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0화
다음 날 아침, 조원들이 전부 모인 것을 확인한 박나길이 예찬을 돌아보았다.
“그럼 예찬이가 편곡을 하는 동안 우리는 안무를 맞추자.”
“편곡 끝났습니다.”
“응?”
예찬의 말에 박나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찬은 설명 대신 곡이 담긴 USB를 스피커에 연결했다.
“…….”
깔끔하게 마감한 곡이 끝날 때까지 조원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걸 언제 한 거예요?”
정의탁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예찬을 바라봤다.
“새벽에 일찍 눈이 떠져서.”
운동이나 할 겸 가볍게 합숙소를 한 바퀴 돌던 예찬은 운 좋게 촬영을 준비하던 스태프를 만나 편집실 열쇠를 받았다.
이런 산중 촬영지까지 가져오기에 꽤 고가의 장비들이라 잠깐 만져 본다는 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웃트로까지 마무리를 지었다.
‘진짜 일 중독인가.’
리셋 전 회사 직원들과 리스피릿 멤버들이 입을 모아 말할 때는 걱정을 사서 한다고 흘려들었는데, 낯선 얼굴들마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 절로 반성하게 되었다.
“고생 많았어, 예찬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박나길이 예찬의 어깨를 두드리고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럼 이 곡으로 처음부터 맞춰 보자.”
“네!”
예찬은 자기 자리로 이동하는 조원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보컬 5조의 연습은 처음 조 뽑기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파트 분배가 불만족스러워서 대놓고 골이 났던 김수영도 어떻게 달랜 건지 개운한 얼굴로 나타나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팀의 유일한 구멍이라 할 수 있는 김주영은 혼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의 파트에 매달렸다.
우휘겸과 박나길과도 별다른 마찰 없이 그냥저냥 잘 지내고 있었다.
‘조원 스탯도 나쁘지 않지.’
예찬은 노래에 맞춰 스텝을 옮기며 박나길이 어깨를 두드릴 때 확인한 상태창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이돌 연습생 ― 박나길
비주얼 : A-
노래 : A-
춤 : A-
랩 : E+
언변 : A-
반짝임 : B
상태 : 플레이어의 성실함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박나길은 특출나게 뛰어난 스탯은 없지만 크게 처지는 스탯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정의탁은 왜 B등급밖에 못 받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실력이 괜찮았다.
‘뭐, 아이튜브에 올라온 테스트 영상만 보면 B등급이지.’
예찬은 아이튜브에서 봤던 정의탁의 무대를 떠올렸다.
갑작스러운 심사 위원들의 등장에 제대로 놀랐는지 안무 디테일이 많이 뭉개지고 초반 음정도 영 불안정했다.
‘아무래도 돌발 상황 대처 능력이 부족한 거 같은데, 경연 무대는 게릴라 콘서트 같은 게 아니니 괜찮아. 순발력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늘게 되어 있어.’
부지런히 멤버들을 분석하고 있던 예찬의 뒤로 제작진이 연습생들을 불러 모았다.
“보컬 조는 3층 다목적실로, 댄스 조는 2층 대회의장으로 이동해주세요.”
‘중간 점검인가.’
연습 중간중간 노래와 안무 디테일의 난이도를 점차 높게 조정했음에도 조원들은 불평 없이 성실하게 잘 따라오고 있었다.
마지막 연습 때 완성도가 나쁘지 않았으니 아무리 입에 칼을 문 심사 위원들이라 해도 욕을 들이붓지는 않을 것 같았다.
“1조는 다 같이 집에 가기로 했어요? 데뷔할 의지가 하나도 안 보이는데?”
“이거 지우 솔로곡이야? 나머지 여섯은 백댄서 같아, 완전.”
“3조는 방금 입소한 줄 알았네요. 그제부터 오늘까지 뭐 했어요? 연습 안 했어요? 했어? 했는데 이거면 어떡하냐, 진짜.”
“숫자 4가 죽을 사랑 발음이 같아서 불길하다느니 그런 소리 나 되게 싫어했거든요? 근데 오늘 4조를 보니 진짜 불길하네요, 불길해.”
앞선 네 조가 줄줄이 물어뜯기고 있을 때까지도 예찬은 태평했다.
“다음 5조.”
4조가 기운 없이 비척비척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냉정하게 지켜보던 보컬 트레이너 현지영이 5조를 호명했다.
“가자.”
박나길의 말에 의자에서 일어난 예찬의 손이 정의탁의 것과 스쳤다.
