵하십니다.’란 칭찬이 나올 때까지 달달 볶은 주태현이 위풍당당하게 앞장을 섰다.
그때 예찬이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했다.
– 태현이가 좀 답정너 스타일이죠? 촬영하면서 고생했겠어요. 다음에 밥이나 같이 하면서 같은 메보끼리 얘기해 볼래요?
이가원이었다.
예찬이 보기엔 이쪽도, 아니, 이쪽이 더 만만치 않게 집요했다.
뭐라고 답장할지 고민하는 사이,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 주태현 진짜 노답이네. 내가 너희 시원하라고 대신 때려 줬다. 끝나고 한잔할래?
이번엔 황시우였다.
‘별로 때리고 싶을 정돈 아니었는데.’
오히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이틀에 한 번꼴로 얼굴 좀 보자고 꼬시는 메시지를 보내는 선배들 쪽이 더 거슬렸다.
메시지 내용을 보니 유피테르 멤버들도 다 같이 모니터링 중인 모양이었다.
‘연차가 연차인데 성실하기도 하지.’
여러모로 본받을 점이 많은 그룹이었다.
물론 본받을 점이 많다고 따로 사적으로 만날 필요는 없었다.
– 앗 저희가 다음 앨범 준비 때문에 한동안 스케줄을 뺄 수가 없어서요ㅠㅠ 제안 주셔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선배님!
재빨리 거절하는 문자를 보낸 예찬은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대충 소파에 던져두었다.
모니터링에 집중하느라 답장이 온 걸 몰랐다고 하면 자기들이 어쩌겠는가.
마침 화면에 강해솔의 얼굴이 크게 잡혔기에 예찬은 정말로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었다.
때아닌 산행에 나섰던 ‘스승의 은혜’ 팀은 조곤조곤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을 설명하는 강해솔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검지로 십자가의 꼭짓점 네 군데를 짚은 강해솔이 말했다.
[아까 산 아래에서 등산로가 총 네 개고, 저희가 올라갈 길이 제일 가파르지만 짧다고 했었잖아요. 그러니까 이 십자가 모양의 끝이 각각 다른 등산로의 입구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고개를 끄덕인 이가원이 십자가의 긴 축에 그려진 검정 선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렸다.
[그러면 이 검정 선이 우리가 올라온 길이랑 이어지는 다른 등산로가 되겠구나.] [네. 길은 이어져 있다고 했으니 지금 올라온 길 말고,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될 거 같아요.]강해솔의 활약으로 힌트를 푼 네 사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곧바로 걸음을 옮기려는 심상록과 강해솔, 정의탁을 이가원이 붙잡았다.
[잠깐! 내려가기 전에 선크림을 보충하자.]주머니에서 선크림을 꺼낸 이가원이 다시금 짧고 굵게 PPL을 이어 갔다.
“그러고 보니 ‘꽃미남즈’는 PPL이 없었네?”
문득 생각났다는 듯 심상록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꽃미남즈’의 팀원이었던 우휘겸과 선우이경이 머쓱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과 같은 팀인 범세혁은 심상록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집중한 채 TV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 우리도 PPL이 있긴 했는데…….”
“……눈치를 못 챘습니다.”
“정확히는 깜빡하고 그냥 나가 버린 거지.”
마침 다시 ‘꽃미남즈’의 순서가 돌아왔다.
구내 식당을 찾은 네 남자는 입에 ‘마늘 홍삼액’이라고 쓰여 있는 붉은색 스틱을 물고 있었다.
“저거 작업실에도 있었는데 우리가 힌트 찾고 너무 신나서 깜빡했거든. 그래서 제작진분들이 식당에서 또 까먹지 말고 일단 먹고 시작하라고 주셨어.”
‘그러고 보니 작업실 책상에 낯선 붉은색 물건이 있었던 것 같기도?’
예찬이 기억을 되새기는 동안, 화면 너머의 황시우는 지금까지 나온 것 중 제일 자연스러운 PPL을 하고 있었다.
