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214)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213화
잠깐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바로 평정을 되찾은 서준우 작가가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한…… 여섯 시간 정도?”
태평하게 말하고 있지만 서울에서 부산보다 먼 거리였다.
‘그리고…….’
아무리 포커페이스를 유지해도 저쪽이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좀 줄여서 부르셨죠?”
“…….”
이상한 일이다.
분명 무표정임에도 서준우 작가의 이마에 ‘어떻게 알았지?’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서준우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여섯 시간 오십 분 정도?”
‘많이도 줄였군.’
그 정도면 7시간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근처에 있던 스태프가 말주변 없는 서준우를 지원 사격하기 위해 나섰다.
“기차를 타서 그렇게 걸리는 거고, 비행기도 있다고 들었어요. 비행기로는 대충 한 시간 정도에요.”
과연 레굴루스와 서준우 양측의 스태프를 전부 태울 비행기를 바로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예찬은 다음으로 신경 쓰이는 것을 물었다.
“그런데 작가님, 오늘 말고는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지금부터 이동한다고 해도 밤에 도착할 거 같은데…… 야간 촬영을 생각하시는 걸까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노르웨이의 여름 아침은 아주 이르게 시작되거든요. 네 시 반이면 해가 뜨더라고요!”
이번에도 스태프가 대답했다.
거기에 더해 내일 정오에 서준우가 방문해야 할 곳도 마침 송네 피오르 근처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사람 좋게 웃기까지 했다.
요약하자면 지금부터 미리 이동해서 내일 새벽에 촬영하자는 뜻이다.
“…….”
지난밤 서울에서 출발해 제대로 된 휴식 없이 강행군을 이어 가고 있는 레굴루스와 스태프들에겐 쉽지 않은 이야기다.
그래도 유명 작가가 불이 붙어서 더 찍고 싶다고 나서는데 이 기회를 잡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예찬과 멤버들은 고개를 숙인 다음, 바쁘게 짐을 챙기는 스태프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사이 항공편을 알아본 매니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번에 다 같이 타는 건 안 되겠다. 찢어져서 가야 할 거 같아.”
“그럼 차라리 기차를 타고 이동할까요?”
“그것도 괜찮죠! 넉넉잡아 일곱 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서준우 측 스태프가 약을 팔았다.
여기서 오슬로 시내에 있는 기차역까지 이동하는 시간, 또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중간에 다른 기차로 갈아타기도 한다니 환승에 걸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일곱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뭐, 어차피 내일 찍을 거면 상관없나.’
잠깐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우 작가가 워낙 짧고 굵게 작업하는 스타일인지라 촬영은 정말 빨리 끝났다.
지금 노르웨이는 7월 22일 오후 4시 47분.
한국은 그보다 7시간이 이른 7월 22일 오후 11시 47분.
예찬의 생일인 7월 23일을 13분 남겨 두고 있었다.
* * *
7월 23일 자정이 되었다.
시계가 59분에서 00분으로 넘어가는 순간, 하예찬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들이 SNS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 예찬아 생일 축하해!! 내년에도 예찬이의 생일을 축하할 수 있기를!! #레굴루스의_리더_하예찬_생일축하해
– 이 대한민국에 태어나 줘서 압도적 감사……! 사랑한다 하예찬♡ #여름의_축복_예찬아_생일축하해
– 예찬아 생일 정말 정말 축하해~ 노르웨이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길 바랄게~~~ #예찬이의_스무살을_축하합니다
– 예찬이 네 덕분에 매일매일이 행복해! 사랑해♡♡♡ #우주최강_메인 보컬_하예찬_탄신일
자정이 됨과 동시에 레굴루스의 공식 아이튜브 채널과 SNS에도 영상과 사진이 올라왔다.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우리 사랑하는 이클립틱. 항상 여러분의 곁에서 밝게 빛나는 별이 되고 싶은 레굴루스의 리더 하예찬입니다.]아직 머리가 노랗던 시절 미리 찍어 둔 영상과 사진이었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생일을 축하해 주는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진하게 들어가 있기에 팬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보았다.