“……?”
“아팠어요? 왜 멈춰요?”
눈이 마주친 정의탁이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차가운 정의탁의 손가락처럼 정의탁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예찬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트레이너들 앞에 섰다.
“보컬 5조, Erased 시작하겠습니다.”
리더인 박나길의 말이 끝나자 익숙해진 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예찬은 노래에 집중하면서도 흘끗 정의탁을 살폈다.
‘무대 엿 되겠는데.’
옆에 선 정의탁의 안색은 이제 하얗다 못해 파랗게 변해 있었다.
“유난히 화창한 날이라 네 생각이 나. 아니, 사실 흐린 날에도 나는 너를 떠올려.”
보컬 1을 맡은 박나길이 노래를 시작했다.
몇 번을 들어도 격렬한 댄스와 난해한 가사로 유명한 유피테르답지 않게 서정적인 곡이었다.
박나길은 누구와 달리 실전 파였는지 연습 때보다 노래에 감정이 풍부하게 실렸다.
박나길의 파트가 끝나자 우휘겸의 저음이 이어졌다.
‘다음이 나고 그다음이 정의탁…….’
예찬은 머릿속의 잡념을 몰아내고 발끝에 힘을 실었다.
“너와 내가 사랑을 했던 것, 그것만 남기고 싶어.”
메인 보컬의 파트가 지나고 다음은 센터가 메인에 서는 후렴구였다.
“……Erased,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망했군.’
들어가는 박자부터 틀리더니 음정도 흔들거리고 안무마저 버벅거렸다. 정의탁은 회생이 불가능했다.
‘같이 죽어선 안 된다.’
예찬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다시 돌아온 메인 보컬 파트를 불렀다.
다른 조원들도 잠깐 당황한 기색은 보였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연습한 대로 노래를 부르고 몸을 움직였다.
정의탁도 처음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마지막 소절까지 목소리가 염소처럼 파르르 떨렸다.
“너와 내가 사랑을 했던 것, 그것만 남기고 싶어.”
예찬의 파트를 마지막으로 곡이 끝나고 무거운 침묵이 다목적실에 내려앉았다.
“……5조는 일단 전반적으로는 준비를 잘했네요. 편곡은 하예찬 연습생이 했다고 했나요?”
“네.”
“저번에도 느꼈지만 편곡 실력이 정말 좋네요. 센스가 있어요.”
작곡가 계정엽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 좋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예찬을 포함한 5조의 조원들은 그가 말한 ‘전반적으로는’이란 단어가 미친 듯이 신경 쓰이고 있었다.
“다음은 현지영 선생님?”
계정엽의 말에 현지영이 고개를 저었다.
“유피테르 곡이니 가원 씨 얘기 먼저 듣죠.”
“그럼 그럴까요?”
산뜻하게 웃으며 이가원이 마이크를 들었다.
“이 무대를 본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 같아요. 다섯 명이 다 잘해도 한 명이 못하면 그 무대는 성공한 무대가 될 수 없다. 정의탁 연습생, 연습 많이 해야겠어요.”
“……네.”
정의탁이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짜 대답했다. 이가원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나머지 다섯 분에겐 미안한데 뭐라고 코멘트를 할 수가 없네요. 정의탁 연습생만 너무 잘 보였거든요. 혼자 너무 튀어서.”
“내 말이 그거야. 예찬이까지 딱 좋았는데. 의탁아, 센터가 그렇게 하면 어떡해.”
현지영이 속이 다 후련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김주영 연습생은 이 노래랑 아주 잘 맞는 거 같더군요. 지금까지 중 제일 좋았어요.”
“난 휘겸이랑 예찬이 이어지는 파트가 그렇게 괜찮더라. 합이 아주 좋아. 수영이도 이를 간 게 느껴지더라. 느낌 있었어.”
“박나길 연습생이 리더로서 잘 이끌어 준 거 같아요.”
다른 팀과 달리 호평도 제법 길게 이어졌다.
연습생 개개인의 칭찬이 이어지는 동안 정의탁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도 당당하게 심사석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에 예찬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아 하는 녀석들일수록 상처도 잘 받는 법이었다.
“아무튼 전반적으로는 좋았지만 센터는 다시 생각해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계정엽의 말을 끝으로 길고 길었던 중간 심사가 끝났다.
“감사합니다!”
여섯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 * *
다목적실을 나선 후에도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일단 연습실로 이동하자.”