[후, 식당 찾느라 고생했더니 잘 넘어가는군. 다들 어때? 먹으니까 좀 힘이 나?] [네! 완전 기운이 펄펄 솟습니다!]대답과 표정이 따로 놀았다.
입 안 가득 퍼진 쓴맛을 견디지 못한 범세혁이 결국 양치질을 하기 위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황시우는 당당했다.
[급하게 기운 차려야 할 땐 역시 먹는 게 최고지.]상황이 작위적이긴 했지만, 국어책 읽기 수준이었던 주태현이나 백과사전에 빙의한 이가원에 비하면 그래도 괜찮은 연기였다.
‘슬슬 황시우가 연기 시작할 때 아닌가?’
예찬은 황시우가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하는 게 이듬해부터였던 걸 떠올렸다.
어떻게 보면 요즘 아이돌치고 느린 스타트였다.
‘보통 아이돌들은 어느 정도 팬덤을 모았다 싶으면 주연으로 쓱 들어가 버리니까.’
참고로 황시우는 단역은 아니지만 조연으로 연기 생활의 스타트를 찍었다.
동시에 예찬은 레굴루스 멤버들의 목표도 가까운 시일 내에 점검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리스피릿은 내가 하자고 하는 것도 억지로 꾸역꾸역했지만, 레굴루스는 좀 다를 것 같단 말이지.’
개인적으로는 아이돌 활동, 특히 그중에서도 완전체 활동에 집중하는 걸 선호했으나 이젠 전처럼 혼자서 그룹의 방향성을 정할 순 없었다.
‘연기에 뜻이 있거나 솔로 앨범을 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예찬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사이, 세 팀은 계속해서 장소를 바꿔 가며 힌트를 획득했다.
마침내 마지막 힌트가 가리키고 있던 장소에서 세 팀이 다시 마주쳤다.
[뭐야, 진짜 여기야?] [어, 저기 예찬이다! 예찬아! 은성아! 새벽아!]가장 먼저 유피테르의 숙소 입구로 돌아온 ‘꽃미남즈’ 팀이 투덜거리는 사이, 예찬이 속한 ‘주하채배’ 팀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뭘 인사하고 있어! 뛰어야지!]황시우가 속없이 멤버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범세혁을 잡아채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선우이경과 우휘겸이 바짝 따라붙었다.
[잡아!]때아닌 어른들의 술래잡기가 벌어졌다.
간발의 차로 ‘꽃미남즈’ 팀을 태운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선우이경을 제외한 ‘꽃미남즈’ 팀을 태운 엘리베이터였다.
[제가 남아서 막을게요.] [……네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마!]선우이경과 황시우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틈새로 비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황시우의 양옆에 선 범세혁과 우휘겸의 표정도 볼 만했다.
[이 앞은 지나갈 수 없어. 선배님도요.]선우이경이 뒤늦게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온 ‘주하채배’ 팀을 향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
[적이지만 대단하군. 혼자 희생해서 우리를 막아 보려는 건가?] [전부 막을 순 없지만, 시간 벌이 정도는 되겠죠.]주태현의 말에 선우이경이 자세를 낮췄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상대를 낚아챌 것 같은 자세였다.
채은성도 그에 지지 않고 자세를 낮추며 주태현에게 말했다.
[태현 선배님! 저희가 이경이 형을 맡겠습니다! 선배님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려 주세요!] [차라리 제가 계단으로…….] [새벽아, 섣불리 판단하지 마. 침착해야 해.]계단 쪽으로 튀어 나가려는 배새벽을 예찬이 만류했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사이에 둔 다섯 남자는 조용히, 그러나 격렬하게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살얼음판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은 긴장감이 이어졌다.
[저기, 정말 죄송한데 이다음 게임이 선착순이 아니거든요…… 세 팀이 다 도착해야 시작할 수가 있는데…….]지켜보다 못한 제작진이 입을 열기 전까진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다시 1층에 도착했고, 다섯 남자는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숨 막히는 어색한 침묵이 엘리베이터 안을 가득 채웠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