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11)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10화
공식 휴가의 마지막 일정을 예능 시청으로 보낸 레굴루스는 다시 다음 앨범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메신저 앱에는 단체방이 하나 더 생겼다.
– 유피테르 이가원 선배님 : 레몬 봤어요? 축하해요~^^
– 레굴루스 심상록 형 : 와! 지금 봤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 유피테르 황시우 선배님 : ㅊㅋ 작곡가 한턱 쏴라 오늘 어떰?
– 유피테르 강연록 선배님 : 저기요 황시우 씨 댁이 시간이 안 되거든요?
–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 레굴루스 정의탁 : 감사합니다!
이가원과 황시우의 주도하에 생긴 단체방에는 레굴루스와 유피테르 멤버가 모두 들어 있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던 중, 메시지를 확인한 예찬은 레몬 음원 순위를 확인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던 발이 멎었다.
‘이게…… 되네?’
1위↑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 ? Regulus
정말로 됐다.
예찬은 ‘당싶말’ 앞에 의기양양하게 붙어 있는 숫자 1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화면을 캡처했다.
조금 빨라진 발걸음으로 연습실에 들어서자 이미 멤버들은 한껏 1위의 기쁨에 취해 있었다.
“예찬이! 우리 천재 작곡가님! 레몬 차트 봤어?”
선우이경이 예찬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 볼이 빨개진 정의탁이 달려 나왔다.
“우리 스타 라이브 할까요? 제목 뭐라고 하죠?”
“일단 회사에 말하고.”
당장이라도 라이브를 켤 것처럼 흥분한 정의탁을 대충 달래고 안쪽 상황을 살폈다.
우휘겸은 스피커 옆에 붙어서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틀고 있었고, 채은성은 배새벽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 옆에서 범세혁은 라이브로 ‘당싶말’의 하이라이트 파트를 부르고 있었으며, 바닥에 앉아 있는 심상록과 강해솔은 박자에 맞춰 손을 흔들며 호응하고 있었다.
다들 끓어오르는 흥겨움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타이틀곡이야 활동 중 팬들이 최선을 다해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를 해 주기 때문에 1위를 찍곤 하지만, 이미 활동이 끝난 앨범의 일개 수록곡이 차트 1위에 오르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공중파 예능에서 언급된 것부터 택톡에서의 유행까지, 어쩌다 좋은 흐름을 탔기 때문이었으나 어쨌든 1위였다.
“1위! 1위 한 거 봤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복도를 시끄럽게 쿵쿵 울리며 달려온 신 PD의 축하를 받은 멤버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스타 라이브로 짧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모든 것이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순조로웠다.
* * *
팬들이란, 아니 어쩌면 사람이란 원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조금 이성을 잃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지만 노련한 사람들은 그렇게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섣불리 타인에게 꼬투리를 잡힐 만한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제 남돌 레굴루스 밑으로 다 퇴물 아님?]그러니 아마 이 글은 이제 막 레굴루스의 팬이 된 사람이 썼든지, 아니면 이클립틱을 욕먹게 하고 싶은 다른 아이돌의 팬이 썼든지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박모 씨는 후자가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음원은 레굴루스가 잡은 듯?
한 물이 아니라 두 물은 간 밤쉘이나 사우스케이는 말할 것도 없고 리스피릿도 이번 앨범 순위 보니 퇴물 다 됐던데?
당싶말 1위 유지하는 거 보니 세대교체 끝난 듯ㅎㅎㅎ
내용을 읽어 보니 확실했다.
‘괜히 다른 그룹 머리채 잡는 거 보면 뭐…….’
박모 씨 또한 레굴루스가 이 시대의 새로운 남돌 음원 강자로 떠올랐다고 생각은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일부러 다른 아이돌 그룹 이름을 검색이 잘되도록 또박또박 써 놓은 데에선 악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아찔한 기분으로 댓글 창을 확인하자 역시나 실시간으로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 퇴물ㅋㅋㅋㅋ 그래서 느굴루스 타이틀곡 순위 몇인데?