어색한 침묵 속에서 박나길이 입을 떼자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걷는 정의탁의 티셔츠가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옷이 저렇게 흠뻑 젖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린 것을 보니 멘탈이 얼마나 나갔을지 뻔했다.
“저기요.”
연습실에 도착하자 이동하는 내내 무언가 말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해 보이던 김수영이 참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왜, 수영아?”
김수영이 잠깐 정의탁의 눈치를 살폈다.
‘미친, 잠깐, 너 하지 마라.’
그러나 예찬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김수영은 기어코 그 말을 뱉고 말았다.
“저희 센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아, 하지 말라고.’
예찬이 엄지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는 사이 김수영은 언제 망설였냐는 듯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의탁아, 너한테는 섭섭한 말인 거 알아. 그렇지만 이번이 첫 경연인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무대를 만들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나요? 계정엽 작곡가님도 그렇고 센터를 바꾸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먼저 정의탁을 한 번 안타깝게 바라본 김수영이 몸을 돌려 조원들에게 말했다. 예찬이 덤덤한 목소리로 김수영의 말을 잘랐다.
“생각해 봐도 될 것 같다고 하셨을 뿐이지, 바꾸라고는 안 하셨어.”
“그게 그 말 아닐까요, 예찬이 형?”
“의탁이가 평소에 못한 것도 아니고 지금 한 번 실수한 건데 너무 성급한 거 같아.”
무대를 망친 건 사실이지만, 아직 중간 평가일 뿐이었다.
연습 때 불성실했던 것도 아닌데 단지 한 번의 실수로 포지션을 바꾼다는 것은, 팀 분위기를 바닥에 처박겠다는 말이었다.
‘한 번 있는 일은 두 번도 있다고, 바뀐 놈이 사소한 실수 하나만 해도 다른 놈으로 포지션을 또 바꿔야 한다고 득달같이 달려들게 될걸.’
그렇게 되면 정말로 또 포지션을 바꾸든 바꾸지 않든 본 무대를 잘할 거라 생각하긴 어려웠다.
미간을 찌푸린 김수영의 뒤에 서 있던 김주영이 조심스레 나섰다.
“그렇지만 중요한 순간에 실수한 거니, 더 중요한 진짜 무대에서도 그럴 수 있잖아. 좀 불안한 건 사실이야.”
“오늘 중간 점검은 너무 갑작스러웠잖아. 무대는 충분히 준비하고 설 거고.”
“형, 의탁이 등급 테스트 때도 두 번 다 실수했어요. 영상 못 보셨어요?”
“지금 우리 조 노래도, 조원도, 파트도 전부 뽑기로 정했지. 거기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센터는 우리가 직접 뽑았어. 다 같이 뽑았으니 책임도 다 같이 지는 거야.”
예찬의 말에 김수영이 코웃음을 쳤다.
“저는 그때 의탁이 안 뽑았는데요?”
“수, 수영아……!”
‘이 자식이?’
당황한 김주영이 팔을 붙잡았지만 김수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예찬을 쏘아보았다.
기가 찬 예찬이 반박하려던 순간 누군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정의탁?’
뒤를 돌아보니 정의탁이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예찬의 티셔츠를 잡고 있었다.
정의탁은 당장 병상에 누워야 할 것 같은 얼굴과 달리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연습해서 실수하지 않을게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얼마나 세게 옷을 쥐었는지 하얗게 질린 손가락 끝에서, 예찬은 간절함을 보았다.
문득 정의탁만큼이나 간절했던, 그러나 까마득히 멀어진 리셋 전 Lee 엔터 연습생 시절이 떠올랐다.
예찬은 이 가여운 청소년을 위해 최대한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많은 회귀를 겪으며 멤버들이 서로 의견이 갈려 내가 맞니 네가 맞니 싸울 때, 가장 쉽고 빠르게 싸움을 끝내는 방법이 있었다.
“나길이 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바로 다른 놈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끌어들이는 놈이 나이가 많거나 직책이 높을수록 효과는 뛰어났다.
박나길은 셈이 밝은 놈이니, 본인이 메인 보컬이 될 실낱같은 가능성보다는 조의 분위기를 재기 불능으로 망치지 않는 데 손을 들어주리란 확신이 있었다.
김수영이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우리끼리 하는 얘기에 왜 형을……!”
“이게 어떻게 우리끼리 하는 얘기야. 우리 조 센터 포지션 얘기인데.”
“그만!”
팔짱을 끼고 대화를 듣고만 있던 박나길이 말을 끊었다.
“센터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