물론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긴 했다.
전직 회사원이자 현직 예찬의 홈마 박모 씨는 고이고이 아껴 두었던 예찬의 사진 몇 장을 생일을 축하하는 해시태그와 함께 올린 후, 실시간 인기 해시태그를 확인했다.
‘예찬이 것도 올라가긴 했는데…… 정찬양 게 더 많긴 하네.’
숨 쉬는 것만 봐도 짜증이 치미는 정찬양은 왜 생일도 예찬과 똑같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나이에, 포지션에, 리더라는 직책까지 겹쳐서 해시태그에 쓰인 단어들도 어딘지 비슷한 느낌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박모 씨는 꼴 보기 싫은 리스피릿은 잊고 팬 사이트로 시선을 옮겼다.
– 하예찬 어떻게 생일도 7월 23일…… 너무 갓벽해……
└ 저 죄송한데 7월 23일이 원래 무슨 날인가요?
└└ 예찬이가 태어났죠.
└└└ 네?
– 7월 23일 탄생화 장미, 꽃말은 아름다움
– 복숭아들 스밍 열심히 합시다! 울 예찬이의 당싶말로 진짜 사고 함 쳐 봐요ㅋㅋㅋ
– 예찬론에 올라온 사진 보신 분??ㅠㅠㅠㅠ
└ 진짜 레전드 고자극ㄷㄷㄷㄷㄷ
└└ 제가 본 거 복근 맞나요? 제 눈에만 복근으로 보이는 거 아니죠??
└└└└ 제 눈에도 그렇게 보임요……
박모 씨가 기적적으로 담아낸 복근 노출 사진이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었다.
박모 씨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크롤을 내렸다.
– 하필 한국에 없어서 쬐끔 아쉽긴 하다;; 솔직히 생일 라이브 기대했음…… ㅋㅋㅋㅠㅠ
└ 애들 데뷔하구 맞는 첫 생일이라 그럴 수 있져ㅋㅋ 사실 저도 기대함ㅠㅠㅠ
└└ 핫ㅋㅋㅋㅠㅠㅠ 노르웨이에선 힘들겟죵……
└└└ 촬영 중이면 쫌 힘들지 않을까요?
└└└└ ㅠㅠㅠㅠㅠ미련을 왜 버리지 못하는 걸까여ㅠㅠㅠㅠㅠ
– 전 사실 애들 머리 바꾼 것 땜에 스포 된다고 안 올 거 같은데 다들 기대하는 눈치셔서 좀 당황했음;;;
└ 모자 쓰고라도 와 주지 않을까요?
└└ 못 본 척 할 수 있으니 제발 와 줬으면ㅠㅠㅠㅠ
이번에도 박모 씨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레굴루스가 워낙 스타 라이브를 자주 하다 보니, 팬들은 은연중에 리더의 생일인 만큼 당연히 라이브를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빠도 잠깐이라도 와 주지 않으려나?’
그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스타 라이브 알림이 울렸다.
[생일 축하합니다! 하예찬 해피 버스데이 라이브]저 제목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봐도 생일 라이브였다.
재빨리 접속하자 벌써 엄청난 숫자의 팬들이 입장해 있었다.
박모 씨의 눈이 빠르게 예찬을 훑었다.
“미쳤나 봐!”
혼자 살아서 다행이었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박모 씨는 예찬의 머리 위에 달린 보랏빛 방울 두 개를 다시 확인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다.
하예찬은 흔히들 사과 머리라고 부르는, 앞머리를 위로 모아 묶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머리 끈은 심지어 커다랗고 반짝이는 보라색 방울이었다.
[이 정도면 다들 들어오셨으려나? 빛나는 당신의 별, 안녕하세요 하예찬입니다!]상체를 담요로 감싸 옷을 가린 상태로 몸을 좌우로 살짝살짝 흔들던 예찬이 한쪽 손만 살짝 빼서 인사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지금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근처에 있는 송스넌 호수에 와 있어요. 경치가 정말 좋지 않나요?]그렇게 말하며 예찬은 슬쩍 몸을 틀어 뒤를 바라보았다.