– 최근 앨범 리스피릿 타이틀곡 순위 21위 개굴루스 33위
└ 레굴루스 최근 앨범 수록곡 순위 1위^^
└└ 어쩌다 운빨로 1위 해 놓고선 ㅈㄴ 나대네
└└└ 각 잡고 만든 퇴스피릿 타이틀곡[[[운빨 1위한 갓굴루스 수록곡 ㅅㄱ
– 밤쉘 마지막 앨범이 4년 전인데 괜히 멱살 잡혔네 ㅋㅋㅋ 레전드한테 괜히 비벼 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함ㅠ
– 근데 말투가 ㅈㄴ 재수 없어서 그렇지 내용은 다 맞말 아님?
└ 개소리 ㄴ 밤쉘이랑 사케 둘 다 레몬 연간 1위곡 있는데 그게 우스워 보임?
└└ 그 시절엔 남돌도 음원 좀 괜찮았음
└└└ 그 시절이래ㅋㅋㅋ 그래서 그 시절에 연간 1위한 남돌이 또 누구 있는데?
– 리스피릿 원래 반짝 1위 하고 항상 지금처럼 떨어짐
└ 자랑이다
비슷한 내용으로 싸우는 댓글들이 그 아래로도 주욱 이어져 있었다.
글쓴이로서는 보람이 있을 것 같은 결과였다.
‘과연 이 중에 진짜 팬이 몇이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캡처당할 만큼 당했겠지만 그래도 박모 씨는 조용히 신고 버튼을 눌렀다.
왕관의 무게를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고들 하지 않는가.
원래 잘나가는 그룹의 팬덤이 조용하긴 쉽지 않다며 숨 쉬듯 자연스럽게 정신 승리를 한 그녀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아아악!”
저 멀리서 비명이 들린 것을 보니 레굴루스가 공항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얘들아!”
“휘겸아, 한번만 여기 봐 줘!”
“배새벽 잘생겼다!”
“하예찬 결혼하자!”
“범세혀어어어어억!”
소음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미리 설치해 둔 사다리에 오른 박모 씨의 눈이 몰려오는 인파 속에서 정확히 예찬을 찾았다.
‘머리 진짜 검은색이네!’
예찬은 오늘도 어김없이 비니를 쓰고 있었지만, 그 아래로 슬쩍 보이는 머리카락은 분명 검은색이었다.
“……와.”
빠르고 정확하게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과 달리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오랜만에 실물로 본 예찬은 어쩐지 전보다 더 반짝거렸다.
레굴루스는 오랜 시간 기다린 기자들과 팬들을 위해 잠깐 자리에 멈춰 서 손을 흔들었다.
“해솔 씨!”
“여기 좀 봐 주세요, 이경 씨!”
“하트 한 번만 해 주세요!”
“이쪽도요!”
“모자 좀 벗어 주세요!”
기자들의 외침에 성심성의껏 포즈를 취한 멤버들은 모자를 벗어 달라는 요청에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팔이나 손가락으로 엑스 자를 만들어 보였다.
‘미쳤나. 왜 모자를 벗으래.’
그때 커다란 목소리가 정의탁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의탁이 혀어엉!”
자신보다 배는 굵은 목소리에 놀란 정의탁이 자신을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형이요? 저요?’
“네에에에! 의탁이 형 멋있어요오오오!”
이에 화답하듯 남성 팬의 목소리가 다시금 크게 울렸다.
정의탁과 멤버들이 웃음을 터트렸고 멤버들을 둘러싼 셔터 소리는 미친 듯이 빨라졌다.
* * *
공항을 통과한 멤버들은 비행기 좌석에 앉고 나서도 비니를 벗지 않았다.
비행기 내에도 사람들의 눈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슬로 가서는 벗어도 되겠지?”
“그치. 거기선 벗어야지.”
목 베개를 목에 끼우며 범세혁이 묻자 채은성이 대답했다.
그 옆에 앉은 예찬도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오슬로에 레굴루스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혹여나 있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여기도 우리 팬이 있네, 하고 감사히 여겨야지 뭐.’
급하게 신청한 여권이 늦지 않게 나왔기에, 레굴루스는 무사히 서준우 작가가 기다리고 있는 오슬로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앞좌석에 앉은 선우이경이 좌석 틈새로 빼꼼 얼굴을 들이밀었다.
“은성아, 형이 신발 벗고 타라고 했는데 왜 그냥 탔어.”
“이경이 형, 그거 너무 유명한 장난이잖아요. 제가 비록 비행기는 이번에 처음 타 보지만 그 정도 상식은 있습니다.”
채은성이 눈살을 찌푸리는 게 뭐 그리 좋은지 선우이경은 킥킥 웃었다.
“이경이 형이 저한테도 그 농담 했어요! 제가 해외에 안 가 본 거지 비행기를 안 타 본 게 아닌데!”
건너편 좌석에 앉아 있던 정의탁이 고자질하는 것 같은 말투로 끼어들었다.
제주도민으로서 분했던 모양이었다.
“미안 미안. 여권이 없었다는 것만 생각했지 뭐야.”
선우이경이 또 비실비실 웃음을 흘렸다.
당연히 정의탁의 눈매는 매서워졌다.
“그러면 예찬이 형한테는 왜 안 했어요! 예찬이 형도 이번에 같이 여권 만들었는데! 저랑 은성이 형이 만만한 거죠? 그렇죠?”
“정말로요? 저 만만한가요?”
그럴 리가 없다며 채은성이 다급하게 물었다.
무척 만만해 보였다.
예찬은 선우이경을 대신해 만만이즈에게 대답해 주었다.
“나한테도 했어.”
‘속진 않았지만.’
리스피릿 시절에 해외 투어도 몇 번이고 다닌 몸이다.
여기 있는 누구보다 비행 경험이 많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진짜? 이경이 형, 뚝심 있는 남자시군요.”
“그런 이상한 농담을 셋한테나…….”
채은성과 정의탁이 이번엔 태도를 싹 바꿔 그런 장난을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하냐며 선우이경을 비난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는 놈들이었다.
선우이경의 옆에서 카탈로그를 뒤적거리던 심상록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식했다.
“아, 그래서 아까 예찬이가 이경이 신발을 벗겼구나.”
“으앗, 봤어?”
“신발을 벗겨요?”
부끄럽지도 않으면서 부끄러운 척 선우이경이 어깨를 움츠렸고, 채은성과 정의탁의 눈은 호기심으로 빛났다.
“둘이 내 뒤에 서 있었는데, 비행기 입구 쪽에서 왠지 신발을 들고 실랑이하더라고.”
그렇다.
비행기에 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선우이경의 장난에 예찬은 좋은 정보를 알려 줘서 고맙다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이경은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앙다물었고.
그리고 비행기 입구가 코앞으로 다가온 순간, 그때만을 노리던 예찬은 과감하게 선우이경의 다리를 붙잡아 들고선 신발을 벗겼다.
부지불식간의 일이라 선우이경은 반항도 제대로 못 했다.
늠름하게 신발을 빼앗아 든 예찬이 말했다.
– 신발 벗고 들어가는 거라면서요. 시범을 먼저 보여 주시죠.
그제야 예찬이 다 알고도 속아 주는 척했을 뿐이란 걸 깨달은 선우이경은 양말 바람으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예찬은 자신의 죄를 뉘우친 죄인에게 신발을 하사하였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채은성과 정의탁이 또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 괜히 먼저 들어와서 못 봤네!”
“억울합니다! 이따 재현해 주세요!”
이쪽을 쓱 훑어본 강해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조용히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예찬은 스마트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 나는 휘말렸을 뿐임.
그대로 메신저 앱을 켜고 잠시 기다렸으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예찬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강해솔을 바라보았다.
강해솔은 그새 눈까지 꼭 감고 머리를 좌석에 깊이 묻고 있었다.
강해솔이 예찬을 무시할 리는 없으니, 아무래도 비행기 모드로 전환해서 메시지가 온 것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예찬은 가벼운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고 눈을 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