그 말대로 푸른 하늘 아래 새파란 호수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예찬이 보느라 배경 지금 봄
– 예찬아 생일 축하해!!
– Happy Birthday 예찬
– 좋은 모델+좋은 배경=진짜 좋음
– 하예찬 결혼하자……
채팅이 얼마나 빠르게 올라가는지 읽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박모 씨도 쉴 새 없이 생일을 축하한다는 채팅을 치며 예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원하게 깐 이마와 헤어라인이 어찌나 귀여운지 제발 다음엔 저러고 무대에 올라와 줬으면 하는 마음이 절절 끓었다.
[머리 잘 어울려요?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모자를 쓰고 방송할까도 생각했는데, 다들 이미 아시는 거 같아서…… 다른 멤버들이요? 저기서 모자 쓰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이클립틱의 귀염둥이, 그리고 예찬이가 존경하는 형, 선우이경입니다! 복숭아들~ 우리 리더 오늘 생일이에요!] [생일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생일빵 아닐까요?] [은성이 네 생일에는 기억해 둘게. 나는 괜찮아.] [우리 사이에 사양하지 않아도 돼.]예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 안으로 모자를 눌러 쓴 선우이경과 채은성이 불쑥 들어왔다.
박모 씨는 본능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검정? 아니면 짙은 남색인가? ……아무리 봐도 검정 같은데?’
모자 밑으로 슬쩍슬쩍 보이는 두 사람의 머리카락 색을 추측하는 사이 다른 멤버들도 노래를 부르며 다가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뒤이어 하예찬, 예찬이, 예찬이 형 등 여러 가지 호칭이 섞이더니 마지막 ‘생일 축하합니다’는 또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여느 때처럼 귀엽게 투닥거리던 레굴루스는 아직 스케줄이 끝나지 않아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며 아쉬운 얼굴로 라이브를 끝냈다.
박모 씨는 손으로는 가지 말라고 채팅창에 외치면서 입으로는 멤버들을 응원했다.
“얘들아, 잘하고 와!”
짧고 굵은 라이브가 끝난 후, 엄청난 속도로 머리에 방울을 단 사과머리 예찬의 팬아트들이 SNS를 뒤덮었다.
시리즈로 다른 멤버들의 사과머리 팬아트도 있었다.
* * *
스타 라이브를 끝낸 레굴루스는 목적지인 송네 피오르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예찬의 소매를 옆자리에 앉은 배새벽이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리자 배새벽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내일 촬영이 끝나면 이제 자유 시간인 거죠?”
“그렇지.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배새벽이 평소에 딱히 자유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 적은 없었던 터라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배새벽은 예찬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노르웨이 북쪽에 있는 트롬쇠가 오로라 명소래요.”
“그래?”
송스넌 호수에서 오슬로로 이동하는 동안 평소처럼 자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더라니, 노르웨이 여행 명소라도 찾아본 모양이었다.
‘난 얼른 쉬고 싶은데. 요즘 젊은 애들은 굉장하네.’
역시 십 대는 달랐다.
“비행기 타고 두 시간이면 간다던데…… 끝나면 다 같이 트롬쇠에 갈래요?”
배새벽은 말 그대로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형, 전에 오로라 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배새벽의 체력에 감탄하고 있던 예찬의 눈이 커졌다.
확실히 며칠 전에 다음 휴가 얘기를 하면서 그런 말을 하긴 했다.
솔직히 감동이었다.
“새벽아.”
“네.”
그렇지만 감동은 감동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지금 시기엔 오로라를 보기 힘들어. 겨울에 보통 많이들 보러 가잖아.”
“아.”
그렇지 않아도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는 오로라인데 7월은 좀 많이 선을 넘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제대로 전해졌다.
농담처럼 했던 말을 이렇게 진지하게 기억하고 있다니.
예찬은 풀이 죽은 배새벽의 어깨를 흐뭇하게 두들기고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피곤하지만 기분 좋은 생일이었다.
오